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를 뒤흔든 12가지 연애스캔들
박은몽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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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드라마 <선덕여왕>이 인기를 끌고 있다. 성장하면서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은 어떤 때나 눈길을 끌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기묘한 것은 미실 쪽의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대책회의를 할 때 앉아있는 사람의 구도다. 미실을 가운데로 하여 한 쪽에는 정식 남편인 세종과 아들 하종, 한 쪽에는 미실의 정부인 설원랑과 미실의 동생 미생이 앉아 있다. 남편과 정부가 한 자리에 모여 다투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지만 지금의 생각과 그때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이 책 <신라를 뒤흔든 12가지 연애 스캔들>은 신라의 신이었던 왕에게 충성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정확하게는 색신이라는 기묘한 직책에서 일하면서 권력을 탐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어떤 나라든 자신들만의 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지금의 생각으로 일반적인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신라는 자신들을 신국이라고 칭하고 신국만의 도를 따라서 중국 사람들에게 오랑캐라 불렸다고 한다. 그 신국의 도라는 것이 기묘해서 왕에게 색으로 충성하는 색신의 집안이 있었다고 한다. 왕족과 잠자리를 같이해서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후손을 이어주는 가문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서 영화를 누리는 가문, 그 가문에서 황후가 나왔고 색이 권력을 잡는 수단이 되었다.

말이 연애 스캔들이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난잡하게 느껴지는 것들도 많다. 할아버지의 첩과 사랑에 빠지거나 작은 어머니와 결혼을 하기도 하는 등 경악스럽기까지 한 것이다. 하지만 읽어 나갈수록 전부 권력에 관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집트에서 근친혼이 성행했던 것은 왕실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그 이면에는 권력을 계속하여 자기 집안에 묶어 두기 위한 것이었다. 신라에서도 색신의 가문을 따로 두고 근친혼이 성행한 것은 권력을 묶어 두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옥두리라는 여인의 경우에는 임신을 하면 전 풍월주와 잠자리를 하고 아들과 남편의 출세를 도왔다고 한다. 신라의 기준으로는 성상납은 공공연한 것이었고 사람들이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더구나 임신한 여인과 지체 높은 남자가 잠자리를 한 경우에는 그 대가로 그 여인이 가진 아이가 누구든 자신의 '마복자'로 삼았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인 셈치고 뒤를 돌보아 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정식 후계자는 정처의 아이가 되지만 한 때 '마복자'라는 것만으로도 출세길이 열렸다고 한다.

어떤 시대이든 권력이 있는 자 근처에 사람이 모인다. 그 사람이 사람을 끄는 능력을 가진 사람일수도 있지만 보통은 그 권력을 노린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국의 도라고 불리는 것은 지금의 시각에서는 당혹스러운 것이지만 그 때의 시각으로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마복자라는 것도 자신의 세를 넓히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출세의 길을 열고 싶은 가문과 자신의 세력을 넓히고 싶은 가문이 연결되기 위한 방편이었다. 결국 어느 시대나 진실은 단 한 가지 권력뿐이고 이 모든 이야기 역시 색이 아닌 권력에 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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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수집가 - 어느 살인자의 아리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정창 옮김 / 예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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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모은다는 것은 탐욕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필요해서 사용할 물건을 사는 것과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모아두려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그런데 물질적인 것이 아닌 무형적인 것을 모으려는 행위는 어떠할까. 모은다는 것은 분명 탐욕스럽다. 하지만 형태가 없는 것을 모은다는 것은 조금은 기이하다. 이 책 <소리수집가>에는 세상의 소리를 모으는 남자 루트비히가 등장한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루트비히는 태어나서부터 소리에 대한 감각과 집착이 남달랐다. 태어나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소리였다. 자신이 젖을 빠는 여인의 숨소리, 심장 소리에 먼저 반응한 루트비히는 한 때 눈을 감고 생활했다. 그래도 전혀 지장은 없었다. 부모님은 그에 대한 것을 걱정하였지만 루트비히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모으고 싶었다. 그에게는 소리만이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였으며 그만의 보물이었으며 전부였던 것이다. 그것은 본능적인 행위였다.

그는 계속하여 소리를 모은다.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소리를 받아들이던 아이는 소리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몸속에 저장된 소리가 어느 날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너무 많이 담아놨는지 그의 안에서 소리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린 루트비히는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몸속에 담긴 소리를 쏟아낸다. 그것은 짐승의 소리기도 했고 종소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어느 순간 변화한다. 아름다운 소리, 노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루트비히의 재능을 악마의 것으로 생각하던 아버지는 그제서야 루트비히에 대한 마음을 돌린다.

아버지는 예술가였고 루트비히의 예술적 재능은 신이 내린 축복으로 생각한 것이다. 문제는 그 재능이 범상치 않다는 데에 있었다. 아버지는 루트비히의 재능에 체계를 잡아주고 싶어서 가정교사를 붙이지만 루트비히의 수업은 단 한 번으로 끝난다. 모든 소리를 자신의 몸 안에 저장하고 그 소리를 그대로 구현해낼 수 있는 루트비히의 입장에서는 피아노 소리든 음계든, 음악이든 단 한 번만 들으면 족했다. 가정교사는 하얗게 질려서 아버지에게 말한다. 이 아이의 재능은 신이 아니라면 악마가 준 것이고 자신이 가르칠 수 없다고 말이다.

이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던 루트비히의 운명은 급물살을 탄다. 어린 나이에 가족들과 떨어져 음악 학교에 가고 후에 성공적 오페라 가수의 지위에 올라선다. 문제는 사랑과 죽음이 그에게는 같은 것이었고 루트비히는 누구나 감탄할 만한 노래를 하게 되는 대신에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은 누구나 죽게하는 저주에 걸려 있었다. 그가 소리에 집착해서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던 당시에는 아직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부족한 조각이 맞아들어간 순간 저주는 그대로 살아난다. 첫 부분은 루트비히가 죽으면서 그 고해를 담당한 신부가 남긴 것, 그리고 그 기록을 읽으면서 후에 화자가 되는 다른 신부의 것이 펼쳐져서 지루하기도 했다. 하지만 루트비히의 이야기가 풀려 나오면서 눈을 뗄 수가 없어졌다. 한 사내의 몸 안에 사랑의 미약과 죽음의 독이 함께 들어 있다는 설정이 묘했다. 소리로 누구든 홀릴 수 있으나 정작 진정한 사랑은 이룰 수 없는 남자의 비극적 삶이라는 것이 눈을 끄는 소재이기는 했다. 후에 생각하면 허풍이 좀 심한 소재란 생각이 드는데도 읽을 당시에는 눈을 뗄 수 없는 것을 보면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루트비히의 노래는 분명 치명적이지만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어했듯이 호기심이 생기기도 한다. 진짜 존재한다면 절대로 듣고 싶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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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이야기 - 추리 마니아를 위한 트릭과 반전의 관문 126
파트 라우어 지음, 이기숙 옮김 / 보누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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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 <클로저>에서 택배와 관련된 사건이 등장했다. 수사팀에게 덕테이프로 포장된 상자가 배달된다. 찜찜한 마음을 누르고 상자를 뜯어보니 그 안에는 부패한 시체가 들어 있었다. 피해자의 신원은 밝혀졌지만 4명의 용의자에서 더 이상 압축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팀장은 기발한 선택을 한다. 상자를 반송시킨 것이다. 결백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배달된 상자를 열어볼 것이고 살인을 저지른 한 명은 그 상자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을 테니 즉각 없애려 들 거라는 점을 노렸다.

최근 택배 서비스가 성행하면서 택배를 받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많이 늘어났다. 사실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택배는 자신이 시킨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배송되어 온 상자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대체로 알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상자를 열 때 두근두근하는 마음이 생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덕분에 사람이 많은 곳에서 택배 상자를 열면 구경꾼까지 모여든다. 반 농담으로 그 택배 상자를 열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가져가면 원망하겠다는 소리까지 듣는 것이다.

집에 배달되어 온 상자를 열지 않고는 못 배기고 책의 다음 장을 넘길 수밖에 없는 힘은 보통 호기심에서 나온다. 공포영화에서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이 살해당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 책 <미스터리 이야기>는 그런 호기심을 자극한다. 추리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은 살인이 어떻게 진행되고 탐정 역을 하는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밝혀낼지 알아내는 것을 즐긴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건과 단서를 던져주고 그 트릭을 밝히라 하니 이 책은 꽤 즐거운 편이다.

책은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범죄, 추리, 판타지, 수학, 논리 미스터리다. 그 중 가장 특색 있는 것은 역시 범죄 미스터리다. 먼저 이야기가 등장한다. 운명의 수요일이라는 문제는 중요한 일로 인해서 다른 도시에 가야 하는 관장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에게 야간 경비원 한 명이 다급한 표정으로 다가온다. 그가 일할 시간이 아닌데도 나타난 것이다. 그는 관장에게 다가와 자신의 불운한 꿈은 항상 맞아왔는데 어젯밤 꿈에 관장이 탈 비행기에 문제가 생기는 꿈을 꿨다고 한다. 타면 죽는다고 다른 비행기를 탈 것을 간곡하게 부탁한다.

평소 냉철한 성격이었던 관장도 경비원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더니 다른 비행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 향했다. 그런데 실제로 경비원의 꿈이 맞았고 관장은 자신이 그의 꿈 덕분에 재난을 피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관장은 직원에게 '경비원에게 4만 달러를 지급하고 즉시 해고하라고' 지시한다. 질문은 관장이 왜 그런 지시를 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짧은 지문 속에 해답은 전부 들어 있었는데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터라 답을 보고 감탄했다.

물론 범죄와 추리는 좀 겹치는 부분이 있고 판타지는 동화책 속에서 나오는 수수께끼를 푸는 기분이 든다. 수학은 듣기만 하면 머리가 아플 것 같지만 의외로 간단하게 풀리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논리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거나 생각하는 법을 달리하면 답이 나오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편하게 하나하나 풀어나갈 수 있다. 단지 문제와 해답 편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문제를 푼다면 그 페이지를 찾아서 답을 확인해야 하는 것이 다소 성가시다. 그래도 풀고 난 다음에는 뿌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으니 그리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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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추억
사이 몽고메리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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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어쩐지 개가 정말 무서웠다. 일곱 살때, 그 때는 아직 사진관이 성행하던 시기라 사진을 뽑으러 사진관에 갔다. 정확하게는 엄마를 따라갔던 것인데 어른들이 이야기를 나누자 어린 아이인 나는 지루해졌고 그 자리에 가만히 쪼그려 앉았다. 여름이어서 짧아진 옷과 젖은 머리카락으로 밖을 나온 터라 바람에 옷과 머리카락이 살랑대는 느낌이 좋았다. 그런데 무언가가 내 어깨를 건드렸다. 처음에는 엄마인가 했지만 무언가 '북슬북슬' 했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털이 복실거리는 개의 검은 눈동자가 정면에 있었다.

그 순간 비명을 지르면서 사진관 밖으로 도망을 치고 말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반쯤 어이 없어하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고 개는 보이지 않았다. 타닥거리는 경쾌한 발소리가 있었을 뿐이다. 겁에 질려 옆을 보니 그 개가 내 옆을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다시 비명을 지르면서 엄마에게 돌아가자 엄마가 개를 쫓아냈다. 그 이후로도 비슷한 일이 두어번 반복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개는 어린 아이인 나와 놀고 싶은 마음에 다가왔을 것이다. 다만 나는 그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하물며 개도 아니고 거대한 돼지를 사랑스럽다며 돌보는 여자의 이야기라니 놀라운 것 이상이었다. 말이 통하는 사람과의 소통도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런데 말이 잘 통하지도 않고 몇천년에 걸쳐 애완동물로 바꿔온 동물도 아닌 돼지, 그것도 삼백 킬로그램이 넘는 거대한 식용돼지가 사람과 소통한다니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사실 돼지는 영리하고 깨끗한 생물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소설 <동물농장>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지저분하거나 탐욕의 상징으로 나올 때가 많다. 최근 작게 개량한 애완돼지가 나왔어도 돼지가 애완동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거의 해보지 않았다.

이 책 <돼지의 추억>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호그우드는 애완돼지라기보다 반려돈 쯤 될 것 같다. 동물학자 사이 몽고메리에게 우연히 오게 된 크리스는 무녀리였다. 엄마 돼지가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것은 보통 10마리, 그 마릿수를 넘어서 태어난 녀석은 살아남기도 힘들고 형제들의 생존까지 위협한다고 해서 보통 어미가 물어 죽인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한 마리의 돼지라도 더 살리는 것이 이익이 될 테니 농장주인은 어미가 물어 죽이기 전에 무녀리를 직접 키웠다. 그런데 유난히 약한 새끼였던 크리스는 따로 돌봤음에도 점점 약해졌고 동물학자인 사이 몽고메리에게까지 오게 된다.

이 시점에서 크리스는 어미나 농장 주인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후에 식용돼지의 목적에 맞게 도살되는 운명에서 피해간다. 동물학자 사이 몽고메리는 채식주의자였고 그녀의 남편 하워드는 유대인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새끼 고양이만한 작은 돼지를 받아들인 것은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지 먹기 위함이 아니었다. 유명 지휘자인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의 이름을 받은 크리스는 몽고메리의 집에서 점차 안정을 찾아간다. 그리고 점차 마을의 명물이 되어간다. 영리한 두뇌로 매번 우리를 탈출해 마을을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거대한 돼지이며 사람과의 소통을 즐기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작은 돼지를 기대했다가 삼백 킬로그램이 넘는 거구라는 것을 알고 경악하게 만든 크리스는 덩치보다 애교가 넘치는 편이었다. 사람과의 소통을 즐겼고 그 사람에 맞게 대화를 나눴다. 어린 소녀들과는 다정하게, 사이 몽고메리의 남편 하워드와는 힘차게 말이다. 또한 삶을 즐길 줄 알고 음식의 맛을 음미할 줄 아는 거대한 존재에게 많은 사람들이 기댄다. 거대한 크리스의 앞에서 자신의 슬픔을 토해내고 나면 그 것이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책에서는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의 출생, 삶, 죽음을 다룬다. 크리스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행복해서 큰 동물이 아직 무서운 나조차도 손을 내밀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일곱 살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때 사진관에 들어온 개와 함께 놀아줄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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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국왕의 일생 규장각 교양총서 1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 글항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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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서는 위에도 또 위가 있었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누구도 자유롭지 못했다. 자신을 유지하는 바탕이 튼튼한 듯 보여도 위에서 무차별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에 의해서 순식간에 부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승의 집안이라해도 역적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면 모든 기반이 송두리채 무너져 내렸다. 그런 마당이니 모두가 왕이 되길 원할 수밖에 없었다. 야심이 큰 자는 체제를 전복시키고 왕이 될 야심을 키웠고 야심은 없되 살아남고 싶었던 자는 충성심을 가장해 왕의 앞에 엎드렸다.

그렇다고 정점에 있는 왕이 자유로웠나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모두가 왕이 되길 원한다는 것은 왕의 자리에 앉은 순간 만인의 표적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이 체제에 순응해서 충성하는 것으로 만족하게 하느냐, 전복의 야심을 키우게 하느냐는 왕에게 달린 부분도 많았다. 결국 신분제 사회에서는 모두가 피해자였고 왕 조차도 그랬다. 이 책 <조선 국왕의 일생>에서는 그런 왕의 일생을 들여다본다. 왕의 탄생, 쌓아야 했을 소양, 왕의 곁에서 살아간 자들의 이야기, 왕의 죽음과 그 대체까지를 다루면서 조선의 왕이라는 자리가 어떤 것이었는지 퍼즐조각을 하나하나 맞춰간다.

왕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왕은 흔히 용을 상징하는데 그래서 왕비가 머무는 곳에는 용마루가 없었다고 한다. 용이 잉태되어야 할 곳이 다른 용의 기운에 눌릴까봐 그랬다는 것이다. 또한 영조의 정비였던 정성왕후는 죽을 당시 왕이 잉태될 곳에서 죽을 수 없다며 거처를 바꿨다고 한다. 거기에 왕비가 회임한 사실이 알려지고 아이가 태어나기 한 달에서 세 달 전이 되면 산실청이라는 기관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왕비가 출산을 할 때까지 형벌의 집행은 중지되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왕은 특별한 존재로 태어났다.

태어난 이후에는 유모가 붙여졌는데 그 유모는 천인이어도 괜찮았다고 한다. 유모는 민간인 중에서 견실한 성품을 가진 이로 선택되고 유모가 키운 아이가 국왕이 되면 종1품에 해당하는 관직을 받았다는 것이다. 유모는 왕이 태어나 자랄 때까지 함께 하니 각별한 관계가 유지될 수밖에 없고 이후 그만한 대우를 받게 되는 자였다. 거기에 왕의 최측근에 있는 내관은 물론이고 궁녀의 경우 재상의 집에 놀이를 나가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하니 왕의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만한 권력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었고 왕은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교육을 받아야 했다. 조선은 문치의 국가였으므로 유교 경전을 계속하여 공부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교양도 쌓아야 했다. 특히 시를 짓는 일은 여흥으로만이 아니라 후에 신하들과 감성적인 소통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들으면 모든 왕은 태어나면서부터 왕이었고 계속하여 왕으로 자랐을 것 같지만 정작 궁궐에서 태어난 왕은 몇 명되지 않는다는 것이 묘했다. 하기야 모든 사람이 왕의 자리를 탐내니 왕이 되기 전까지는 왕이 될 수 없을까 겁을 내야하고 왕이 된 이후에는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피를 말리는 긴장을 이겼어야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부자의 괴로움과 가난한 자의 괴로움은 다르다. 체제의 희생양이라고 해도 왕은 왕으로 살다가 죽어가지만 그가 잘못 행한 정치의 폐해가 나비효과처럼 번져가 벌레처럼 죽어간 일반 백성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듯 했으나 실상은 언제나 원활하게 대체되어야 할 톱니바퀴에 불가했던 왕의 일생은 신분제 사회에서 누구도 승리자가 될 수 없음을 떠올리게 한다. 왕은 누구나 탐내듯 화려한 자리였지만 동시에 다시는 궁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궁궐 여인들의 한탄처럼 가시밭길이기도 했던 것이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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