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 - 거짓기억과 성추행 의혹의 진실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캐서린 케첨 지음, 정준형 옮김 / 도솔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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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람의 기억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누군가는 자신의 기억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고 하지만 어떤 면으로는 사람의 기억만큼 못 믿을 것도 없다. 왜곡되기도 쉬울 뿐더러 엉뚱하게 기억되기도 하고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주관적 해석이 들어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한 예로 눈이 나쁘던 A양은 친구 B양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이 일은 A양의 기억에는 뚜렷하게 남지도 않는 일이었으나 B양의 입장에서는 친구가 자신을 보고도 모르는 척 지나친 일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B양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A양의 시력이 그 정도로 나쁜지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녀가 분명 자신을 봤다고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경우로는 어린 시절의 기억에는 희미한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가족이나 친척들이 당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반복해서 말한다면 당신이 기억하지 않던 일도 마치 '기억하고' 있었던 것 처럼 착각하게 되기도 하고 엉뚱하게 각색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이라고 자연스레 이야기 하지만 정작 본인이 원래 기억하고 있던 것, 그것도 사실에 가깝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는 자신의 기억을 유리한 쪽으로만 남겨두는 사람까지 있으니 사람의 기억만큼 못 믿을 것도 없는 셈이다. 모든 것은 항상 변하는데 사람의 기억은 변하지 않길 바라는 것도 무리하다 싶다.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퇴색되는데 어떤 계기로 그 기억에 살이 붙기도 하고 왜곡되는 것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스티븐 타운리 크레인의 단편 소설 '색채의 혼란'도 그런 경우를 다루고 있다. 한 남자가 아이들의 엄마를 네 명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살해한다. 아이들은 분명 엄마가 아빠에게 도끼로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했지만 그 말에 아빠는 반문한다. 자신은 그 시간에 집에 오지 않았고 엄마는 어디갔냐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엄마를 죽인 남자에 대해서 묻는다. 아이들은 아빠가 엄마를 죽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부인하자 혼란에 빠지고 점차 그가 유도하는 살인자의 이미지를 머리에 떠올리게 된다. 아빠가 목격했다는 빨간 머리의 하얀 이에 하얀 손을 가진 남자의 이미지를 말이다. 그리고 며칠 후 남자는 묻는다. 그런 남자가 정말 있었느냐고. 아이들은 강하게 주장한다. 엄마를 빨간 머리, 하얀 이, 하얀 손을 가진 남자가 죽였다고. 이 남자의 인상착의는 아이들의 아빠와 정말 다르다. 아이들의 증언으로 남자는 무죄로 풀려날 뻔 했지만 사건은 철저히 조사되고 남자는 결국 죄를 자백한다. 허나 아이들은 아빠는 누명을 쓴 것이고 언젠가 빨강머리에 크고 흰 이와 흰 손을 가진 남자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범인은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다면서.

이야기 일 뿐이지만 사람의 기억이 얼마나 간단히 조작 될 수 있는지는 놀랄 정도이다. 이 책 '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는 그런 거짓기억 논란을 다룬 책이다. 사람의 기억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부터 그 거짓 기억에 의해서 엉뚱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곤란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책은 주로 '억압된 기억'의 존재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사람의 기억을 얼마나 간단히 조작해낼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는 똑똑한 여덟 살 아이부터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에게 간단히 거짓기억을 심을 수 있음을 실험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여덟 살 아이에게 그 아이의 아버지가 단 5분 만에 길을 잃었던 적이 있다고 기억하게 하는 부분은 경악스러웠다. 단 5분에 엉뚱한 기억이 생겨났고 아이는 그 기억에 새로운 부분을 추가해서 진짜 기억이라고 믿을 만큼 상세한 내용을 만들어냈다.

이런 거짓 기억에 대한 부분들과 치료사들이 얼마나 간단히 그것을 이용해서 멀쩡한 부모들은 성추행범으로 만들어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상반된 주장을 전개하는 사람들이 저자를 적대시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주제자체가 흥미로운 내용이기도 하고 상당히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예전 폭력을 행사했던 아버지를 아동 강간 살해범으로 기소시킨 딸의 이야기의 경우 거의 추리 소설을 읽는 기분이기도 했다. 사람의 기억만큼 왜곡되기 쉬운 것도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거부감 없이 읽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행각을 보는 것도 묘하기도 했다.

다만 저자가 주장하는 성추행 관련 거짓 기억은 여태 기억이 나지 않다가 치료사의 유도에 따라 몇 십 년 만에 떠오른 것에 한정되니까 성추행을 실제로 당했고 그 기억을 잊어본 적 없는 사람들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기억이 왜곡되거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유도될 수 있음을 성추행이란 큰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뿐이지 성추행이라는 범죄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논란이 많고 민감한 거짓기억을 다룬 이 책 '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 정말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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