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황진이 - 주석판 - 역사와 소설의 포옹
김탁환 지음 / 푸른역사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대개 사건이나 사물에 대한 생각은 그것을 마지막으로 생각해 본 때의 인식수준으로 남아있기 마련이다.황진이에 대한 나의 생각 역시 마친가지이다.고등학교 시절 그녀의 시 한수를 배웠다.그리고 참고서에 달린 그녀의 일화들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벽계수,서경덕,지족선사들과 관련된 일화들이다. 여염집 여인들에 비해 사회적 교류가 잦았던 기생이란 신분이 그녀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선생님은 당시 기생과 요즘 술집에 나오는 그런 여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하셨다.당시 기생은 지조도 있고 시와 예에도 능한 격이 있는 엔터테이너 였다는 것이다. 내가 황진이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딱 그정도 수준이었고 그후 황진이에 대해 단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다.

이 책은 황진이에 대한 기존 시각에 더하여 변혁을 꿈꾼자라는 덧옷을 입힌다.황진이에 대한 기존 문헌의 시각을 한번 비틀어 봄으로써 새로운 황진이의 모습을 형상화 해 낸다.기존 문헌에 등장하는 황진이의 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재능있으며 어리숙한 사대부들을 비웃는 명기로서의 이미지이다.작가는 기존 문헌들이 황진이가 비웃던 사대부들의 손에 의해 씌어졌음에 그 혐의를 둔다.당대의 명망있는 선비들이라 하더라도 체제를 뒷받침하던 성리학의 논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음은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음이다.이 책에서 황진이는 직접 자신에 대해 변론을 펼친다.우선 시류에 도는 일화들이 자신의 신분을 우스개꺼리로 받아들이려는 시정의 어리석은 이야기임을 말한다. 황진이는 스스로 가슴속의 한과 재능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사람을 찾고자 했던 것 뿐이었다.그녀는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의 신분이나 학식에 연하지 않고 함께 소리를 나누고 함께 세상을 유랑한 것일 뿐이다.황진이가 서경덕을 만나 그를 스승으로 모신 것 역시 비록 세상을 구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그 무리속에 희망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세상은 서경덕이 뛰어난 인격으로 황진이의 유혹을 물리쳐 천하의 황진이도 감동했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개탄한다.황진이는 오히려 그런한 태도는 화담의 인품과 학식은 염두에 두지 않은채 남녀간의 상열지사문제로만 시선을 맞춘 한심한 일이라 탄식한다. 이 책을 보며 나 역시 힘을 가진 자들의 시각으로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그녀에 대한 내 생각이 머물러 있던 시점에서 그녀가 다시 복원되어 살아난 것이다.물론 황진이의 개인적 변론을 그대로 따른 다는 것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녀를 둘러싼 야담과 오해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가능성은 충분히 열어준 것이다.

이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재미는 주석의 한시를 읽는 재미이다.혹자는 본문보다 많은 주석읽기가 책읽는 재미를 떨어뜨린다고도 한다.물론 그런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본문의  문장 하나 하나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중국의 당시,송시부터 우리의 한시들까지 두루 포함되어 거기서 한문장씩 따온 것임을 생각하면 작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인용된 구절 역시 당대에 내노라하는 명시들로 구성되어있다.개인적으로 한시에 애정을 갖고 있는 나로써는 시를 읽는 재미도 솔솔했다. 딱히 주석이 너무 많아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분은 그냥 본문만 읽어도 상관이 없을 듯 하다.우선 다 읽은 후 다시 책을 대략 넘기다 맘에 드는 구절이나 모르는 부문이 있었다면 그 곳만 찾아서 읽은면 된다.

여름휴가 기간 동안 강원도 산골에서 한장 씩 넘겨서 그랬는지 다른 책들보다 여유롭게 읽었다.책보는 동안 어딘선가 난 향이 풍겼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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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비행 2005-02-08 18:11   좋아요 0 | URL
이 책을 보았을 때,저는 좀 어렵다 생각했는데 님 리뷰 읽어보니까 다시 한번 읽을 용기가 생겼습니다.; 한시도 그렇고,처음에 읽었을 때는 그저 내겐 너무 어렵다-이런 생각 뿐이었는데,다시 읽는다면 황진이에 대해서 좀 더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