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인열전 - 파격과 열정이 살아 숨쉬는 조선의 뒷골목 히스토리
이수광 지음 / 바우하우스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각각의 형태로 살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역사는 주류가 아닌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역사는 승자의 역사이니 만큼 힘있는 세력들에 의해서 서술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비주류에 머무는 사람들은 분명 그 시대를 살아갔음에도 역사의 표면에 떠오르지 않은 채 사라져 갑니다.

허나 그들이라고 해서 생을 허투루 살았을 리도 없고 오히려 제도권 밖에 서있던 사람들이라 파격적인 삶, 이야깃거리가 넘치는 열정적인 삶을 산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런 24인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 이 책 '잡인열전' 입니다. 시대배경은 조선시대로 국한되어 있구요. 생생하고 열정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니 만큼 그들의 이야기도 흥미로운 점이 많습니다.

직업만 해도 타짜에서 각설이까지, 권력층에 있어선 밑바닥으로 보이는 편이지만 이야기로 읽기는 재밌더군요. 책은 24인의 이야기를 12명씩 나누어서 1,2부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1부는 조선최고의 잡인들로 그 실력이 뛰어났으나 천하제일이라 하기는 부족한 이들의 이야기구요. 2부는 천하제일의 잡인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실 1부에 등장하는 대리 시험꾼 유광억이나 의원 이헌길이 천하제일이 아닐 것은 뭐있겠나 싶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라 그저 편의상 나누어 둔 것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24인 전부 녹록치 않은 사람들이라 다 인상적이었는데요. 그 중 몇몇을 언급하자면 협객 장복선, 노름꾼 원인손, 수전노 자린고비를 들 수 있겠네요.

조선 최고 협객으로 지칭된 장복선은 노비였다고 합니다. 노비의 신분으로 평안도 감영의 창고지기 노릇을 했던 장복선은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국가의 돈이었다는 것이었지요. 물론 자신의 재산 역시 전부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했구요. 결국 장복선은 이 일이 발각되어 사형을 면치 못하게 되었는데요. 그 사형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서 장복선의 사면을 청했다고 합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형이 집행될 위기에 처하자 기생 백여 명이 그를 살려달라고 한 목소리로 노래했다고 하더군요.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청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습이 떠올라 상당히 감탄했습니다. 노비의 신분이지만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가졌고 죄가 밝혀졌을 때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기개를 보인 장복선, 조선 최고가 아니라 천하제일 협객이라 해도 좋겠더군요.

노름꾼 원인손의 경우에는 예조판서의 아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조선 제일 타짜가 된 것이 꽤나 놀라웠습니다. 아버지가 그 실력을 보고 말리지 못할 정도의 도박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구요. 그가 가장 놀라웠던 것은 후에 도박판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을 보고 도박을 끊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는 투전을 그만두고 학문에 전념해서 우의정까지 지냈다고 하더군요. 정말 흔치 않은 경우랄까요.

천하제일 수전노로 등장한 자린고비 조륵의 경우에는 옛날이야기 속의 자린고비가 떠올라서 별로 곱지 않은 시선으로 읽게 되었는데요. 너무 지나치다 싶었거든요. 그러나 읽다보니 돈을 아끼려는 집착이 상상을 초월한 수준의 것이라서 웃음이 다 나더군요. 그리고 후에 선행을 베풀었다는 부분이 등장해서 단순히 돈에 집착한 것이 아니라 절약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역사의 주변부에 위치했던 사람들이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주역으로 등장합니다. 다양한 직업군과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요. 옛날이야기를 읽는 느낌으로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 생생하고 열정적인 삶을 들여다 본 기분이 되었는데요. 그게 또 제법 괜찮았습니다.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기막혀하면서 읽다보면 책이 끝나있더군요. 파격적으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라 그만큼 흥미롭고 책 한 권이 짧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의 생을 자신의 방식으로 최고로 살아간 24인의 이야기 '잡인열전' 재밌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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