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 상처에서 치유까지, 트라우마에 관한 24가지 이야기
김준기 지음 / 시그마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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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억은 물과도 같아서 쉽게 흘러가고 잘 털어내지지만, 나쁜 기억은 기름과도 같아서 흘러가는 것 같다가도 손에 달라붙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살면서 온갖 일이 다 생기고 많은 일들이 정신에 상처를 남긴다. 다만 대부분의 상처는 저절로 아물어 별일이 아닌 것으로 넘어 가지만 가끔 잘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런 잘 메워지지 않는 거대한 상처를 '트라우마'라고 부른다. 그런데 많이 착각하게 되는 것이 트라우마라 하면 전쟁이나 끔찍한 폭행처럼 엄청난 일에만 해당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일상 속의 사소한 일들도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학교에서 발표를 하다가 실수해서 창피했던 일, 길을 가다 넘어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이 마음의 상처가 되는 경우 스몰 트라우마, 그 이상의 끔찍한 일이 불러일으키는 빅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이다. 살면서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잘 떠오르게 된다. 아니면 같은 비중으로 떠오르는데 좋은 기억은 슬쩍 웃으면서 지나치고 나쁜 기억에는 사로잡혀서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트라우마들은 촉발시키는 인자가 있으면 터져 나와 사람을 장악한다. 그 기억에 사로잡혀 우울해 하거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발작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누구나 빠질 수 있고 피하기 어려운 '트라우마'에 대한 것과 그 치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이 책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이다. 여러 편의 영화를 예로 들며 상세히 설명하고 있어서 심리학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도 술술 읽히는 편이다. 영화를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 읽어낸 후 그에 따른 지식을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자신이 가진 마음의 상처는 어떤 것인지 헤아려 볼 수 있다.

영화는 다양하게 언급된다. 함부로 손 댈 수도 없고 그 상처의 깊이가 깊어 치유의 시작도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밀양> 같은 영화부터 긍정적 사고로 트라우마를 치유해 나가는 <포레스트 검프> 같은 영화까지 다양한 영화가 소개된다. 단어를 안다고 그것을 아는 것이 아님을 확증이라도 하듯 <밀양> 속의 주인공이 가진 상처는 깊다. 흔히 말했던 트라우마가 얼마나 깊은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근원이 있고 모든 치유의 시작은 이해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섣부르게 손을 대서도 안 되겠지만 같이 울어줄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 것이 사람인 것이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단순 액션 영화라고 생각했던 <람보>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인물을 표현한 영화로 읽어낸 것이었다. 국가에 의해 명분 없는 전쟁에 보내졌다가 살아 돌아왔건만 살인자라는 오명에 시달려야 했던 참전 군인들의 이야기는 당혹스러웠다 람보 역시 존중은커녕 멸시를 받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다 끝내는 자신만의 전쟁을 다시 시작한다는 전개에 잠시 멍해졌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부서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거나 숨어 있는 트라우마 이야기가 정말 흥미로웠다. 영화와 자신이 치료한 실제 사례가 절묘하게 혼재되어 이야기의 깊이가 더해지는 느낌이었다. 또한 트라우마 수준은 아니라도 옛 기억을 되짚어보며 불합리해서 분노했던 기억들을 다독거릴 수 있었다. 또한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것은 아닐까 고민도 해보았다. 사람들은 간과하지만 트라우마가 그리 쉽게 생길 수 있다면 정말 아무 일도 없는 하루야 말로 감사의 대상이 될 것 같다. 최소한 별 일 없었다고 있었던 일을 수습할 수 있는 정신의 건강에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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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삶
쥘 미슐레 지음, 정진국 옮김 / 글항아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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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음양사>에서 가장 짧은 주는 이름이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그저 살아 있는 동물이었던 것이 '개'라는 이름으로 묶여서 그 특징을 나타내고 '상구'라는 이름을 달고 친숙한 애완동물로 변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름을 갖느냐에 따라 존재는 그 이름에 묶인다. 한 예로 노파라고 지칭하면 마귀할멈까지는 아니라도 다소 추레한 늙은 여인이 떠오르지만 노부인이라고 하면 자태도 단정하고 우아한 부인이 떠오른다.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특히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름에 묶이는 일의 연속이다. 아기일 때는 자유로우나 소녀일 때는 얌전하고 수줍은 이미지를, 처녀가 되면 신선한 아름다움을, 숙녀는 우아하고 단정한 마음을, 부인은 넉넉하고 환한 다정함을, 과부는 쓸쓸하지만 초연한 아름다움을, 노파는 시간을 넘어선 강인함을 강요받는다. 실제로 얼마만큼 그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대체적인 시각은 그렇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신을 거듭하거나 혹은 강요받으니 여자로 산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일본의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여성이야 말로 미스터리'라고 했다고 한다. 여성이 휘감고 있는 본성도 있지만 사회와의 관계에 따라 변해가야 하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듯 알 수 없는 여성에 대한 의문을 전작 <여자의 사랑>에서 소박한 여자와의 이상적인 사랑에 대한 말들을 쏟아낸 쥘 미슐레가 여성의 일생을 따라가며 풀어낸다. 그가 바라보는 여성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상적인 여성이지만 사회와의 연관 관계 속에서 풀어내자 지난번과 달리 단순한 찬사라기보다 당시 시대 속에서 그가 최대한 여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려 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초반에는 그는 여성에 대해 말하고 결혼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여성의 노동에 대해 말을 꺼낸다. 산업 혁명 시기에 대부분의 노동자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지만 자신의 손으로 벌어서 먹고 살게 된 여성 노동자의 경우에는 더했다. 남성 노동자는 40수를 받아 거칠지만 고기도 사먹고 술도 마시며 유흥도 즐길 수 있었지만 여성 노동자는 같은 일을 해도 10수를 받고 겨우 끼니를 때우는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도시에서는 굶주림에 시달렸고 시골에서는 노예처럼 일하면서 여성이 죽어갔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상황을 안타까워하면서 여성의 일생을 따라간다. 정확히는 빈곤한 일생을 살고 있는 여성의 일생이 아니라 각 시기의 여성에 대한 찬사와 그녀가 살아갔으면 하는 이상적 일생에 대해 기술한다. 어린 소녀의 삶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녀의 소중한 동무인 인형에 대해 말을 꺼낸다. 소녀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인형이 세 번 부서지자 실의에 빠져 죽음을 맞았다는 이야기는 다소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각 시기에 사회가 여성에게 원하는 것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존중'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는 것을 듣는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다.

더구나 그것을 말하는 글의 전체적 분위기는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반복적 찬사를 늘어놓는 것 같아서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다. 지금과 다르지만 같은 상황에 빠져 비탄에 빠지기도 하고 굳은 의지를 가지고 헤쳐 나가기도 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시대에 따른 거리감을 느끼면서도 공감도 하게 되었다. 그가 말하는 여성은 이상적인 여성, 소박하지만 교양 있는 여자지만 그가 늘어놓는 말들이 거슬리기보다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탕에 사람에 대한 그리고 여성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남자로 사는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여자로 사는 것은 정말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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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사랑
쥘 미슐레 지음, 정진국 옮김 / 글항아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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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속의 피그말리온은 자신만의 이상형을 조각했다. 조각상 갈라테이아와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의 사랑은 비참했다. 그러나 그는 여신의 힘을 빌어 조각상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 넣었고 이상의 여자 갈라테이아를 살아 움직이게 했다. 그런데 19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역사학자 미슐레 역시 비슷한 일을 해냈다. 여성에 대한 찬미와 자신이 사랑에 대한 품고 있는 시각을 말로 풀어내어 한 권의 책을 만들어냈다. 바로 <여자의 사랑>이다. 그가 풀어내는 이상적인 여성과 그녀와의 이상적인 결혼은 문자로 이뤄진 갈라테이아를 보는 기분이다.

21세기에 19세기 역사학자가 말하는 이상적 여성과 이상적 결혼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좀 묘했다. 현대에 들어와 제인 오스틴이 창조한 세계의 결혼관을 읽는 기분이었다. 제목은 일단 <여자의 사랑>이지만 그 여성은 여성이 생각하는 여성이라기보다 남자가 생각하는 여성에 가깝다. 기사도를 믿던 시대의 이상적 여성이랄까. 영국 드라마 <오만과 편견 다시쓰기>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우연히 <오만과 편견>의 세계에 들어간 아만다는 자신을 따라 나온 빙리에게 충동적으로 키스한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에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세계에는 없는 예의와 행동양식을 동경해왔는데 막상 자신이 그 곳에 있게 되자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읽으면서 내내 그런 기분이 되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의 힘으로 벌어서 먹고 사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여성은 결코 일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반드시 결혼을 해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다르므로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지만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여성이 더 많은 재산을 가지는 것은 결혼을 깨뜨리기 좋으며 독신을 하겠다 생각하는 것은 비참한 인생이 되는 지름길이라고 '결혼 예찬'을 늘어놓기 때문이었다. 또한 결혼을 한 여성은 집안일을 하되 고립된 시간을 보내며 남편과 둘만의 사랑을 꽃피워야 한다고 한다. 남편은 무지하되 사랑스러운 그녀를 가르치고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은 결혼을 하여 집안의 안주인으로 남성은 그런 아내의 '주인'으로 서로를 부양해야 한다는 대목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당시 시대에서 여자를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이상적인 여성, 사랑, 결혼에 대한 것을 담은 것 같았다. 당시로서는 아주 다정다감한 내용이었겠지만 지금에 들어와서는 헛웃음이 나오는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해서 여성이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죽음에 이루기까지 순서대로 흘러가며 많은 것을 담으려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거기에 여성의 생리나 임신 등 신체적 어려움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보호의 필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할 때는 놀랍기도 했다.

더구나 당시 시각으로는 여성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일부다처제에 대해서 장미 근처에 벌레가 득시글거리는 수준의 사랑이라고 비난하는 점이 신선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존중을 넘어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의 걸은 자리마다 찬탄하고 경배하는 것 같은 느낌까지 받았다. 여성의 부정은 남성의 명예를 실추시키므로 결코 있어서 안 된다고 하면서도 만약 여성이 한순간의 과오를 남편에게 고백한다면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야 한다고 해서 더 특이했다.

여성은 늙어도 젊으며 나이를 들수록 우아해진다는 것처럼 여성에 대한 찬사가 이어져서 글이 아니라 말로 이뤄진 갈라테이아가 주변을 걷는 기분까지 들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고 젖을 떼면 곧장 기숙학교에 넣었던 당시의 풍속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이상은 어디까지나 이상에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그 시대의 사람으로써는 여성에 대한 최대한의 애정을 담고 있는 책이라 유쾌한 면도 많았다. 다 읽은 후의 기분은 영국 드라마 <오만과 편견 다시쓰기>의 아만다가 맛봤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당시에 대해 감탄도 하게 되지만 그 곳에 가면 그것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그런 기분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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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물고기 - 물고기에서 인간까지, 35억 년 진화의 비밀
닐 슈빈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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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텔레비전에 나와서 춤을 추는 연예인을 보고 있노라면 같은 사람의 몸으로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까 신기할 때가 있다. 같은 종에 대한 쓸데없는 감탄을 하게 될 때가 있는가 하면 인간의 몸에 있는 쓸데없는 부위에 대한 의문을 금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아직 진화가 덜 된 흔적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어떨 때는 존재 자체가 놀라워서 신이 인간을 만들어 냈다는 말을 믿고 싶을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진화론을 믿고 있다. 적어도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되었다는 말을 듣지 않고 있을 때는 그렇다.

하지만 인간이 물고기에서 진화가 되었다는 말에는 잠시 망설였다. 어딘가에서는 시작점이 있었겠지만 물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고 때로는 인류의 먹을거리가 되고 마는 물고기가 먼 선조라는 말에는 잠시 망설여졌다. 다윈이 인간의 존엄성을 뭉갰다고 비난하는 사람과 순간 비슷한 심정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딸꾹질 같이 성가시고 대체 왜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흔적들을 생각해보면 그럴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 신이 사람을 만들어 낸 것이라면 왜 불필요한 것들이 있을까. 처음부터 완벽하게 태어나면 좋겠지만 인간의 몸은 의외로 잔고장이 잦다.

거기에 고치기 힘든 질병도 많다. 그것이 모두 진화의 결과이며 아직 진화의 과정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 책 <내 안의 물고기>다. 저자 닐 슈빈은 고생물학자로 '틱타알릭'이라는 물고기 화석을 찾은 사람이다. 단순히 큰 물고기 화석이라면 그렇게 놀라울 것이 없었겠지만 '틱타알릭'은 놀랍게도 팔이 달려 있으며 '목'도 있다. 종과 종을 나누는 경계에 있는 생명체인 것이다. 배아 상태에서는 물고기, 닭, 인간 등 다른 종도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 진화의 중간 단계는 빠져 있다고 한다. 마치 누군가 1000조각 퍼즐을 뒤엎은 다음 맞추고는 있지만 아직 테두리밖에 맞추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인류는 적절한 순간에 태어났겠지만 태어날 때까지 무수히 많은 진화의 과정을 겪어왔을 것이다. 철학의 근원에 있는 것도 존재에 대한 의문이라면 고생물학도 인간의 기원을 파고 들어간다. 어떻게 진화를 거쳐서 인간이 되었는지를 알려 하는 것이다. 그 잃어버린 고리가 바로 '틱타알릭'이라고 한다. '폐어'와 마찬가지로 무시무시한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 인간의 선조인 것이다. 모습을 보면 과연 인간의 선조인가 의아해지지만 닐 슈빈이 종을 나누는 기준과 각 과정의 인간과의 유사성을 말해주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점차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거기에 뼈보다 이빨이 먼저였다는 것처럼 흥미로운 사실이 간간히 더해지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몸이 생겨난 것은 몸을 유지할 수 있는 많은 산소가 생겨난 이후에 일어난 일이고 먹기 위해서 뼈가 아니라 이빨이 먼저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 이빨이 생겨나는 과정에서 비롯되어 뼈부터 깃털이 생겨날 수 있게 되었고 인간의 선조라고 할 수 있는 팔 달린 물고기 '틱타알릭'은 무시무시한 이빨과 덩치를 자랑하는 육식 물고기를 피해 물 밖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계속 이어지는 연쇄 고리의 끝에 서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단지 인간이 딸꾹질을 하는 것은 올챙이와 공통점을, 탈장은 물고기에서 진화한 흔적이고 말을 하게 되면서 질식의 위험에 시달리게 되었다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인간이 진화하지 않고 처음부터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병에 걸릴 일도 잔고장을 일으킬 일도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미생물에서 진화를 거듭해왔고 활발한 물고기, 활발한 양서류, 활발한 파충류, 활발한 포유류를 거쳐 게으른 현대인이 되었다. 진화의 과정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해서 병을 얻기도 하고 아직 덜 진화된 부분으로 인해 딸꾹질 같은 성가신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이 진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은 놀랍지만 처음부터 지금에 맞게 형성되었다면 좋았을 걸 하는 무리한 욕심도 남는다. 그리고 미래에는 어떤 진화를 거쳐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 지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언젠가 지금의 인류의 모습을 지금 우리가 '틱타알릭'을 보는 시각으로 보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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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심리게임 - 인간관계에서 확실하게 주도권을 잡는 법!
울리히 데너.레나테 데너 지음, 안성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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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서 외롭다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가끔은 차라리 외로운게 낫다 싶을 만큼 피곤할 때가 있다. 사람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것, 생각보다 쉽지 않다. 피곤해도 웃어야 할 때가 있고 하기 싫은 일에도 발을 들여야 할 때가 있다. 게다가 그렇게 하기 싫은 일에 발을 들이고 나면 시간을 빼앗겼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억지로 떠맡은 일을 하다가 자신의 일조차 밀려버리는 것이다. 더구나 번번이 그런 식을 일을 떠넘기는 사람을 보면 부아가 치민다. 그런데 이 모든 결과가 치밀한 심리게임의 결과물이라면 어떨까. 자신도 모르는 새에 상대가 벌인 심리게임에 휘말려서 하지 않아도 좋을 일을 떠맡는다는 것이다.

심리게임은 사실 의도적으로 행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무의식적으로 희생자, 구원자, 공격자의 역할 중에 하나를 맡아서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하는 것이 바로 심리게임이다. 이것은 어린 시절에 습득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게임을 시작하고 다른 사람의 게임에 휘말린다고 한다. 오히려 참는 것이 어려울 만큼 노련하게 게임을 진행하고 기꺼이 그 게임에 몸을 던진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을 교묘히 조정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었던 사람들은 노련하게 사람을 조정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가련한 희생자를 자처해 상대를 움직였던 사람은 불행한 희생자 역할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부모에게 공격적인 반응을 보여 갖고 싶은 것을 얻었다면 공격자 역할을 맡는 식으로 말이다.

한 예로 불가능에 가까운 프로젝트를 누군가에게 떠넘기려는 상사가 있다. 그는 그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면 자신이 승진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부하직원들은 전부 다른 일에 치이고 있어서 그 프로젝트를 맡을 만한 여력이 없다. 이제 그는 심리게임을 진행한다. 자신을 낮추어 무력한 희생자로 규정하고 도와줄 기사를 찾는 것이다. 자의식이 불안해서 다른 사람을 도와 그것에서 우월감을 느끼려는 희생양을 점찍는다. 그리고 그 사람만이 그 프로젝트의 적임자고 그것을 맡아달라고, 자신을 '도와'달라고 말한다. 자의식이 약한 사람의 입장에서 타인을 도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하기란 정말 어렵다.

그는 그 프로젝트를 맡으면 일이 과중하고 실제로 기간 내에 달성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는 심리게임에 휘말려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다른 일과 병행해보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상사 역시 일을 맡긴 부하직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단지 그가 희생양에 적합해서 일을 떠넘긴 것이지 정말 적임자라서 맡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일의 진행 상황을 체크하려고 말을 거는데 그 말 역시 물 밑 심리게임의 일환이다. 잘 되어가냐는 물음에 부하직원은 퉁명스럽게 반응한다. 당장의 진행상황이나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방해하지 말라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기간이 끝난 후에는 당연히 일은 마무리 되어 있지 않다. 아니 거의 진행도 되지 않았다. 상사의 승진 기회는 물거품이 되었고 프로젝트의 결과를 기다리다 지친 고객은 경쟁사로 발길을 돌렸다. 이제 상사는 마음 약해서 희생양이 되었던 부하 직원에게 비난의 말을 쏟아낸다. 자신의 역할을 희생자에서 공격자로 전환한 것이다. 이에 구원자의 역할을 하던 부하직원 역시 약한 자의식이 무너져 내리면서 희생자로 전락한다. 자신은 실패자라고 체념한 것이다. 이것은 직장에서 일어난 심리게임의 예지만 심리게임은 가정, 이웃 심지어 자기 자신 내부에서까지 일어난다.

사람들은 각기 자기가 바라는 바에 따라 심리게임에 나선다. 희생자를 가장해서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상대에게 떠넘기기도 하고 많은 사실을 왜곡하고 배우자를 비난해서 참가하기 싫었던 모임에서 발을 빼기도 한다. 또한 무력한 사람들을 더 무력하게 만들고 구원자의 역할에 나섬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계속 인정하게 만들려고 하기도 한다. 사람은 살면서 많은 심리게임에 휘말리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로 인해 자신이 원하지 않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가끔은 싸우고 난 다음에 그 이유가 한심할 때가 있다. 별 이유도 아닌데 싸우고 감정의 공백을 맛보기도 하고 화해를 하기 위해서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할 때도 있다.

그 모든 것들이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심리게임의 결과물이다. 상대방도 무의식적으로 했다지만 자기도 모르게 휘말렸던 것이다. 때로는 분노해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기꺼이 뛰어들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우쭐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은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없다. 시간과 감정을 낭비했다는 허망함만이 있을 뿐이다. 심리게임에 이기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심리게임 자체가 누군가 자신의 의도를 숨기고 상대가 휘말리게 하는 것이 목적인만큼 휘말리지 않으면 된다고 한다. 자신이 휘말리게 되는 통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냉정하게 대응하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그것이 어떤 심리게임인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당장 모든 심리게임을 노련하게 피해갈 수는 없겠지만 다른 사람의 심리게임에 휘말려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것, 이제는 사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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