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치다 눈뜨다 - 인터뷰 한국사회 탐구
지승호 지음 / 그린비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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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선 칭찬부터 하기로 하자. 인터뷰만으로 구성된 책을 서점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다.몇년전 인문서적으로는 꽤나 인기를 끌었던 <춘아 춘아 옥단춘아..> 이후 처음으로 인터뷰 책을 읽었다. <춘아 춘아..>가 출판사의 기획에서 나온 책이라면 <마주치다>는 저자 지승호의 개인적 노력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물론 출판사의 물심양면의 지원이 있었겠지만.) 인터뷰란 것이 사실 매체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특히 인터뷰는 매체의 특성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TV매체 속 인터뷰를 예로 들어보자. TV 인터뷰는 사실상 이미지가 가장 큰 역할을 맡는다. 시간 제약이라는 것도 있고 화면상 비춰지는 인터뷰이의 느낌이 내용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조금 형식은 다르지만 TV토론이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흔히 말하는 역사적 TV토론인 케네디와 닉슨의 경우를 보자.맥루한이 말한 '쿨미디어'인 TV에서 닉슨에 비해 케네디가 우세를 보인건 당연하다.양김씨인 김영삼과 김대중의 경우도 TV란 매체적 속성을 보자면 '쿨'이 강한 김영삼이 유리하다.이처럼 TV가 이미지에 좌우되는 경향을 갖는데 비해 지면이나 인터넷 매체는 인터뷰의 내용성을 담보하는데 훨씬 유리한 매체이다. 저자 지승호는 인터뷰라는 장르가 자리잡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성의와 열정을 가지고 나름대로 선구자적인 길을 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제 조금 쓴 소리를 해야할 시간이다. 우선 이 책에서 가장 흠잡을 곳은 '인터뷰이의 선정의 편재성'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터뷰이의 면면은 이렇다.김동춘,홍세화,한홍구,진중권,정욱식,손석희 등등... 나름대로 우리사회에서 진보주의자들의 선두에서 필명을 날리고 계신분들이다. 우리 사회의 진보진영의 고민과 현 시국을 바라보는 진보의 목소리를 듣는데 이 책을 쓴 목적이 있다면 나름대로 성공적이다.하지만 다분히 개인적인 감상인데 좀 지루하다는 느낌이다.오히려 수구꼴통이라는 조갑제,정형근,김용갑씨등의 인터뷰가 있었으면 훨씬 다이나믹하고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국 인터뷰이 선정에 있어서 좀 지루하게 된 면이 없지 않다. 개혁적인 성향의 사람들이라면 이미 위 인터뷰이들의 책들을 한두권쯤은 읽었을 것이다. 이 내용들이 동어반복적으로 각기 다른 인터뷰이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다.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몇몇 말들을 생각나는 데로 적어보면 이렇다. 해방이후 진보공간이 설 자리가 없었다. 한국전쟁과 개발독재시기를 거치며 빨갱이컴플렉스가 국민의 의식속에 내재화 되었다.우리가 저지른 국가폭력에 대해 인정하고 자성해야한다.등등등.... 사실 이러한 내용에 관심이 없는 국민의 대다수일 지도 모른다.그런 차원에서라면 끊임없이 외쳐야하는 것이 사실이고 또 당연하다.하지만 책 안에서 여러화자를 통해 반복되는 이이야기들은 좀 정리했어도 괜찮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들의 책을 몇권씩 읽었음에도 이 책을 또 보는 이유는 단지 학습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이들의 비판적인 생각에 동의하고 100% 공감함에도 같은 이야기를 여러번 듣는 것은 지루하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한홍구와 정욱식이 말한 '진보진영의 안보,국방 전문성 결여'이다. 저자도 말하고 있지만 이렇게 된 데는 역사적인 맥락이 있다. 독재세력에 빨갱이로 몰리던 집단이 국방이니 안보니 하는 분야에 접근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국내적인 민주화 문제가 발등의 불이였기에 대외적인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하지만 조속한 시일내에 진보적인 안보개념과 국방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나와야 할 것이다. 전문 인력충원이나 장기적으로 인력풀을 동원해야만 하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가장 재미없는 인터뷰는 손석희였다. 가끔 출근길에 그의 방송을 듣는데 그때만다 '이사람 딱 자기 할 것만 하는군.정나미 없네.' 이런 생각을 한다.인터뷰에서도 그랬다.방송진행자로써 객관성과 공정성이라는 무기가 인터뷰이로써는 최악이 된 듯하다. 방송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사회적 위치가 스스로의 대외적 의식이나 이미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자기일 열심히 하는 사람한테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 역시 투표하러 가면 누군가 찍어야할 텐데 그 속내를 밝힐 수 없는 사람의 심정도 참 답답하겠다는 생각은 든다.어쨋거나 손석희 인터뷰의 대부분은 " 제 위치에서 그부분에 대해서 뭐라할 수 없군요"가 전체적이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늘 분쟁의 소지가 되는 진중권에 대해 한마디 해야겠다. 그의 발언이 인신공격적이고 그의 태도가 오만한 것은 사실이다.김어준이 '자기 무오류성'에 빠졌다고 본 것도 어느정도 인정해야한다. 본인은 본인의 글쓰기를 도발하기 위한 글쓰기라고 규정했다.그렇다면 다분히 공격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 줘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 나온 인터뷰이 중 진중권의 사회적 위치가 가장 자유롭다. 겸임교수가 직함의 전부인 듯한데...당연히 사회적 위치가 가져다 주는 의식성에서 자유롭다는 뜻이다. 이것 저것 눈치 볼 것도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중권의 도발적 글쓰기는 그의 전술인 듯하다.논리적으로 반론펴라고 하면서 자신의 공격에 인신공격적인 양념을 쳐놓는다.받아 들이는 입장에서는 양념을 제거하는게 급선무가 되다보니 늘 지면은 부족하고 시간도 모자란다.나 역시 진중권이  이제는 전술적 변화를 주기를 기대한다.하지만 그의 지적들은 충분히 유효하고 귀담아 들을게 많이 있다.그의 과도한 NL에 비판 역시 문제는 있지만 개인적으론 동의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또 이 책에도 실린 유시민 비판에는 거의 99% 동의한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보여준 유시민의 정치적 수완들은 욕을 먹어야한다.그 특유의 말빨과 상황논리에 수많은 비판적 지지자들이 힘을 얻었고 또 다른 사람을 설득했다.그건 옳지 않았다.앞으로도...

앞으로 이런 인터뷰 책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하지만 좀 더 다양한 층의 다양한 목소리가 섞여있는 다이나믹한 인터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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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돌이 2004-11-09 13:5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지승호입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책을 내고 나면 한동안은 좀 뿌듯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늘

아쉬운 부분만 드러나게 되더군요. 지적하신 내용 역시 많이 듣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수구꼴통진영이라고 해야하나요? ^^)의 인터뷰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하다보니 제가 진보

진영분들의 인터뷰를 쭉 해와서 그렇게 찍혀(?) 버린 부분도 있는 것 같구요.

다만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좀 더 다양한 계층의 분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씀은 드릴 수 있겠네요. 그래도 또 한가지 저를 위한 변명을

하자면 쉽지 않은 여건에서 꽤 다양한 계층의 인터뷰이들을 만났습니다. 그

점 이해해주시구요. 여러가지 약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후한 점수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내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드팀전 2004-11-09 17:25   좋아요 0 | URL
시비돌이님> 어허라...저자께서 친히 글을 써주시다니 영광이며 동시에 부끄럽군요.책을 내시고 다수의 대중에게 평가를 받아야하는 지승호님의 입장은 더욱 그러하겠지요.제 평가는 다분히 개인적인거죠.^^ 제가 위의 분들의 책을 즐겨읽는 입장이다 보니 뭔가 더 새로운 이야기는 없나 하는 마음에서 생긴 아쉬움입니다. 그 내용이나 인터뷰의 구성이 모자란다는 뜻은 아니니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리구요.이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셔서 신문 같은데 이름걸고 하는 인터뷰 칼럼 같은 것도 하시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건투......

마태우스 2004-11-09 21:46   좋아요 0 | URL
드팀전님,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님이 댓글의 마지막에 쓴 것처럼 지승호님이 일가를 이루셔서 인터뷰 칼럼도 쓰시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지요. 진중권에 대해서 님과 제가 의견이 다른 듯하지만,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는 건 같다고 생각합니다.
 
비정상성에 대한 저항에서 정상성에 대한 저항으로 - 성공회대학교 NGO총서 9
조희연 지음 / 아르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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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은 진짜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밥벌이의 어려움이란 이렇듯 가끔씩 광풍처럼 몰아치는 일들을 허겁지겁 해결하며 또 내일을 걱정해야하는 일 일것이다. 그나마 장기 실업상태에 계신 분들에 비하면 쌓여있는 일들이 있다는 것도 행복한 고민일지 모른다. '새벽별 보기 운동' 을 시작한지 한 달 쯤 지나면서 나름대로 여력이 생긴다. 뭐든 첫단추 끼우기가 가장 어렵고 수고로운 법이다.그 자당한 명제의 체험적인 경험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밥벌이의 수고로움은 자연스럽게 책읽는 사적 시간을 앗아갔다.넘기다만 책장이 마치 강건너 버려 두고온 자식처럼 눈에 밟혔다.하지만 어쩔소냐? 책장에 수면제를 발라 놓은 듯 한두장을 넘기면 졸음이 먼저 나를 당기는 것을. 책 첫장에 오픈기념일을 써놓은 시점으로 부터 무려 한달을 넘겨버렸다. 비질비질 거리면서도 어제 이책을 다 읽고 앓든 이 빠진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조희연 교수의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두번째이다. 5-6년전 <한국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이란 책을 나름대로 즐겁게 보았다. 진보적인 관점에서 한국정치의 성격과 사회운동의 향방을 짚어준 책으로 기억한다. 우리 정치를 바로보는 시점에 개인적 정리가 필요한 시점에서 시의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자평한다.  이후 한국 정치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며 판도변화를 겪었다.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이에 응전하고 자극이 되어준 사회운동 역시 많은 변화를 겪었다. 긴 책제목을 가진 <비정상성에 대한 저항에서 정상성에 대한 저항으로> 이 책은 참여정부의 출범을 기점으로 해방이후 우리 사회의 성격과 각 단계별 사회운동의 성격, 그리고 저자가 제2단계 민주화 시기로 규정한 참여정부 이후 시민운동/민중운동의 과제를 살펴본다.

저자는 87년 6월 항쟁을 우리 정치,사회 변화의 가장 큰 전환점으로 파악한다. 반독재 투쟁의 3가지 큰 줄기였던 자유주의적 정당정치와 자유주의적 사회운동, 민중운동이 거대한 적에 맞서 연합투쟁에 돌입한다. 6월 항쟁의 원인이자 결과로서 시민사회운동은 87년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다.이후 우리사회의 정치지체 현상은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과잉대표성을 부여한다. 초기 시민단체들의 중산층 지향의식과 보수언론의 지지는 민중운동을 국지적이고 주변적인 상황으로 몰고갔다. 이후 시민단체들은 분화와 다양성을 확보하며 2000년 총선의 '낙천낙선운동'이라는 세계시민운동사에 남을 거대한 역량을 과시한다.하지만 '낙천낙선운동'에서도 드러났던 민중운동과의 대립구도는 여전히 존재했다.이후 개혁적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저자는 시민운동이 정부의 파트너가 되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시민운동 차원에서의 변화를 요구하고있다. 시민운동이 개량주의적 개혁에서 침체해서는 다양하게 부각되는 문제에 기민한 대처를 할 수 없고 정치권의 '변형주의'적 전략에 인적 배급원이 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시민운동이 현단계에서  추구할 수 있는 이념노선을 조희연교수는 '급진적 민주주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선 문화적,생활적 체계에서의 보수화를 극복하고 진보성을 확보해야함을 주장한다.또 민주화이후 확산된 '평등성'의 급진적으로 확보를 위한 노력을 요구한다. 책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풀란차스의 말을 인용한 그는 '비정상성'에 대한 형식적인 '정상성'확보는 어느정도 이루어졌다고 파악하는 것이다.물론 그렇다고 우리사회가 완전한 정상국가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말하는 바는 아니다.진보의 깃발이 현재 이루어온 '정상성'  영역에 도전하고 또 그 그림자가 되는 부분까지 드리워져야한다는 것이다.개인적으로도 '근대성을 완성하지도 못했는데 어쩌구..' 하는 논란은 다분히 단계론적이며 발전의  다층성에 대한 부정이라고 본다.

조희연 교수의 90년대 시민운동의 한계에 대한 가장 큰 지적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부분이다. 책의 두번째 장은 신자유주의와 관련된 쟁점들과 시민운동,민중운동 영역의 대응에  대해 할애한다.이를 위해 세계화의 성격과 세계화에 반대하는 반 세계화운동의 이념적 논거를 정리한다. 반세계화의 움직임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간단하게 알기를 원한다면 이 장은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민주정부들이 상황논리 또는 내재적 개혁원리를 내세우며 저항없이 따라가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다.이부분에 대해서는 시민운동에 대해서도 현재 신자유주의에 대한 현상황의 수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저자는  범지구적인 반세계화 컨센서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여러면에서 산만해지기 쉬운 정치,시민사회의 변화과정와 성격을 쉽게 정리해 놓았다.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변화를 요구하고 또 세계화의 문제와 쟁점들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3장에서는 중복되는 부분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정치개혁과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평가,그리고 언론개혁에 대한 전술적인 제안- 안티조선의 도발적 문제 제기의 부분을 인정하면서 향후 대중성을 얻기 위한 전술변화요구-등도 다루고 있다.일관된 시각을 가지고 87년 이후를 정리하고 문제를 제기한다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다.하지만 그가 제시하고 있는 대안이란것은 좀 피상적인 수준이다.물론 한 저자에게 모든 대안을 제시하라고 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고 꼭 욿은일은 아니다.하지만 조희연교수가 말하고 있는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상호협력,또는 급진적 민주주의의 개념등은 모호하다. 반세계화를 위한 반워싱턴컨센서스라는 것도 말그대로 '의식개혁과 계몽'이라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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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10-26 13:25   좋아요 0 | URL
한국민주주의와 사회운동이란 책 말이죠, 읽으려고 산지 벌써 5년이 지나 버렸군요. 대학 교과서처럼 생겨서 영 당기지가 않아서요. 비싸게 샀으니 읽긴 읽어야 할텐데요... 그걸 읽고나서 이 책에 도전해 보렵니다. 님의 리뷰를 읽고 신자유주의의 수용을 반대할 수 있는 대안이 있느냐, 그게 횡적 연대로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납니다...

드팀전 2004-10-26 13:48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저도 역시 그게 좀 의문이 됩니다.저자 역시 신자유주의의라는 세계화에 대해 전면적 투쟁을 주장하는 건 아닌듯합니다.일단 투기자본에 대한 국제적 규제-토빈세 등-를 위한 노력을 주장합니다.그런데 님의 말씀 처럼 토빈세등도 국민경제 수준에서는 그 외압을 감당해내기 어려울텐데...이런 실천을 위한 횡적연대에 대해 의문이 됩니다.다양한 층위의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있어왔는데 이것을 인적,물적 토대로 보고 있는 듯합니다.하지만 비록 예전보다는 활성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아직 정책 변화이 이르기까지 압력을 가할 힘을 가지진 못했다고 보입니다.일단은 신자유주의가 대세이므로 어쩔수없지 않느냐는 (TINA증후군이라 하더군요.There is no alternative)주의에 대한 비판과 자극이 일상영역에서 우선시 되어야 할 듯 합니다.

마태우스 2004-10-26 17:58   좋아요 0 | URL
드팀전님, 상세히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티나 증후군을 저부터 깨야겠군요^^
 
축구의 사회학 - 지구를 정복한 축구공, 지구를 말하다
리처드 줄리아노티 지음, 복진선 옮김 / 현실문화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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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유사종교이다. 축구팬들에게 스타디움은 성전이요 외치는 구호는 그들만의 주기도문이다. 그 구호소리가 높아져가면 마치 통성기도장의 신도들 처럼 그들 내부에 뭉클함이 떠오르고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언젠가 외신에서 보니 아르헨티나에서는 마라도나를 신으로 모신다는 우스운 종교가 나왔다고 한다.물론 스타플레이어를 신으로 모시는 게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다.하지만 스타디움 안에서 스타플레이어의 존재감은 성경의 선지자 역할은 충분히 할 것이다. 축구가 가진 광적인 몰입과 스타플레이어에 대한 숭배,타자에 대한 배타성등은 종교의 속성을 닮아 있다.사회학적으로도 종교가 국민통합의 목적으로 장려되었듯이 축구 역시 20세기 초반 근대국가 형성기에 국가정체성을 담보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다.

그러므로 축구를 바라보는 두개의 시선도 종교의 그것 처럼 양분될 수 있다.종교에 광적으로 매달리는 사람이 있고 그걸 삐딱하게 바라보는 비판자가 있듯이 축구 역시 옹호자와 비판자가 선을 긋 듯 나뉘어진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선이 우리 앞마당에서 확실히 보여진 적이 있다.마치 후천개벽이라도 일어날 듯 치솟았던  2002년 월드컵의 붉은 물결-이젠 인용자체도 진부해서 이번으로 끝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집단주의의 한 단면으로 바라보고 멀리 파시즘의 요소까지 읽어내단 비판자들.우리들의 축구에 대한 시각은 그 양 극단 속에 어느 한 점 속에 위치한다.

하지만 이 두가지는 축구를 둘러싼 우리사회의 독특한 사회구조 분석에 촛점을 맞춘 시각일 뿐 축구 일반에 대한 통시론적 관점은 아니다.세계 최대의 문화현상인 축구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사실 별로 없다.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축구를 사회학의 한 대상으로 파악하여 객관적으로 해부한다는 것이다.여기에는 물론 축구의 사회적 속성이 된 국가 통합의 문제,축구팬의 문제,인종의 문제,미디어와의 관계,젠더의 문제들이 포함된다.

이 책 전반부에 등장하는 원시 축구의 발생이나 근대 축구의 노동계급 출발설등은 축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도 새로울게 없는 사실이다. CATV에서 가끔 하는 다큐멘터리에도 나오는 이야기 니까 언젠가 흑백화면에 축구하는 그림 나오면 한번 보시길 바란다. 이 책 전반부에 가장 중심을 두고 다루는 주제는 역시 축구 팬과 관련된 사회학적 접근이다.결국 환원해서 보자면 계급과 축구의 문제이다.저자는 20세기 중반을 거치며 축구의 주요 참여층이 노동계급에서 화이트칼라 중산층으로 변했다고 말한다. 이게 현대축구를 둘러싼 시스템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결정적인 계기라고 생각한다.이 중심 계급의 변동은 축구 클럽 문화의 변화를 가져오고 축구 시청층과 여성축구팬의 증가라는 새로운 변화를 일궈낸다.그리고 이는 과거 지역사회의 정체성을 담보하던 축구클럽의 변화까지 유도할 수 밖에 없다.즉 세계적인 축구클럽으로의 도약이 불가피하며 지역 정체성보다는 국제적 비즈니스로의 축구가 등장한다.결국 참여적 축구팬문화는 상대적으로 약화되며 소비자로써의 축구팬이 부각된다. 축구 자체의 변화가 물론 축구 팬층의 계급적 변화 일부에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환원주의의 우려가 있으나 결과적으로 미디어의 발전과 팬층의 변화에 그 원인의 출발점을 찾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축구 내부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포메이션과 스타플레이어가 있다. 초기 축구는 개인기 위주의 플레이였다.테일러이즘이 사회에 지배적 관점이 되면선 WM 형의 축구가 선보인다.이탈리아의 빗장수비같은 경우는 체계적 분업의 대표적 모습이다.하지만 네덜란드의 토털사커가 등장하며 다기능전문화 축구가 지배적인 분위기로 변해간다.하지만 이 역시 축구의 세계화와 더불어 순환구조를 갖는다.앞으로 어떠한 포메이션이 등장할지는 미지수다.축구장의 꽃 스타플레이어 역시 보스먼 평결이후 세계적 물류 흐름 처럼 여기저기를 오고 간다. 아프리카는 한동안 유럽축구 시장의 식민지시장 역할을 해왔었다.그러한 흐름은 이제 아시아로 까지 번지고 있는데 이는 곧 자국 리그의 위축을 의미한다.월드컵 스타들의 해외진출을 막연히 국위선양이라고 홍보하는 언론이 늘 외면하고 있는 점이다.

결국 이점은 팬문화 형성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축구 팬문화에 있어서도 저자는 여러 연구를 이용하여 훌리건,카니벌등의 팬문화를 설명한다.우리의 붉은 악마는 애써 끼워맞추려면 카니벌적인 팬문화에 가까울 듯 하다.한가지 다른점이 있다면 이러한 팬문화가 유럽에서는 클럽 위주의 팬문화인 반면 우리에겐 그러한 팬문화가 전무하다는 점이다.생각을 멀리까지 뻗어 본다면 결국 우리의 축구 팬들은 '축구'를 좋아하는 것인가 '국가대표 축구'를 쫗아하는 것인가 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내 나름대로의 답은 단연코 후자이다.우리에겐 유럽과 같은 축구 팬문화가 전무하다.경기장에도 사람이 없는 와중에 무슨 팬문화가 있겠는가. 축구는 강한 라이벌성을 바탕으로 하고 잇다.대개 지역적 라이벌 관계이다.하지만 국내 축구에는 그러한 라이벌 관계가 희박하다.그렇다보니 국가적 라이벌 구도가 비정상적으로 확장된다.한일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결과적으로 붉은 악마들은 축구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국가와 연결된 축구의 이미지를 사랑하는 것이다.만약 축구를 좋아한다면 월드컵 기간중 한국경기를 제외한 타 경기장이 그렇게 비어있을 수는 없었다.

축구를 싫어 한다는 사람들의 비판의 목소리도 사실 그 지점에 가장 닿아있는데 축구와 연결된 국가주의가 싫다는 것이다. 대개의 스포츠가 근대국가 건설에서 국민통합의 기능을 했다. 이 책에도 인용된 에코의 말처럼 "축구가 열리는 날에 혁명이 가능한가 ?" 하는 말은 축구가 가진 정치적 모습-즉 정치권력에 이용되는 순응주의-을 보여준다.그런데 이런 식의 사회적 접근에만 촛점을 맞추면 스포츠가 가진 하나의 자율세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된다.전통적으로 축구 비판자들은 부르주와와 엘리트층이었다.(물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특히 엘리트층의 경우 축구가 가진 공격성,원시성,하층계급민들의 축제에 대한 반감을 교묘하게 위장했었다.현재는 이러한 비판이 많이들 수그러 들었지만 과연 전부 그런지는 의심이다.아직도 공부 잘하는 몇몇 사람들은 스포츠에 대해 미개한 무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특히 한국 사회에서 그러하다. 분명 세상의 한 구석을 똑똑한 머리와 근거없는 자부심으로 모르고 죽는것이다.

뱀다리 1)....  이 책의 직역투 번역(마치 대학 다닐때 교수님이 원서주면 스터디그룹끼리 나누어서 번역하고 합쳤던 듯한..물론 그정도는 아니지만)과 오자와 탈자는 비판 받아야한다.

뱀다리 2) ....축구에 관심이 없는데 축구에 대해 이해보려는 가상한 마음으로 접근하는 분들도 가급적 피하시길 바란다.우선 영국 위주의 사례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축구와 연관된 다양한 사회학적 접근이 등장하므로 머리가 복잡해져 축구가 더 싫어질 수 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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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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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하사탕>에 나오는 시간을 역행하는 기차에 오른다.시간이 뒤로 뒤로 흐른다.때는 80년대 중반 아침등교길, 선도부들이 학교 앞에서 위압적인 모습으로 서있다.마치 죄지은 사람들인 양 학생들은 명찰과 옷단속에 분주하다. 무언가 하나 빠진 친구들은 교문 100여미터 멀리서부터 정문을 통과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자못 진지하다. 딴에는 자신있게 교문을 통과하다 무언가 걸린 학생들은 엎드려 뻗쳐 자세로 고개를 처박고 있다.위풍당당 선도부들의 머리 위에는 교문 전체를 덮어 쓸 만한 플랫카드가 하나 걸려있다.

"  경축!!  00고등학교 00년도 졸업생 개똥이, 소똥이,말똥이,새똥이 00차 사법고시 합격 "

선생님들이 엎드려 있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너희들 자랑스런 선배들은 저렇게 잘나가는데 니들은 도대체 정신이 있냐 없냐.그 썩어빠진 정신상태로 뭘하겠다는거냐 ? 전부 일어나! 지금부터 운동장 끝까지 선착순 1명!! "

대한민국이 생겨나고 나서 아니 일제시대때부터 사법고시는 국가가 인정하는 최고의 시험이었다. 옛날에 시골에선 한 마을에서 사법고시 합격하면 군수,경찰서장 이런 사람들이 집까지 찾아와서 축하인사를 하고 갔다고 한다. 고시에 합격하면 비록 나이가 어리더라도 '영감'이 되었다고 한다.어린 시절 그게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감은 할머니가 부르는 할아버지 호칭인데 왜 20대 젊은이를 나이도 많은 사람들이영감이라 부를까? 

법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법은 사회적 강자들과 권력자들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는 경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수도 없이 있었다. 이런 법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독재정권과 그의 수족 역할을 해 온 법조인들 때문이다.이 책 <헌법의 풍경>은  크게 두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 첫번째는 뼛 속 부터 특권화된 법조인들의 모습이다.이들은 법 정신을 수호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일반인들의 위에서 특권을 누리고 있다. 두번째는 헌법의 조문과 헌법의 정신이 현실에서 어떻게 왜곡되며 형식적으로만 실천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김두식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특권화된 법조인들의 모습을 살핀다.그는  법전 해석의 권한을 법조인들이 독점하면서 특권이 출발한다고 말한다.즉 법조인들은 일반어와는 다른, 난해하고 현실어와 동떨어진 이상한 말들을 공부하며 자신들의 장벽을 친다는 것이다.이건 누구나 동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예를 들어 일반인들에게 가장 밀접한 법인 < 주택임대차 보호법>같은 것만 보더라도 이게 무슨 말인지 몇번을 읽고 읽어야 비로소 이해가 된다. 어떨때는 부동산 관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해야 할 때도 있다. 생활과 관련된 법이 그 정도인데 다른 법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물론 법조계에서도 이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 턱도 없이 멀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법연수원생들의 오버는 가히 코미디 수준이다.고시원에서 쩔쩔매던 시절에 대한 복수인양 자신들이 얻은 특권을 마음껏 향유(?)한다. 그들의 막나가는 특권은 아무도 못 이긴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배울 만큼 배웠고 법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알고 너희들보다 똑똑하니까 ... 이들이 판사가 되고 검사가 된다. 공부하시느라 연애질도 제대로 못해보시고 인간사의 갈등과 인간에 대한 이해도 공부만(?)하신 판사님들이 법(?)에 입각해서 재판을 한다.도대체 법전만 파고 다닌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 최고 권력기관인 검찰은 어떤가? 한 체제의 정당성 여부에 대한 고민은 합격하고 나서 하자고 작정한분들이.... 합격하고 나면 생각이나 해보시는지. (물론 법조계에도 훌륭한 분들이 많이 있다.특권을 포기하고 자신의 성공보다는 양심과 소신에 따라 행동해온 지사형 법조인들께 박수를 보낸다.) 어쨋거나 20-30대에 가장 힘이 센 사람들은 역시 검사들이다.검사들 앞에가면 높은 사람들도 다들 주눅든다는데 일반인들이야 오죽하겠는가?  큰 소리 한번만 치고 으르렁거리면 꼬리내리며 정신 놓아버리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법조인들은 법의 객관성만을 내세워 자신들은 객관적인 법정신 아래서 일한다고 말한다.하여간 아전인수격으로사용되는 '객관성,중립성,불편부당' 이런 단어들은 사전에서 다시 용어정리 해야한다. 언론도 그렇고 법조계도 그렇고 이 용어들의 성 속으로 쏙 숨어 버리는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누가 자신들에게 '객관성,중립성,불편부당'을 독점할 권한을 주었는지...  요즘은 판사님들의 오버 시즌이다. 노 대통령의 형이 뇌물문제로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나보다.집행유예인지 무혐의인지 하여간 풀려났다.재판부에서 노건평씨에게 대통령의 친인척으로써 행동에 주의하길 바란다는 멋진 말을 남겼단다. 언론에서는 다들 감동적으로 이 사건을 보도 했다.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아니 법적으로 문제가 되면 대통령이든 뭐든 법대로 하면 되고 아님 풀어주면 되는 거지 재판부가 그런 충고를 할 권한이 있는가?  재판부의 오버다. 

 김교수의 두번째 이야기는 헌법정신에 대한 부분이다.우리나라의 헌법이 명문으로 만 지켜지고 현실에서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헌법의 정신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 관용의 정신이라고 설명한다.독실한 기독교인인 김교수는 관용의 정신이 부족한 보수적 기독교의 양심적병역거부 문제에 대해서도 헌법정신을 들이 밀며 비판한다. 표현의 자유문제나 정치적 자유문제에 있어서도 관용의 정신을 주장한다.하지만 정작 현실은 아직도 색깔론이 정치권에서 정쟁의 도구로 이용되고 주요언론들은 이를 지원해주고 있으니 전부 헌법정신에 위배된 작당들이다.그러면서도 그들의 수장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지키지 않으려면 국가 문을 닫아야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들에게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위대한 정신은 헌법의 정신이 아니라 반공의 정신인 듯하다. 차라지 정권을 잡으면 헌법 1장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는 말을 삭제하고 '대한민국은 전세계 최고의 반공국가이다 '라는 말을 넣던지.(진짜 그러기만 해봐라.웅 흥분을 가라앉히자..)

이 책에는 그 외에도 헌법에 보장된 권리들이 잘못 적용되고 있는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묵비권'  즉 '말하지 않을 권리'에 대해서도 신문에 난 주요 사건들을 예로 들며 친절하게 보여준다. 검사가 '임의조사'를 할 경우 대답하기 싫으면 "저 인제 좀 지겹거든요.갈께요.안녕히 계세요." 하고 가도 준법적이란 거다.과연 실제로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실험해 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또 피의자의 인권측면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어떻게 경찰과 언론의 담합으로 무너지는지 구체적 사례들이 등장한다. 힘없는 피의자는(그 죄의 경중을 떠나)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고 힘있거나 좀 귀찮게 할 피의자들은 완벽하게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는 잘못된 사례들이 인상적이다. 물론 여기에 언론은 알권리 운운하며 맞서겠지만 굳이 헌법정신을 위배해가면서 까지 경찰서에서 고개 푹숙이고 있는 피의자들을 보여줄 필요는 또 뭐있겠는가.다 똑같은 그림이던데....

우리나라의 지난 50년은 독재와 반독재 투쟁의 시기였다.그나마 이제 형식적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다.형식적 민주화란 절차적으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의 민주화가 진정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현재 헌법에 보장 받고 있는 권리들이 실제적으로 지켜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가능하다.그러기 위해서는 일부 세력들에 의해 독점된 법해석이나 특정시대에 만들어진 법해석등을 과감히 재해석하고 비판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또한 악법도 법이라고 지킬 것만 강요하는 구태에서 벗어나 악법이면 고쳐서 개인의 양심과 자유가 실제적으로 보장되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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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08-15 14:32   좋아요 0 | URL
우와...이거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중입니다. 님의 멋진 리뷰를 보면서 저는 아무래도 이 책 리뷰 쓰는거 포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흑흑..너무 잘 쓰셨잖아요...추천 꾸욱~

바람구두 2004-08-31 17:53   좋아요 0 | URL
정말 잘 쓰셨습니다. 관점도 잘 잡고 계시고요. 사법개혁의 물꼬가 어찌되었든 트이는 모양입니다. 저도 추천해요.

마립간 2004-09-09 21:06   좋아요 0 | URL
반성하는 사유님, 첫 만남에 불쑥 질문을 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개인의 양심과 자유가 실제적으로 보장되는 제도'에 해당하는 대안적 방법이 있을까요?

드팀전 2004-09-10 09:32   좋아요 0 | URL
최근에 어떤 대학법대 교수를 만나 이야길 했습니다. 그냥 반 왈...법의 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운용이 결국 모든 문제의 해답이라 하더군요.얼핏 그럴듯 해보이는데...과연 법의 운용자가 선의로만 법해석을 할 지 아닐지 누가 알겠냐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만 참았습니다.
대안적 방법이란 것이 각 항목에 대한 각론을 이야기하는것은 아닐겁니다.결국 너무도 광범위한 인식의 변화라든가 사회 여론의 변화라든가 뭐 그런 이야길 해야 될 겁니다.개인의 권리는 이미 헌법에 잘 보장되어 있읍니다.그런데도 잘 이행되지 않는 것은 헌법의 정신이 기타 영향에 의해 무시되고 곡해되어서 형식법처럼 되어 있다는 거겠죠.제 생각에 헌법 기본정신에 대한 침해나 왜곡에 대해 좀더 단호하고 선진적인 판례들이 나와야 된다고 봅니다.물론 현재 고루하신 헌재에서 기대하긴 어렵겠지만....학교내 종교의 자유 1인시위나 양심적 병역거부 재판등 이어지는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온다면 ...일반인들의 법감각보다 훨씬 느리신 헌재판사님들도 마지 못해 그런 주장에 법적인 힘을 실어주실 수 밖에 없겠죠.
님의 질문에 대답이 되긴 제 생각이 짧지만....위의 질문은 세가지 뉘앙스로 들립니다.하나는 "저런 식의 막연한 문제제기는 하나 마나 한 것 아닌가?" 하는 것과 두번째는 " 말은 좋은데 저게 과연 어느 세월에 가능하겠어" 하는 느낌.또 하나있다면 현재의 정치 체제하에서는 개인의 자유는 원래 구속의 속성을 갖기 때문에 완전한 개인의 자유와 자율적 연대를 구상하는 아나키즘적 속성.
이러저러한 점에 대해서 저 역시 공감하고 마음 한 구석에도 그런 감정이 남아있습니다만...
그래도 현실적 부정에 대해 작은 지껄임들이 조금씩 모여 움직임을 만드는 거라 생각합니다.사법 개혁이 조금씩 박차를 가하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마립간 2004-09-10 12:54   좋아요 0 | URL
반성하는 사유님, 답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의 해결책을 여기서 모두 찾을 수 없지만 반성하는 사유님의 의견을 듣고 싶었습니다. 질문의 뉴앙스 대한 이야기는 따로 글을 쓰겠습니다. 초면에 실례를 한 것 같은데, 반성하는 사유님이 충실한 글을 주시니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말씀드립니다.

드팀전 2004-09-10 14:38   좋아요 0 | URL
무슨 별말씀을 ^^ 저 역시 저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니까 당위론적일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아쉽긴합니다. 설령 전문가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뾰족한 수를 내더라도 결국 도루묵이 되기 쉽겠지요.
어제 대학생들을 좀 만났는데....넌지시 국보법 폐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물었습니다.
제길 그 자식들이 뭐라냐면..." 전 그런 쪽 관심 끊은지 오랜되요" " 그거 정치하는 넘들 이야기죠" "그거 생각하느니 영어 한문장 더 외우죠." " 국보법이 뭐에요? " ....
뭐 특수한 아이들이 아니고 진짜 평범한 대학생들이었습니다.제가 분통터져 죽는 줄 알았습니다.가끔 제가 여기다 글쓰고 비슷한 생각을 가지신분들과 이야기나누고 뭐 이러는게 전부 지랄병같은 생각이 듭니다. 도대체 위와 같은 답을 하는 아이들에게 (거짓말 안하고 10명중 8명은 저런 류의 대답을 합니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의 문제가 도대체 무슨 장판뜯는 소리인가 싶습니다.....
 
나, 황진이 - 주석판 - 역사와 소설의 포옹
김탁환 지음 / 푸른역사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대개 사건이나 사물에 대한 생각은 그것을 마지막으로 생각해 본 때의 인식수준으로 남아있기 마련이다.황진이에 대한 나의 생각 역시 마친가지이다.고등학교 시절 그녀의 시 한수를 배웠다.그리고 참고서에 달린 그녀의 일화들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벽계수,서경덕,지족선사들과 관련된 일화들이다. 여염집 여인들에 비해 사회적 교류가 잦았던 기생이란 신분이 그녀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선생님은 당시 기생과 요즘 술집에 나오는 그런 여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하셨다.당시 기생은 지조도 있고 시와 예에도 능한 격이 있는 엔터테이너 였다는 것이다. 내가 황진이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딱 그정도 수준이었고 그후 황진이에 대해 단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다.

이 책은 황진이에 대한 기존 시각에 더하여 변혁을 꿈꾼자라는 덧옷을 입힌다.황진이에 대한 기존 문헌의 시각을 한번 비틀어 봄으로써 새로운 황진이의 모습을 형상화 해 낸다.기존 문헌에 등장하는 황진이의 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재능있으며 어리숙한 사대부들을 비웃는 명기로서의 이미지이다.작가는 기존 문헌들이 황진이가 비웃던 사대부들의 손에 의해 씌어졌음에 그 혐의를 둔다.당대의 명망있는 선비들이라 하더라도 체제를 뒷받침하던 성리학의 논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음은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음이다.이 책에서 황진이는 직접 자신에 대해 변론을 펼친다.우선 시류에 도는 일화들이 자신의 신분을 우스개꺼리로 받아들이려는 시정의 어리석은 이야기임을 말한다. 황진이는 스스로 가슴속의 한과 재능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사람을 찾고자 했던 것 뿐이었다.그녀는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의 신분이나 학식에 연하지 않고 함께 소리를 나누고 함께 세상을 유랑한 것일 뿐이다.황진이가 서경덕을 만나 그를 스승으로 모신 것 역시 비록 세상을 구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그 무리속에 희망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세상은 서경덕이 뛰어난 인격으로 황진이의 유혹을 물리쳐 천하의 황진이도 감동했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개탄한다.황진이는 오히려 그런한 태도는 화담의 인품과 학식은 염두에 두지 않은채 남녀간의 상열지사문제로만 시선을 맞춘 한심한 일이라 탄식한다. 이 책을 보며 나 역시 힘을 가진 자들의 시각으로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그녀에 대한 내 생각이 머물러 있던 시점에서 그녀가 다시 복원되어 살아난 것이다.물론 황진이의 개인적 변론을 그대로 따른 다는 것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녀를 둘러싼 야담과 오해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가능성은 충분히 열어준 것이다.

이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재미는 주석의 한시를 읽는 재미이다.혹자는 본문보다 많은 주석읽기가 책읽는 재미를 떨어뜨린다고도 한다.물론 그런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본문의  문장 하나 하나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중국의 당시,송시부터 우리의 한시들까지 두루 포함되어 거기서 한문장씩 따온 것임을 생각하면 작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인용된 구절 역시 당대에 내노라하는 명시들로 구성되어있다.개인적으로 한시에 애정을 갖고 있는 나로써는 시를 읽는 재미도 솔솔했다. 딱히 주석이 너무 많아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분은 그냥 본문만 읽어도 상관이 없을 듯 하다.우선 다 읽은 후 다시 책을 대략 넘기다 맘에 드는 구절이나 모르는 부문이 있었다면 그 곳만 찾아서 읽은면 된다.

여름휴가 기간 동안 강원도 산골에서 한장 씩 넘겨서 그랬는지 다른 책들보다 여유롭게 읽었다.책보는 동안 어딘선가 난 향이 풍겼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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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비행 2005-02-08 18:11   좋아요 0 | URL
이 책을 보았을 때,저는 좀 어렵다 생각했는데 님 리뷰 읽어보니까 다시 한번 읽을 용기가 생겼습니다.; 한시도 그렇고,처음에 읽었을 때는 그저 내겐 너무 어렵다-이런 생각 뿐이었는데,다시 읽는다면 황진이에 대해서 좀 더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