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추억
사이 몽고메리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어린 시절에는 어쩐지 개가 정말 무서웠다. 일곱 살때, 그 때는 아직 사진관이 성행하던 시기라 사진을 뽑으러 사진관에 갔다. 정확하게는 엄마를 따라갔던 것인데 어른들이 이야기를 나누자 어린 아이인 나는 지루해졌고 그 자리에 가만히 쪼그려 앉았다. 여름이어서 짧아진 옷과 젖은 머리카락으로 밖을 나온 터라 바람에 옷과 머리카락이 살랑대는 느낌이 좋았다. 그런데 무언가가 내 어깨를 건드렸다. 처음에는 엄마인가 했지만 무언가 '북슬북슬' 했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털이 복실거리는 개의 검은 눈동자가 정면에 있었다.

그 순간 비명을 지르면서 사진관 밖으로 도망을 치고 말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반쯤 어이 없어하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고 개는 보이지 않았다. 타닥거리는 경쾌한 발소리가 있었을 뿐이다. 겁에 질려 옆을 보니 그 개가 내 옆을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다시 비명을 지르면서 엄마에게 돌아가자 엄마가 개를 쫓아냈다. 그 이후로도 비슷한 일이 두어번 반복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개는 어린 아이인 나와 놀고 싶은 마음에 다가왔을 것이다. 다만 나는 그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하물며 개도 아니고 거대한 돼지를 사랑스럽다며 돌보는 여자의 이야기라니 놀라운 것 이상이었다. 말이 통하는 사람과의 소통도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런데 말이 잘 통하지도 않고 몇천년에 걸쳐 애완동물로 바꿔온 동물도 아닌 돼지, 그것도 삼백 킬로그램이 넘는 거대한 식용돼지가 사람과 소통한다니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사실 돼지는 영리하고 깨끗한 생물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소설 <동물농장>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지저분하거나 탐욕의 상징으로 나올 때가 많다. 최근 작게 개량한 애완돼지가 나왔어도 돼지가 애완동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거의 해보지 않았다.

이 책 <돼지의 추억>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호그우드는 애완돼지라기보다 반려돈 쯤 될 것 같다. 동물학자 사이 몽고메리에게 우연히 오게 된 크리스는 무녀리였다. 엄마 돼지가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것은 보통 10마리, 그 마릿수를 넘어서 태어난 녀석은 살아남기도 힘들고 형제들의 생존까지 위협한다고 해서 보통 어미가 물어 죽인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한 마리의 돼지라도 더 살리는 것이 이익이 될 테니 농장주인은 어미가 물어 죽이기 전에 무녀리를 직접 키웠다. 그런데 유난히 약한 새끼였던 크리스는 따로 돌봤음에도 점점 약해졌고 동물학자인 사이 몽고메리에게까지 오게 된다.

이 시점에서 크리스는 어미나 농장 주인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후에 식용돼지의 목적에 맞게 도살되는 운명에서 피해간다. 동물학자 사이 몽고메리는 채식주의자였고 그녀의 남편 하워드는 유대인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새끼 고양이만한 작은 돼지를 받아들인 것은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지 먹기 위함이 아니었다. 유명 지휘자인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의 이름을 받은 크리스는 몽고메리의 집에서 점차 안정을 찾아간다. 그리고 점차 마을의 명물이 되어간다. 영리한 두뇌로 매번 우리를 탈출해 마을을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거대한 돼지이며 사람과의 소통을 즐기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작은 돼지를 기대했다가 삼백 킬로그램이 넘는 거구라는 것을 알고 경악하게 만든 크리스는 덩치보다 애교가 넘치는 편이었다. 사람과의 소통을 즐겼고 그 사람에 맞게 대화를 나눴다. 어린 소녀들과는 다정하게, 사이 몽고메리의 남편 하워드와는 힘차게 말이다. 또한 삶을 즐길 줄 알고 음식의 맛을 음미할 줄 아는 거대한 존재에게 많은 사람들이 기댄다. 거대한 크리스의 앞에서 자신의 슬픔을 토해내고 나면 그 것이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책에서는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의 출생, 삶, 죽음을 다룬다. 크리스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행복해서 큰 동물이 아직 무서운 나조차도 손을 내밀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일곱 살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때 사진관에 들어온 개와 함께 놀아줄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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