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읽는 해적의 역사 단숨에 읽는 시리즈
한잉신.뤼팡 지음, 김정자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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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해적에 대한 이미지는 유독 낭만적인 것이 많다. 육지에 사는 저자의 입장에서는 환상 속의 영웅의 이미지인지 여러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해적의 모습은 독특한 것이다. 물론 피터팬의 후크선장 같은 경우도 있기야 하지만 그 모습은 무섭다기보다 우스꽝스러웠다. 거기에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에서는 자라기를 거부하는 소년 피터팬보다  성인으로 살면서 자신의 인생에 책임을 지는 어른 후크 선장 쪽이 더 멋지게 그려진다. 그가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에 읽은 소설에서도 등장인물 중에 해적이 나왔다. 이번에도 역시 멋진 인물로 등장했는데 그는 해적이지만 혁명가로 나온다. 엘리트 지식인이었지만 부패한 조국에 절망한 나머지 해적이 되었고 폭력으로라도 나라의 변화를 꿈꾼다는 설정이었다. 더구나 중간에 잔혹하게 살해된 어린 소녀의 복수까지 해주고 마지막에 가서는 여주인공을 구하고 사망한다. 그의 부하 역시 주인공 일행을 구하고 선장을 도와달라고 말하며 죽는 장면이 있었다. 소설이기야 하지만 해적이 과연 그렇게 낭만적일 수 있을까. 현실에 불만을 품고 범죄자의 무리에 들어갔으며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 다른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무리인데도 말이다.

이 책 '단숨에 읽는 해적의 역사'에서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한다. 해적은 어디까지나 범죄자 집단이라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고 마을을 약탈하는 탐욕스러운 무리가 바로 해적이란다. 요새 뉴스에 나오는 해적의 이미지에 들어맞는 설명이다. 멀쩡한 상선을 숨어 있다가 공격해서 붙잡고 몸값이 올 때까지 노예처럼 부리는 범죄자들. 사실 이 책을 펼칠 때까지만 해도 나 역시 해적에 대해서 어느 정도 낭만적인 이미지를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가지는 그런 생각을 이 책은 첫 장부터 무너뜨린다. 책을 펼치고 가장 먼저 읽게 된 부분에 두 장의 사진이 있다. 한 장은 해적과의 전쟁 끝에 잡힌 해적들을 참수한 후에 그들을 참수한 사람들을 찍은 사진이다. 그 사람들 자체는 문제없지만 그들의 발밑에는 목이 잘린 해적들의 시체가 놓여 있으며 당연히 그 주변에 해적들의 잘린 목이 뒹굴고 있다. 그리고 그 아래 두 번째 사진을 보면 어느 해적의 잘린 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목이 잘린 단면까지 슬며시 보이는 사진에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제발 조작된 것이거나 그림이었으면 하는 기분인데 친절한 설명이 붙어 있고 잘린 목의 단면이 묘하게 우둘투둘해보여서 더 기분이 안 좋아졌다. 두 장의 사진이 드러내는 것은 한 마디로 이렇다. 문학작품 속에 낭만적인 해적 같은 것은 실제로 없고, 잔인한 해적들과 그들을 잡으려는 군인들이 있다는 것뿐이다.

그 후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해적이 발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다른 도적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해적은 가난했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여유롭다면 누가 목숨을 걸고 도적질을 하겠는가. 해적은 가난해서 혹은 평화로워져서 해고된 선원이나 군인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도적집단이라고 한다. 단지 그 도적질의 장소가 바다인 것뿐이지 더 특별할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해적들이 활개를 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나라에서 묵인해주었기 때문이다. 유럽 사람들의 입장에서 신세계였던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이후 당시 바다를 주름잡던 스페인은 그 곳에서 막대한 보물을 실어왔다. 그것을 해적들이 노렸고 스페인의 적대국가 역시 그 점을 노렸다. 해적들에게 정식으로 나포허가증을 주고 해적들이 훔쳐온 보물을 나눠가질 수 있다면 적대국의 부는 줄이고 자신들이 부를 늘릴 수 있다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허나 문제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해적은 애국심이라고는 없었고 자신의 탐욕에 치중했다. 공격대상이 주로 스페인 선박이기는 했지만 궁해지면 어느 나라 선박이든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적대국과 평화협정을 맺고 나면 해적들을 방치해서는 안 되는데 해적들은 통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적들이 늘어나게 된 이유를 설명한 이후에 유명한 해적을 여럿 알려 주었는데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역시 여성 해적인 앤 보니와 메리 리드의 이야기 였다. 해적으로 누구보다 용맹하게 싸웠지만 끝내 잡힌 두 여해적은 교수형 선고가 내려지지만 임신 중이라는 이유로 풀려났다고 한다. 다만 메리 리드는 감옥에서 병에 걸려 죽었고 앤 보니는 풀려난 이후 사라졌다고 한다.

해적의 역사를 처음부터 훑어주기 때문에 내용이 풍부했던 것은 아주 좋았다. 하지만 읽을 때 내용이 조금 딱딱했고 첫 부분의 사진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거슬리기도 했다. 그래도 풍부하고 상세한 내용, 다양한 삽화가 곁들여져서 읽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낭만적 이미지로 덮여 있지만 실상은 잔혹한 범죄자일 뿐인 해적과 그들의 역사 '단숨에 읽는 해적의 역사' 인상 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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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 그 유혹과 사치의 비밀
데이나 토마스 지음, 이순주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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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부유하게 살고 싶다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것 중에 하나다. 그렇다면 부자가 된 다음엔 어떤 것을 소비하고 싶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일반인의 월급으로 매번 충당하기에 무리가 있는 명품이다. 주로 패션 쪽이 먼저 떠오르기는 하지만 집부터 그 안을 채울 것들에 이르기까지 고급스러운 것을 소비하고 싶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혹은 부유해지기도 전에 그 환상의 조각을 살짝 맛보고자 무리를 해서라도 비싼 물건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다른 이름은 소비사회라고 하지 않던가. 얼마 전 읽은 다른 책에서는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많이 쓰려고 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사고라고 하지만 계급이 사라진 사회에서 자신이 어떤 것을 소비하는 가에 따라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 '럭셔리 그 유혹과 사치의 비밀'은 표지부터가 충격적이다. 책 본문에서는 어느 예술가의 작품이라지만 명품을 소비하는 사회를 비웃기라도 하듯 맥도날드 포장지에 프라다 로고가 새겨져 있다. 명품이 예전에는 왕족이나 사회 상류층이 향유하는 하나의 문화였다면 요새에 들어서는 맥도날드처럼 누구나 돈만 가지고 있다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해서 '맥럭셔리'라고 한다. 명품이 천박함의 반대말이라고 했던 코코 샤넬의 말이 무색하게 천민자본주의가 슬쩍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

표지에서 보여주듯이 이 책에서는 명품을 속속들이 파헤친다. 고대 로마의 사치에서 시작되어 현대에 접하게 되는 명품들의 시초인 파리의 이야기까지 보여준다. 파리에서 왕족의 후원을 받아 명품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그리고 이후 빈약한 수익구조를 바꾸고 싶었던 경영자가 가족 내에서 장인 타입 후계자가 아니라 실업가 타입의 후계자를 전면에 내세워 명품을 판매하던 기업의 수익구조를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선두에 있던 것이 루이뷔통이었고 주로 트렁크를 생산하는 가족공방이었던 루이뷔통은 실업가 사위를 경영자로 앉혀서 직영점을 여러 군데 운영하면서 수익률을 대폭 끌어올리는 성과를 얻는다. 여기까지는 경영자 가족의 입김이 강해서 아직은 명품이 장인이 만드는 물건이었다면 이후 대기업이 명품을 만드는 기업을 하나하나 사냥하고 나서는 만드는 것조차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지경에 빠지고 만다. 심지어 이탈리아나 파리, 영국처럼 그 기업의 제품이 생산되리라고 흔히 소비자가 생각하던 장소에서 벗어나 중국에서 생산되고 짝퉁과의 전쟁에 휘말리는 것까지 보고나면 이미 명품이라는 위광은 어디에도 없다.

경제학 서적에서 이런 부분이 있었다. 리바이스 청바지를 매장에서 사는 것과 아울렛에서 사는 것은 과연 품질차이가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답은 품질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주주의 입장에서는 수익을 원하게 되고 이것은 경영진에게 압박이 된다. 가족 경영을 벗어나 대기업으로 인수되자 그 브랜드 자체를 아끼기보다 수익을 추구하는 경영진이 들어서게 되고 경영진은 가능한 많은 소비자에게 물건을 팔기를 원한다. 즉, 수익이 별로 안 나는 쿠튀르의 경우에는 가격이 워낙 높아서 아주 적은 소수에게 판매되고 같은 디자이너가 만들어낸 기성복의 경우에게 돈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팔리게 된다. 그렇게 하고도 남은 대량생산된 이름만 명품인 재고 더미는 대폭할인해서 판매하는 아울렛에서 더 낮은 수입 계층에게 판매한다는 것이다.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물건을 판매하고 재고도 전부 처분하고 있으니 수익률은 높겠지만 명품이라는 이름값은 팔수록 깎여나가는 셈이다. 거기에 유명 디자이너의 예전 시즌 신상품이 아울렛에 아무렇게나 진열된 것을 보고 경악하는 사람도 생겨난다. 물건 하나하나를 보석처럼 진열하고 판매하던 명품은 이제 멸종될 지경에 온 것이다.

거기에 수익을 더 얻고자 처음 출시할 때에 비해서 값싼 원단, 가능한 간단한 공정, 좀 더 싼 노동력을 찾는다. 덕분에 저자가 산 프라다 바지가 조심스레 입었음에도 다리를 집어넣은 순간 바짓단이 터지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순간 그 부분 솔기가 터지고, 아이를 안으려고 쪼그려 앉은 순간 또 다른 부분 솔기가 터지는 수준이 된 것이다. 몇 년 전 프라다에서 산 다른 드레스는 굉장히 튼튼하고 잘 만들어져 그야 말로 명품이었는데도 말이다.

명품에 대해 광범위하게 다룰 뿐 아니라 세밀하게 다루는 책이라서 여러 유명한 명품의 뒷이야기부터 창업자들의 이야기, 대기업의 명품기업 사냥까지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유명 배우들에게 협찬해줘서 막대한 수익을 얻거나 그런 배우를 찾아내는 사람을 스카우트하려고 숨어 있다가 달려 나오기까지 하는 기업주의 이야기에서는 웃어버리기도 했다. 허나 명품에 대한 뒷이야기를 읽다보면 입 안에 씁쓸한 맛이 감도는 것만 같았다. 아직이야 환상을 소비하는 것이니 팔리겠지만 지나치게 수익을 원한 결과 그 이름값을 점차 떨어뜨리고 있는 명품이 후에 계속 존속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그래도 사람의 욕망은 계속된다.'라는 답이 적절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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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 - 거짓기억과 성추행 의혹의 진실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캐서린 케첨 지음, 정준형 옮김 / 도솔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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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기억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누군가는 자신의 기억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고 하지만 어떤 면으로는 사람의 기억만큼 못 믿을 것도 없다. 왜곡되기도 쉬울 뿐더러 엉뚱하게 기억되기도 하고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주관적 해석이 들어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한 예로 눈이 나쁘던 A양은 친구 B양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이 일은 A양의 기억에는 뚜렷하게 남지도 않는 일이었으나 B양의 입장에서는 친구가 자신을 보고도 모르는 척 지나친 일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B양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A양의 시력이 그 정도로 나쁜지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녀가 분명 자신을 봤다고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경우로는 어린 시절의 기억에는 희미한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가족이나 친척들이 당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반복해서 말한다면 당신이 기억하지 않던 일도 마치 '기억하고' 있었던 것 처럼 착각하게 되기도 하고 엉뚱하게 각색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이라고 자연스레 이야기 하지만 정작 본인이 원래 기억하고 있던 것, 그것도 사실에 가깝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는 자신의 기억을 유리한 쪽으로만 남겨두는 사람까지 있으니 사람의 기억만큼 못 믿을 것도 없는 셈이다. 모든 것은 항상 변하는데 사람의 기억은 변하지 않길 바라는 것도 무리하다 싶다.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퇴색되는데 어떤 계기로 그 기억에 살이 붙기도 하고 왜곡되는 것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스티븐 타운리 크레인의 단편 소설 '색채의 혼란'도 그런 경우를 다루고 있다. 한 남자가 아이들의 엄마를 네 명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살해한다. 아이들은 분명 엄마가 아빠에게 도끼로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했지만 그 말에 아빠는 반문한다. 자신은 그 시간에 집에 오지 않았고 엄마는 어디갔냐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엄마를 죽인 남자에 대해서 묻는다. 아이들은 아빠가 엄마를 죽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부인하자 혼란에 빠지고 점차 그가 유도하는 살인자의 이미지를 머리에 떠올리게 된다. 아빠가 목격했다는 빨간 머리의 하얀 이에 하얀 손을 가진 남자의 이미지를 말이다. 그리고 며칠 후 남자는 묻는다. 그런 남자가 정말 있었느냐고. 아이들은 강하게 주장한다. 엄마를 빨간 머리, 하얀 이, 하얀 손을 가진 남자가 죽였다고. 이 남자의 인상착의는 아이들의 아빠와 정말 다르다. 아이들의 증언으로 남자는 무죄로 풀려날 뻔 했지만 사건은 철저히 조사되고 남자는 결국 죄를 자백한다. 허나 아이들은 아빠는 누명을 쓴 것이고 언젠가 빨강머리에 크고 흰 이와 흰 손을 가진 남자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범인은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다면서.

이야기 일 뿐이지만 사람의 기억이 얼마나 간단히 조작 될 수 있는지는 놀랄 정도이다. 이 책 '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는 그런 거짓기억 논란을 다룬 책이다. 사람의 기억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부터 그 거짓 기억에 의해서 엉뚱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곤란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책은 주로 '억압된 기억'의 존재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사람의 기억을 얼마나 간단히 조작해낼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는 똑똑한 여덟 살 아이부터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에게 간단히 거짓기억을 심을 수 있음을 실험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여덟 살 아이에게 그 아이의 아버지가 단 5분 만에 길을 잃었던 적이 있다고 기억하게 하는 부분은 경악스러웠다. 단 5분에 엉뚱한 기억이 생겨났고 아이는 그 기억에 새로운 부분을 추가해서 진짜 기억이라고 믿을 만큼 상세한 내용을 만들어냈다.

이런 거짓 기억에 대한 부분들과 치료사들이 얼마나 간단히 그것을 이용해서 멀쩡한 부모들은 성추행범으로 만들어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상반된 주장을 전개하는 사람들이 저자를 적대시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주제자체가 흥미로운 내용이기도 하고 상당히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예전 폭력을 행사했던 아버지를 아동 강간 살해범으로 기소시킨 딸의 이야기의 경우 거의 추리 소설을 읽는 기분이기도 했다. 사람의 기억만큼 왜곡되기 쉬운 것도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거부감 없이 읽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행각을 보는 것도 묘하기도 했다.

다만 저자가 주장하는 성추행 관련 거짓 기억은 여태 기억이 나지 않다가 치료사의 유도에 따라 몇 십 년 만에 떠오른 것에 한정되니까 성추행을 실제로 당했고 그 기억을 잊어본 적 없는 사람들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기억이 왜곡되거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유도될 수 있음을 성추행이란 큰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뿐이지 성추행이라는 범죄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논란이 많고 민감한 거짓기억을 다룬 이 책 '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 정말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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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탄생 -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 인간과 자연에 던지는 첫 질문과 첫 깨달음의 현장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이재영 옮김 / 알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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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철학이라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소크라테스' 입니다. 그것도 그의 사상보다는 제자가 플라톤이고 플라톤의 제자가 아리스토텔레스라는 것, 소크라테스의 격언 '네 자신을 알라', 나태한 남편 때문에 본의 아니게 악처가 되어버린 크산티페, 고통 없이 서서히 죽음에 이르는 신경독이 든 잔을 마시고 죽음을 맞이했다는 등 잡다한 내용이 먼저 생각이 납니다. 철학 관련 강의를 들었는데도 말이지요. 그만큼 철학이 일상에서 멀리 떨어진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윤리시험 때문에 탈레스부터 칸트까지 짤막하게 그들의 사상을 외우지만 그것도 그때뿐 시험이 끝나자마자 대부분을 잊은 것이지요.

그리스가 서양 사상의 중심지였을 때는 모든 지식인이 익히고 있는 지식의 총체, 생각들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철학이었을 겁니다. 철학을 흔히 진리에 대한 탐구라 합니다. 당시 지식인이 당연히 익히고 논하는 것들, 그 광범위한 지식이 전부 철학이었으니 그때에는 철학과 일상은 가까웠던 셈입니다. 허나 지금은 과학, 수학이 그 광대한 지식에서 명확한 이름을 붙여 떨어져 나오자 철학은 심오한 그러나 어려운 생각의 덩어리처럼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철학은 일상에서 멀어졌고 어렵고 난해한 학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학문이 분리되기 전의 철학, 철학이라고 뚜렷하게 이름이 붙기 전의 철학은 어땠을까요. 그것도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가 역사상에 등장하기 이전의 철학 말입니다. 물론 사상적으로 소크라테스 이전이라는 것이지 실제 소크라테스 이전 시대에 태어나고 등장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또한 이전이라해서 소크라테스보다 우위에 있는 것도 그보다 못한 것도 아니구요.

이 책 '철학의 탄생'은 바로 그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제목이 '철학의 탄생'이니만큼 그 사상이 태어날 수 있었던 여건부터 먼저 분석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자연환경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있는데 이것은 외부의 영향을 쉽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외부와의 활발한 교류, 왕정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행하고 있어 지배적 세력이 없다는 것은 지식의 활발한 교류가 가능하고 자유로운 생각이 싹틀 수 있는 상태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거기에 그리스는 말하자면 다신교였던 셈입니다. 뚜렷하게 강한 종교도 없는 상황이라 생각을 억누를 무언가가 없던 것이지요. 그래서 더 우주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사상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을 자연, 사회, 종교 등 다방면으로 살펴본 이후 본격적으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이며 현상을 관찰하고 신화적 원인이 아니라 자연적 원인으로 상황을 설명해낸 탈레스가 등장합니다. 물이 세상의 근원이라고 생각한 철학자라는 것은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배웠었지만 그가 그리스 최초의 수학자이며 이론적 기하학의 창시자라는 사실은 꽤 놀라웠습니다. 그가 모든 상황에서 올바른 결론을 찾아낸 것은 아니라도 처음을 연 학자라는 것만으로도 그의 생애부터 사상을 읽어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거기에 '무한자', '관계', '진화' 등의 개념을 철학에 도입한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이지만 스승의 학설을 그대로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우주론을 구성해내고 사물의 변화를 물리적으로 해석한 최초의 인물 아낙시메네스 까지 이어지구요.

그런 다음 중학교 수학에 나오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만 생각하고 단순한 수학자인 줄 알았지만 피타고라스 교단의 교주였으며 철학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철학자 피타고라스, 시를 통해 철학을 했으며 개혁가였던 크세노파네스, 자연철학자들과 달리 변천과 존재와 인식의 문제를 제기한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 삶뿐만 아니라 죽음까지 전설 속에 일부가 되어 있는 엠페도클레스, 오늘날 생각하는 과학자와 철학자의 모습을 구현한 최초의 인물인 아낙사고라스, 마지막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이며 지혜를 얻기 위해 시력을 없애버렸다는 설까지 있는 데모크리토스에서 끝이 납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소크라테스에 비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부분의 최초의 칭호를 얻은 사람이라서요. 생애부터 사상까지 읽어 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만 단숨에 읽어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철학자 한 명씩 한 명씩 읽는 방식으로 읽어내려 갔습니다.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아니라 희대의 사기꾼인지 위대한 인물인지 논란이 되는 피타고라스를 읽게 되었을 때의 기분은 좀 묘하더군요. 피타고라스 교단은 비밀을 지켰고 그가 발표한 것들이 교단의 다른 이가 연구한 결과물일 수도 있다는 설도 있었구요. 조금 묘한 인물이었지만 철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으며 논란이 있는 만큼 읽는 재미도 있었고 인상적인 철학자였습니다. 처음 읽을 때 그리고 다음 번 또 다음번에 읽을 때마다 읽는 느낌과 즐거움이 더해질 것 같은 '철학의 탄생'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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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인열전 - 파격과 열정이 살아 숨쉬는 조선의 뒷골목 히스토리
이수광 지음 / 바우하우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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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각각의 형태로 살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역사는 주류가 아닌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역사는 승자의 역사이니 만큼 힘있는 세력들에 의해서 서술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비주류에 머무는 사람들은 분명 그 시대를 살아갔음에도 역사의 표면에 떠오르지 않은 채 사라져 갑니다.

허나 그들이라고 해서 생을 허투루 살았을 리도 없고 오히려 제도권 밖에 서있던 사람들이라 파격적인 삶, 이야깃거리가 넘치는 열정적인 삶을 산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런 24인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 이 책 '잡인열전' 입니다. 시대배경은 조선시대로 국한되어 있구요. 생생하고 열정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니 만큼 그들의 이야기도 흥미로운 점이 많습니다.

직업만 해도 타짜에서 각설이까지, 권력층에 있어선 밑바닥으로 보이는 편이지만 이야기로 읽기는 재밌더군요. 책은 24인의 이야기를 12명씩 나누어서 1,2부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1부는 조선최고의 잡인들로 그 실력이 뛰어났으나 천하제일이라 하기는 부족한 이들의 이야기구요. 2부는 천하제일의 잡인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실 1부에 등장하는 대리 시험꾼 유광억이나 의원 이헌길이 천하제일이 아닐 것은 뭐있겠나 싶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라 그저 편의상 나누어 둔 것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24인 전부 녹록치 않은 사람들이라 다 인상적이었는데요. 그 중 몇몇을 언급하자면 협객 장복선, 노름꾼 원인손, 수전노 자린고비를 들 수 있겠네요.

조선 최고 협객으로 지칭된 장복선은 노비였다고 합니다. 노비의 신분으로 평안도 감영의 창고지기 노릇을 했던 장복선은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국가의 돈이었다는 것이었지요. 물론 자신의 재산 역시 전부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했구요. 결국 장복선은 이 일이 발각되어 사형을 면치 못하게 되었는데요. 그 사형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서 장복선의 사면을 청했다고 합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형이 집행될 위기에 처하자 기생 백여 명이 그를 살려달라고 한 목소리로 노래했다고 하더군요.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청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습이 떠올라 상당히 감탄했습니다. 노비의 신분이지만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가졌고 죄가 밝혀졌을 때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기개를 보인 장복선, 조선 최고가 아니라 천하제일 협객이라 해도 좋겠더군요.

노름꾼 원인손의 경우에는 예조판서의 아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조선 제일 타짜가 된 것이 꽤나 놀라웠습니다. 아버지가 그 실력을 보고 말리지 못할 정도의 도박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구요. 그가 가장 놀라웠던 것은 후에 도박판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을 보고 도박을 끊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는 투전을 그만두고 학문에 전념해서 우의정까지 지냈다고 하더군요. 정말 흔치 않은 경우랄까요.

천하제일 수전노로 등장한 자린고비 조륵의 경우에는 옛날이야기 속의 자린고비가 떠올라서 별로 곱지 않은 시선으로 읽게 되었는데요. 너무 지나치다 싶었거든요. 그러나 읽다보니 돈을 아끼려는 집착이 상상을 초월한 수준의 것이라서 웃음이 다 나더군요. 그리고 후에 선행을 베풀었다는 부분이 등장해서 단순히 돈에 집착한 것이 아니라 절약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역사의 주변부에 위치했던 사람들이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주역으로 등장합니다. 다양한 직업군과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요. 옛날이야기를 읽는 느낌으로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 생생하고 열정적인 삶을 들여다 본 기분이 되었는데요. 그게 또 제법 괜찮았습니다.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기막혀하면서 읽다보면 책이 끝나있더군요. 파격적으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라 그만큼 흥미롭고 책 한 권이 짧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의 생을 자신의 방식으로 최고로 살아간 24인의 이야기 '잡인열전' 재밌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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