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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사랑
쥘 미슐레 지음, 정진국 옮김 / 글항아리 / 2009년 7월
평점 :
그리스 신화 속의 피그말리온은 자신만의 이상형을 조각했다. 조각상 갈라테이아와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의 사랑은 비참했다. 그러나 그는 여신의 힘을 빌어 조각상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 넣었고 이상의 여자 갈라테이아를 살아 움직이게 했다. 그런데 19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역사학자 미슐레 역시 비슷한 일을 해냈다. 여성에 대한 찬미와 자신이 사랑에 대한 품고 있는 시각을 말로 풀어내어 한 권의 책을 만들어냈다. 바로 <여자의 사랑>이다. 그가 풀어내는 이상적인 여성과 그녀와의 이상적인 결혼은 문자로 이뤄진 갈라테이아를 보는 기분이다.
21세기에 19세기 역사학자가 말하는 이상적 여성과 이상적 결혼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좀 묘했다. 현대에 들어와 제인 오스틴이 창조한 세계의 결혼관을 읽는 기분이었다. 제목은 일단 <여자의 사랑>이지만 그 여성은 여성이 생각하는 여성이라기보다 남자가 생각하는 여성에 가깝다. 기사도를 믿던 시대의 이상적 여성이랄까. 영국 드라마 <오만과 편견 다시쓰기>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우연히 <오만과 편견>의 세계에 들어간 아만다는 자신을 따라 나온 빙리에게 충동적으로 키스한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에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세계에는 없는 예의와 행동양식을 동경해왔는데 막상 자신이 그 곳에 있게 되자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읽으면서 내내 그런 기분이 되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의 힘으로 벌어서 먹고 사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여성은 결코 일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반드시 결혼을 해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다르므로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지만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여성이 더 많은 재산을 가지는 것은 결혼을 깨뜨리기 좋으며 독신을 하겠다 생각하는 것은 비참한 인생이 되는 지름길이라고 '결혼 예찬'을 늘어놓기 때문이었다. 또한 결혼을 한 여성은 집안일을 하되 고립된 시간을 보내며 남편과 둘만의 사랑을 꽃피워야 한다고 한다. 남편은 무지하되 사랑스러운 그녀를 가르치고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은 결혼을 하여 집안의 안주인으로 남성은 그런 아내의 '주인'으로 서로를 부양해야 한다는 대목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당시 시대에서 여자를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이상적인 여성, 사랑, 결혼에 대한 것을 담은 것 같았다. 당시로서는 아주 다정다감한 내용이었겠지만 지금에 들어와서는 헛웃음이 나오는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해서 여성이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죽음에 이루기까지 순서대로 흘러가며 많은 것을 담으려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거기에 여성의 생리나 임신 등 신체적 어려움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보호의 필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할 때는 놀랍기도 했다.
더구나 당시 시각으로는 여성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일부다처제에 대해서 장미 근처에 벌레가 득시글거리는 수준의 사랑이라고 비난하는 점이 신선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존중을 넘어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의 걸은 자리마다 찬탄하고 경배하는 것 같은 느낌까지 받았다. 여성의 부정은 남성의 명예를 실추시키므로 결코 있어서 안 된다고 하면서도 만약 여성이 한순간의 과오를 남편에게 고백한다면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야 한다고 해서 더 특이했다.
여성은 늙어도 젊으며 나이를 들수록 우아해진다는 것처럼 여성에 대한 찬사가 이어져서 글이 아니라 말로 이뤄진 갈라테이아가 주변을 걷는 기분까지 들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고 젖을 떼면 곧장 기숙학교에 넣었던 당시의 풍속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이상은 어디까지나 이상에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그 시대의 사람으로써는 여성에 대한 최대한의 애정을 담고 있는 책이라 유쾌한 면도 많았다. 다 읽은 후의 기분은 영국 드라마 <오만과 편견 다시쓰기>의 아만다가 맛봤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당시에 대해 감탄도 하게 되지만 그 곳에 가면 그것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그런 기분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