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을 표현하는 가장 우호적이고 적절한 말은 '전투적 자유주의자'이다. 최근에 트위터 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여전히 그는 그답다. 진중권의 싸가지 없음이라는 에티켓과 멘털리티를 가지고 그를 싫어 할 수 있다. 내 개인적으로도 그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고 만날 기회도 없다. 친하게 지내려면 김제동 같은 이들이 훨씬 재미있고 즐겁지 않겠는가?
일체의 싸가지 없음은 배제하자. 그리고 그가 던지는 문제의식을 따라가다보면 나는 내가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부분과 닿는 점이 있다. '합리성'과 '독립성'이다. 내가 그와 다른 점은 그보다 '덜 전투적' 이며 '덜 자유주의적' 이라는 사실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정치는 때로 그것이 사실이나 진실과 관련이 떨어지더라고,의지와 힘의 문제로 돌파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여기에는 윤리적 딜레마가 늘 상존한다.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정당성 사이의 긴장 같은 것이다. 나는 때로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폭력적 요소가 늘 그림자처럼 따라간다. 이런 폭력적 요소를 지양하도록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결코 순수한 형태의 합일은 도래하지 않는다. 현상적으로 목적과 수단이 동시에 정당화 될 수 있는 최소 접점을 찾고자 하는는 가치 지향만이 가능하다. 합리적 개인들의 다양한 의견 수렴이 힘을 최소한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답이 나온다. 다원적 책임을 통한 위험의 분배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는 전제에 대한 메타적 질문이 반드시 따라온다. '누가 합리적 개인인가?' 라는 원초적 문제말이다. 숙의민주주의나 의사소통민주주의에 반드시 달라 붙는 기본적 질문이다. 이 딜레마는 이런 논리에서 결코 풀리지 않는다. 내가 하버마스류의 의사소통론에 대해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부분은 그것때문이다.
진중권이 나꼼수를 비판의 주종은 팬덤 현상과 나꼼수의 음모론이다. 나는 나꼼수가 조중동과 대적해 성공적인 대안미디어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것은 조중동이 쓰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카운터를 날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조중동이라는 '깡패' 에 대해 '건달'의 방식으로 MB만 노린 것때문 말이다. 만약 MB만 노리지 않고, 더 광범위하게 체제 자체를 건드린다면 대중은 어렵고,두려워서, 모이지 않는다. 언젠가 말했듯이 나꼼수 강점은 나꼼수의 약점이 된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걸 진중권은 음모론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나꼼수가 제기한 문제들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면 나꼼수는 '아니면 말고'' 내가 첨부터 그랬잖아, 소설이라고' 라는 식으로 말하고 빠져나올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방식은 아주 오랫동안 공공연하게 조중동과 보수언론이 써왔던 방식이다. 일단 팩트의 정확성에 대해서, 즉 나꼼수가 말하는 것이 단순히 음모인지 아닌지는 정보력과 정보량 자체가 떨어지기 때문에 지금 당장 뭐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개연성이 있는 음모는 작은 팩트상에서 문제를 만들 수는 있지만 실제 전체적으로 사실관계의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자세를 취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스탠스다.
진중권이 트윗에서 연일 이슈를 만드는 것은 단지 음모론때문만은 아닌것 같다. 더 큰 이유는 '팬덤현상'이다. 진중권은 이 '팬덤'을 견디지 못한다. 그가 독설을 퍼부어 세간의 관심을 끈 사건들을 보면 '팬덤'과 관련있다. 심형래의 디 워 사건, 황우석 사건 등등... 문제를 다수의 대중들이 진영논리로 가지고 판단해 버리는 것. 이것을 합리성을 추구한다는 자유주의자 진중권은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그가 '전투적 자유주의자'이다. 정치적으로 그는 '사민주의자'에 가깝다. 어떤 이는 자기가 스타가 못되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게만 이야기해버리면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히틀러가 악마여서 파시즘이 발생했다는 것과 똑같은 논리니까. 나는 이 지점에 대해 진중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내가 언젠가 '오빠' 이외에 '-빠'가 되어 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그게 그거다. 어떤 이는 진중권이 미국 소고기 수입때 앞서 나가서 선동한 걸 가지고 뭐라고 한다. 그 때 자기가 영웅되니까 가만있고, 지금은 자기가 뒷방 늙은이니까 비판한다고. ㅎㅎ 소고기 때 도대체 어떤 '-빠'가 있었을까? 진중권이 칭찬은 받긴했지만 그 시위에서는 어느 누구도 '빠'인적도,'빠'가 된 사람도 없었다. 자발적인 시민 참여였고 자유주의자 진중권 역시 개인적으로,또 소속된 당의 당원으로 참가를 한 거 아닌가? 팬덤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나꼼수의 음모론과 비키니 사건때문에 나꼼수 열풍이 이제 조금 차분해졌는가 모르겠다. 진중권은 그의 트윗에서, 나꼼수 주요 성공 원인에 '반MB-노무현-민주당' 을 들었다. 나꼼수에 몰광(내가 만든 말이다. 몰빵으로 열광하는 )하는 내 친구들도 살펴보면 대개 그 라인이다. 그것이 대중의 정치적 염원이고 현상태의 지표라면 그런 현상은 그 자체로 인정한다. 문제는 그런 현상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과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합리적 정당성을 얻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나는 나꼼수 현상을 지지하고- 비록 2-3번 밖에 듣지 않았지만- 20대 청년들이 자기계발서보다 김어준의 책을 열심히 펼쳐보는 것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차원에서 나는 나꼼수의 한계와 비판의 주머니도 차고 있던 사람이다. 그 현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지만 열광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정확하다. 이참에 나꼼수의 문제와 진영논리들을 조금 더 차분하게 바라볼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진중권이 비키니와 관련된 최근 트윗에는 만약 '그 말을 MB가 했다면 어떻게 했을래?' 라고 반문했다. 아마 MB가 했으면, 탄핵 가자고 햇을 것 같다. 나꼼수가 사과해야 하는게 맞다. 첫번째, 사과할 만한 내용이다. 두번째, 이 문제로 발목 잡히면 곤란하다는 기술적 차원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내가 고등학교 때인가 매우 궁금했던 질문이 그거 였다. "만약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대로 선량한 민족이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면 만약 한국이 일본을 식민지배했으면 어땟을까?"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답게, 일본인을 평등하게 살기 좋게 해주었을까?" 답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문제 넘어서 있었다. 국가 폭력이나 제국주의와 식민담론이런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즉 '한국 대 일본'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면 오로지 '우리는 남과 달랐을거야'라는 옹색한 답변 밖에 얻지 못한다.
이거 매우 폭력적인 (?) 상식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