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별] 서평을 써주세요
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묘한 구석이 있다. 가보지 못한 시대에 대해 향수를 느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향수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어떤 것을 그리워할 때 쓰이는 말이다. 당연히 보통은 자신이 경험해 본 것에 한정된다. 하지만 잘 구워진 빵의 향기에 감탄하고 잘 빚어진 술에 끌리듯 잘 쓰인 글에 담긴 시대는 향수를 자아낸다. 그 시대가 결코 겪어보지 못한 시대라 해도 마찬가지다. 하기야 사람의 마음이란 묘해서 상대적 행복을 느낄 뿐이라고 한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은 무언가를 찾게 된다는 것인데 그렇게 치면 가보지 못한 시대에 막연한 동경과 향수를 품게 되는 것도 납득이 간다.

이 책 '바다의 기별'은 소설가 김훈의 에세이집이다. 정확하게는 김훈의 다양한 글이 모여 있다. 그런 면에서는 표지에 '김훈 에세이'라고 적혀 있어서 상당히 기대했는데 읽고 나니 기대 이하였다. 물론 김훈의 글이 기대 이하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한 글자를 고쳤다 썼다를 수없이 반복하는 작가의 글을 어찌 기대이하라고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의 글은 '찰지다'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꼭꼭 씹어 삼킬 때마다 묘미를 느끼게 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으로 나와 있고 더구나 당당히 에세이라고 적혀 있어서 소설가 김훈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다.

허나 결과는 아니올시다였다. 앞의 부분에 수록된 글에는 그의 어린 시절이 나오기도 하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해서 멍하니 가보지 못한 시대에 대한 상상 속에 빠져 들 수 있었다. 그런데 중반을 넘어서자 그가 대학에서 강연을 한 것이 두 편의 글로 묶여 있기도 하고 소설가 김훈으로써 책을 낼 때마다 적은 서문과 수상소감이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부분도 김훈의 글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고 그의 글에 있는 특유의 묘미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김이 막 오른 막 지은 밥을 기대했다가 먹게 되는 것이 밥통에 내내 담겨 있던 찬밥이라니 실망스러웠던 것이다. 차라리 표지에 김훈 에세이가 아니라 김훈의 글 모음집이라고 적혀 있었다면 이리도 실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존에 낸 글이라도 '토지'의 작가 박경리에 대한 회상이 담겨 있는 글은 읽는 내내 마음 한 켠에 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옥에서 출소하는 사위를 기다리는 장모와 그의 아기를 지켜보는 한 사람의 시선에 애잔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한 감흥에 빠졌던 것이다. 그 외에 딸이 부쩍 자랐음을 알게 된 아버지의 시선을 읽게 되는 '무사한 나날들'이나 해금에 대한 애정과 글을 쓸 때의 감각이 드러난 '글과 몸과 해금'은 김훈의 일상이나 속내를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수많은 김훈의 글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광야를 달리는 말'이었다. 이제는 아버지가 된 김훈이 아버지를 추억하는 글이었기 때문에 더 마음으로 와 닿는 글이었다. 가히 설화적이라고 까지 표현된 가난 속에서 자라난 김훈의 아버지는 지식인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가정살림을 돌보지 않는 무책임한 아버지로 보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달에 두어 번만 집에 다녀가는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김훈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것 같다. 그나마 무협작가로 책이 잘 팔려서 여유가 생겼을 때 술값으로 번 돈을 전부 써도 아버지가 오래 병석에 누워 환자의 병구완으로 힘겨울만 할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가정마다 다르지만 부자간의 진득한 관계를 읽을 수 있었다. 가부장의 아들로 태어난 가부장이었다고 자신을 표현한 한 문장이 김훈과 아버지의 관계를 함축한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은근히 소설가 김훈의 명성이 아니었다면 나올 일 없는 산문집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반대로 소설가 김훈의 글이 모여 있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책이었다. 실망을 감탄으로 바꾸는 김훈의 글이었기에 좋게 읽었지만 아쉬운 마음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미군에게 초콜릿을 달라고 쫓아다니는 아이들이 있는 시대, 살아남기 위해서 기차의 위에 매달려 피난을 했던 시대를 들여다보는 일은 생소하면서도 기묘한 감흥을 느끼게 되는 일이었다. 가보지 못한 시대에 향수를 느끼게 하는 김훈의 글 모음집 '바다의 기별' 나쁘지 않았다.

 

이 책은 알라딘 독자 서평단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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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 완성된 초상
앤드류 노먼 지음, 한수영 옮김 / 끌림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얼마 전에 읽은 소설책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사람들은 책에 관심을 두지만 정작 그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는 당연히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책내용보다는 작가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은 어떤 면으로는 당연하다. 책 그 자체보다 자신에게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더 쏠린다면 그것만큼 작가에게 있어 난감한 상황도 없을테고 말이다. 만약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애거서 크리스티'라고 말한다면 그 말의 의미는 그녀가 낸 작품을 좋아한다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작가인 애거서 크리스티 본인을 좋아한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작가는 보통 책을 통해서 말하는 법이니 그녀의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래서 애거서 크리스티처럼 유명한 작가인 경우에도 그 인생을 세밀하게 알고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녀를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어도 말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처음 결혼한 남편인 아치 크리스티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이혼을 하게 되었고 크리스티란 성을 바꾸고 싶었지만 이미 그녀의 이름이 너무 유명해진 상태여서 바꿀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그녀에 대한 큰 의문으로 남아 있던 사건인 애거서 크리스티 본인의 실종 사건이다. 그 사건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점이 많은데 실종된 이후 그녀는 기억상실 상태였다고 한다. 후에 그녀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남편도 딸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그녀는 더 큰 유명세를 얻게 되었고 최고로 인정받는 여류추리소설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상황에 대해서 그녀의 자작극이 아니냐는 설과 정말 기억상실에 걸렸을 것이라는 설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몇 년 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이 책 '애거서 크리스티-완성된 초상'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인생 전반을 파고들고 있다. 상상력이 풍부했지만 신경질적인 어린 아이였던 그녀가 어떻게 천재적 소설가가 되었으며 화제가 되었던 실종사건에 대한 의문을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완성된 초상'이라는 제목 자체도 애거서 크리스티가 발표했던 자전적 소설 '미완의 초상'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한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어렸을 때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는 평과 달리 그리 유복하게 자라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집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가난했다는 것에 불과하다. 그녀의 집에는 하인이 세 명 있었는데 다른 집에는 더 많은 하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 자신이 직접적인 비난을 하지는 않았지만 무능한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유산을 관리하는 것에 실패했고 집은 재정난에 빠지고 말았다. 그쯤 되면 아버지가 일자리를 구할 법도 하건만 '게으른' 그녀의 아버지는 일자리를 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만 재정난으로 인해서 물가가 싼 프랑스에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낼 계획을 짠다. 그 곳에서 애거서 크리스티는 프랑스어를 익혔고 그녀의 어린 시절에서 흔치 않은 친구를 얻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고 그녀는 다시 외로운 시절로 빠져든다. 일단 언니와 오빠가 있었지만 십 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터라 서로 사이가 그리 다정하지 못했고 학교라도 갔다면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을 텐데 그녀의 부모는 애거서가 학교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교육은 가정교사에 의한 것이었고 어린 아이인데도 친구는 어머니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상상력이 풍부한데다가 외로움에 시달린 애거서는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건맨'이라는 의문의 인물이 나타나서 그녀를 위협하는 꿈을 꾸는 것이다. 이 '건맨'이라는 인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상대적 빈곤과 외로움에 시달리던 애거서는 성년이 되자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치 크리스티라는 남자와 결혼한다. 그 때 이미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약혼녀였지만 약혼자는 참전한 상태였고 그녀의 곁에 없었다. 어머니는 아치가 '무자비한' 사람이라면서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지만 애거서는 그 사실을 무시한다.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의 의견은 결국은 옳은 것이었다.

이런 애거서의 일생과 함께 하며 책에서는 그녀의 다양한 작품의 예를 든다. 가령 애거서가 언니의 저택을 방문했던 경험에서 '서재의 시체'의 배경이 된 저택이 그 곳이라든지 애거서가 약사로 일한 경험에서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이 나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첫 장편 소설이었는데 그녀는 '약학 저널'에 실린 서평을 가장 만족해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다른 작가의 추리소설과 달리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은 정확한 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써졌다는 평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일생을 읽으면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다양한 작품을 함께 떠올려 볼 수 있던 점이 특히 좋았다. 그녀의 다양한 작품이 언급될 때마다 그 작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얼마 전에 읽은 것이라면 그 세세한 내용을 떠올리면서 읽게 되고 한참 전에 읽은 것이라면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가 만들어낸 작품 외에도 그녀의 일상이 빚어낸 가장 큰 미스터리인 실종사건을 다각도로 짚어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추리 소설의 여왕이라는 호칭을 얻기까지의 애거서 크리스티를 보여준 '애거서 크리스티-완성된 초상' 인상 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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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의 인간 경영학
리 아오 지음, 강성애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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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의 역사는 남성 위주의 역사여서 인상적인 여성 위인을 찾기가 어렵다는 문장을 읽은 기억이 있다. 사실 상대적으로 여성 위인을 찾기는 어려운 편이다. 여성의 기록이 역사 속에 남으려면 남성 위주의 제도에 순응해서 본보기가 될 여성이 되거나 제도에 불응해서 모든 비난을 들어야 하는 위치에 서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허나 단순히 제도에 순응하거나 불응해서는 위인의 반열에 오르기 어렵다. 제도나 남성위주 사회를 넘어서 뛰어난 업적을 남기지 않으면 역사에 기억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그만큼 역사 속에서 이름이 알려진 여성이 적다. 대신 워낙 수가 적어서 역사 속에서 유명한 여성의 대부분은 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이름이 워낙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청난 업적을 남겨서 알려지는 위인들은 그렇다치고 역사 속에서 이름을 남기는 방법은 보통 두 가지다. 역사에 인정을 받을 정도의 명성을 얻거나 반대로 악명을 떨치는 것이다. 이 책 '서태후의 인간 경영학'은 후자에 속하는 서태후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서태후는 흔히 자신의 아이의 인생조차도 권력을 얻기 위한 도구로 썼던 악랄한 여인의 대명사다. 오직 자신을 위해 살았으며 권력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수많은 악행을 일으켰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나라를 파멸로 몰아 넣은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허나 권력을 얻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서태후 뿐인 것도 아니고 한 나라가 망하는데에 한 사람에게 전적인 책임이 다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역사 속에 이름이 알려진 여성이 많지 않기 때문에 모든 오명도 악명도 그녀에게 몰려 버린 것이다. 책에서는 인간 서태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무조건적인 악당이 아니라 부드러움과 강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으며 욕망에 따라 움직인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태후도 처음에는 부드러움을 드러내는 여인이었다고 한다. 그리 높지 않은 관리집안의 딸로 태어나 권력을 얻으려 했던 것이 그녀가 악명을 얻게 된 모든 원인이었다. 여성의 몸으로 권력을 얻으려면 황제의 눈에 드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미모도 재능도 뛰어났던 그녀는 황제의 눈에 들려고 입궁을 한다. 하지만 황제의 주위에는 수많은 후궁들이 있었고 그녀들의 미모도 뛰어났다. 영리한 자희는 미모만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름다움은 젊음과 함께 가시는 것이고 그것 하나에 매달려서는 높은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자희는 자신의 재능으로 황제를 사로잡는다. 자희, 즉 서태후는 재기발랄한 여성이었고 수많은 일들을 황제를 대신해서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거기에 그녀의 지위를 확정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황제의 후계자를 낳은 그녀는 덕분에 지위가 올라간다. 하지만 황후가 되기에는 그녀의 집안이 너무 약했다. 자희가 입궁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황후가 정해진다. 황후가 될 수 없다면 황제의 총애를 받는 위치에 서야 했고 그 총애를 유지하려면 미모, 재능, 후계자를 낳는 것까지 고루 갖춰야 했다.

만약 황제가 오래도록 건재했다면 자희도 황제를 보좌하는 입장에서 만족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역사가 달라졌겠지만 황제는 젊은 나이에 죽고 황후인 자안과 후계자를 낳은 자희는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다. 황후도 아니었고 단지 비였던 자희는 상대적으로 지위가 약했다. 그래서 대신들의 멸시를 받아도 참아야 하는 위치였다. 황제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자희의 아들이 황제로 오르고 상황은 달라진다. 자희는 황후인 자안과 함께 황태후란 입장이 된 것이다. 당시 자희의 아들인 황제는 나이가 어렸고 자희는 자안과 함께 수렴청정을 행하게 된다.

이 때부터 자희의 권력에 대한 욕망이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열악한 지위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황태후가 된 이후에는 권력을 잡기 위해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들을 몰아낸다. 그런 자희가 권력을 잡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서야 할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최대 라이벌이며 질투의 대상인 자안이었다. 자희의 아들이 황제에 올랐다고 하나 황후였던 자안과의 경쟁에서 자희는 열세에 처해 있었다.

재능보다 덕이 뛰어났던 자안은 황후로 교육받았고 권력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그런 자안이었기 때문에 자희가 지나치게 권력에 집착해서 황제의 앞을 가로막으려 들면 그녀에게 제재를 가했던 것이다. 자희는 그런 자안에 대한 시기심을 멈출 수 없었지만 자안은 무시하기에는 그 영향력이 너무 큰 인물이었다. 그래서 자희는 자안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쓴다. 몸이 아픈 자안에게 탕약을 건네고 그녀가 회복되었을 때 그 약이 자신의 살점을 베어서 만든 것이라는 점을 알려 자안을 감동시킨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잠시 불쾌하게 만든다면 그 사람을 평생 불쾌하게 만들겠다고 말할 정도의 사람이었지만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인물이 서태후였다. 그런 점을 서태후의 인생 전반에 걸쳐서 보여주고 있다. 또한 권력을 완전히 차지한 이후에 그 권력을 오직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사용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서태후는 굳이 말하면 어디까지나 독재자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권력을 휘두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서태후의 부드러움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에 이 책 '서태후의 인간 경영학' 인상 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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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 - 줄타기꾼 필리프 프티의 세계무역센터 횡단기
필리프 프티 지음, 이민아 옮김 / 이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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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생은 길어야 백년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에 사람들은 많은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 사람이 한 일은 단순히 그 사람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한 일일수도 있지만 보통은 그 사람이 한 일은 그 사람에 대해서 많은 것을 드러낸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 하나도 그 사람이 정적인 사람이라거나 지식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낼 수 있다. 거기에 어떤 책을 선택해서 읽느냐는 그 사람의 취향부터 많은 것을 반영한다. 즉, 어떤 사람이 한 일이 그 사람을 보여주는 지표인 셈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줄타기를 한다는 것은 어떤 성향을 보여줄까. 기본적으로 줄타기를 하려면 균형감각은 물론이고 단련된 육체, 높은 곳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배짱이 필요하다. 보통 줄타기도 그런 정도라면 엄청난 높이의 거대 빌딩에서 줄타기를 한다면 그것은 그 이상을 드러낼 것이다. 줄타기를 통해서 특별한 목적을 드러낼 수도 있겠지만 고층빌딩 사이에 줄을 걸어놓고 곡예를 한다는 것은 목숨을 보장 못하는 일이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목숨보다 자신의 이름을 유명하게 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일수도 있고 위험한 일을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일수도 있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위험을 통해서만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말이다.

이 책 '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는 일명 쌍둥이 빌딩이라고 불렸던 세계무역센터 남동과 북동 사이에 줄을 걸어두고 줄타기를 했던 필리프 프티가 쓴 것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높은 빌딩에 줄을 걸고 곡예를 한 인물이라 하니 대책 없는 배짱과 명예욕이 가득한 인물을 생각했다. 하지만 읽다보니 필리프 프티가 행한 고공횡단은 그가 주장하듯이 고공예술이라고 불릴 정도의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왜 쌍둥이 빌딩을 목표로 정했으며 어떻게 쌍둥이 빌딩 사이를 오고가는 고공횡단을 할 수 있었는지 전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프랑스 사람인 필리프 프티는 이미 몇 차례 유명 건물이나 아주 높은 빌딩 사이에서 줄타기 곡예를 선보임으로써 어느 정도의 명성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고공 예술가로서 얻은 명성은 아직 최고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있었다. 명예욕에서 무관할 수 없었던 필리프는 현재의 상태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줄타기를 통해서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는 했던 그의 입장에서 줄타기 없이 살아가기란 무리한 것이었다. 그러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쌍둥이 빌딩이었다. 치과에 갔다가 쌍둥이 빌딩에 관한 기사를 보았고 파리의 상징이라는 에펠탑보다 높은 건물에 그는 흥미를 가진다. 사실 흥미 이상의 것이었는데 당시 아직 지어지고 있던 건물에 강렬한 자극을 받은 필리프는 일단 뉴욕으로 답사를 간다.

흔히 높은 빌딩에서 줄타기를 했다고 하면 그저 줄을 걸고 그 위를 걸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필리프의 기록에 따르면 그 일은 치밀한 사전답사가 필요했다. 자신의 건물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그가 하는 행동을 이해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하는 행동은 자살시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리프는 여러 번의 잠입을 시도한다.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가장하기도 하고 환자로 가장해서 자연스럽게 쌍둥이 빌딩에 숨어든다. 숨어든 건물의 곳곳을 알아보고 후에 자신의 장비를 둘 곳이나 자신과 동료들이 숨을 곳을 찾는 것이다.

거기에 높은 건물에서 줄타기를 하려면 그 곳에 부는 바람을 감안해야 한다. 엄청난 강풍을 견디면서 줄을 건너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 모든 일이 끝나고 난 후에 경찰에게 붙잡히지 않고 그곳을 빠져나가는 것도 고려해두어야 한다. 몇 년간의 계속되는 준비와 쌍둥이 빌딩에 대한 집착은 조금씩 필리프의 신경줄을 갉아먹는다. 더구나 그의 일을 돕는 동료들은 아주 친한 친구까지 그의 신경을 건드린다. 물론 그가 예술가 특유의 결벽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악화일로를 걷는다. 가장 친한 친구 장-루이가 마지막 순간 세부사항을 바꾸려 하자 그가 한 제안을 받아들이면서도 후에 의절할 것이라고 속으로 다짐하는 정도까지가 된 것이다. 허나 일이 모두 끝나자 그는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필리프 프티의 고공횡단은 이야기만 들어도 오싹한 일이다. 사람의 목숨은 누구나 하나이고 여분은 없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세계에서 유명한데다가 높다는 말로도 부족한 초고층 빌딩 사이에 줄 하나만을 걸고 오가는 일이라니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건축물을 짓듯이 모든 일을 하나하나 조정하는 일을 먼저 읽고 나니 오히려 그가 줄타기를 하는 순간이 편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줄타기보다 준비과정이 더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줄타기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강렬한 한 순간인 반면 준비과정은 뼈를 깎아내는 것 같은 고통을 참아야 하는 시간이었다. 사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가 한 일은 고공예술이라기보다 목숨을 담보로 한 만용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도 생각하게 하기도 하고 한 순간을 위해 모든 시간을 희생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감탄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을 수 없는 순간의 기록 '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 인상 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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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과학자 50
夢 프로젝트 지음, 박시진 옮김 / 삼양미디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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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처음한 사람은 오래 기억되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한 발상을 하고 기반이 잡혀 있지 않은데 처음을 연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처음이 한 시대를 변화시킬 만한 것이라면 그 사람은 더 대우받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이야 당연한 것들, 발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상식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던 때에 많은 과학자들은 기존의 관념과 싸워 새로운 시대를 열였다.

하지만 이제 그런 그들의 생각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살아서 그런지 과학자들과 그들의 업적에 대해 어느 정도 무관심했던 것은 사실이다. 매일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고 새로운 기술이 나오니 처음을 연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말 그대로 이제 '상식'으로 알아야 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런데도 과학이라고 하면 첨단기술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물리학이니 화학이니 하면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관련도서를 읽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과학자 50'은 탁월한 편이다. 신의 품에 모든 것을 맡기던 시대의 과학자 '데모크리토스'의 업적부터 원폭을 개발한 오펜하이머까지를 시대 순으로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그들의 업적만을 보여준다면 딱딱한 내용이 되어 버렸을 텐데 그들의 일생이나 재밌는 일화를 먼저 보여주고 그들의 생 속에 일궈낸 업적을 보여줌으로써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가운데 상식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래서 편하게 읽어 내려가다가 생각했던 것과 그들의 인생이 너무 달라서 많이 놀라게 되었다. 그 중 몇몇을 꼽아보자면 먼저 코페르니쿠스를 들 수 있다. 갈릴레오가 지동설에 관해서 종교재판까지 휘말리기는 했지만 지동설을 가장 먼저 주장한 것은 코페르니쿠스라는 것은 꽤 유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코페르니쿠스를 기존 세계관을 뒤집는 용감한 혁명가, 혁신가의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찬동한 사람은 화형에 처해진 반면 코페르니쿠스는 교회와 큰 불화 없이 일생을 끝냈다. 그것은 그가 꽤나 소심한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지동설에 관해 발표하는 것을 극히 꺼려서 죽기 직전에 발표했으며 주장하는 전체 논조도 아주 약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의 새로운 발상은 분명 대단한 것이었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그에 대한 생각은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그리고 파스칼의 경우 수학자나 기압에 대해서 밝힌 과학자라는 점을 많이 떠올리는데 그의 일생 대부분은 종교에 치우쳐 있었고 수학이나 과학은 그가 한가할 때 잠깐 한 취미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살 때 삼각형 내각의 합이 180도 라는 것을 밝히고, 19살 때 아버지를 위해 계산기를 발명했으며 후에 기압에 대해 연구하기까지 했다. 그가 38살에 이른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과학적, 수학적 성과가 있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또 기인 같은 태도를 보인 과학자가 몇 있었는데 뉴턴에 대한 것보다 헨리 캐번디시에 대한 것이 독특했다. 헨리 캐번디시는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고 집안에 도서관을 만들기도 하고 자기 집무실에 틀어박혀서 연구만 하고 살았다고 한다. 사람을 보는 것을 꺼려해서 고용인들과의 소통도 문틈으로 메모를 내서 하는 정도까지였다는 것이다. 그런 헨리 캐번디시는 수소를 최초로 발견하기도 하고 수많은 성과를 이뤘지만 정작 발표를 하지 않아서 그의 사후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인즉슨 한번 헨리 캐번디시가 수소를 발견했다고 발표를 했는데 프랑스의 라부아지에가 자신이 그보다 먼저 발견했다고 주장했고 이 일로 영국과학협회와 프랑스과학협회가 다투는 등 일이 시끄러워졌다는 것이다. 이 일로 염증을 느낀 헨리 캐번디시는 이후 자신의 연구 성과 일체를 발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상에 자신을 알리고 싶은 욕구는 전혀 없고 오직 학문을 하고 싶은 마음만 있는 학자의 모습이 떠올라 묘한 느낌이었다.

그 외에도 제본공에서 뛰어난 과학자가 된 패러데이, 다윈에게 모든 공을 돌린 월리스, 국가 대신 세금을 거둔 일을 했던 것 때문에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 라부아지에, 억지력을 기대하고 핵폭탄의 개발을 지휘했지만 핵이 실제 전쟁에 사용되었음을 알고 절망한 오펜하이머 등 많은 과학자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흥미로웠다.

워낙 유명한 과학자들이기도 하고 과거에서 현재의 순으로 과학자의 업적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들이 한 성과는 전부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것투성이였다. 그들이 어떻게 기존의 관념을 뒤집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는지에 감탄하고 그들의 너무도 인간적인 삶 이야기를 읽다보니 어느새 마지막장에 도달해 있었다. 수많은 처음을 열고 인간의 선량한 마음을 믿은 과학자 50명의 이야기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과학자 50' 인상적이기도 했지만 재밌게 읽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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