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섹스 - 일하는 뇌와 사랑하는 뇌의 남녀 차이
앤 무어.데이비드 제슬 지음, 곽윤정 옮김 / 북스넛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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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똑같은 사람이 세 명 있다는 말이 있다. 전 세계의 인구가 60억이나 되니 도플갱어처럼 닮은 사람이 한 두명쯤 있어도 그리 놀랍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세상에 아무리 많아도 전혀 닮지 않은 둘이 있다. 바로 남자와 여자다. 몸의 골격이야 그렇다치지만 어쩌면 저렇게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동양식도 사고방식도 다르다. 여태까지는 그렇게 다른 것에 대해서 문화적인 것이나 사회구조 상 그런 것으로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남자와 여자가 다른 것은 뇌와 관련된 문제라는 것이다. 이 책 '브레인 섹스'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공통점은 같은 인간이라는 점뿐이라고 한다. 극단적인 말이기는 했지만 공감이 가기도 했다. 오죽하면 남자와 여자를 다른 별 사람으로 설명한 책이 나왔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남자와 여자의 다른 점을 뇌 구조를 통해 설명한다는 점이 특색 있었다. 물론 여태까지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설명한 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과학적으로 밝히려는 시도가 신선했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의 뇌는 어떤 면으로는 극단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한 예로 공간지각능력을 담당하는 부분에 손상을 입은 남자는 그 분야에서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지만 같은 부분을 다친 여자의 경우 별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전에 아인슈타인의 뇌가 특별했던 것은 좌뇌와 우뇌가 보통 사람들에 비해 더 잘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남자의 경우에는 좌뇌와 우뇌가 그렇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좌뇌와 우뇌가 유난히 잘 연결된 남자가 희대의 천재일 수밖에 없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또한 남자의 뇌는 각 부분이 전문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여자의 뇌는 좌뇌와 우뇌가 잘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능력이나 공간지각능력 같은 것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언어구사능력이 더 뛰어나기도 하고 같은 손상을 입어도 여자는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남자와 여자의 뇌가 다른 대표적인 예로 지도를 보는 것을 들 수 있다. 남자의 경우 공간지각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지도를 들면 그 지형이 머릿속에 그려진다고 한다. 지도를 보고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허나 여자의 경우 덜 전문화되었지만 보다 통합화된 뇌를 가지고 있어서 공간지각능력 부분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한다. 여성의 경우 지도를 바로 들고 머릿속에 지형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는 자신에 맞추어 지도를 돌리는 경우가 많다. 반면 언어구사력은 여자 쪽이 훨씬 뛰어나 여성지원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경우 면접을 남녀 나누어 하지 않으면 남성지원자가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할 정도이다.

비슷하게 생긴 뇌인데 성별이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큰 차이가 있었다. 이렇듯 다른 뇌가 형성되는 것은 이미 태아시절에 결정된다고 한다. 남자 아기이든 여자 아기이든 관계없이 뇌가 형성되는 6주 간 남성 호르몬에 얼마나 많이 노출되느냐에 따라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로 변한다는 것이다. 남자아기라도 남성 호르몬에 거의 노출되지 않고 어머니가 당뇨병 치료 같은 문제로 여성 호르몬을 맞으면 여성의 뇌를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여자아기의 경우에도 어머니가 비정상적인 신장을 가지고 있어서 남성 호르몬에 많이 노출되면 남자의 뇌를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고 한다.

또한 X염색체가 하나 더 많은 터너 증후군의 경우에는 극단적인 여성성을 보인다고 한다. 자신이 어떤 뇌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드러나는 개성도 능력도 다르다고 말하는 셈이었다. 뇌 구조의 다름으로 구분한 남녀의 차이는 분명 흥미로웠다. 허나 남자 아기가 여자의 뇌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부분을 통해 동성애자나 트렌스 젠더에 대해 설명하려고 드는 부분은 약간 성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많은 것이 밝혀지고 있는 지금에 와서도 인체는 풀리지 않은 비밀 중에 하나다. 인체의 구성물질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해서 인체를 재구성할 수도 생로병사의 비밀을 풀어낼 수도 없다. 하지만 어떨 때 보면 지나치게 달라서 당혹스러운 남녀의 차이를 뇌를 통해 알아본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태아 시절에 여성 호르몬에 과다하게 노출되어 운동을 잘 하지 못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고 여자의 뇌를 가지고 있는 증거라는 부분에서 묘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도를 잘 읽는 것과 사람을 잘 읽는 것은 분명 큰 차이기는 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내성적이면 여자, 공격적이면 남자라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구분이 정확한 척도가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같은 지구인이며 인간이라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남자와 여자는 풀리지 않는 비밀 중에 하나다. 허나 어느 시점에서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지만 알고 싶지 않은 부분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비밀을 단지 호르몬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지 않듯이 말이다. 허나 적어도 남녀의 차이를 뇌 구조를 통해서 알아보려고 한 점과 남녀가 얼마나 다른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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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연쇄살인의 끝 - DNA 과학수사와 잔혹범죄의 역사
김형근 지음, 한면수 감수 / 글항아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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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장편의 첫 권인 '주홍색 연구'에서는 선명한 지문이 주요 증거로 등장한다. 정작 홈즈는 시큰둥했던 지문 증거에 경찰들은 법석을 떤다. 당시만 해도 지문을 통해서 범인을 검거한다는 것은 획기적인 기술이었을 것이다. 한 때는 범죄자의 귀 모양으로 사람을 식별할 수 있다는 연구도 나왔었다. 지금에야 거의 흔적도 없는 것 같지만 말이다. 분명 지문은 범죄수사에 요긴한 증거이기는 하다. 범죄 수사 드라마에서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장소에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 지문을 요구하는 것은 흔한 일로 나온다. 물론 가족들의 지문을 제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문이 중요한 증거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언제나 그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이제 기술이 발달해서 사람의 몸에 손을 대도 지문이 남는다고 하지만 범인이 장갑을 끼고 있었다면 지문은 남지 않는다. 더구나 부분 지문의 경우에는 증거로 삼기에 불확실한 요소들이 있다. 그러니 다른 증거를 찾기 위해 수사관들은 분투할 수밖에 없다. 더 확실한 증거로 마음의 짐을 덜려는 것이다. 만약 수사관으로 일한다면 가장 가슴 서늘한 일은 자신이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 보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다 정확한 증거를 원한다. 피의자가 범죄현장에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DNA에 대한 것은 하늘이 내린 동아줄과도 같다. 지문이 아직도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DNA는 범인의 머리카락부터 체액까지 다양한 부분에서 검출해낼 수 있는 것이다. 지문은 남기지 않더라도 한 방울의 체액이나 체모를 남긴다면 그 사람이 현장에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가 된다. 더구나 같은 DNA를 가지고 있을 확률은 60억분의 일이라고 하니 DNA가 있다면 엉뚱한 사람을 잡아넣을 확률은 대폭 줄어든다. 어디까지나 현장에 있었다는 증거이지만 동기가 있고 범죄가 발생한 시간에 알리바이가 없으며 현장에 DNA가 있다면 진범일 확률이 높은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제 범죄수사에 있어서 없어선 안 될 요소가 된 DNA 과학수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정확하게는 DNA 과학수사의 역사와 그로 인해서 잡을 수 있었던 범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최초의 과학수사는 영국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사람의 DNA를 각각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린 과학자가 영국인이었으니 무리도 아니다. 한적한 장소에서 여중생의 시체가 발견된다. 조사 결과 소녀는 성폭행 뒤 살해된 것으로 나왔다.

경찰은 소아성애자의 소행으로 보고 폭력적 전과가 있는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남자는 끝내 자백을 하고 형을 살게 되었지만 문제는 진범이 그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경찰은 수세에 몰리게 되고 인근 주민을 상대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다. 몇 천 명이 되는 남자들을 대상으로 혈액을 채취해서 DNA 검사를 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DNA가 유용하기는 하지만 지문에 비해서 등록된 것도 아니어서 용의자의 혐의를 확실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언론의 비난에 시달리게 된 영국 경찰은 몇 천 명을 대상으로 DNA 채취를 시도한 것이다.

범인은 엉뚱한 일로 밝혀졌다. 진범은 지레 겁을 먹고 자신 대신에 혈액 검사를 받아달라고 친구에게 부탁을 했다고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부탁을 받아들인 친구는 그 사실을 이리 저리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유독 한 여성이 수상하게 여겨서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서 진범이 검거된다. 결국 진범을 잡기는 했지만 최초의 DNA 수사는 다소 우악스럽게 전개된 셈이다. 엉뚱한 사람을 표적으로 삼아서 수사하고 형을 살게 했으며 이로 인해 비난 여론이 들끓자 몇 천 명 단위의 사람들에게 혈액 검사를 받게 한다니 좀 놀라웠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DNA 과학수사가 유용하다는 확증이 생긴 셈이었다. 이후 DNA는 애인의 혈관에 에이즈 바이러스를 투약한 의사를 잡아들이게 되기도 하고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로 사형되게 된 남자의 무고함을 밝혀주는 수단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역사상 논란이 많은 루이 17세와 아나스타샤의 행방에 종지부를 찍었다.

허나 어디까지나 DNA 과학수사는 수단에 불과하다. 과학이 차가운 진실을 밝혀주지만 사람들은 그 속에 숨은 다른 이야기에 주목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사기꾼이었을 사람을 아직도 왕가의 후손이었다고 믿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수사를 하는 것도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도 사람의 손에 있다. 확실한 물적 증거가 되어 준 DNA를 바탕으로 논리적 연결 고리를 만들어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해주는 것도 사람의 몫인 셈이다. 기술은 계속 발전한다. 사람이 저지르는 최악의 범죄이며 가장 오래된 죄 중에 하나인 살인이 없어지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발달한 기술은 점차 그 죄의 진상을 명확하게 해 줄 것이다. 언제나 돼야 끝날지 알 수 없는 기술과 범죄의 싸움, DNA를 단지 친자확인용으로만 사용하게 될 날을 기다려본다. 결코 이루어질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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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두 얼굴 - 무엇이 보통 사람을 영웅으로 만드는가?
김지승 외 지음 / 지식채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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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얼마 전 미국 드라마 '로 앤 오더 : 성범죄 전담반'을 보다가 놀란 기억이 있다. 상황이 인간을 지배하는 순간을 보았기 때문이다. 패스트푸드점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자신을 경찰이라고 말한 남자는 패스트푸드점의 점장에게 직원이 도둑질을 했으니 사무실로 데려가서 옷을 전부 벗기고 수색을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도둑이라고 의심이 가더라도 점장은 직원에게 옷을 벗으라 요구할 권리가 없다. 하지만 점장은 경찰이라는 남자의 말을 믿고 그대로 따른다. 결과는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셈이므로 진짜 경찰이 도착하여 체포되었다.

단 한 통의 전화, 경찰이라는 말의 권위를 믿고 죄를 행한 것이다. 피해자인 여직원이 제발 그만둬달라고 애원했는데도 말이다. 전화를 걸은 범인 쪽에서는 그런 행동을 한 인간이야말로 추악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도둑으로 몰린 직원에게 일어난 일은 정말 안 된 것이지만 평소에 그런 추한 욕망을 품고 있지 않았다면 그런 무리한 요구를 따르는 어리석은 자가 어디 있냐고 말한다. 사람의 행동이 얼마나 간단히 조종당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 오싹해졌다. 그런데 심지어 이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어떤 남자가 패스트푸드점 70군데에 전화를 걸어 같은 일을 벌였고 피해자가 속출했다. 점장은 자신은 경찰의 말에 따라 정의를 실행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상황이 인간을 지배한 것이다. 물론 선택은 전화를 받은 점장이 한 것이고 그의 행동에 변명의 여지는 없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자신이라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상황에 따라 인간은 선과 악의 두 얼굴을 드러낸다고 이 책 '인간의 두 얼굴'에서는 말하고 있다. 자신은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런 생각을 품는 것 자체가 인간의 오만함의 반증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권위 있는 사람의 말에 따라 우스꽝스러운 일을 하게 되기도 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면 따라서 움직이게 된다고 한다.

실제 실험에서 안과 검진을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의사가 엉뚱한 행동을 시켜도 사람들은 대개 그대로 했다고 한다. 권위자의 말에 따르게 된 것이다. 그 권위조차도 인간이 부여한 것인데도 말이다. 거기에 길에서 3명의 사람이 하늘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자 많은 사람들이 멈추어 서서 하늘을 올려 보았다고 한다. 그 곳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도 말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도 탈출을 할 수 있었던 10분간 승객들이 나오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은 사회적 생물이라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생명에 위협을 준다니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비슷한 실험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재현되었다고 한다. 5명에게 설문지를 풀게 하고 연기를 넣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피실험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설문지를 작성했다고 한다. 반면 혼자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빠져 나왔다는 것이다. 혼자 있는 것보다 집단으로 있는 것이 더 위험했던 셈이었다.

이처럼 사람은 상황에 휘둘린다. 70%이상의 사람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불이 나서 연기가 들어와도 다른 사람이 나가려 하지 않으니까 별일 아니겠구나 하고 판단하는 뇌라니 무서워졌다. 그렇다면 사람은 항상 상황에 지배되는 것일까. 인간이 반대로 상황을 지배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상황에 지배되는 인간이 보통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황을 지배하는 인간을 흔히 영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순간에 선로로 떨어져 끼여 버린 사람을 구하기 위해 33톤의 지하철을 미는 대다수의 사람은 전부 영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지하철을 밀어보자고 가장 먼저 외친 사람이야 말로 상황을 지배하는 영웅이라는 것이다. 한 사람이 외치자 두 번째 사람이 혹시 하고 가세하고 세 번째 사람이 돕자는 마음으로 손을 보태면 그 순간 3명은 집단이 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상황에 휘둘리는 70%의 보통 사람들이 가세하게 된다는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단 한 마디를 외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상황을 지배하는 영웅이 된다고 한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는 의인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누군가가 구해주겠지 하고 생각한다고 한다. 반면 사람을 구하려고 뛰어드는 사람은 그 순간 그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아니래도 다른 사람이 구해줄 것이라는 방관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사람은 상황에 휘둘릴 수도 지배할 수도 있다. 단 한 마디, 먼저 손을 내미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악은 평범하다고 한다. 누구든 악에 휘말릴 수도 있고 마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상황에 지배되어 무수히 많은 양떼에 속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영웅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어둠은 너무 가까운 반면 '그 한 마디'가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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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못 된 세자들 표정있는 역사 9
함규진 지음 / 김영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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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평생 많은 역할들을 수행하면서 살아간다. 보통 그 역할들은 어린 시절보다 나이 든 이후에 많으며 한 역할이 끝나야 다른 역할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이 맡은 역할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태어난 순간 누군가의 자식이며 누군가의 형제이고 자라면서 학생이나 직업인, 누군가의 배우자 같은 역할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 개인은 수많은 역할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그 역할들이 서로 부딪힐 때 그것을 역할 갈등이라고 부른다.

개인 속에 숨어 있는 수많은 역할들은 각각의 가치를 부여받고 있기 때문에 종종 부딪히고 그것은 문제가 된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단지 조금 더 피곤해질 뿐이다. 그런 상황이 조선 시대 세자에 한해서는 통용되지 않았다. 그들은 한 사람의 아들이기에 앞서 권력의 제2인자였고 권력을 얻지 못한다면 목숨조차 부지하기 어려웠다. 그 모든 일들은 왕에게 권력이 집중된 구조에 의한 것이었다. 간신을 다룬 어떤 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간신도 충신도 왕에게 권력이 집중된 상황에서 나온 것뿐이며 전부 희생자라는 것이다. 권력의 정점에 선 왕도 그 예외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왕의 후계자로 지정된 세자도 왕에게 집중된 권력구조의 희생양일 것이다. 이기지 못하면 목숨을 잃는 절박한 게임에 휘말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권력이 집중된 상황이니 무더기처럼 많은 민초보다 그들은 혜택을 받는 입장이었다. 후에 청에 끌려간 소현세자가 탄식을 하는 말을 들어보면 예전에 먹었던 진수성찬을 그리워하는 것이 드러난다. 권력의 최상층이 아니고서야 그런 음식을 감히 맛보지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부러워하는 자리에 있지만 실상은 쓸쓸할 수밖에 없던 세자들의 이야기는 분명 흥미로운 것이었다. 이 책 '왕이 못 된 세자들'에서는 조선시대의 세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초반에 왕의 아들이기에 앞서 권력의 제2인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했고 그로 인해서 왕의 의심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구조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비운의 세자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짚어주고 있다. 세자제도는 왕의 아들 중에 왕이 될 만한 자질을 가진 자를 후계자로 선택하는 제도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막내아들이 되어도 큰 문제가 없겠다 싶지만 호랑이 같이 버티고 있는 장자를 제외하고 젖먹이 아이에게 세자 지위를 준다면 그 아들에게 사형선고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어지간히 눈 밖에 난 아들이 아니고서야 장자가 받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세자제도의 초기부터 이미 문제가 드러난다. 제일 처음 세자가 된 의안대군 이방석은 형의 손에 죽음을 맞는다. 역사는 항상 승자의 것이니 후에 그 치부가 덮어지기는 했으나 이방원이 배다른 동생을 죽인 것은 지워지지 않는 사실이었다. 태조 이성계는 건국에 가장 공이 있는 아들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세자로 세움으로써 불화의 씨앗을 공공연히 퍼뜨린 셈이었다. 그 결과는 조선시대 최초 세자의 죽음으로 돌아왔고 태생부터 문제가 있었던 세자제도는 마지막 세자조차 왕이 되지 못하고 쓸쓸한 죽음을 맞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권력은 십년을 못 간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 힘이 있는 자는 대부분 권력을 탐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바라던 권력을 잡았을 때 그들이 가지고 있던 곧은 이상 따위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그런데 조선시대 세자제도는 그런 왕에게 위협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아들로만 본다면 그 아이가 귀여울 것이다. 또한 자신이 죽은 이후에 분란이 일어나지 않고 아들이 자신의 뒤를 잘 이어 나라를 다스리길 바랄 것이다. 허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죽은 다음이지 자신이 버젓이 살아 있는 동안에 세자에게 자신의 권력이 나눠지는 것을 달가워할 왕은 없다. 그런 왕이었다면 이미 폐위되었거나 권력의 정점에 서는 자리 자체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세자는 태어나서 왕이 되도록 고된 공부를 해왔고 아버지이기 이전에 권력의 제1인자의 역할로 눈을 빛내는 왕의 눈치를 보려니 미칠 노릇이었다. 세종처럼 학문에 관심이 있는 세자라면 괜찮겠지만 무인 기질이 있는 세자는 더한 시련을 맞았다. 양녕대군은 아버지로서의 이방원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태종 이방원에게는 눈의 가시였던 것이다. 무인 기질을 누르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킨 데다가 왕인 자신이 꾸짖으니 대드는 아들을 가만히 바라볼 태종이 아니었던 것이다.

권력을 탐하는 입장에 선 부자관계는 평탄할 수 없었다. 세자의 경우 권력을 잡지 못하면 죽음을 맞을 확률이 크니 권력을 추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부왕과 부딪히니 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책에서는 이처럼 조선시대 왕이 되지 못한 세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부왕과 다툼에 의해 내쳐진 세자부터 시대의 소용돌이 휘말린 세자, 병으로 요절한 세자들까지 말이다. 누구나 고민은 가지고 있는 법이다. 허나 태생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세자들의 고민은 역사 속에 묻혀 갔고 그들은 속절없이 죽어갔다. 승자의 역사가 아니라 그늘 속에서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세자들의 입장에서 다룬 조선역사라는 점이 특색 있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권력의 그늘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권력이 집중된 사회구조 안에서는 상류층이든 하류층이든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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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생명체를 찾아서 과학과 사회 2
프랑수아 롤랭 지음, 김성희 옮김 / 알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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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읽은 추리소설에서 살인범이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는 생명의 근원으로 인한 것이었다. 성경을 그대로 해석하자는 쪽에서는 세계와 생명체는 신이 6일 동안 창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다윈의 진화론을 믿는 과학자들은 생명의 근원이 외계에서 왔다는 외계 유입설의 증거를 찾고 있었다. 사실 보통 생각하기에 외계 생명체를 찾는다고 하면 팀 버튼의 영화 속에 나오는 화성인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 책 '외계 생명체를 찾아서'에 따르면 과학자들이 찾고 있는 외계 생명체라는 것은 대부분 생명의 근원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도 원시 박테리아에서 진화해 온 존재이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질문이 나온다. 원시 박테리아는 어디에서 나왔느냐 하는 것이다. 신이 창조해 낸 것이라는 답을 그대로 수긍할 수 없는 과학자들의 입장에서는 지당한 의문점이다. 과학자들은 여러 가지 가설을 내놓다가 광활한 우주로 눈을 돌렸다.

저렇게 넓은 우주 어딘가라면 생명체가 있을 수 있고 그것이 지구에 와 생명의 근원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우리가 아는 우주가 아니라 더 먼 우주 어딘가에 생명체가 있을 확률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니 그 가설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주 어딘가에 있을 생명체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먼저 대상이 된 것은 지구와 유사한 상태인 화성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화성의 경우 어느 과학자가 선형으로 되어 있는 건축물을 보았다고 말함으로써 화성에 지적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 제기 되었다. 이 가설로 인해서 많은 영화 속 이미지로 등장한 화성인이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점은 영화 속의 외계인은 기괴한 외모는 그렇다고 해도 대체로 인간과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상상력의 한계였는지 기술로 구현하는 문제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린 시절의 외계인은 대체로 비슷한 모양이라 이상한 생각이 들었었다. 허나 만약 실제로 외계 생명체가 있다면 중력이 강한 지역이라면 거북이 같이 단단한 껍질의 짧은 형태를 하고 있을 것이고 중력이 약한 지역이라면 식물처럼 기다랗고 가는 형태일 것이라고 한다. 기존의 외계인에 대한 생각과 비교해보면서 읽으니 꽤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이렇게 화성에 있을 지도 모를 지적 생명체에 대한 꿈이 부풀 무렵 화성 탐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그런 건축물은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생명체의 흔적이 있을 가능성은 있다고 한다. 생명체가 나타난다고 해도 그것이 지구의 생명의 근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꽤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외계에 생명체가 있지 않을까 하고 여러 시도를 해보았다. 어딘가에 있을 지적 생명체와의 교신을 시도한 것이 그 중 하나였는데 실제로 성과를 이룬 것은 없다고 한다.

어느 여학생이 들은 소리는 실제로는 중성자별을 발견한 것이었고 다른 과학자가 들었다는 소리도 별의 소리였다는 것이다. 직접적 교신이 실패하자 과학자들은 우주에 인류의 흔적을 두고 오는 방식으로 방법을 바꾸었다.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영상과 소리, 글을 두고 오기로 한 것이다. 달에는 물론이고 토성 탐사선에도 그런 메시지를 담은 매체를 실어 보냈다고 하니 좀 놀라웠다. 돌아오지 않을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 같았던 것이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과학자들이 말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글을 읽고 납득이 갔다. 다른 생명체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인류가 좀 더 겸허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우주전쟁' 같은 일은 바라지 않지만 다른 지적 생명체가 있지 않을까 해서 적어도 자신의 처신에 신경을 쓸 것이라는 말이었다. 하기야 우주만큼 인간을 미약한 존재로 느끼게 하는 곳도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확률적으로 지금도 우주 어딘가에 지적 생명체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는 하다. 그 생명체가 인류에게 호의적일지도 생명의 근원이었을지도 미지수지만 말이다. 지금도 과학자들은 외계 생명체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고 있다. 생명의 근원이 밝혀질 때까지 이어질 연구의 답이 어떤 것일지 혹시 올지도 모를 답신이 조금은 기대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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