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글리 - 못생긴 나에게 안녕을 어글리 시리즈 1
스콧 웨스터펠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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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름다움은 상대적인 것이라지만 사람은 추함보다는 아름다움을 선호하게 된다. 아름다움은 그저 아름다움일 뿐인데 선함으로 대변된다. 굳이 키 크고 보기 좋은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더 높은 연봉을 얻는다는 연구 결과를 들이대지 않아도 아름답다는 것은 여러모로 유리하다. 사악한 인물을 떠올릴 때 추한 얼굴을 떠올리고 선한 인물이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떠올린다. 그래서 매번 추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보며 '멀쩡하게' 생겼다는 말을 꺼낸다.

사실 외모와 그 사람의 성격은 관계없다. 만약 외모와 성격이 관계가 생겼다면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만든 것일 것이다. 추한 외모를 가졌으니 못된 성격을 가졌으리라고 멋대로 추측하고 멀리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빠지다보면 어지간하지 않고서는 마음의 뒤틀림이 생겨난다. 오죽하면 정신의 안정을 위해서 성형을 결심하는 사람까지 생겨났을까. 그래서 한 번은 전부 미남미녀인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면 아무도 외모로 인해서 차별을 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 <어글리>에서는 바로 그런 사회를 보여준다. 16살이 되면 강제로 전신 성형을 시켜 모두가 '예쁜이'가 되게 하는 사회였다. 전부 아름답고 선해 보이며 감탄하게 하는 외모를 가졌다. 미래 기술을 통해서 건강함까지 누리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지만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웃고 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기괴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세뇌라도 당한 것인지 그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16살 생일을 석 달 남긴 소녀 탤리 역시도 그랬다.

그녀의 바람이 있다면 빨리 시간이 흘러 예쁜이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새내기 예쁜이들이 사는 도시 중심가에서 매일 밤 파티를 하며 흥청망청 놀 수 있을 터였다. 자신의 얼굴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마음 같은 것은 탤리의 머릿속 어디에도 없었다. '못난이'로 남느니 탤리는 자살이라도 할 태세였다. 예쁜이들 틈에 들어가면 모두가 자신의 얼굴을 감탄하면서 볼 테고 바라지 않는 이상 직업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도시에서, 정부에서 전부 지원해주는 것이다.

그저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되었다. 모두가 아름다운 사람들의 무리 속에 사는 것이 기대되기만 했다. 그래서 그만큼 지금의 못난이 시기가 우울했다. 자신이 아는 모든 친구들은 이미 16살 생일이 지나 예쁜이 수술을 받았고 도시로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또래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탤리는 그 때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너무 외로웠고 친구인 페리스를 만나보고 싶었다. 탤리는 이제 도시로의 잠입을 감행한다. 예쁜이들 틈에서 얼굴이 변했을 친구를 찾기로 한 것이다.

모두가 아름다운 사회, 그 이면에는 역겨운 진실이 있었다. 대체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생겼길래 아무도 반기를 들지 않는 것일까. 16살에 전신 성형이 의무화되고 나이가 들면 그 나이에 맞는 재성형이 이루어진다. 그 기괴함을 도시 속에 사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아직 성형을 하지 않은 청소년이나 새로 태어나는 어린 아이들은 자라면서 계속 자신의 얼굴이 바뀔 날만을 기다린다. 이런 우울하고 기괴한 미래 사회를 10대 소녀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점이 묘했다. 그 소녀의 시각은 점차 변해간다. 그리고 진실에도 점차 근접해간다. 도시의 그늘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좋지만 성형이 강제되는 사회, 모두가 비슷한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웃고 있는 사회 속에 떨어지고 싶지는 않다. 생각만 해도 오싹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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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견문록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 지식여행자 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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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초등학교 방학과제로 식물을 키우는 것이 있었다. 토마토와 고추 묘목을 사서 키우기 시작했다. 과제로 내려는 것은 고추, 갔다가 충동적으로 키우기 시작한 것은 토마토였다. 자라나는 모습도 고추 쪽이 더 예뻤다. 그런데 과제로 제출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학교에서 다시 가지고 돌아왔을 때는 다른 고추 묘목에서 옮겨 온 진딧물로 온통 뒤덮여 있었다. 진딧물이 너무 많아서 이쑤시개로 하나씩 잡아서는 끝도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열린 빨간 고추만 물김치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옆에 있던 토마토에는 진딧물이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닌가. 고추를 더 좋아했던 이유가 모양도 있었지만 기묘한 냄새가 없다는 점에 있었다. 하지만 그 냄새 탓인지 토마토에는 진딧물이 옮겨가지 않았다. 소설 <비밀의 요리책>에도 토마토에 대한 언급이 있다. 토마토를 러브 애플이라고 불렀으며 악마의 식물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은 건강식품의 상징이 된 토마토에 독이 있다고 두려워했다고 한다. 열매뿐만이 아니라 식물도 그랬다. 스칠까 두려워 접근도 안하는 보조 요리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새로운 것은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법이지만 음식에 한해서는 그 보수성이 더하다고 이 책 <미식견문록>에서 말하고 있다. 유명한 통역가, 에세이스트, 다독가, 대식가인 저자 요네하라 마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제목만 보면 저자가 세계 진미 여행을 다녔던 것 같지만 그녀가 말하는 음식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맛이 없는 통조림부터 감자까지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정감이 넘쳤다.

러시아어 동시통역사로 일했던 요네하라 마리는 통역해야 하는 말에 '아브 오보'라는 말이 있자 알아듣지 못했다. 러시아어가 아니라 라틴어였던 것이다. 쉽게 말하면 처음부터라는 뜻이지만 그 시작은 '레다의 알'이라는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 것부터 '알에서 과일까지'라는 로마 연회에서 나온 것이라는 다양한 주장이 있었다. 어쨌든 그녀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달걀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린 시절 아주 좋아했던 달걀을, 사 온 병아리 12마리가 전멸하면서 한동안 못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카스텔라를 맛있게 먹는 참에 엄마가 카스텔라에도 달걀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면서 울음을 터뜨렸을지도 모르지만 요네하라 마리는 카스텔라를 꼭꼭 씹어 삼켰다. 대식가에 음식에 대한 선입견을 배제하려고 노력하는 식생활이 그렇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곰의 왼손, 사슴의 코를 먹어봤다고 하고 시베리아에서 메마른 입으로 샌드위치 2인분을 집어 삼키는 식성을 가진 냠냠공주의 이야기는 분명 흥미로웠다. 더구나 가족 역시 대식가 집안이라 음식에 대한 경쟁을 하기도 하고 유언이 음식을 추천하는 것이기도 했다고 하니 놀라운 것 이상이었다. 그 외에도 선악과가 실은 사과가 아니라 감자여서 굶주림에도 먹기를 거부했던 농민들의 이야기, 여행자의 아침식사라는 말에 무조건 웃음을 터뜨리는 러시아인의 이야기, 환상의 과자 할바를 추적하는 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하게 읽을거리가 많았다. 그나저나 할바가 먹고 싶은데 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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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킹 던 - 나의 뱀파이어 연인 완결 트와일라잇 4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윤정숙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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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명은 유한해서 그 시간이 더 아름답다지만 가끔은 영원을 탐하고 싶어진다. 타나토스는 여신에게 불멸을 청해서 얻었지만 영원한 젊음을 청하지 않아서 계속 늙어갔다. 도리안 그레이는 젊음을 누렸지만 그의 그림은 그를 대신하여 늙어갔다. 인간으로 있는 이상 늙어가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죽음에서 도망칠 수도 없다. 그래서 인지도 모른다. 뱀파이어의 영원한 젊음에 열광하는 것은 말이다. 영혼을 잃은 악마일지도 모르고 끝없는 갈증에 시달릴 텐데 그런 삶을 꿈꾸는 사람도 있다.

소년 뱀파이어와의 로맨스를 그린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꽤 인기를 끌었다. 뱀파이어의 탈을 썼다 뿐이지 이상의 연인을 그렸다는 말이 있는데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트와일라잇>의 남자 주인공인 에드워드는 기존의 뱀파이어와 다르다. 햇빛에 나가지 않는 것은 타버리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몸이 다이아몬드처럼 빛나서 정체가 탄로 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리석처럼 단단하고 차가운 피부, 갈증의 정도에 따라 변하는 눈동자의 색과 아름다운 미모가 두드러진다.

그에 따라 여주인공 벨라는 무기력하거나 자기희생적 면모를 가진 인물로 그려졌다. 이번 <브레이킹 던>에서는 그 연장선상에서 시작하여 그 선을 넘어선다. 누구에게도 준 적 없는 마음을 그녀에게만 바치는 충실한 연인 에드워드와 벨라는 결혼을 하게 된다. 에드워드와의 계약에 따라 그녀를 뱀파이어로 바꾸어주는 것은 결혼을 한 이후가 될 것이었다. 그 결혼에 반대하는 사람은 어린 딸이 결혼한다는 것을 알게 된 찰리와 제이콥 정도였다.

찰리는 어린 아이로만 생각했던 벨라가 결혼을 한다고 선포하자 당황한다. 반면 제이콥은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청첩장을 받자 그것을 그녀가 사형선고를 받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의 일원이 되겠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가장 친한 친구와 연인 사이에서 선택을 한 벨라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볼투리 가가 압박을 하고 있기도 했지만 자신의 무력한 처지에서 벗어나 에드워드와 동등해지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자신의 연인이 영원한 열일곱 살에 멈추어 있는데 자신만 늙어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인간으로써의 삶을 놓을 준비를 한다. 그간 에드워드에 대한 집착과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느라 친구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져 있어서 거기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찰리와 르네는 이야기가 달랐다. 자신의 결혼이 인간으로써의 죽음을 말한다는 것을 그들에게는 결코 알릴 수 없었다. 알게 된다면 그들도 볼투리 가의 제거 대상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에드워드의 손을 놓을 수 없었고 결혼식의 준비는 진행된다. 격노한 제이콥이 변수로 남은 가운데 이야기는 전개된다.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은 그들의 말대로 사자와 양의 사랑 같은 것이었다. 뱀파이어 입장에서는 그들을 보고 반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먹잇감이 되는 인간이 그들에게 반한다는 것은 좀 기이했다. 묘하게도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가장 기묘한 존재는 숱하게 등장하는 뱀파이어들이 아니라 여주인공인 벨라다. 그녀는 에드워드를 만나자마자 그에게 반해 모든 것을 내던진다. 최소한의 경계도 없고 뱀파이어로써 그의 옆에서 살아갈 날만을 바란다. 거기에 자신의 목숨을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던진다. 그것이 좋아 보이기보다는 자신의 목숨에 대한 집착이 거의 없어보여서 인간이 아닌 이질적인 무언가를 보는 기분도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책의 후반부에 위화감이 없었다. <브레이킹 던>이라는 제목대로 흘러가고 끝나가는 이야기, 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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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타락천사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A. M. 젠킨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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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볼 때마다 너무 상투적이어서 웃음이 나오는 말이 있다. 바로 누군가 답다는 말이다. 보통 화내는 여주인공에게 '너답지 않다'고 다른 사람이 말하면 그녀는 '나다운 것이 뭐냐'며 더 크게 화를 낸다. 그런데 누군가 답다는 말은 그 사람이 평소 하는 행동을 바탕으로 나온 말일 것이다.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된 순간 많은 것은 놀라워진다. 드라마에서는 상투적인 한 마디로 표현되었지만 말이다. 사람은 대개 익숙함에 안주하려 한다. 그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자극도 즐거움도 없지만 상처받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야 숨만 쉬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의 이름은 숀 시몬스, 십대 소년이다. 흔히 생각하기로는 십대의 몸에는 반항심만 끓고 있을 것 같은데 소년은 자신이 우연히 얻게 된 당연함에 안주하여 껍질 속에 숨어 버린다. 가족에게는 공격적인 태도를, 밖에서는 더 나은 것을 바람에도 튀지 않기 위해서 투명인간 같은 태도를 취한다. 그런데 이런 소년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 지옥에서 사람들이 마음을 바꿀 때까지 그저 지켜봐야 하는 타락천사다.

타락천사 키리엘은 자신의 일에 염증을 느낀다. 잠깐의 반란으로 지옥에 떨어졌고 무수히 많은 시간을 그 곳에서 보내야 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시스템의 톱니바퀴 노릇뿐이었다. 자신이 품은 죄책감에 의해 몸부림치고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영혼들을 지켜보는 일인 것이다. 그는 그것이 지겨웠고 타락천사다운 반항심을 드러낸다. 자신에게 아무도 관심이 없고 지겨우니 지상에 올라가 놀아보겠다 생각한 것이다. 타락천사지만 어쩐지 가출 청소년 같은 태도였다.

키리엘의 본래 모습은 형체가 없으므로 어딘가에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인간의 삶을 누려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관찰해 온 게으름뱅이 소년의 몸을 노린다. 그렇다고 무작정 빼앗는 것은 아니고 소년의 명이 끝나는 순간을 기다린다. 그것은 그리 길지 않았다. 소년이 집에 돌아가는 길에 트럭에 치여 죽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평범하고 인기도 없으며 자신의 삶을 바꿀 의지도 없는 그런 소년이었다.

소년의 몸이 부서지기 직전 키리엘은 그 몸을 구하고 그 안에 들어간다. 그 순간 숀의 영혼은 죽음을 향해 가버린다. 이제 소년의 몸을 얻은 타락천사는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그런데 그게 아주 신선했다. 인간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든 감각에 감탄하는 키리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는 세상은 현란한 색깔이 가득하며 다리를 움직일 때의 감각, 말을 하고 숨을 쉴 때 혀의 움직임 같은 사소한 것들이 그를 매혹시킨다.

그에게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키리엘은 숀 시몬스라는 소년의 삶 속에 들어가 온갖 것을 전부 느껴보려고 한다. 하지만 그 범주가 살인, 테러 같은 죄악이 아니라 첫 키스부터 친구들을 괴롭히는 녀석에게 맞서는 것처럼 십대 소년의 욕망이 표현된 일이다. 숀이 아닌 타락천사 키리엘은 동생과 엄마에게 다정하게 대하기도 하고 약자를 위해 분노하기도 한다. 인간이 아닌 자가 인간으로 살면서 한 사람의 삶의 공간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단 3일 간의 일이지만 타락천사 키리엘의 모습은 악마라기보다 십대 소년의 숨은 용기와 욕망으로 보였다. 그렇게 치면 가끔은 자신의 몸속에 숨어 있는 타락천사가 숨을 쉬게 해줘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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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낳은 뽕나무 - 사치와 애욕의 동아시아적 기원
강판권 지음 / 글항아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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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야 부자가 더 날씬하다지만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몸에 살집이 있는 편이 부해 보였다. 특히 옛날 중국 부자의 이미지는 그리 크지 않은 키, 통통한 몸 그리고 비단 옷이었다. 비단은 그저 옷에만 쓰이는 직물에 그치지 않고 화폐의 대체 수단이 되기도 했다. 왕에게 바치는 헌상품이며 왕이 공을 세운 부하들에게 내리는 하사품이기도 했다. 이런 비단이 중국을 '낳았다'하니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졌다.

예전에는 비단이 조공무역의 주요상품이었는지 몰라도 지금 비단과 가장 가깝게 연상되는 것이 잠실일 정도로 일상생활과의 거리는 멀어졌다. 비단옷이 부의 상징인 것은 옛날이야기인 것이다. 금의환향이라는 단어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것이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책 <중국을 낳은 뽕나무>를 읽다보니 중국의 생활 전반에 뽕나무와 누에로 상징되는 잠상농업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서양에서 중국을 인식하기도 비단이 생산되는 땅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비단을 짜기 시작한 것은 수천 년 전부터였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 기껏해야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을 시기에 직물을 짤 정도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니 놀라웠다. 그 비단은 건너고 또 건너서 로마에 까지 도달했고 크게 유행이 되었다고 한다. 중간에 거쳐 가는 상인이 많아 고액에 거래되었는데도 그랬다. 당시 비단은 화폐대용이기도 했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는 비단이 자국의 문화를 퍼뜨릴 기회이기도 했다.

주변의 나라와 조공무역을 할 때 그 쪽에서는 특산물을 가져오게 하고 중국에서는 비단을 주었다는 것이다. 과장이 있기야 하겠지만 비단옷 다섯 벌을 입어도 가슴의 사마귀가 보일정도였으며 그럼에도 따뜻하다 했으니 비단의 가치는 그만큼 높았다. 주변 나라는 물론이고 자국 내에서도 비단의 수요는 높았다. 누에를 키우고 비단을 짜면 먹고 살만한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국가에서는 잠상농업을 장려했다. 균전제를 실시해 농민들에게 땅을 주고 뽕나무를 심게 했다.

또한 뽕나무로 관을 짜면 귀신이 되어서도 죄를 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중시했다. 생활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누에가 주로 먹는 것이 뽕나무 잎이기도 하지만 오디를 먹을 것이 부족할 때 먹는 보완재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삼국지연의>로 유명해진 제갈량이 뽕나무를 유산으로 남길 정도였다는 것이다. 뽕나무가 어느 정도의 재산 가치를 가지고 있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누에나방이 알 낳는 사진은 다소 징그러웠지만 뽕나무로 중국 역사를 읽어낸다는 소재가 일단 신선했다. 황제에게 내려온 잠신이나 황후 서릉씨가 누에고치를 차에 빠뜨려 실을 잣는 것과 비단을 짜는 법을 알아내었다는 것 같이 뽕나무, 누에, 비단이 얽힌 설화들이 다양하게 실려 있는 것이 좋았다. 거기에 개량한 뽕나무인 호상이 일으킨 변혁 같은 실질적인 부분도 잘 녹아들어 있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비단을 뽕잎을 먹은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실로 만든다는 것은 알았지만 중국 농서에 실린 자세한 설명과 그림을 통해 보는 기분은 또 남달랐다. 중국 내 여성의 지위도 잠상농업과 함께 떠올랐다가 그 세분화와 함께 변화되었다니 중국을 실제로 좌지우지한 것은 황제가 아니라 뽕나무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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