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사람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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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에서 살인자가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시체를 어디에 숨길까 하는 것이다. 사람의 시체라는 것이 묘해서 잘도 나타난다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나무는 숲에 사람은 군중 속에 숨긴다면 시체는 묘지가 적격일 것이다. 그렇다면 비밀은 어떨까. 뒤팽의 도둑맞은 편지는 버젓이 편지함에 꽂아 둔다는 것이 정답이었지만 사람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그 사람만이 알고 있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미소로 일체의 질문은 방어하면서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비밀을 가지고 산다. 그것이 창피한 것에 그칠 때가 있는가 하면 남이 결코 알아선 안 될 만한 범죄에 가까운 것이 있다.

비밀을 감추기에 미소가 가장 좋다면 미소를 띄우면서 거리를 지키면 좋으련만 가끔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무서운 비밀을 없애는데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웃는 얼굴만 보면 선량하기 그지없어서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평범한 사람들의 미소가 오싹해지는 것이다. 미드 <NCIS>의 등장인물 중 하나가 누군가 자신을 계속 감시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동료는 웃으면서 이웃집의 러시아 아가씨냐고 물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자의식 과잉이나 편집증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의심이 정당한 것이었다면 거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일본의 미스터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색 추리 단편집인 <수상한 사람들>을 이루고 있는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느 날 위화감을 느낀다. 무언가 이상한 일을 겪고 기이한 느낌을 받는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거나 '별일이네'라며 지나치는 것이다. 예전에 했던 <인생극장>도 아닌데 거기서 갈림길이 나뉜다.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지만 위화감을 느낀 시점에서 누군가의 숨은 악의가 이미 그들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알아채지 못한다면 낭떠러지인데 그들은 알아채지 못하고 고민한다. 뭔가 껄끄럽다고 생각하면서도 꼭 집어 뭐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고 있던 여자>에서는 주인공이 집에 돌아와보니 웬 알 수 없는 여자가 자고 있었다. 그는 그리 당황하지 않는데 근 몇 달 간을 친구에게 집을 빌려 주었기 때문이다. 돈이 아쉬웠기에 친구들에게 자신의 집을 만남의 장소로 제공했고 차에서 자다가 3일 만에 집으로 들어온 참이었다. 그런데 낯선 여자가 자신의 침대에서 자고 있으니 그는 쓴 웃음을 짓는다. 집을 빌려 준 친구 중에 한 명이 여자를 내보내지 않고 갔다고 생각한 것이다.

집을 빌려 준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그는 냉정하게 대처한다. 여자를 깨워 내보내려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여자가 일어나서 말하기를 자신은 이곳에 어떻게 온 것인지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피임도 하지 않고 잠자리를 해서 곤란하다며 상대가 누군지 알 때까지 집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억지를 부린다. 여차하면 집주인인 그를 곤경에 빠뜨릴 기세였다. 집을 빌려 주기 시작한 것도 돈 욕심도 있었지만 거절 못한 성격 탓도 있었던 터라 그는 짜증나면서도 범인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그가 집을 빌려준 친구들도 모르는 일이라 하고 그 여자 역시 그들을 모른다고 말한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할 정도의 수준의 것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이상한 일과 부딪힌다. 곤혹스러울 정도의 일, 하지만 또아리를 틀고 있는 뱀과도 같은 악의가 바탕에 깔려 있어서 다시 생각할수록 오싹한 이야기였다. 그들이 알아채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두려워졌다. 더구나 <등대에서> 같은 경우에는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의 악의에 여태까지 잘 지냈던 사람의 숨은 악의까지 겹쳐지는 터라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돌았다. 더 오싹했던 것은 서로의 악의를 들키고도 그 관계가 유지된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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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소여 비행 클럽 - 판타스틱 청춘 질주 사기극
하라다 무네노리 지음, 임희선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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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쓸 공상에도 분량이 있다면 그 대부분은 시험기간에 소진된 느낌이다. 시험기간에는 시험공부를 제외한 온갖 것들이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마음을 굳히고 시험공부를 시작하려는데 해야 할 범위가 너무 넓으면 시작도 전에 암담해진다. 시계의 재깍거리는 소리가 크게만 들리고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혹은 하지 않아도 아쉬운 시험을 몇 번 반복하고 나면 한 가지 공상이 머리를 메운다. 출제자의 머릿속을 그대로 읽고 싶다는 것이다. 나올 부분만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생각을 범죄형으로 바꾼다면 시험지를 훔친다는 발상이 될 것이다. 정확히는 차마 해보지도 못한 엉뚱한 발상이었다. 제도에 순응해서 열심히 하거나 포기하거나 중에 하나를 골라왔던 것이다 공상조차도 출제자의 머릿속을 훑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해봤어도 그런 생각은 미처 못한 터라 오싹한 전율을 느꼈다. 이 책 <톰소여 비행클럽>은 시험지를 훔치려는 3인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만화 <백귀야행>에서 요마에 시달리느라 현실의 문제에는 초연한 모습을 보이는 리쓰조차 수험생이 되니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끝내는 자신이 부리는 요괴에게 시험문제를 훔쳐오라는 지령을 내리기도 했었다. 별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일 자체는 놀랍도록 나쁜 것이었지만 <톰소여 비행클럽>의 3인조는 덫에 걸린 짐승처럼 몰려 있었다. 수험생이라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없겠지만 말이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노무라 노부오는 수험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예전에는 어느 정도의 성적을 유지했지만 자신의 능력에 눈을 뜬 이후로는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에 비례해서 어머니의 잔소리도 늘어갔고 어느새 사이비 종교에 광적으로 빠져버린 어머니는 그에게 간수처럼만 느껴졌다. 집을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은 단 하나 명문대학에 합격하는 것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어머니가 그를 걱정하는 것처럼 느꼈을 수도 있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노무라의 몸에는 반항심이 끓고 있었고 남들에게는 없는 자신의 능력에 푹 빠져 버린 터였다. 그는 다른 사람과 달리 유난히 촉각에 민감했다. 보지 않고 손으로 만져서 그 지폐가 얼마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손의 능력이 중요한 게임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중학교 때 부터는 소매치기를 하게 되었다. 어디에 소속된 것도 아니고 용돈이 필요할 때마다 반 재미로 하는 일이었다. 차마 어머니한테 반항도 하지 못하고 밖에서는 엇나가는 생활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노무라의 시간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수학이라고 불리는 괴짜 가부라기를 만나 이후였다.

가부라기는 대뜸 노무라를 협박해 온다. 그가 소매치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는 것이다. 가부라기는 외톨이처럼 남은 소년으로 세상에 가시를 곤두세우고 있는 것 같은 녀석이었다. 가부라기, 일명 수학은 노무라에게 범죄 행각이 알려지는 것이 싫다면 팀에 들어오라고 한다. 명문 대학의 시험지를 훔치기 위해 모인 팀이었다. 미모의 사립 여고생 기쿠치, 괴짜 수학, 소매치기 노무라가 묶인 것은 그렇게 해서였다. 야쿠자 두목이 자신의 아들을 명문대에 붙게 하기 위해서 시험지를 빼돌릴 것이고 그것을 중간에 훔쳐 내려는 위험천만한 계획이었다. 그 모든 일은 노무라의 능력에 달려 있었다.

브레이크 선이 끊어진 차에 몸에 실은 것 같은 처지가 된 노무라는 이제 멈추어 설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성장소설인데도 범죄소설에 가까운 느낌이 나서 당혹스럽기도 했다. 우정을 쌓아가야 할 대상인 수학이 마음에 들기는커녕 협박을 하는 녀석이라 혐오감까지 들었다. 자신이 겪는 일이 아니지만 부글부글 짜증이 끓어 넘칠 것 같았다. 물론 노무라가 소매치기를 한 것으로 시작된 것이니 자업자득이지만 말이다. 엉뚱한 소동이라고 하기는 규모가 큰 범죄에 휘말리고 그 과정에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 등 수험생 3명의 주변은 소란스럽기만 했다. 그것이 놀랍기도 하지만 위태위태해서 불안했고 주인공의 능력이 기이하기도 해서 긴장감 있게 읽어 나갔다. 뛰어난 손의 능력도 일종의 초능력이라면 초능력인 셈이지만 이색적 소재라 특히 신선했다. 이렇게 부럽지 않은 초능력은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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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만만 심리학 - 정말 궁금한 사람의 심리를 읽는 90가지 테크닉
시부야 쇼조 지음, 김경인 옮김 / 리더북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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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며 누군가 화를 낼 때는 정말 '말'만 들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사람이 의사소통을 할 때 말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오히려 표정, 행동 같이 비언어적 부분을 읽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항상 쉽다면 의사소통으로 고민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숨은 진의를 읽을 수 있다면 사람과의 관계도 한층 편해질 지도 모른다. 그 사람의 숨은 의도를 알기에 원치 않는 경우에는 확실히 거부할 수 있고 뜻이 맞는 경우 친해지기도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 <야심만만 심리학>은 사람들이 무표정이나 거짓 감정 표시로 숨기는 '숨은 진의'를 읽어낸다. 아무리 희대의 거짓말쟁이라도 자신의 몸 전체를 적절히 제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한 예로 극도로 초조해지면 다리를 떨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도 모르게 하게 되는 행동이며 긴장감을 털어 내려는 행동일 것이다. 이럴 때 자신이 긴장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면 크게 심호흡을 해서 긴장을 가라앉히려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자신이 아닌 상대가 다리를 떨고 있다면 그 사람이 긴장을 풀 수 있게 배려해준다면 대화가 좀 더 쉽게 진행될 터다.

비슷한 경우로 상사나 대화상대자가 팔짱을 끼고 있거나 다리를 오므리고 있다면 대화가 잘 진행되지 않을 확률이 크다. 방어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에게 열심히 설명을 해서 호응을 받아도 제안은 결국 거부되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은 상대의 제안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다리를 넓게 벌리고 앉은 사람이나 양팔을 벌려 상대를 맞는 사람과는 이야기가 잘 진행될 확률이 크다. 우수한 판매자가 손님을 양팔 벌려 맞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상대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니 그 쪽에서 편하게 받아주면 이쪽에서도 그러기 쉽다.

이처럼 쉽게 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야구와 축구를 좋아하는 것으로 성격을 분석하는 것처럼 특이한 것도 있었다. 야구는 공격과 수비가 번갈아 진행된다. 공격하는 측만 득점 기회가 있고 수비는 공격을 막기만 해야 한다. 그래서 축구에 비해 감독의 지시가 충실히 이행된다. 야구의 1번과 2번 타자는 감독이 내린 작전을 수행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될 정도인 것이다. 반면 축구는 공을 가지고 있는 쪽이 공격을 하지만 딱히 정해진 것도 아니고 공격과 수비의 전환이 빠르다. 경기 진행도 감독보다는 선수의 재량에 달린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야구는 농경민족의, 축구는 수렵민족의 운동이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야구와 축구를 골고루 좋아한다면 균형 잡힌 성격이고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안정지향적,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모험심이 강하다 할 수 있다고 한다.

거기에 윗사람의 지시에 하나하나 반박하는 사람은 성격이 강한 사람으로 생각되기 쉽지만 실상은 자신의 약한 성격을 숨기기 위한 것이므로 성격이 약한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의 외견만 판단해 밝고 발랄한 사람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내향적이라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은 욕구를 그렇게 표출하기도 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대머리도 그냥 놔두거나 아예 미는 사람은 현실 순응형이라 대하기 편하지만 바코드 머리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덮는 사람은 자신의 잃어버린 젊음을 어떻게든 붙잡아 두려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의 말, 표정, 행동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 진짜 숨은 진의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본심을 숨기려 거짓말을 하고 무표정을 가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본심은 목 밑에서만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호응해주고 있지만 상대에게 향하고 있지 않은 발, 마주치지 않는 시선처럼 말이다. 물 밑에서 움직이는 백조의 다리는 보는 편이 나은가 그렇지 않은가는 개인의 판단에 달린 것이지만 최소한 자신이 무심결에 한 행동들이 심상을 그대로 내보이고 있음을 알 수는 있었다. 알 수 있으니 덮기도 용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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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브리지
캐런 헤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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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에는 시작이 있다. 공포소설은 대개 작가가 소름끼치는 꿈을 꾼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설의 시작은 다른데서 시작되지만 작가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이 책 <브루클린 브리지>의 작가 캐런 헤스의 이야기는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애틀랜타의 컨퍼런스에서 한 작가를 만나고 그녀는 그 작가의 책을 사서 돌아온다. <만물의 이야기>라는 책이었다. 그 책 36페이지에 테디 베어가 나오기까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미국에서 처음 만든 테디 베어에 대한 것과 그 테디 베어를 만든 모리스 미첨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한다. 그 이야기가 마음에 든 캐런 헤스는 거기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것이 이 책 <브루클린 브리지>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러시아 이민자 가족으로 사탕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미첨 가족에게 변화가 생긴 것은 신문에 실린 만화 때문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상처 입은 새끼 곰을 총으로 쏘길 거부했다는 내용이었다.

평소에도 사탕말고 인형도 팔던 미첨 부인은 남편과 함께 귀여운 곰인형을 만들어 낸다. 우악스러운 곰이 아니라 팔 다리를 움직일 수 있으며 사랑스럽고 귀여운 곰인형이었다. 첫 번째 만든 인형은 막내 벤자민의 품에 떨어진다. 아기가 그 인형을 보자 놓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결국 부부는 2번째 인형을 다시 만들어야 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가장인 모리스 미첨은 사탕가게를 열기에 앞서 막내아들의 방에 들른다. 살그머니 곰인형을 빼내기 위해서였다. 그는 사탕으로 탑을 쌓고 그 위에 곰 인형 2개를 올려 둔다.

그런데 벤자민이 깨어나자마자 자신의 곰 인형이 없어졌음을 알고 울음을 터뜨린다. 모리스는 별수 없이 아들을 아래층 가게로 데려온다. 사탕 탑 위에 곰 인형이 있는 것을 보자 아이는 그것을 잡으려 버둥거린다. 그런데 가게 문을 열기도 전에 진열창 밖에는 아이들이 가득 몰려 있었다. 여태 껏 본 적 없는 귀여운 곰 인형에 대한 열망의 시선들이었다. 모리스가 2개의 곰 인형 중 하나를 집어 들자 아이들은 그 인형을 따라 시선이 움직인다. 그렇게 미첨 가족은 대박을 터뜨린다. 사탕 가게를 접고 곰 인형 공장을 열어야 할 정도였다.

가족들이 대체로 만족하는 가운데 단 한 명만 불만을 품고 있었다. 크게 반항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난한 동네에서 대박을 터뜨리니 이웃들과 멀어진 데다가 아버지가 자신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자 큰 아들 조셉은 골을 부린다. 그렇다고 해도 동생들을 돌보기도 하고 곰 인형 사업을 돕고는 있었다. 조셉이라는 이 독특한 소년은 부자가 된 것이 탐탁치도 않고 철이 들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조셉은 좋은 형이고 착한 아들이었다. 가끔 사고를 치지만 장애가 있는 소년인 제이콥에게 친절하기도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울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소년의 내부에는 비밀이 있었고 그것은 각 장 끝에 짤막하게 묘사되는 다리 밑의 아이들과 관련이 있었다. 가족 내부에 숨어 있던 비극과 아이의 성장이 교차하면서 비밀은 새어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우울하게 전개되는 것은 아니고 기분 좋게 달리는 악동을 보는 기분이다. 유쾌하지만 감동적이고 비밀이 터져 나오는 순간에는 오싹하기도 하다. 손에 잡힐 것 같은 정경 묘사도 좋고 독자의 마음을 쥐락펴락 하는 솜씨도 뛰어난 편이었다. 거기에 조셉은 자신의 죄책감과 집착의 대상을 동생 벤자민의 테디 베어에 비유하는데 자신이 갖고 있는 곰은 어떤 것일지까지 생각하게 한다. 과연 그 곰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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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정진영 지음 / 징검다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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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수업을 진행하던 강사님이 유난히 들떠 보여서 이유를 묻자 박사 과정을 끝냈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제 더 이상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 좋다는 것이다. 제한이 없어진다는 것은 사람을 기쁘게 한다. 그렇다면 왕정 사회에서는 어떨까. 신분제의 사회가 앞을 가로막고 어디나 보이지 않는 벽에 닿고 만다. 공공연히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왕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나 왕좌를 탐낸다. 야심과 그만한 세력이 있어 직접적으로 왕좌를 노리는 자도 있고 그저 고개 숙인 채 그 자리를 부러워하는 자가 있을 뿐이다.

물론 세계의 왕이 아닌 이상 국가 간의 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한 번 사는 인생인 이상 한 번쯤 권력의 최정점에 서보고 싶다는 욕심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그런데 왕이 된다는 것은 과연 좋기만 할까. 누구도 나에게 명령하지 못한다는 것은 한순간은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풍요를 누리면서 좋아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 위에 선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을 요구한다. 왕에게 특권이 있는 것은 그만큼의 무게를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나라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것은 피와 살로 이루어져 있는 국민이다. 왕은 그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을 품고 간다.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 만에 눈이 멀어 수많은 자들이 달려들지만 그 자리는 피로 뒤덮여 있다. 지키려는 자의 피, 빼앗으려는 자의 피, 국민들이 원하는 나라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흘려야 하는 피로 말이다. 그래서 왕의 자리는 어렵기만 하다. 왕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그 어깨가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이 책 <선덕여왕>은 그런 왕좌에 가까이 서서 왕의 딸로, 왕좌를 짊어진 채 왕으로, 자신이 짊어져야 할 것을 알기에 연인의 손을 놓고 쓸쓸히 죽어간 여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실 백성의 입장에서 왕이 여자든 남자든 관계없다. 누가 자리에 앉든 상황은 그게 그것이므로 편안히 잘 살게 해주는 왕이 제일이다. 그런 왕이 되려면 좋은 사람들을 끌어 들일 줄 알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자여야 한다. 후에 선덕여왕이 된 덕만은 그런 자질을 품고 있었다. 앞일을 미리 예견하는 초인적 능력이 아니라도 상대의 마음에 공감할 줄 아는 능력, 영민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진평왕의 장녀로 태어나 일찍부터 후계자로 낙점 받고 제왕학을 배워간다. 그 가운데도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

다만 왕의 딸로 그리고 왕으로만 살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진지왕의 아들로 알려진 비형과 사랑에 빠져버린다. 진지왕의 아들이란 이야기도 왕이 죽은 뒤 귀신이 되어 만든 아이란 소문이 있을 뿐이었다. 일단 진평왕에 의해 벼슬이 내려져 있었지만 사위자리를 넘볼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자신의 연인이 신분상 이뤄질 수 없는 자였기에 덕만은 선택을 해야 했다. 모든 기대를 저버리고 그와 떠날지 남아서 왕이 될지였다. 그러나 선택의 이전에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 그녀는 평생을 왕의 딸로 살아왔으며 왕좌의 무거움을 아는 자였기 때문이다.

책 <왕이 못 된 세자들>에서는 왕정 사회에서는 왕조차도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게 치면 권력의 최정점에 선다는 것 역시 좋기만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사료가 적어 허구로 그 간극을 메우는 소설이지만 묘하게도 설화의 느낌이 강했던 책이다. 하지만 선덕여왕, 김유신, 알천처럼 역사 속 인물의 이야기를 읽는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단지 성장하는 영웅, 좀 더 인간적인 왕을 만날 수 없었던 것은 조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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