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손명희 옮김 / 교양인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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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르트뱅글러의 베토벤CD를  플레이어에 올려놓는다.베를린 필을 지휘한 1943년 전시녹음이다.열악한 음질을 보상하는 주술적 마력이 있는 연주다.눈을 감고 당시의 시대상황과 연주회장의 모습을 그려본다.세상은 묵시록적 예언처럼 지옥의 한장면을 옮겨놓았다. 전쟁터의 살육,민간인들에 대한 폭격,홀로코스트의 굴뚝에서 새어나오는 인간의 냄새를 담고 있는 연기. 가스실의 비명과 절망감.....유대인들이 가스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연주회장을 때리고 있는 베토벤 소리가 겹쳐진다..연주회장에는 기득권층들이 앉아있다.대부분은 나치독일의 동조자,아니면 관망자들이다.포디엄 위에선 지휘자 푸르트뱅글러처럼.그날도 그의 휘날리는 손짓에 따라 강렬한 음이 창조되 듯이 지도자를 외치는 공포스런 집단의 구령소리에 인류의 가장 혐오스러운 작품이 만드어지고 있었다. 

팩스턴의 <파시즘>은 500페이지쯤 되는 두꺼운 책이다.내 경우 이런 두꺼운 책을 처음 잡으면 마치 먼길을 나서는 사람 처럼 비장해진다.마치 여행가기전 신발 끈을 다시 동여매 듯 쉬이 지치지 않기 위해 마음가짐을 새로 잡는다.하지만 노련한 안내인 팩스턴을 따라 파시즘으로 여행하는 길은 결코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다.누구든 몇 장의 책장만 넘기면 오히려 처음에 단단히 먹었던 마음이 머쓱해진다.그리고 남은 파시즘 여행에 근거를 알수 없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느끼게 된다. 팩스턴이 이 책에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그것은 "파시즘이란 무엇인가?" 라는 단 하나의 짧은 질문으로 요약된다. 이것 저것 주변 학문을 끌고 들어와서 파시즘을 설명하지도 않는다.20세기 초반 유럽을 휩쓸었던 그 광기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파시즘"이란 단 하나의 목표를 두고 정공법 택한다.나처럼 앎이 깊지 않은 사람들에겐 이러한 직구위주의 단순한 구질이 책에서 말하고자하는 바를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이 노련한 투수는 직구 위주로 승부하는 대신에 만 상대타자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또 함께하고 이다.정통파 투수 팩스턴은 그 첫 투구로 파시즘의 시조가 되는 이탈리아와 독일의 파시즘 탄생부터 분석을 시작한다.

저자는 우선 파시즘의 탄생,정치제도 안에 뿌리내리기,권력장악,권력행사,파시즘의 급진화나 정상화 라는 다섯가지의 연대기적 구분을 통해 파시즘의 정체를 파악하자고 권한다. '파시즘 따라잡기' 를 위해 저자는 책전반에 걸쳐 독자들이 가진 몇가지 오해에 대한 정정을 요구한다.그가 강조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지만 대표적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저자는 우선 대중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파시즘 이미지,즉 파시즘 지도자에게로 집중되어온 "이미지로서의 파시즘" 과의 작별을 요구한다.지도자 중심 시각은 파시즘 논쟁에서 '의도주의'(즉 지도자의 의도에 의한 정치력행사)로 볼 수 있다.그 반대는 '구조조의'(파시스트정당 구성원들의 공통집약된 정치력 행사)라는 것이다.반인들은 영화의 이미지때문인지 파시즘을 일탈적인 지도자의 과대망상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이는 파시즘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과 유동성에 대해 외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저자는 파시즘이 고정된 하나의 정형화된 정치체계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파시즘 내부에서도 수많은 정치적 갈등과 다양한 정치스펙트럼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각 국가별로 파시즘이 발현단계에서 유사하고 그들의 문화적 장치가 유사하다.하지만 내부로 눈을 들여다보면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전쟁에 대한태도,기존 보수,귀족층과의 관계성 등에서 천차만별이다.저자는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 대중의 동의와 보수세력의 옹호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차레 강조한다. '일상적 파시즘'에서는 '대중동의'라는 것이 무슨 대단한 발견인 양 행세하지만 이미 파시즘이란 요소 안에 대중동의는 기본적인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동물원에 동물이 기본 요소인것 처럼 파시즘에서 대중동의는 필수적이다.동물원에서 동물을 봤다고 호들갑 떨수는 없는 것이다.물론 이런 비유는 또 이런 공격을 가져올수 있다. 결국 동물원보다 동물이 핵심아니냐는 말로 말이다.즉 '파시즘이라 정치양상보다 그 안에서 동의를 해준 구성원들의 문제다'라고 주장 할 수도 있다.그렇다면 스스로 '모든게 다 사람의 일이지'라고 해버리는 것과 같다.미리 결론을 언급하자면 <일상적 파시즘>의 문제제기는 의미있으나 결코 <고전적 파시즘>과 용어의 혼동을 유발하는 '파시즘'이란 말을 사용해야 하나에 의문이 생긴다.

.파시 즘은 어느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사회정서적 상황에서 발생한 과격한 정치현상이었다.특정한 시기라는 것은 1차 세계대전과 세계 대공화에 영향을 받은 20세기 초 유럽을 말한다.특정한 사회,정서적 요이니란것은 두려움에 근거를 둔다.사회주의의 세력확정에 대한 보수층과 중간계급의 두려움,전후 정치경제문제에 대한 자유주의의 무력함 등이 그것이다. 이 특정한 정치현상은 또 모순적이게도 당시 유럽에서 보편적으로 발생하였다.저자는 국가사회주의나 국가생디칼리즘이 유럽 각 국에서 탄생했던 과정을 설명한다.저마다 다른 상황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개 공통된 파시즘의 정서를 이들은 공유햇다.집단우월주의,배제적폭력,사회진화론,강한 카리스마에 대한 동경,자신의 집단이 희생자가 되었다는 믿음등이다.성공한 파시스트정당들은 새롭게 떠오르는 대중정치의 시대를 간파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동원하는 포퓰리즘을 택한다. 유럽에 만연한 파시즘적 공통 정서에도 불구하고 어떤 국가는 파시즘이 정치전면으로 부각되지 못했다.저자가 파시즘의 기원만을  가지고 파시즘 일반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초기 파시즘의 형태는 당시 어디에나 있었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왜 이탈리아와 독일을 중심으로 파시즘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까? 세계공황과 기존 정치체제의 무능함에 대한 반동이 가장 먼저 지적된다.자유주의 체제의 허약함을 비집고 들어온 파시즘정당들은 대중의 욕구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며 권력의 중심에 다가서게 된다.무솔리니의 경우 사회주의 정권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농촌지역을 거점으로 세력을 넓혀간다.물론 여기에는 자경단 형태의  폭력단체가 중심이된다. 지역의 파시스트 우두머리들을 통합해내며 무솔리니는 전국구로 자리를 잡게된다.우선 좌파를 적으로 상정하고 기존보수세력과 종교세력의 힘을 이용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파시스트 지도자들이 사용한 연극적인 제스처나 웅변등 대중선동의 능력 역시 중요하게 작용한다.

권력을 장악하는 단계에서 파시즘은 다른 세력들의 도움을 절실히 요구하게 된다.무솔리니나 히틀러 모두 직접적인 쿠테타로 정권을 쟁취하지 않는다.기존 보수세력에 대한 정치적 압박과 대규모 집회를 통한 압력을 통해 기존 체제에서 권력중심부로 옮겨가게 된다.당시 보수세력들은 풋내기 대중선동가들의 정치능력에 대해 경시했기 때문에 그들이 권력 핵심에 오더라도 자신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을 수 있다고 믿었다.하지만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동형조직"이라는 파시스트정당의 독특한 이중 정치구조를 통해서 자신들의 영역을 정상영역 안으로 확장해간다.동형조직이란 것은 당과 정부기구가 2원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흔히 영화에 많이 등장하는 나치친위대같은 것은 경찰조직이며 정부기구가 아니라 당조직이다.나중에는 나치가 유일당이 되므로 그 권한은 더욱 막강해진다.물론 파시즘의 대명사인 이탈리아와 독일도 같은 행태를 보인것은 아니다.또 파시즘 지도자들은 권력을 장악하고 난후 당내 급진파들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권력의 정상화단계에 이르게 된다.

파시즘의 절정은 전쟁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대외전쟁을 통해 파시스트들은 국민의 의도적 통합을 이루어낸다. 파시즘의 정서가 반개인주의 반 자유주의의 정서였기때문에 전쟁은 무었보다 좋은 통합의 문화적기제인 셈이다.그리고 전쟁 후반기로 들어서면서 추방,격리 시켰던 유대인들에 대한 대량학살이 이루어진다.대량학살 역시 동부전선을 중심으로 행하여지는데 대개가 현지의 친위대나 군인들에 의해 자행된다.히틀러가 이를 직접 지시한 명령서는 어디서도 발견된 적이 없으나 비선에서 이를 동의했다는 것은 자명해보니다.총살에 의한 대량학살은 가스실이란 도구를  창안해내며 정정을 향해 치닫는다. 파시스트들은 애초부터 비정상적 영역에 대한 배제에 익숙해있었다.외국인이나 유태인들에 대한 혐오가 그것이다.아리안족의 우수성이란 이름하게 모인 인종적 민족주의도 그 예이다. 바로 나치 우생학이란 희안한 생물학도 그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파시스트들의 반인륜적이고 배타적인 폭력성은 결국 자신들을 인류 역사의 최악의 가해자로 낙인찍게된다.결국 타인을 향했던 폭력의 칼날은 자신을 향하게 되고 자기파멸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저자는 결론에서 고전적 파시즘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린다.그리고 무분별하게 남용되는 파시즘이란 용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한다.지금도 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일상적 파시즘>이란 것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저자의 시각에서 본다면 일상적 파시즘은 파시즘의 전제조건에 해당한다.집단주의,군사주의문화,가부장제,인종차별주의등이 그에 해당한다.이것은 반세기 전도 그렇고 현재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라면 어느곳에서나 존재하는 요소이다.또 한가지 지적되는 것이 파시즘에 대한 '대중합의'의 문제이다.우선 파시스트 정권은 적의 개념을 명확히했다.좌파와 유대인,그리고 일부 파시스트 급진파들이다.일반인들의 경우 파시스트 폭력에 스스로 무관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여기에 패전국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의식을 자민족주의의 이름으로  수렴할때 비판적 시각을 결여한 일반인들의 경우 파시스트들의 선동에 쉽게 동의를 보낼수 있을 것이다.전쟁이란 특수한 상황을 불러일으켜 국민여론을 강력하게 모으기 전까지 파시스트정당의 독일내 지지는 40% 대였다고 한다.결코 작은 수는 아니다.하지만 전폭적 지지와는 거리가 있다.파시즘 정당이 정권을 잡은후 자유주의의 비판적 영역은 제도적으로 봉쇄당한다.요즘 처럼 정보네트워크가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대중조작과 통제의 헤게모니는 전적으로 파시스트들에게 있었다.대부분 독재국가에서 그러하듯이 이후 지지율은 올라갔을 것이라 유추해도 별 문제가 없다.그리고 만약 파시스트 정당이 정상화를 이루어내고 장기집권 체제로 들어갔다면 내부적인 비판과 체제전복의 여론도 있었을 것이다.그러기에 파시스트 정당은 자멸이란 형식으로 단명하고 말았지만 말이다.이러한 요소를 무시하고 대중성이 갖는 몰개성성,중우함을 파시즘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왠지 모난 구석이 생긴다.저자 역시 이것을 파시즘이라고 명명하지 않는다.더 중요한 것은 1차적 요소들이 정치적 영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 없는가의 문제라고 본다.자유민주주의의 선두라고 하는 프랑스,미국등지에서도 이러한 파시즘의 1차요인들은 있었다.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파시스트국가라고 하지 않는다.그리고 파시스트 국가가 되지도 않았다.물론 일상적 파시즘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파시즘의 해결만으로 파시스트적 속성의 문제가 전부해결되지 않는다라고 본다.즉 상부구조의 해결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칫 도덕주의로 환원될 가능성이 있지만 나름대로 일리도 있는 말이다. 사실 그렇게 본다면 일상적파시즘은오히려 대중의 문화와 심리학에 관련된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물론 문화와 심리라는 것도 사회정치적 한계에 직접적 영향을 받긴한다. 앞으로도 많은 논의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든다. 만약 일상적파시즘의 상상력과 사회응용력에 매력을 느껴 파시즘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파시즘에 대한 이해의 폭이 훨씬 넓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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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달 2005-04-15 13:20   좋아요 0 | URL
'파시즘이란 정치양상보다 그 안에서 동의를 해준 구성원들의 문제다' 고개가 끄덕여집니다...리뷰 잘 봤습니다^^

드팀전 2005-04-16 09:39   좋아요 0 | URL
시아님>고맙습니다.유명한 그림이네요.
부용님><일상적파시즘>에서 주장하는 이야기인데..이 책의 저자는 그부분에 대해 길게 설명하지는 않습니다.개인적으로 '대중동의'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편입니다.무시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말이죠.어쨋거나 탱큐...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후지따 쇼오조오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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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문제로 한일간에 감정이 날카롭다. 행여 일본에 대해 우호적 발언을 했다가는 돌맞기 딱 좋은 정서가 가득하다. 이런 마당에 삐딱선을 타며 일본학자의 책을 읽었다.그는 일본내 진보적 소수를 대표하는 학자이다.이 책에 실린 내용은 멀게는 1960년대부터 가깝게 90년대까지의 일본정치사와 사회사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시각을 담고 있다. 후지따선생이 다루고 있는 소재는 일본적인 것이다.하지만 선생의 해석범위가 닿는 곳은 일본이라는 한 국가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6,70년대라는 일본 상황을 토대로 현 자본주의가 직면한 위기와 문화적 정체,소비사회의 노예가 되어가는 현대인들의 무감각한 감성에 대해 보편적 가치에 기대어 비판의  칼날을 던진다. 특히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여러모로 일본 사회시스템과 닮아있는 한국에서 그의 비판은 직접적으로 유효하다.

우선 책 초반에 가장 인상적인 그의 표현은 '안락에의 예속'이다. 현대인들은 불쾌감이란 단어에 극단적인 혐오를 갖는다.이를 회피하기 위해 그들은 사물과의 상호관계를 거부하고 호의적인 것들만 받아들이다.이 안락에 대한 강박증적 추구와 안락의 파괴에 대한 우려감은 사물에 대한 돌발변수제거라는 형태를 추구한다.이는 소유라는 불완전하고 일방적인 형태를 취하게 된다.또 안락을 유지하기 위한 이익보호자,즉 조직에 기대게된다.이는 결국 정신의 궁핍화를 일으키고 생활속에서 안락의 전체주의 속에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다.인간이 자본이나 조직에 노예가 되었다는 명제는 이미 익숙한 것이다.후지따 선생이 그 원인으로 든것은 다분히 심리적인 요인이다.이 '안락에의 예속'은 그런 면에서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문제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물론 저자 역시 안락이란 감정 상태를 나쁜 것으로만 보지는 않는다.문제는 그 요소에 대한 추구가 일방적인 것이고 무의식적이지만 광적인 추구가 되는 상태인 것이다.

대학다닐때 친구들과 미팅에 갔었다.어느 여대 교육학과 친구들이었다.무슨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당시 쉽게 만날 수 있었던 사진전 이야기가 나왔다. 철거민들의 삶을 다룬 사진전이었다.나는 그 안의 리얼리티와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담고 있는 작가의 시선이 좋았다.그런데 어떤 여학생이 내 혈압을 올리는 말을 했다. " 전 그런 사진들 별로에요.그런 사진보면 왠지 우울해지고 내가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제 주변에서는 그런 사람들 본 적도 거의 없구.어쨋건 전 그런 칙칙한 사진보다 좀 밝고 예쁜 사진이 좋아요."

당시에 나는 무지 열받았다.지금 다시 생각해도 좀 답답한 감은 있다.어쨋거나 그녀의 그말...물론 단순히 어린친구의 순진한 반응일 수도 있지만... 그게 바로 "안락에의 자발적 예속"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요즘은 뭐가 달라졌을까?  절대 아니다. 정치적 이슈로 가지 않고 좀더 만만한 문화적 아이템으로 들어와도 된다.영화나 책,음악 등등등 진짜 대량소비되는 시대이다.다들 가장 좋아하는게 무었일까?  쉽고 편안하고 무언가 고민하게 하지 않고 인지부조화를 만들지 않고 가급적 해피앤딩이면 좋고... 한마디로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오히려 가끔 컬트나 좀 쉽지 않은 작품을 보면 옆에서 그런다 "그런걸 왜보세요.머리만 아프게" ....문화적으로 보자면 이 또한 "안락에의 예속"이다. 이렇게 후지따 선생의 말처럼 '생활속의 안락이 전체주의화'되어 간다.

저자는 일본의 국가적 무비판성에 대해 냉정하게 비판한다. 무비판의 대상이었던 천황제에 대해서도 그동안 천황제 논의의 저열함을 짚으며 메스를 들이댄다.또 일본인들의 조직에 대한 맹종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비판한다.자기비판이 가장 부족한 국민이 일본인이다 라고 까지 하면서 일본인들의 무비판능력을 공격한다.이것이 일본이 경제동물이란 칭호를 듣게되는 원인이고 패권주의라는 이름으로 존속하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된다.그렇다면 이웃국가 한국은 어떠한가? 그의 말중에서 '일본'을 '한국'으로 바꾸면 그대로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일본이 터무니없이도 독도를 우리땅이라 우긴다. 이에 대응하여 마산의회는 대마도를 우리땅이라고 한다. 뭐가 다른지 내 기준으로선 이해가 안된다.방송에선 일부 일본 진보학자들이 역사적사죄의 뜻을 비쳤다는 것을 보도한다.사람들은 '그래도 일본놈 들 중에도 괜찮은 놈들도 있네' 한다.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과연 괜찮은 한국인일 수 있을까?  인류의 위대한 이상인 보편적 가치보다 자신이 속한 가족,직장,조직,국가의 가치가-거기에 승리주의의 가치가- 우선시 된다는 점에 대해서 과연 이 책속에 나온 일본,일본인과 한국,한국인이 차이점이 생기는 것일까?

저자가 말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탈출구는 그렇다면 어디에 있는가? 여기서 조금 진부하긴 하지만 저자는 "보편적 이가치,보편적 이성"이란 것을 들고 있다.러셀이 자주 인용되는 것도 이 이유에서이다.결국 사고의 괘적은 다를지라도 몰락의 방향으로 가는 현대사회를 돌려놓을 수 있는 것은 인류가 가진 보편적 가치에의 희망에 기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후지따선생의 생각인 듯하다.그렇게 하기 위해선 타자의 것,다른 것,공존할 수 없는 것과의 상호관계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자이며 공산주의자이고 또 아나키즘에 기댄 저자의 도덕적 호소는 그러한 결론에 도달한다.

사족같지만 이 책에 알라딘 리뷰는 모두 별5개이다. 주관적인 판단이라 왈가왈부 할 수는 없다.하지만 내 경우 별5을 주기 망설여졌다. 우선 만연체의 문장이 거슬렸다.저자의 글쓰기 형태인지 아님 번역가의 능력인지는 모르겠다.하지만 한 문장이 10줄이 넘어가고 중문의 형태를 띠는데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또 책의 어떤부분들은 지극히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나온 글들이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동시대에 살던 일본 학자들의 언행에 대해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렇다면 이 책이 별다섯을 받아야하는 이유는 후지따선생의 칼날같은 정신에서 나온 사회의식때문이다.하지만 본인도 인정하듯이 그의 주장은 도덕주의적 관점이 너무 많이 배어있다. 이 책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맑스주의의 대차대조표에서 후지따선생은 관점에서 좀 멀어진듯한 인상을 많이 준다.

물론 이 책에서는 보편주의의 시각하에서  한일양국의 부정적 공통점에 바탕을 둔 비판적인 시각을 많이 얻을 수 있다. 그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하지만 참신성은 지금와서는 빛이 좀 바란듯하다.이 책이 동시대적 상황에 반응하는 책이라면 6,70년대에 나왔어야했다.너무 늦게 우리에게 소개된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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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달 2005-03-30 17:09   좋아요 0 | URL
'안락의 예속', 에릭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떠오르네요..스스로 말미암는 것이 '자유'라고 하던데...참 쉬운 일은 아니죠^^;;

딸기 2005-09-21 23:02   좋아요 0 | URL
뒤늦게 읽었지만, 서평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추천.
 
아나키즘, 대안의 상상력
콜린 워드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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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학 다니던 시절 친하게 지내던 조교누나가 있었다.타과 출신이었지만 학회일 때문에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했던 관계로 가까와 지게 되었다. 어느날 술먹는 자리, 그 누님 왈 "너 취향도 맘에 들고 우리 리틀 아나키 클럽에 들어와라?"  ".... .... ... "  . 내가 아나키란 말을 나름대로 고민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 누님이 말한 '리틀 아나키'가 존재했었는지도 사실 모르겠다.내 생각에 그저 마음 맞는 몇몇사람들의 술자리 모임을 낭만적으로 펌프질한게 아닌가 싶다.행여 그 구성원이 있다손 치더라도 실제 아나키스트들은 그닥 많지 않았을 것이다.추측컨대 나름대로 사회의식을 가지고 운동에 참여하지만 조직적 운동세력으로 편입하기 싫은 자유주의자들이 주를 이루었을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아나키스트들을 두가지 오해를 받고 있다.하나는 '이상주의적 폭력주의자' 라는 것(요즘도 이런 사람이 많은지는 모르겠으나) 또 하나는 '극단적 자유주의자'라는 것이다.특히 이런 오해에는 스스로 아나키스트라고 믿고 싶어하는 이도저도 아닌 자유주의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오해를 가중시킨다.솔직히 이도 저도 아닌 자유주의자는 좋게 말하면 상식적 시민주의자이거나 비판적 기성체제 옹호자이다. 하지만 고전적 아나키즘이건 이 책에서 말하는 현대적 아나키즘이건 아나키즘의 혁명적인 기치와는 함께 갈 수 없다.

이 책<아나키즘 대안의 상상력>은 70년대 영국의 상황에 바탕을 둔 비교적 현대적 아나키즘 이야기이다.이 책은 아나키즘의 역사와 이론을 밝히지는 않는다.대신 전반적으로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에 바탕을 두고 사회 각 영역에서 아니키즘의 적용을 살펴본다.이를 통해 저자는 아나키즘이 우리사회에서 어떠한 식으로 조직되고 활용되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또  아나키즘이 도전하고 있는 영역과 목표로 삼고 있는 부분을 밝힘으로써 아나키즘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가치의 일면을 살필 수 있게 도와준다.저자가 밝히고 있는 아니키즘은 인간조직을 대하는 한 형태-즉 라이프스타일로써의 아나키즘-이다. 즉 나 자신의 자율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기존 시스템에 대해 도전해야하고 DIY해야 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이것이 인간성의 회복과 행복한 삶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아나키즘은 기본적으로 반국가주의,반자본주의,반권위주의를 모토로한다. 아나키즘에서 국가는 최고의 악마이다. 대개의 아나키즘 이론가에게 공통으로 파악되는 것이 국가의 해체이다.국가를 위해 목숨 바치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교육받았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한발을 양보해도 '미워도 우리 나라 아니인가.' 지난 광복절, 좌우파(?) 대규모 시위에서도 양쪽이 전부 대형 태극기를 휘두르며 우국충정을 불사르는데 이 싸가지없는(?) 아나키즘은 국가를 없애잖다.이러니 아니키즘이 미움을 받을 수 밖에 ...국가가 아니면 도대체 워쩌자는 것인가?  저자를 비롯한 아나키스트들은 지역공동체의 네트워크를 주장한다.책말미에 인용된 '피라미드보다 네트워크를' 이란 말은 아나키즘이 주장하는 반권위주의와 프르동의 동맹개념에 대한 좋은 비유이다.어쨋든 이 책에서는 스위스의 자치주들의 연대를 예로 들며 어렵기는 하지만 자치연대가 불가능한 상상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치 연대를 위한 가장 중요한 관건은 자발적 질서이다.저자가 예를 드는 것은 60년대의 유럽의 사회운동이다.반권위주의적이면서도 자발적인 연대가 있었던 그 기간이 네트워크의 가능성과 조직의 자율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킨다고 말한다.

저자가 아나키즘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눈을 돌리는 분야는 도시,교육,가족,복지이다.각 상황마다 진행역사가 다르겠지만 단순화 시켜보자면 정부를 중심으로한 중앙집권형 계획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다.도시계획이라는 것은 도시빈민을 도시의 바깥으로 몰아내어 도시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제도 교육이란것 역시 체제의 순응적인 과목과 교육방식을 통해 제도의 영속화를 추진하는 것이다.결국 저자는 공교육의 폐지를 주장한다.이점은 70년대의 영국상황과 현재의 한국의 왜곡된 사교육시장을 감안하다면 금방 와닿지는 않을 것이다. 좀 더 원론적인 이해가 오히려 간섭효과를 줄여준다.복지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인데 격리라는 형식을 통해 비인간화만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다.이 모든 것에 대한 답 역시 분권과 자율화,공동체의 연대로 드러난다.저자는 시스템의 문제점을 헤집고 들어간 아나키스트적 대안에 대한 구체적 실험과 예를 들어 독자의 시각 교정을 유도한다.하지만 저자 역시 아나키즘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구체적 답을 제시하진 못한다.몇번쯤은 반대자들의 문제제기를 들먹이지만 부수적인 예를 들어 질문을 피해간다.사실 이 책에서 언급된 몇번의 문제제기는 아나키즘의 고전적인 논쟁에 해당한다.

흔히들 말하는 아나키즘과 볼세비키의 논쟁은 책을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국가에 대한 맑스주의자와 아나키즘의 시각차,생산과 분배문제에 있어서 대규모의 생산양식하에서 자급자족적 아나키즘의 문제점,인간성향에 대한 규정문제,연대조직내의 권위화 등등...

아나키즘이 분명히 근대국가의 여러제반 문제에 대한 돌파구로써 상상력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그리고 위대한 이상주의의 깃발 아래서 인간의 삶을 개선하려는 방향성 역시 옳다고 본다.하지만 의문이 끊임없이 떠오른다.물론 머릿속으로 또는 글장난으로 거대한 사회주의 개혁을 하는 것보다 -어차피 그것도 요원하긴 마찬가지다- 지금이라도 작은 공동체에 힘을 싣는게 훨씬 실천적이다.하지만 목표는 너무 멀고 실천은 과거의 태도에 대한 절연을 전제로 한다면 대중성을 확보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결국 아나키즘은 영원한 소수자이고 끊이지 않는 비판의 샘물이고 마르지 않는 이상주의의 보고가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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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5-02-15 16:18   좋아요 0 | URL
추천합니다. 좋은 책이 나와 있었네요. 책 구입하게 되면 땡스 투도 함께 가도록 하겠습니다.

burningham 2007-04-08 17:24   좋아요 0 | URL
좋은 리뷰네요 담아갈게요
 
이타적 인간의 출현 - 게임이론으로 푸는 인간 본성 진화의 수수께끼
최정규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게임이론의 이야기를 하기전에 먼저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떠올려보자.러셀 크로우가 분한 존 내쉬는 수학천재이다. 대개의 천재들이 그렇듯이 좀 외골수적인 데가 있다. 내쉬의 카페씬을 떠올려보자.카페에는 무자하게 매력적인 여자가 있다.남자들은 전부 어떻게 해보려는 마음은 있지만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괜시리 접근했다가 여자의 콧대만 더욱 높여주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테이블 한쪽에서 이를 주시하던 내쉬는 이 상황을 수학적으로 정리한다.여자에게 접근했는지 아닌지는 오래전 기억이라 잘 떠오르지 않는다.이때 내쉬가 머릿속으로 정리한게 <게임이론>의 하나였을 것이다. 존 내쉬는 이 때 이 책에도 나오는 내쉬균형 (각 경기자가 상대방의 전략을 주어진 것으로 보고 자신에게 최적인 전략을 선택할 때 이 최적 전략의 짝)을 머릿속으로 그리지 않았을까?

이 책의 주제는 너무 단순 명료하다.  "이기적인 인간이 도대체 어떻게 이타적인 행위를 하는가?" 저자는 이책에서 게임이론과 이에 바탕을 둔 가설들로 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수학적으로 풀어나간다. 먼저 제시하는 게임은 너무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이다.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다.

죄수1,2가 있다.둘은 완벽하게 차단당한 상태에서 조사를 받는다. 형사가 제안을 한다.

너희 둘다 범죄를 부인하면 징역 1년씩, 한 놈이 자백하면 그 놈은 0년 ,나머지 부인한 놈은 괘씸죄 7년

둘 다 모두 자백하면 징역 5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정답은 ...자백이 어찌되던지 유리하다.이다. 수식으로 살펴보면 아주 쉬워지는데,그건 책을 보시라. 다음으로 제시되는 게임은 <공공재 게임>이다.가로등 달기같은 것인데 쉽게 말하면 무임승차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라는 것이다.위의 게임에서 보듯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게 뭐로보나 유리함에도 실제 상황에서는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 것이 인간들이다. 헌혈도 하고 이웃돕기 모금도 하고 가끔 선물도 하고...  이렇게 이타적인 협조행위가 발생하는 이유를 증명하기 위한 가설이 등장한다. 혈연선택가설(이기적 유전자들이 자신의 유전자를 확산하려는 목적으로 협조한다)  반복-호혜성 가설(쉽게 말하면 니가 도와주니까 나도 한번 도와주지.또 언젠가 내가 손벌릴때가 있을지 모르잖아)등이 등장한다. 반복 호혜성 가설은 설득력이 있다.하지만 이것도 2% 부족한 가설이라고 한다.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반복성이  없어도 남을 잘 도와준다는 것이다.즉 다시 안 볼 놈도 도와주는 경향이 있더라는 것이다.이 한계를 풀기위해 값비싼 신호보내기 가설,유유상종 가설 등이 등장한다. 이 책의 장점 중에 하나가 이렇게 문제를 제시하고 그 한계와 그 한계에 대한 보충적인 가설등이 균형되게 설명되어있다는 것이다. 쓰다보니까 무슨 무슨 가설 괜히 어려워보이지만 저자는 아주 쉬운 예를 들어서 각 가설들의 예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값비싼 신호보내기 가설에서는 사자의 공격을 앞에둔 가젤이 도망가지 않고 펄쩍펄쩍 뛰기를 보여준다는 것,유유상종가설에서는 배우자를 고를때 정치적 성향상의 유사성이 중요하다는 것 등이다.

이외에도 <죄수의 딜레마>에서 만약에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면 어떠한 결과가 나올까(결과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에 의문을 둔 의사소통가설, 개인은 이기적이나 집단이 이타적일 경우 생존 확률이 높기때이라는 집단선택 가설,그리고 국지화를 통한 공간구조가 영향을 미친다는 공간구조 가설등이 이타적 협조행위를 설명하는 가설로 등장한다. 이 가설들은 절대적 가치를 지니지는 않으며 또 부분적 흠결을 가지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이타작 협조행위의 진실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책은 게임이론이 진행되는 과정을 각장마다 수식으로도 설명한다.근데 어떤 부분은 도표가 눈에 쉽게 들어오고 또 어떤 부분은 수식이 어렵게만 보인다.저자도 말한다.그냥 넘어가도 된다고.... 그래서  나 역시 마음에 드는 수식만 따라갔다.굳이 수식을 읽지 않아도 의미가 충분히 전달되는 상황에서 수식으로 넌덜머리 낼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이 책에 나오는 게임 중 '표류'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것이 있다. 세 부류의 그룹이 있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 TFT전략이다.남이 도우면 돕고 남이 거부하면 나도 거부한다.또하나는 무조건 협력 그룹이다.마지막은 이기적 그룹. TFT그룹에 이기적 그룹(무임승차)이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그 사회는 전부 이기적으로 변한다. TFT그룹에 무조건 협력 그룹이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사실 이 상태가 되면 무조건 협력과 조건부 협력 TFT가 별반 차이가 없다.계속 끊임없는 협력.즉 아무도 무임승차하지 않는 상태이다. 그러면 이제 아무 문제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협조적인 전략을 강제하는 TFT가 없어졌다는데 딜레마가 생긴다..... 외부에서  무임승차가 들어와도 이제는 무조건 협조밖에 남지 않는 것이고  결국 안정성이 떨어지게 된다.

사실 이것만 봐서는 뭔이야긴지 알 수 없을 것이다.책을 참고하시구....저자는 표류의 문제를  에드먼드 버크의 말을 인용하여 적용한다 "악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선한사람들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게임이론을 다양한 예와 다양한 사회적용력을 동원하여 초보자들에게 설명한다.게임이론이란 낯선분야를 접하는 나같은 사람에겐 아주 재미있고 관심을 끌만한 안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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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2-05 11:16   좋아요 0 | URL
제가 좋아하는 두분이 다 일렇게 멋지게 리뷰를 쓰셨으니 꼭 사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불끈!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케네스 C. 데이비스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저널리스트들의 글을 좋아한다.아무래도 대학 전공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일게다.저널리스트들의 글은 단순 명쾌하다.장황한 미사어구나 화려한 수식은 오히려 낙제점이 된다. 저널리스트들은 글을 읽는 대상을 고려해서 평이한 문체와 메시지가 정확한 글을 쓴다. 언젠가 신문을 보다가 한 학자가 우리사회를 분석하며 "아비투스"라는 단어를 쓴 글 본 적이 있다. 학자니까 충분히 이해가 된다.그런데 신문을 보던 대학을 갓 졸업한 후배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게 무슨 뜻이에요?" 한다. 그 용어가 학자와 그의 동료들에게는 일상적인 용어일 것이다.하지만 손님 기다리는 택시 기사나 좌판에 앉아 시간 때우는 상인들이 신문을 보며 그 단어를 이해할 수 있을까? 사회학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대다수 사람들은 그 단어를 알 지 못한다. 저널리스트라면 그 단어를 좀 풀어쓰거나 다른 용어를 생각했을 것이다.

이 책 <미국에 대해 알아야할 모든 것, 미국사>는 저널리스트형 역사서로서 훌륭하다.저자 케네스 데이비스는 미국 역사를 총 9개 장으로 나눈다.그리고 역사적 사안마다 질문과 대답 형식으로 알기 쉽게 미국사를 풀어가고 있다.이 책에 대해 일반적인 평가가 '읽기 쉽게 쓰여졌다'는 것인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 할 수 밖에 없다.대개 역사서는 좀 고리 타분한 책으로 평가를 받는다.사실 역사서 만큼 읽기 쉽고 재미있는 책도 그다지 많지 않다.그러나 과거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에 사람들은 기가 질려서 역사서를 멀리한다.그리고 대개는 '국사 교과서형 역사의식'에 만족한다.아니면 손쉽게  TV 드라마가 제공한 'TV사극형 역사'로 자신의 정보를 한정짓는다.전자는 역사를 현(또는 역사적 사건의 현)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로 제단된 역사만을 정사로 이해하게 만드는 편협성의 위험이 있다.또 하나 TV사극형 역사는 드라마작가의 상상력을 역사로 이해하게 만들 염려가 있다. 케네스의 <미국사>는 미국에서 대안교과서로 이용될 만큼 흐름과 내용에 있어서 훌륭하다.또한 역사를 바라보는 가치에 있어서도 어느 한쪽으로 과하게 치우치지 않는다. 건국의 아버지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그들이 만든 규범을 신화화한 세태를 비판한다.또 흑인문제에 대해서도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권리라는 측면에서 그들의 권리문제를 따라간다. 30년대 미국 재벌들의 역할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또 나름대로 의미로 인정한다.역사를 쓰는 사람이 그 나름대로의 사관을 버리기는 불가능하다.케네스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가치 하에서 적당한 줄타기에 성공하고 있다.그가 미국내 사회운동이나 사회주의에 대해 그다지 크게 다루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가능하다.하지만 일단 600페이지 정도의 통사에 그 모든 것을 꼼꼼히 다루기는 불가능했으리라 본다.일단 미국의 주류 역사에 대한 온건한 비판형 역사서로 파악하면 될 성 싶다.

이 책의 또 하나의 장점은 역사서 틈틈이 들어가 있는 '유머'이다.저널리스트들은 자신의 글에 하나의 포인트로 유머러스함을 가미한다. 이 유머는 촌철살인의 요소를 지닌다.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서 동떨어진 유머는 생뚱맞을 뿐이다.가끔 진중권,강준만,김규항등 대중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의 글을 잡지에서 본다. 내용의 정당성과 당파성을 배제하고 보더라도 그들의 글의 미덕은 유머이다.물론 가끔 과할 때도 있다고 본다.하지만 사람들이 그들의 글을 읽고 기억하는 것은 그들의 촌철살인의 유머러스한 문장이 한 역할을 할 것이다.이 책의 저자 케네스 역시 뛰어난 표현력으로 자신의 문장을 기억나게 한다.

"미국에는 늘 정신 질환을 앓는 이모 사진을 가족 앨범에서 떼어내려는,요컨대 과거의 어두운 부분은 지우려는 경향이 있었다."

"레이건은 시어도어 루즈벨트와 그의 방망이로 후퇴한 것으로도 모자라 백악관을 아예 깡패설교단으로 만들어 놓았다.그의 설교는 좋았던 옛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90년대들어 케네디 암살사건등 각종 음모론 영화가 사실인 양 평가되는 것에 대해) " 이 세대는 반정부 음모의 과대망상증을 텔레비전 예술로 승화시킨 x파일과 함께 자라난 세대이기도하다"

(클린턴과 조지부시의 TV토론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그의 리무진이 엔진과 미터기가 돌아가는 상태에서 이중 주차가 돼 있기라도 한 듯 연신 손목시계만 들여다 보았다."

저자도 지적했지만 미국사는 사실 미국인에게나 우리에게나 영화나 다큐멘터리로 익숙하다.콜럼버스의 미대륙 발견은 반젤리스의 웅장한 음악으로 기억되는 영화<1492>로 남아있다.미국 독립전쟁은 멜깁슨이 나왔던 영화 <패트리엇>이 기억난다.미국의 흑인노예사는 알렉스 헤일리 원작의 TV시리즈 <뿌리>가 명작으로 남아있다.저자가 미국사에서 가장 큰 사건으로 파악하는 남북전쟁은...내가 어려서 아버지와 함께 열심히 본 TV시리즈 <남과 북>을 떠올리게 한다. 웨스트포인트에 같이 입소하는 두 친구가 나중에 서로 남과 북군으로 갈려서 싸우는 내용이었다.그외에도 1차대전이나 대공황 시절을 다룬 영화는 수도 없다.그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파악하는데 강력한 이미지로 자리매김한다.2차대전 이후는 오히려 다큐멘터리가 익숙하다.미국의 매카시 열풍이나 케네디의 암살,닉슨의 워터게이트 등은 다큐멘터리로도 영화로도 수십편이 제작되었다.이 책을 보면서 알게 되었듯이 내가 알고 있는 미국사의 대부분도 이렇듯 영상 이미지에 고착되어있다.이러한 영상 이미지의 역사는 저자도 지적하듯이 역사를 왜곡하고 낭만주의적으로 채색한다.남의 나라 역사이긴 하지만 결코 바람직한 태도는 아닌 듯 하다.

 나는 오히려 촘스키나 하워드 진의 책들 통해 비주류 미국사에 대해 먼저 알았던 것 같다.내가 미국민이 아닌 이상 비판적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더 옳다고 믿는다.하지만 이 책을 골랐을 때는 왠지 그냥 그 아이들의 주류 역사를 한 번 주욱읽고 싶은 욕구가 생겼던 것 같다.머리도 식히고 정리도 하는 기분에서 말이다.화장실에서도 읽고 사무실에서도 읽고 하면서 600페이지 가량의 책을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읽었다.쉬운 역사서이자 또 중도주의적인 미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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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5-01-09 11:29   좋아요 0 | URL
이 책의 원제가 재미있네요. Don't know much about history.

시리즈물인 것 같네요. 이 책은 역사편인 것 같고...

보관함에 넣었어요. 미국사는 TOEFL reading에 항상 나오쟎아요. 예전에 TOEFL 선생님이 가람기획의 미국사 101장면을 읽으라고...그 책을 읽으면 지문을 대충 읽어도 내용 안다고 해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ㅋㅋ 그 이후로 비판적 시각으로 쓴 책들만 읽었지, 주~욱 읽을 수 있는 책을 읽은 적이 없었는데 반가워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사마천 2005-01-09 22:38   좋아요 0 | URL
앙드레 모로아의 미국사가 참 좋은책인데 한번 살펴봐주시죠.

도서관여행자 2005-01-10 09:38   좋아요 0 | URL
이 책, 작년에 읽었었는데 저도 그 유머들이 기억에 나는군요^^

마냐 2006-02-11 03:59   좋아요 0 | URL
간만에 땡스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