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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맨 The SandMan 1 - 서곡과 야상곡 ㅣ 시공그래픽노블
닐 게이먼 외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만화)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어린 아이는 많은 시간을 자면서 보내는 반면 어른이 될 수록, 나이가 들어갈 수록 자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한 때는 아무런 의문도 없던 자는 시간에 대한 의문이 생긴 적이 있었다. 언젠가 영원한 잠에 빠질 거라는 당연한 순리를 의식하게 된 탓이었다. 앞으로 계속 잠이 든 채 깨어나지 못하는 날이 올텐데 하루의 삼분의 일을 잔다는 것이 낭비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잔다는 것은 깨어 있을때의 에너지를 보충하는 일이기도 하다. 단백질 구조 이상으로 인해서 잠들지 못하는 유전병에 시달린 이탈리아 일가는 병이 발현되면 1년 이내에 사망하고 말았다.
잔다는 일은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숙면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자는 동안 꿈을 꾸는 것이 숙면을 방해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품게 되고 자는 동안이나마 누릴 수 있는 꿈의 세계의 무궁무진함에 감탄하게도 된다. 흔치 않은 일이지만 꿈속에서 꿈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그 꿈의 향방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의 꿈의 주인이 존재한다면 그 존재가 인간에게 펼칠 수 있는 영향력은 분명 거대한 것일 것이다.
아픈 사람에게 행복한 꿈을 선사해 평안한 잠이라는 큰 선물을 줄 수도 있고 못된 악당에게 평생 깰 수 없고 반복되는 악몽 속에 빠뜨려 그 인생을 위협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픽 노블 '샌드맨'에서는 바로 그런 꿈의 주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평소에는 관대한 면모도 보이는 샌드맨에게 문제가 생긴다. '악마왕'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남자가 자신이 이끄는 단체들과 함께 '죽음'을 잡아두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하지만 붙잡힌 것은 오히려 꿈의 주인인 '샌드맨'이었다. 그는 자신의 힘을 응축시킨 핏빛 보석, 꿈의 모래, 왕의 투구를 쓰고 있었다. 사악한 원으로 이루어진 흑마술에 사로잡힌 그는 자신의 보물 세 가지를 잃어버리고 구속당한다.
사악한 악마왕은 죽음을 잡지 못했지만 꿈을 사로잡은 사실을 깨닫는다. 꿈을 사로잡은 순간부터 기이한 질병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계속 잠들어 있으려 하는 사람, 잠들지 못하는 사람, 지속적인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이 나온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 쓰러지지만 꿈을 사로잡은 남자는 결코 그 기회를 흘려버릴 생각이 없었다. 탐욕에 눈이 어두워 꿈의 주인에게 자신에게 세상의 권력을 달라고 요구한다. 변치 않는 생명, 무한한 힘, 복수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꿈의 주인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그는 거절한 채 그대로 시간을 보낸다.
잠든 이들은 깨어나지 못했고 잠들지 못한 이들은 죽어갔다. 꿈의 주인을 사로잡은 흑마술사 단체도 별로 다르지 않아서 그들도 늙어가고 있었다. 포로의 영향력인지 그들도 평안한 잠을 빼앗긴지 오래였다. 그런데 상황이 조금씩 변해간다. 배신자가 나와서 단체의 모든 보물을 훔쳐간 것이다. 그 안에 샌드맨의 세 가지 물건도 들어 있었다. 샌드맨은 그저 기다렸다. 자신을 사로잡은 자가 늙기를, 시간 속에 틈이 생기기를 말이다.
그리고 악마왕이라고 불리던 자가 '늙은' 악마왕이 되고 그의 아들이 샌드맨에게 같은 요구를 한다. 샌드맨은 그 제안도 거절한다. 그렇게 잡힌지 70년이 흐른다. 옛 악마왕이라고 불리던 자의 아들도 늙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얻을 수 있었으나 거절당한 것에 매달릴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꿈의 주인이 바라던 틈이 생긴다. 샌드맨은 이제 자신의 복수를 행하려 하고, 자신의 권좌를 되찾으려 하며, 자신이 잃어버린 세 가지 보물을 되찾기 위해 나선다.
이때부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뜻하지 않은 기회에 꿈의 주인을 사로잡은 인간들의 이야기에서 모든 꿈의 주인인 샌드맨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이다. 샌드맨은 모든 상황을 예전으로 돌려놓으려 하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평안한 잠의 기회를 얻는다. 샌드맨은 인간이 아니고 그의 보물을 되찾기까지의 과정은 음울한 편이었다. 특히 보석을 찾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그린 이야기는 작가인 닐 게이먼이 말하듯 '정말 끔찍한' 편이었다.
허나 정작 놀라웠던 것은 샌드맨의 태도였다. 1화에 나오는 말을 보면 샌드맨의 시간도 인간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흘러가는 것을 체감하기는 매한가지라고 한다. 시간에 따라 늙지는 않지만 70년을 원 안에서 갇혀 보냈다면 미칠 듯 지루한 것 마찬가지란 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느 정도까지는 관대한 태도를 유지한다. 자신의 보물을 빼앗아 간 자들에 대해서 그리 잔인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모래주머니를 찾는 것을 도와준 콘스탄틴이나 보석을 찾는 일을 도운 예전 저스티스 리그의 히어로들에게 보상을 해준다.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의 감정을 어느 정도까지 이해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또한 투구를 찾는 과정에서 나온 대결에서는 샌드맨이 내놓은 누구도 짓밟지 못하는 답은 정말 감탄스러웠다. 잔인한 부분이 없지 않아서 다크 판타지에 가까운 반면 그와 그의 동족인 '영원'들은 인간이나 다른 존재에 관대한 편이라 어둡게만 흘러가지는 않는 편이었다. 인상적인 이야기와 신선한 존재인 샌드맨을 다룬 '샌드맨 01-서곡과 야상곡' 재미있게 읽었다. 서곡이라는 말에 맞게 샌드맨이 힘을 되찾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어서 설명적인 부분이 많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색적인 맛이 있어서 좋았다. 저렇게 관대한 꿈의 주인이라면 존재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그를 사로잡아서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는 인간만 없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