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춤 / 곽재구


첫눈이 오기 전에
추억의 창문을 손질해야겠다
지난 계절 쌓인 허무와 슬픔
먼지처럼 훌훌 털어 내고
삐걱이는 창틀 가장 자리에
기다림의 새 못을 쳐야겠다
무의미하게 드리워진 낡은 커튼을 걷어내고
영하의 칼바람에도 스러지지 않는
작은 호롱불 하나 밝혀두어야겠다
그리고 춤을 익혀야겠다
바람에 들판의 갈대들이 서걱이듯
새들의 목소리가 숲속에 흩날리듯
낙엽 아래 작은 시냇물이 노래하듯
차갑고도 빛나는 겨울의 춤을 익혀야겠다
바라보면 세상은 아름다운 곳
뜨거운 사랑과 노동과 혁명과 감동이
함께 어울려 새 세상의 진보를 꿈꾸는 곳
끌어안으면 겨울은 오히려 따뜻한 것
한 칸 구들의 온기와 희망으로
식구들의 긴 겨울잠을 덥힐 수 있는 것
그러므로 채찍처럼 달려드는
겨울의 추억은 소중한 것
쓰리고 아프고 멍들고 얼얼한
겨울의 기다림은 아름다운 것
첫눈이 내리기 전에
추억의 창문을 열어젖혀야겠다
죽은 새소리 뒹구는 들판에서
새봄을 기다리는
초록빛 춤을 추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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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며칠 지난 신문을 넘기다가 우연히  '약자들의 생존의 법칙'이란 단어를 눈에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자연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생존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희망'입니다. 매번 약탈 당하고, 착취당하고 지기만 하는 사람들. 하지만 결코 사멸한 적이 없습니다. 멸종된 적도 없습니다.  인류는 한 줌의 '희망'이라도 깊이 깊이 주워 담는 마음을 유전자 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강한 자들을 정말 분노케 한 일은 바로 그 작은 '희망' 하나를 결코 없앨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입니다.  인류의 수많은 생존과 죽음, 진보와 퇴보의 역사 속에 약자의 유전자에 깊이 아로 새겨진 최후의 DNA. 신화는 호기심 많은 여인의 우화를 통해 그들이 알아낸 인류 유전학의 비밀을 전하고 있지요. 더 강력해지고 더 현명해진 적들도 약자들의 무기가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단 한명이라도 그 '희망'에 접속하는 것을, '희망'의 무한 핵분열하는 것을 막고자 합니다. 조롱하고 무화시키고, 위협합니다. 때로는 무해한 희망의 분출을 열어주는 현명함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조건으로 해서도 '희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참 질기고 고마운 유전자입니다. 그것은 인류의 수 십만년의 역사가 또 수 천 수 만의 붉은 희생이 만들어 준 물려받지 않을 수 없는 유전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내년 2013년에도 우리는 더 많이 희망을 꿈꾸고, 더 많이 희망 하고, 더 많은 희망을 불러 모으고, 더 많은 희망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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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31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1.무슨 말들을 하는지 집중하고 보려고 해도 넉줄 이상 읽기가 힘들다. 원래 없던 관심을 갑자기 키울 수도 없는 법. 하던데로  눈팅과 무관심의 역학 법칙을 지속하기로 한다. 복학생 형님 같은 전지적 위로 따위는 오글거려서 어차피 체질에 맞지도 않으니 더 말할 것도 없고.

 

2.문득 책장의 책을 뒤적이다 눈에 들어온 문장.

 

사유,/즉 자신의 강압 메커니즘 속에 자연을 반영하고 되풀이하는 사유는/ 자신의 철두철미함 덕분으로 /스스로가 또한 강압적 메커니즘으로서의 /'잊혀진 자연'임을/ 드러낸다.  <계몽의 변증법> 중에서...

 

/ 표기가 되어있다. 문장이 잘 안들어올 때 밑줄 긋고 다시 문장을 나누어 읽으며 하는 짓이다. 문장이 안들어오는 이유는 이해부족도 있겠고, 그 문장을 읽던 당시 딴 생각을 해서 일 수도 있다. 음악에 잠시 귀를 기울인다거나, 뭔가 성적인 생각을 한다거나, 업무와 관련된 일을 미리 시뮬레이션한다거나...하여간 딴짓이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은  클래식이다. 니체나 벤야민,아도르노 같은 이들의 글을 보고 있으면 좌절감이 생긴다. 이런 사유에 이런 문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인간들인가 하고 말이다. 

 

3. 오늘 낮, 회사 자료실에 들렀다가 <한겨레21>을 잠시 열어봤다. 지난주 것 같았다.<건축학 개론>이 특집이다. 결국 '세대론'의 반복인 셈이다. 90년대의 소비세대의 문을 연 신세대가 자라나서 이젠 복고적 소비중심축으로 등장한 셈이다. 문화시장의 트렌드가 7080세대에서 이제 90세대로 넘어온다는 뜻이다. 징후는 <나는 가수다>의 폭발적 인기부터 예감된 것이다. <건축학 개론>은 이를 명백히 가시화시켰다. 

 

<건축학개론>의 첫사랑 이야기 속에 윤대녕의 <상춘곡>의 한 문장이 인용되었다. <상춘곡>이라는 단편은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그저 윤대녕의 희미한 그림자일뿐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를 처음 알게된 작품<천지간>은 TV문학관에 나온 심은하와 김상중 때문에 유독 기억이 생생하다만. 하여간  기자가 인용한 글은 이거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멀리서 얘기하되 가까이서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야 서로의 생에 다만 구경꾼으로 남은들 무슨 원한이 있겠습니까. 마음 흐린 날 서로의 마당가를 기웃거리며 겨우 침향내를 맡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된 것이지요......당신은 여인이니 부디 어여쁘시기 바랍니다."

 

......

뭐라고 해야할까?  기쁜 마음이 들었다. 드디어 20대 아니 이후 30대 어느시절, (워낙 철이 늦게드는 사람이라) 나이 들어 만나고 싶던 그 지점에 도착했다. 비로소. 오는 길이 쉽지 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이렇게 왔다는.  늦었나 싶어 부끄럽기도 하고 머쓱거리며 대견스럽기도 하다는.

 

물론 나는 앞으로도 더 떨릴테고, 그 떨림을 자책과 자부심으로 안고 운명처럼 살겠지만, 저 문장을 읽고 난 뒤 내게 밀려온 감정은 그거였다. 이제 거기까지 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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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12-04-19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80년대 중반생인데 90년대가 2000년대보다 더 친숙해요. 90년대엔 초중딩으로서 맘껏 텔레비전도 보고 언니 오빠들 쫓아다니며 놀았는데 고등학교 들어가고 나니 공부하느라 누가 가요프로 1위 하는지도 모르겠더라구요. 3월 초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90년대 특집하는데 입을 헤 벌리고 봤죠. 드팀전님의 그곳에 다다른 그 마음이 이해간다고 하면 혼날려나요? ㅋㅋㅋ

드팀전 2012-04-20 09:40   좋아요 0 | URL
제가 좀 느려서 그런 거니까 전혀 문제될 꺼 없습니다. 모든게 육체적 나이와 정비례관계로 가는 것은 절대 아니니까요. ㅎㅎㅎ
 

환멸과 허무에 빠져 분노와 소외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제대로 산 사람이 아니다. 내게는 아무것도 해보지 않았다는 말 처럼 들린다.  최소한 내 밑둥이 흔들리는 짓은 애시당초 거리를 두었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냥 반창고 하나, 머큐롬 한방울이면 나을 정도의 위험만 감수하는 삶. 그것이 육체적이든, 정서적이든, 감정적이든,또는 철학적이든. 그리하여 그들은 늘 강 건너 편으로 공성전과 비방전은 한다. 하지만 기동전과 진지전은 하지 않는다. 이건 비 맞고, 옷 젓고, 기다리고, 지치고, 피 흘리고, 뛰쳐나가고, 때로는 숨어서 머리통을 감싸쥐고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  

후자의 전쟁을 하는 사람들은 늘 환멸과 허무에 빠진다. 특히 분노를 일으키는 것은 기만적인 일들이다. 아리따운 말로 기만하는 사람들.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으련다. 어제 예를 한가지만 들자. 기권? 중도적인가? 그가 한 일이라고는 정족수를 채워 투표를 성립시켜 준  일이다. 이런게 다 기만인데 그런 기만이야 읽히든 말든 내 알바 아니다. 그것보다 더한 것도 기만하는 세상에 뭐 그런 것까지 읽으라고 요구하랴.   

어쨋거나 두더쥐는  땅을 판다. 땅을 파는 게 두더쥐니까.암 그래야지.ㅎㅎ 

기만과 적대하느라, 또는 환멸과 허무가 너무 쌓여서  나를 상하게 할 때 나는 이 시를 찾아 읽는다.  

식사법 -김경미

콩나물처럼 끝까지 익힌 마음일 것

쌀알빛 고요 한 톨도 흘리지 말 것

인내 속 아무 설탕의 경지 없어도 묵묵히 다 먹을 것

고통, 식빵처럼 가장자리 떼어버리지 말 것

성실의 딱 한가지 반찬만일 것

 

새삼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제명에나 못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과 후회의 돌들이 우두둑 깨물리곤 해도

그깟껏 마저 다 낭비해버리고픈 멸치똥 같은 날들이어도

야채처럼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할 것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도 생선처럼 미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의 삶, 을

잘 넘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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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 

                    -문인수 

대형 콘크리트 수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 겨우 알겠다.
흐린 물 아래 도다리란 놈들 납작납작 붙은 게 아닌가.
큰 짐승의 발자국 같은 것이 무수히
뚜벅뚜벅 찍혔다.
바다의 끊임없는 시퍼런 활동이,
엄청난 수압이 느리게 자꾸 지나갔겠다.
피멍같다. 노숙의 굽은 등
안쪽 상처는, 상처의 눈은 그러니까 지독한 사시 아니겠느냐. 들여다볼수록
침침하다.
내게도 억눌린 데마다 그늘져
망한 활엽처럼 천천히
떨어져 나가는, 젖어가라앉는, 편승하는

 

저의(低意)가 있다.

 

당신의 비애라면 그러나
바닥을 치면서 당장, 솟구칠 수 있겠느냐,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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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도다리, 가을 전어' 다. 어제 수족관 바닥에 배를 깔고 있는 도다리를 한참 바라보다 시를 쓰지는 못하고 문인수 시인의 '도다리'를 생각해 냈다.   

 이 시의 절창은 마지막 연의 반복되는 질문에 있다. 그리고 이것이 '도다리'인 나를 무겁게 누르고 있는 '저의'이기도 하다.  온갖 애상과 자질구레한 과잉화된 자의식을 단칼로 물릴 수 있는... 

솟구치지 못하려면 

소리없이 비단을 벨 수 있는 파란 칼이라도 하나 숨겨놓은 나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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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반독보심화 (江畔獨步尋花) 
  
                          두보
 
강상피화뇌불철 (江上披花惱不撤)
무처고소지전광 (無處告訴只顚狂)
주멱남린애주반 (走覓南隣愛酒伴)
경순출음독공상 (經旬出飮獨空床)  

강가 온통 꽃으로 화사하니 이를 어쩌나.  

알릴 곳 없으니 그저 미칠 지경 

서둘러 남쪽 마을로 술친구 찾아갔더니 

그 마저 열흘 전에 술마시러 나가 침상만 덩그렇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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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벚꽃이 이제 피기 시작했다. 이번 주말이면 절정을 이룰 듯 하다. 아름다움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 것도 고독함을 가중 시킨다.  

발레리나 폴리나 세이오노바의 몸짓을 보면 벚꽃의 궤적이 생각나고,또한 오래전 두보거 보았을 꽃이 만발한 강둑도 떠오른다.   

아름다운 봄이 시작되었다. 벚꽃 강둑 위로 출근하니 이것도 작은 행운이다. 잠시나마 창 밖의 한 조각의 햇살과 당신 뒤의 가장 커다란 하늘과 발긋발긋 솟아오르는 작은 봄의 아기들에 시간을 할애할 일이다.  

예찬이는 오늘 감자 심으로 갔는데 그 녀석 보고 싶다. 고슬고슬한 새 흙 만지고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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