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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사람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추리 소설에서 살인자가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시체를 어디에 숨길까 하는 것이다. 사람의 시체라는 것이 묘해서 잘도 나타난다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나무는 숲에 사람은 군중 속에 숨긴다면 시체는 묘지가 적격일 것이다. 그렇다면 비밀은 어떨까. 뒤팽의 도둑맞은 편지는 버젓이 편지함에 꽂아 둔다는 것이 정답이었지만 사람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그 사람만이 알고 있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미소로 일체의 질문은 방어하면서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비밀을 가지고 산다. 그것이 창피한 것에 그칠 때가 있는가 하면 남이 결코 알아선 안 될 만한 범죄에 가까운 것이 있다.
비밀을 감추기에 미소가 가장 좋다면 미소를 띄우면서 거리를 지키면 좋으련만 가끔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무서운 비밀을 없애는데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웃는 얼굴만 보면 선량하기 그지없어서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평범한 사람들의 미소가 오싹해지는 것이다. 미드 <NCIS>의 등장인물 중 하나가 누군가 자신을 계속 감시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동료는 웃으면서 이웃집의 러시아 아가씨냐고 물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자의식 과잉이나 편집증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의심이 정당한 것이었다면 거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일본의 미스터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색 추리 단편집인 <수상한 사람들>을 이루고 있는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느 날 위화감을 느낀다. 무언가 이상한 일을 겪고 기이한 느낌을 받는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거나 '별일이네'라며 지나치는 것이다. 예전에 했던 <인생극장>도 아닌데 거기서 갈림길이 나뉜다.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지만 위화감을 느낀 시점에서 누군가의 숨은 악의가 이미 그들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알아채지 못한다면 낭떠러지인데 그들은 알아채지 못하고 고민한다. 뭔가 껄끄럽다고 생각하면서도 꼭 집어 뭐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고 있던 여자>에서는 주인공이 집에 돌아와보니 웬 알 수 없는 여자가 자고 있었다. 그는 그리 당황하지 않는데 근 몇 달 간을 친구에게 집을 빌려 주었기 때문이다. 돈이 아쉬웠기에 친구들에게 자신의 집을 만남의 장소로 제공했고 차에서 자다가 3일 만에 집으로 들어온 참이었다. 그런데 낯선 여자가 자신의 침대에서 자고 있으니 그는 쓴 웃음을 짓는다. 집을 빌려 준 친구 중에 한 명이 여자를 내보내지 않고 갔다고 생각한 것이다.
집을 빌려 준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그는 냉정하게 대처한다. 여자를 깨워 내보내려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여자가 일어나서 말하기를 자신은 이곳에 어떻게 온 것인지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피임도 하지 않고 잠자리를 해서 곤란하다며 상대가 누군지 알 때까지 집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억지를 부린다. 여차하면 집주인인 그를 곤경에 빠뜨릴 기세였다. 집을 빌려 주기 시작한 것도 돈 욕심도 있었지만 거절 못한 성격 탓도 있었던 터라 그는 짜증나면서도 범인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그가 집을 빌려준 친구들도 모르는 일이라 하고 그 여자 역시 그들을 모른다고 말한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할 정도의 수준의 것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이상한 일과 부딪힌다. 곤혹스러울 정도의 일, 하지만 또아리를 틀고 있는 뱀과도 같은 악의가 바탕에 깔려 있어서 다시 생각할수록 오싹한 이야기였다. 그들이 알아채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두려워졌다. 더구나 <등대에서> 같은 경우에는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의 악의에 여태까지 잘 지냈던 사람의 숨은 악의까지 겹쳐지는 터라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돌았다. 더 오싹했던 것은 서로의 악의를 들키고도 그 관계가 유지된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