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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 - 줄타기꾼 필리프 프티의 세계무역센터 횡단기
필리프 프티 지음, 이민아 옮김 / 이레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사람의 인생은 길어야 백년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에 사람들은 많은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 사람이 한 일은 단순히 그 사람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한 일일수도 있지만 보통은 그 사람이 한 일은 그 사람에 대해서 많은 것을 드러낸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 하나도 그 사람이 정적인 사람이라거나 지식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낼 수 있다. 거기에 어떤 책을 선택해서 읽느냐는 그 사람의 취향부터 많은 것을 반영한다. 즉, 어떤 사람이 한 일이 그 사람을 보여주는 지표인 셈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줄타기를 한다는 것은 어떤 성향을 보여줄까. 기본적으로 줄타기를 하려면 균형감각은 물론이고 단련된 육체, 높은 곳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배짱이 필요하다. 보통 줄타기도 그런 정도라면 엄청난 높이의 거대 빌딩에서 줄타기를 한다면 그것은 그 이상을 드러낼 것이다. 줄타기를 통해서 특별한 목적을 드러낼 수도 있겠지만 고층빌딩 사이에 줄을 걸어놓고 곡예를 한다는 것은 목숨을 보장 못하는 일이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목숨보다 자신의 이름을 유명하게 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일수도 있고 위험한 일을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일수도 있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위험을 통해서만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말이다.
이 책 '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는 일명 쌍둥이 빌딩이라고 불렸던 세계무역센터 남동과 북동 사이에 줄을 걸어두고 줄타기를 했던 필리프 프티가 쓴 것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높은 빌딩에 줄을 걸고 곡예를 한 인물이라 하니 대책 없는 배짱과 명예욕이 가득한 인물을 생각했다. 하지만 읽다보니 필리프 프티가 행한 고공횡단은 그가 주장하듯이 고공예술이라고 불릴 정도의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왜 쌍둥이 빌딩을 목표로 정했으며 어떻게 쌍둥이 빌딩 사이를 오고가는 고공횡단을 할 수 있었는지 전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프랑스 사람인 필리프 프티는 이미 몇 차례 유명 건물이나 아주 높은 빌딩 사이에서 줄타기 곡예를 선보임으로써 어느 정도의 명성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고공 예술가로서 얻은 명성은 아직 최고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있었다. 명예욕에서 무관할 수 없었던 필리프는 현재의 상태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줄타기를 통해서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는 했던 그의 입장에서 줄타기 없이 살아가기란 무리한 것이었다. 그러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쌍둥이 빌딩이었다. 치과에 갔다가 쌍둥이 빌딩에 관한 기사를 보았고 파리의 상징이라는 에펠탑보다 높은 건물에 그는 흥미를 가진다. 사실 흥미 이상의 것이었는데 당시 아직 지어지고 있던 건물에 강렬한 자극을 받은 필리프는 일단 뉴욕으로 답사를 간다.
흔히 높은 빌딩에서 줄타기를 했다고 하면 그저 줄을 걸고 그 위를 걸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필리프의 기록에 따르면 그 일은 치밀한 사전답사가 필요했다. 자신의 건물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그가 하는 행동을 이해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하는 행동은 자살시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리프는 여러 번의 잠입을 시도한다.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가장하기도 하고 환자로 가장해서 자연스럽게 쌍둥이 빌딩에 숨어든다. 숨어든 건물의 곳곳을 알아보고 후에 자신의 장비를 둘 곳이나 자신과 동료들이 숨을 곳을 찾는 것이다.
거기에 높은 건물에서 줄타기를 하려면 그 곳에 부는 바람을 감안해야 한다. 엄청난 강풍을 견디면서 줄을 건너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 모든 일이 끝나고 난 후에 경찰에게 붙잡히지 않고 그곳을 빠져나가는 것도 고려해두어야 한다. 몇 년간의 계속되는 준비와 쌍둥이 빌딩에 대한 집착은 조금씩 필리프의 신경줄을 갉아먹는다. 더구나 그의 일을 돕는 동료들은 아주 친한 친구까지 그의 신경을 건드린다. 물론 그가 예술가 특유의 결벽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악화일로를 걷는다. 가장 친한 친구 장-루이가 마지막 순간 세부사항을 바꾸려 하자 그가 한 제안을 받아들이면서도 후에 의절할 것이라고 속으로 다짐하는 정도까지가 된 것이다. 허나 일이 모두 끝나자 그는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필리프 프티의 고공횡단은 이야기만 들어도 오싹한 일이다. 사람의 목숨은 누구나 하나이고 여분은 없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세계에서 유명한데다가 높다는 말로도 부족한 초고층 빌딩 사이에 줄 하나만을 걸고 오가는 일이라니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건축물을 짓듯이 모든 일을 하나하나 조정하는 일을 먼저 읽고 나니 오히려 그가 줄타기를 하는 순간이 편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줄타기보다 준비과정이 더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줄타기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강렬한 한 순간인 반면 준비과정은 뼈를 깎아내는 것 같은 고통을 참아야 하는 시간이었다. 사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가 한 일은 고공예술이라기보다 목숨을 담보로 한 만용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도 생각하게 하기도 하고 한 순간을 위해 모든 시간을 희생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감탄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을 수 없는 순간의 기록 '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 인상 깊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