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리 수집가 - 어느 살인자의 아리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정창 옮김 / 예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무언가를 모은다는 것은 탐욕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필요해서 사용할 물건을 사는 것과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모아두려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그런데 물질적인 것이 아닌 무형적인 것을 모으려는 행위는 어떠할까. 모은다는 것은 분명 탐욕스럽다. 하지만 형태가 없는 것을 모은다는 것은 조금은 기이하다. 이 책 <소리수집가>에는 세상의 소리를 모으는 남자 루트비히가 등장한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루트비히는 태어나서부터 소리에 대한 감각과 집착이 남달랐다. 태어나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소리였다. 자신이 젖을 빠는 여인의 숨소리, 심장 소리에 먼저 반응한 루트비히는 한 때 눈을 감고 생활했다. 그래도 전혀 지장은 없었다. 부모님은 그에 대한 것을 걱정하였지만 루트비히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모으고 싶었다. 그에게는 소리만이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였으며 그만의 보물이었으며 전부였던 것이다. 그것은 본능적인 행위였다.
그는 계속하여 소리를 모은다.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소리를 받아들이던 아이는 소리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몸속에 저장된 소리가 어느 날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너무 많이 담아놨는지 그의 안에서 소리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린 루트비히는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몸속에 담긴 소리를 쏟아낸다. 그것은 짐승의 소리기도 했고 종소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어느 순간 변화한다. 아름다운 소리, 노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루트비히의 재능을 악마의 것으로 생각하던 아버지는 그제서야 루트비히에 대한 마음을 돌린다.
아버지는 예술가였고 루트비히의 예술적 재능은 신이 내린 축복으로 생각한 것이다. 문제는 그 재능이 범상치 않다는 데에 있었다. 아버지는 루트비히의 재능에 체계를 잡아주고 싶어서 가정교사를 붙이지만 루트비히의 수업은 단 한 번으로 끝난다. 모든 소리를 자신의 몸 안에 저장하고 그 소리를 그대로 구현해낼 수 있는 루트비히의 입장에서는 피아노 소리든 음계든, 음악이든 단 한 번만 들으면 족했다. 가정교사는 하얗게 질려서 아버지에게 말한다. 이 아이의 재능은 신이 아니라면 악마가 준 것이고 자신이 가르칠 수 없다고 말이다.
이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던 루트비히의 운명은 급물살을 탄다. 어린 나이에 가족들과 떨어져 음악 학교에 가고 후에 성공적 오페라 가수의 지위에 올라선다. 문제는 사랑과 죽음이 그에게는 같은 것이었고 루트비히는 누구나 감탄할 만한 노래를 하게 되는 대신에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은 누구나 죽게하는 저주에 걸려 있었다. 그가 소리에 집착해서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던 당시에는 아직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부족한 조각이 맞아들어간 순간 저주는 그대로 살아난다. 첫 부분은 루트비히가 죽으면서 그 고해를 담당한 신부가 남긴 것, 그리고 그 기록을 읽으면서 후에 화자가 되는 다른 신부의 것이 펼쳐져서 지루하기도 했다. 하지만 루트비히의 이야기가 풀려 나오면서 눈을 뗄 수가 없어졌다. 한 사내의 몸 안에 사랑의 미약과 죽음의 독이 함께 들어 있다는 설정이 묘했다. 소리로 누구든 홀릴 수 있으나 정작 진정한 사랑은 이룰 수 없는 남자의 비극적 삶이라는 것이 눈을 끄는 소재이기는 했다. 후에 생각하면 허풍이 좀 심한 소재란 생각이 드는데도 읽을 당시에는 눈을 뗄 수 없는 것을 보면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루트비히의 노래는 분명 치명적이지만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어했듯이 호기심이 생기기도 한다. 진짜 존재한다면 절대로 듣고 싶지 않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