심플 플랜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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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작품은 꽤 좋아하는 편이지만 우울한 날만은 피하게 되는 편이다. 킹의 작품은 대개 평범한 가장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파국을 맞는다. 초반에는 지루한 듯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지만 그 와중에도 눈을 뗄 수 없는 흡입력이 있어 그의 작품을 떠올리면 여름 날의 무더위를 떠올리게 된다. 끈적끈적하게 달라 붙지만 떨쳐 버릴 수가 없는 시간을 말이다. 그런데 이 책 '심플 플랜'을 읽게 된 것은 실은 스티븐 킹이 '이 책에 견줄 만한 서스펜스가 없다'고 격찬했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단숨에 흥행작에 오른 책이라는 뒷배경까지는 몰랐지만 좋아하는 작가가 추천한 책이라는 흥분에 중요한 사실을 하나 잊고 있었다. 스티븐 킹이 추천할 만한 스릴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심플 플랜'에서는 거대한 행운과 마주하게 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회계사인 행크는 형인 제이콥, 형의 친구인 루와 함께 형의 트럭을 타고 있었다. 형제는 친하기는 커녕 일 년에 한 번 대화할까 말까 한 사이였지만 일 년의 마지막 날 오후만큼은 함께 보내는 편이었다. 몇 년 전에 죽은 아버지의 유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성묘를 가던 형제는 중간에 루를 내려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묘 앞에 가서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둘 중 하나가 이제 되었으니 내려 가자라는 말을 신호로 헤어지면 되는 것이었다. 신년을 맞이하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였다.

그런데 이들은 도중에 사고를 겪는다. 피더슨 농장의 닭을 입에 문 여우가 도로에 뛰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급하게 핸들을 꺾어 큰 사고를 면했지만 헤드라이트는 부서져 있었다. 거기에 형 제이콥의 개 메리 배스가 여우를 쫓아 가버린다. 개를 찾을 겸 여우를 사냥하겠다는 형과 루의 말에 행크는 만류하려 하지만 그 일은 묘한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고 셋은 할 수 없이 동행하게 된다. 문제는 그들이 불시착한 비행기를 발견했다는 데에 있었다. 그저 보안관에게 신고했으면 되었을 일을 형 제이콥과 루는 굳이 안을 조사하겠다고 했다. 생존자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안에 들어갈 사람은 행크였다. 들어가지 않으면 놀릴 기세였고 서른이 다 되어서 청소년기에 할 만한 담력시험을 할 처지가 된 행크는 한숨을 쉰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으므로 그는 비행기 안으로 들어선다. 조종사는 예상대로 죽어 있었고 흉측스럽게도 눈은 까마귀에게 쪼아 먹혀 없어진 상태였다. 사람의 살맛을 본 까마귀는 대담하게도 행크를 공격하기까지 해서 행크는 기겁한다. 행크는 급하게 비행기를 빠져 나온다. 도중에 발에 걸린 더플 백 역시 끌고 내린 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지만 더플 백 안에는 돈 뭉치가 가득 들어 있었던 것이다. 회계사이며 여유로운 가정을 유지하고 있던 행크는 보안관에게 신고하고 넘겨주자고 하지만 실직 상태라 돈이 궁했던 형과 루는 한 뭉치씩만 챙기자고 제안한다. 언뜻 봐도 3백만 달러가 넘게 들어 있으니 1만 달러에 해당하는 한 뭉치씩을 꺼내도 걸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공범이 되기 싫었던 행크는 거부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도 탐욕이 싹트고 있었다. 그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지만 성적이 원하는 것만큼 나오지 않아 회계사가 되었고 대도시가 아닌 고향 마을의 사료상에서 일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체념하고 있던 부분들이 거액을 눈 앞에 두자 조금씩 하찮아진다. 행크는 두 사람을 제지하면서 한 뭉치씩 가진 후 신고하면 잡힐 테니 전부를 챙기자고 말한다. 단, 조건이 있었다. 6개월 동안 그가 돈 전부를 보관하고 비행기가 발견된 이후에도 그 돈을 찾는 사람이 없으면 나눈다는 것이었다. 만약 찾는 사람이 있어서 그들이 잡힐 것 같으면 전부 불에 태우겠다고 했다. 형 제이콥과 루는 머뭇거리다가 챙긴 돈 뭉치를 다시 가방 속에 넣는다. 이제 주도권은 행크의 손에 있었다. 그가 몰랐던 것은 그 역시 그 돈을 누구보다도 원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비밀은 한 사람만이 알고 있어야 비밀이라고 한다. 두 사람이 알고 있어도 비밀은 깨어지기 쉽다. 그런 마당에 세 사람이 알고 있는 비밀은 사실상 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다. 6개월 동안 쓸 수 없는 거액의 돈과 돈에 궁핍한 사람들이 맞부딪히다보면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마구 돈을 쓰면 돈의 원래 임자나 경찰에게 꼬리를 잡힐 수 있음에도 눈앞의 일확천금에 이성이 마비되는 것이다. 중산층으로 보였던 행크와 그의 아내 사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실에 순응하고 살던 그들은 거액을 보자 그들이 포기했던 것들을 떠올린다. 그 순간 현실은 보잘 것 없어지며 그 돈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거기에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형제와 믿을 수 없는 한 사람이 끼면 그 결과는 뻔 한 것이다. 거액과 서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일으킬 수 있는 일의 최악을 불러들인다. 그들은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지만 모든 것을 불태우는 재앙의 불은 이미 시작되었고 모든 것을 다 재로 만들기 전까지 불은 꺼지지 않을 예정이었다. 더 오싹했던 것은 그들이 자신이 하는 일이 돈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라고 주장한다는 점이었다. 누구나 지키고 싶은 '우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무서워졌다. 하지만 자신의 탐욕을 위해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방패막이로 쓰는 순간 '우리'는 이미 부서진 후라는 것을 그들은 왜 몰랐을까. 거대한 행운에 눈이 멀어 양심이 마비된 순간 결말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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