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야 부자가 더 날씬하다지만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몸에 살집이 있는 편이 부해 보였다. 특히 옛날 중국 부자의 이미지는 그리 크지 않은 키, 통통한 몸 그리고 비단 옷이었다. 비단은 그저 옷에만 쓰이는 직물에 그치지 않고 화폐의 대체 수단이 되기도 했다. 왕에게 바치는 헌상품이며 왕이 공을 세운 부하들에게 내리는 하사품이기도 했다. 이런 비단이 중국을 '낳았다'하니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졌다. 예전에는 비단이 조공무역의 주요상품이었는지 몰라도 지금 비단과 가장 가깝게 연상되는 것이 잠실일 정도로 일상생활과의 거리는 멀어졌다. 비단옷이 부의 상징인 것은 옛날이야기인 것이다. 금의환향이라는 단어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것이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책 <중국을 낳은 뽕나무>를 읽다보니 중국의 생활 전반에 뽕나무와 누에로 상징되는 잠상농업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서양에서 중국을 인식하기도 비단이 생산되는 땅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비단을 짜기 시작한 것은 수천 년 전부터였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 기껏해야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을 시기에 직물을 짤 정도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니 놀라웠다. 그 비단은 건너고 또 건너서 로마에 까지 도달했고 크게 유행이 되었다고 한다. 중간에 거쳐 가는 상인이 많아 고액에 거래되었는데도 그랬다. 당시 비단은 화폐대용이기도 했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는 비단이 자국의 문화를 퍼뜨릴 기회이기도 했다. 주변의 나라와 조공무역을 할 때 그 쪽에서는 특산물을 가져오게 하고 중국에서는 비단을 주었다는 것이다. 과장이 있기야 하겠지만 비단옷 다섯 벌을 입어도 가슴의 사마귀가 보일정도였으며 그럼에도 따뜻하다 했으니 비단의 가치는 그만큼 높았다. 주변 나라는 물론이고 자국 내에서도 비단의 수요는 높았다. 누에를 키우고 비단을 짜면 먹고 살만한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국가에서는 잠상농업을 장려했다. 균전제를 실시해 농민들에게 땅을 주고 뽕나무를 심게 했다. 또한 뽕나무로 관을 짜면 귀신이 되어서도 죄를 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중시했다. 생활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누에가 주로 먹는 것이 뽕나무 잎이기도 하지만 오디를 먹을 것이 부족할 때 먹는 보완재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삼국지연의>로 유명해진 제갈량이 뽕나무를 유산으로 남길 정도였다는 것이다. 뽕나무가 어느 정도의 재산 가치를 가지고 있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누에나방이 알 낳는 사진은 다소 징그러웠지만 뽕나무로 중국 역사를 읽어낸다는 소재가 일단 신선했다. 황제에게 내려온 잠신이나 황후 서릉씨가 누에고치를 차에 빠뜨려 실을 잣는 것과 비단을 짜는 법을 알아내었다는 것 같이 뽕나무, 누에, 비단이 얽힌 설화들이 다양하게 실려 있는 것이 좋았다. 거기에 개량한 뽕나무인 호상이 일으킨 변혁 같은 실질적인 부분도 잘 녹아들어 있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비단을 뽕잎을 먹은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실로 만든다는 것은 알았지만 중국 농서에 실린 자세한 설명과 그림을 통해 보는 기분은 또 남달랐다. 중국 내 여성의 지위도 잠상농업과 함께 떠올랐다가 그 세분화와 함께 변화되었다니 중국을 실제로 좌지우지한 것은 황제가 아니라 뽕나무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