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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치다 눈뜨다 - 인터뷰 한국사회 탐구
지승호 지음 / 그린비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우선 칭찬부터 하기로 하자. 인터뷰만으로 구성된 책을 서점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다.몇년전 인문서적으로는 꽤나 인기를 끌었던 <춘아 춘아 옥단춘아..> 이후 처음으로 인터뷰 책을 읽었다. <춘아 춘아..>가 출판사의 기획에서 나온 책이라면 <마주치다>는 저자 지승호의 개인적 노력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물론 출판사의 물심양면의 지원이 있었겠지만.) 인터뷰란 것이 사실 매체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특히 인터뷰는 매체의 특성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TV매체 속 인터뷰를 예로 들어보자. TV 인터뷰는 사실상 이미지가 가장 큰 역할을 맡는다. 시간 제약이라는 것도 있고 화면상 비춰지는 인터뷰이의 느낌이 내용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조금 형식은 다르지만 TV토론이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흔히 말하는 역사적 TV토론인 케네디와 닉슨의 경우를 보자.맥루한이 말한 '쿨미디어'인 TV에서 닉슨에 비해 케네디가 우세를 보인건 당연하다.양김씨인 김영삼과 김대중의 경우도 TV란 매체적 속성을 보자면 '쿨'이 강한 김영삼이 유리하다.이처럼 TV가 이미지에 좌우되는 경향을 갖는데 비해 지면이나 인터넷 매체는 인터뷰의 내용성을 담보하는데 훨씬 유리한 매체이다. 저자 지승호는 인터뷰라는 장르가 자리잡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성의와 열정을 가지고 나름대로 선구자적인 길을 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제 조금 쓴 소리를 해야할 시간이다. 우선 이 책에서 가장 흠잡을 곳은 '인터뷰이의 선정의 편재성'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터뷰이의 면면은 이렇다.김동춘,홍세화,한홍구,진중권,정욱식,손석희 등등... 나름대로 우리사회에서 진보주의자들의 선두에서 필명을 날리고 계신분들이다. 우리 사회의 진보진영의 고민과 현 시국을 바라보는 진보의 목소리를 듣는데 이 책을 쓴 목적이 있다면 나름대로 성공적이다.하지만 다분히 개인적인 감상인데 좀 지루하다는 느낌이다.오히려 수구꼴통이라는 조갑제,정형근,김용갑씨등의 인터뷰가 있었으면 훨씬 다이나믹하고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국 인터뷰이 선정에 있어서 좀 지루하게 된 면이 없지 않다. 개혁적인 성향의 사람들이라면 이미 위 인터뷰이들의 책들을 한두권쯤은 읽었을 것이다. 이 내용들이 동어반복적으로 각기 다른 인터뷰이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다.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몇몇 말들을 생각나는 데로 적어보면 이렇다. 해방이후 진보공간이 설 자리가 없었다. 한국전쟁과 개발독재시기를 거치며 빨갱이컴플렉스가 국민의 의식속에 내재화 되었다.우리가 저지른 국가폭력에 대해 인정하고 자성해야한다.등등등.... 사실 이러한 내용에 관심이 없는 국민의 대다수일 지도 모른다.그런 차원에서라면 끊임없이 외쳐야하는 것이 사실이고 또 당연하다.하지만 책 안에서 여러화자를 통해 반복되는 이이야기들은 좀 정리했어도 괜찮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들의 책을 몇권씩 읽었음에도 이 책을 또 보는 이유는 단지 학습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이들의 비판적인 생각에 동의하고 100% 공감함에도 같은 이야기를 여러번 듣는 것은 지루하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한홍구와 정욱식이 말한 '진보진영의 안보,국방 전문성 결여'이다. 저자도 말하고 있지만 이렇게 된 데는 역사적인 맥락이 있다. 독재세력에 빨갱이로 몰리던 집단이 국방이니 안보니 하는 분야에 접근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국내적인 민주화 문제가 발등의 불이였기에 대외적인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하지만 조속한 시일내에 진보적인 안보개념과 국방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나와야 할 것이다. 전문 인력충원이나 장기적으로 인력풀을 동원해야만 하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가장 재미없는 인터뷰는 손석희였다. 가끔 출근길에 그의 방송을 듣는데 그때만다 '이사람 딱 자기 할 것만 하는군.정나미 없네.' 이런 생각을 한다.인터뷰에서도 그랬다.방송진행자로써 객관성과 공정성이라는 무기가 인터뷰이로써는 최악이 된 듯하다. 방송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사회적 위치가 스스로의 대외적 의식이나 이미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자기일 열심히 하는 사람한테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 역시 투표하러 가면 누군가 찍어야할 텐데 그 속내를 밝힐 수 없는 사람의 심정도 참 답답하겠다는 생각은 든다.어쨋거나 손석희 인터뷰의 대부분은 " 제 위치에서 그부분에 대해서 뭐라할 수 없군요"가 전체적이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늘 분쟁의 소지가 되는 진중권에 대해 한마디 해야겠다. 그의 발언이 인신공격적이고 그의 태도가 오만한 것은 사실이다.김어준이 '자기 무오류성'에 빠졌다고 본 것도 어느정도 인정해야한다. 본인은 본인의 글쓰기를 도발하기 위한 글쓰기라고 규정했다.그렇다면 다분히 공격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 줘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 나온 인터뷰이 중 진중권의 사회적 위치가 가장 자유롭다. 겸임교수가 직함의 전부인 듯한데...당연히 사회적 위치가 가져다 주는 의식성에서 자유롭다는 뜻이다. 이것 저것 눈치 볼 것도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중권의 도발적 글쓰기는 그의 전술인 듯하다.논리적으로 반론펴라고 하면서 자신의 공격에 인신공격적인 양념을 쳐놓는다.받아 들이는 입장에서는 양념을 제거하는게 급선무가 되다보니 늘 지면은 부족하고 시간도 모자란다.나 역시 진중권이 이제는 전술적 변화를 주기를 기대한다.하지만 그의 지적들은 충분히 유효하고 귀담아 들을게 많이 있다.그의 과도한 NL에 비판 역시 문제는 있지만 개인적으론 동의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또 이 책에도 실린 유시민 비판에는 거의 99% 동의한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보여준 유시민의 정치적 수완들은 욕을 먹어야한다.그 특유의 말빨과 상황논리에 수많은 비판적 지지자들이 힘을 얻었고 또 다른 사람을 설득했다.그건 옳지 않았다.앞으로도...
앞으로 이런 인터뷰 책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하지만 좀 더 다양한 층의 다양한 목소리가 섞여있는 다이나믹한 인터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