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는가 - 現代 韓國의 自生理論 20
교수신문 엮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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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먼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정리한 책은 아니다.일반 독자의 지적수준을 무시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한계는 이 책의 출전이 교수신문이라는 제한된 매체에 있기 때문이다.교수신문이 우유와 함께 배달되는 조간신문도 아니고 신문가판대에서 'ooo 연애인 벗었다'란 기사를 달고 있는 옐로우 저널들과 함께 팔리는 신문도 아니기 때문이다.계급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 사회의 교육자본과 문화자본의 상층피라미드를 차지하고 있는 교수(님)들이 서로 논쟁하며 쓰신 글이기때문이다.이런 이야기를 하면 이론에 '이'자만 나와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보통사람들은 책 표지조차 보기 싫어할 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일반인들의 '이론기피증'이라는 선입관도 있지만 또 우리의 이론생산 계층이 현실과 많이 유리된 상아탑안의 그들만의 놀이에 열중했기때문이라는 비판도 피할 수는 없다.이런 비판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세계 인식의 보편성을 제공하고 숨겨진 세계의 1인치를 보여주는 이론의 영량을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서구 이론이 판치는 세상에 해방후 전개된 우리 이론들 중 굵직 굵직한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편집자도 들어가는 말과 나오는 말에서 분명히 정리했지만 이론의 선정작업에서 보편성이란 이론의 고유역할과 한국적 상황이라는 특수성을 상호만족시키는 것들을 골랐다고 한다.물론 이 책에 선정된 이론 중 이론이라기 보다는 선언이나 종교적 논제로 흘러버릴 위험을 가지고 있는 것들도 있다.다른 동료교수들이 이에 대해 친절히 비판해 놓았기 때문이 선정된 이론중 어떤 것이 그런 것일까는 직접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에 선정된 우리 이론을 보며 이론형성의 과정뿐만이 아니라 이론생산자로써 지식인이 사회와 갖는 관계측면도 고려된 듯 한 인상이든다.그만큼 한국의 특수한 상황은 지식인에게 이론의 형성만을 요구하지 않았고 또 시대를 움직인 지식인들은 이론제시에만 머물지 않고 적극적인 참여를 병행했다.

'사구체논쟁''민족경제론'의 박현채,'분단체제론'의 백낙청,'분단사학'의 강만길,'민중신학'의 안병무 '전환시대의 논리'의 리영희,이효재,김지하 등등...늘 현실 정합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지식인으로서 사회에 대한 책임을 도외시 하지 않았던 이론가들이었다.물론 이론이 실천을 담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이론도 예술이 그러듯 나름대로의 생명을 가지고 그 안에서 자양분을 얻고 또 비판과 반비판을 거치며 성장할 수 있다.그리고 또 그 과정을 통해 수많은 후속이론들의 모델을 양산할 수 있다.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이다.하지만 이론도 다 세상의 일이고 사람의 일이다. 이론이 교수신문과 상아탑 안에만 머무는 강단철학 수준에 만족한다면 이론으로써 반쪽의 성공밖에 안된다고 말하고 싶다.

강준만이나 진중권의 게걸스런 글쓰기가 여기저기서 욕을 먹는다.또 속을 드러낸 정치적 성향의 글이 눈에 거슬릴 수도 있다.하지만 우리의 이론 생산자들은 그들이 갖는 대중지향을 참고하여야한다.사실 이론이 필요한 사람들은 학자만이 아니다.세상을 인식하고 1인치 깊게 넓게 보는게 왜 학자들만이 가져야하는 특권인가? 사실 현상적인 것들을 종합하고 의미를 파악하는 필요는 학자들보다 일반인에게 더 긴요하다.그렇다면 우리의 이론이 근대성의 한계넘기,탈식민지성의 한계넘기도 중요하지만 상아탑의 교문을 넘기가 더 시급한 일이 아닌가한다.개인적으로 김용옥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그의 쇼맨쉽이 좋은 것도 아니다.그리고 그의 해석이 옳은지 그른지도 모르겠다.하지만 동네아줌마들이 논어를 한번 펴보고 슈퍼아저씨들이 장자의 한구절을 인용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한다면 그를 옹호하고 싶다.

우리의 이론은 20세기 한국의 고단한 역사속에서 나름대로 현실과 투쟁해가며 자생해왔다.어느덧 2004년, 미국의 패권은 나날이 기승을 부리고 세상은 자본주의의 북소리와 무한경쟁이라 깃발을 휘발리며 지구를 휘감는다.숨가쁜 이곳에서 한 줌 숨구멍을 뚫어줄수 있는 또 다른 우리이론의 탄생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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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박정애 옮김 / 큰나(시와시학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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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눈 앞에 있다.거리를 형형색색의 트리가 물들이고 있다.팬시점에도 알록달록 카드들이 주인을 기다린다.초등학교때는 예쁘고 신기한 카드를 고르는 것도 이맘때의 재미였는데 요즘은 시들하다.방학 선생님께 보내는 카드는 그 중 늘 으젓한 것이었다.학년이 올라갈수록 선생님께 카드를 보내는 일은 줄어들었다.그런데 느즈막한 대학 3학년때 한 시간강사 선생님께 카드를 보냈다.그분이 여성학 선생님이었다.한 학기동안 재미있는 강의를 들어서 고맙다는 인사였다.또 남성중심사회에 사는 가해자로써 그동안의 잘못에 대해 반성할 기회를 주신데 대한 인사였다.

벨훅스의 책은 부피가 얇다.서양에서는 이런 책을 팸플릿이라고 한단다.책의 두께가 얇다는 것은 독자에게 우선 안심이된다.마음의 부채를 안고 살듯 남은 책장 수를 헤아리는 것은 누구나에게 괴로움일테니까. 이 책은 얇은 만큼 페미니즘의 쟁점과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물론 실천적 활동가로써 작가의 활동을 반영한다.벨 훅스는 진보적 페미니스트이고 또 흑인 여성이다.그리고 미국 여성이기도하다.그러므로 책의 내용,그중에서도 페미니즘의 역사부분은 미국 페미니즘의 흐름이다.그렇다고 우리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큰 틀에서 우리의 페미니즘 역사 역시 미국의 그것과 그리 다르진 않기 때문이다. 작가가 특히 강조하고 있는 인종문제와 관련된 페미니즘 역시 그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우리로서는 전부 이해하기란 어렵다.단일민족이란 허구아래 유난히 미군 부대 아니면 흑인 보기 어려운 나라에서 흑백갈등,흑인차별의 역사와 한을 이해하기란 결코 쉬운일은 아니다.단지 피억압자로써 인류애적인 애정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벨 훅스는 기존에 만연한 주류 페미니즘에 대항하는 페미니스트이다.주류의 페미니즘을 흔히들 개혁적 페미니즘 또는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이라고 한다.벨 훅스는 이런 주류페미니즘이 가부장적인 남성중심주의에 근본적인 메스를 대지 않는다고 본다.계급과 인종문제등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녀는 주류 페미니즘을 교육 받은 백인 여성들이 그들 계급의 비슷한 남성과 같은 정도의 대우를 받기 위한 투쟁이라고 바라본다.우리가 알고 있는 '성공한 여성추켜세우기'식 페미니즘 역시 근본적을 이와 유사하다.'성공한 여성 신화'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주류 미디어가 담금질한다.그렇게 함으로써 여성의 사회진출과 성공이 마치 페미니즘의 궁극적 지향인양 오해하게 한다.성공을 위해 못된 여자가 되자는 류의 책들은 결국 이런 사회적 통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여성이 자신의 권익을 찾기위해 용기를 내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지극히 권장하고 당연한 일이다.하지만 남성중심적 사고에 적응하여 그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남성사회의 대상으로써 그 중추에 오르려는 것은 결국 또 다른 남성을 양산하는 것과 다를 바없다.목적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없는 영악함이요 도구적 이성의 남발일 뿐이다.

벨 훅스의 기존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비판은 이어진다.바로 대안없는 운동의 지향성이다.초기 토론중심의 자율적 운동이 아카데미의 틀안으로 들어가면 생기는 문제부터 지적한다.페미니즘이 어렵고 학자들이나 하는 이야기라는 일반의 생각은 이때부터 나온 것이라고 본다.그리고 초기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을 적으로 생각했던 레즈비언이나 동성애자들에 대한 오류등이 지적된다.현대에 있어 페미니즘 역시 내거티브 전략을 취한다고 지적한다.그러므로써 지배적 남성권위 하나가 유일한 존재의 근거였던 많은 보통남자들의 등을 돌리게 했다고 아쉬워한다. 벨 훅스는 '여성화한 남성'이란 대안보다 진일보한 동일한 인간으로써의 가치를 상호인정하는 대안을 모색하길 권한다.물론 이 작업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도 인정한다.그러므로 초기 페미니스트들이 했듯이 끊없는 설득과 토론,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을 강조한다.

대한민국은 전근대적 요소와 군사주의의 문화가 혼재되어있다.이 땅에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선 깨어야할 알이 너무 많다.세상의 거대한 소수자인 여성문제 역시 그중 하나이다.바로 우리 어머니,아내,동생,친구의 이야기이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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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오 휴버먼 지음 / 책벌레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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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자못 위압적이다. 80년대였다면 가방에 넣고 다니다 불온서적으로 걸리기 딱 좋은 제목이다. 하긴 어떤 선배는 가방안에 막스 베버의 책을 가지고 다니다 검문에서 ' 이 막스가 그 맑스랑 무슨 연관이 있는 사람이지? '라며 책을 압수당했다는 웃지못할 이야기도 전설처럼 남던 시절이니까...

책 제목의 그럴싸한 혁명성에 비해 책의 내용은 평이하다.평이하다는 말이 곧 수준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이성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자본주의의 형성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했다는 뜻이다. 책 후미에 어느 외국 고등학교에서 사회교과서로 쓰였다는 이야기가 이 책이 얼마나 읽기 편하게 씌여졌는지 그 예가 될 듯 하다. 저자가 좌파적 저널에 지속적으로 글을 썼던 사람이어서 학술적인 용어를 자제하고 훨씬 대중적인 접근을 택했기 때문이리라.

우선 자본주의의 형성을 위해 저자는 중세시대부터 꼼꼼하게 사회의 부가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위해 축적되는지 살피고 있다.한마디로 자본주의의 역사는 착취와 피착취의 역사이다.물론 작가가 이처럼 이분법적으로 잘라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자본주의는 그것보다 훨씬 복잡한 이해관계와 사회적 맥락을 담고 이루어졌다.하지만 극단순화해 본다면 그러한 결론도 충분히 도출될 수 있다.작가는 사회적 이해관계와 새로운 계급의 탄생,그리고 부를 둘러싼 헤게모니를 역사적 필연성으로 설명한다. 그러면서 무자비한 이윤의 추구만이 목적인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괴물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을 소상히 설명한다.

특히 이 책이 눈에 띄는 점은 각 계급간의 대립이 발생했을 때 당시의 소송문이나 판결문등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리얼하게 그릴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남미로부터 유럽으로 유입된 금은으로 인한 유럽의 실제 물가상승을 한탄한 탄원, 국왕의 돈줄이 되었던 거대 카르텔이 국왕에게 보낸 협박성 편지,식민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한 모험가들의 편지, 몰락하는 봉건 영주들이 자신의 사유지를 상인들에게 판매하는 계약서 등등.. 이러한 충분한 자료들은 화면을 과거로 돌려 당시의 상황을 독자가 개연성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많은 독자들이 그랬겠지만 이 책의 가장 아쉬운 점은 대공황시기까지 만 자본주의의 역사가 쓰여졌다는 것이다.책이 1930년대에 쓰여졌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하지만 이 책은 지금과 같은 다국적기업 중심의 신자유주의가 형성될 수 있었던 물적토대가 어떠한 착취과정을 통해 어떻게 미화되면서 만들어졌는지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틈만 나면 자본주의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야라고 외쳐대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어려운걸 싫어하니까 더욱 이 책이 좋다. 그들이 우리 생활에 밀접해 있는 자본주의가 어떤 피의 역사를 가지고 만들어졌는지 안다면 마이더스가 황금을 숭배하듯 자본주의를 자랑스럽게 떠벌이고 다닐 수 만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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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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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아침부터 눈이 내릴듯 하늘이 부시시했다. 대학교 합격자 발표날이었다.물론 합격한 사실은 발빠르게 전화로 알아보았다.하지만 뉴스에도 꼭 나오지 않던가 합격자 명단 게시판앞에서 이름을 찾아보는 애들. 나 역시 그 짓을 한번쯤 해보려고 앞으로 모교가 될 학교를 찾았다.게시판 앞에서 이름 한 번 확인하고...합격자 중에 여자 이름은 몇명인지 확인했다. 기억에 6명쯤이었나.(남녀공학 대학 다니는 남학생들은 대부분 이런 일을 한다. 근데 나중에 알았다.그중 한명은 남자였고 단지 이름만 여자이름 같았을 뿐이었다는 걸.우리 모두 분개했던 기억이 난다.)

게시판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으니 선배인듯한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과 합격했어요?.축하해요.난 같은과 %% 학번인데.. '그 선배에 이끌려 어리버리 과방인데라는 델 같다.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길 하길 한시간. 왠지 너무 가까와지는 것 같아 약속있다고 거짓말하고 일어섰다.그때 그 선배가 입학하기전 방학때 읽어보라고 메모지에 책 10여권을 적어주었다.

대충 내기억에...태백산맥,다시읽는 우리 역사,청년이 서야 조국이 산다.....등등 그런 책들이었다.받아서 꼬깃 꼬깃 접어 바지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세탁기 돌릴때 함께 돌렷다.물론 방학때 그거 읽고 있을 시간없었다.입시지옥에서 해방되었는데 또 책상머리에 앉아있으라니..

시간이 흘러 입학하고 ...세미나란거 하면서 우리 현대사란 거에 대해서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순 구조에 대해서 분단의 현실에 대해서 알고 배우게 되었다.맑스도 배웠고 포스트 맑스와 당시 바람불기 시작하던 포스트 모더니즘이란것도 슬깃슬깃 접하게 되었다. 당시 목에 핏대 올리던 그 선배들,친구들...이제 그 사람들이 같은 의식으로 같은 방식으로 살고 있진 않다.하지만 내겐 그 의식화(?)의 시간들이 세상과 내 의식의 한 맥을 뚫은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앞으로도 자양분이 되어 끝없는 반성과 성찰의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

국방부시계가 돌아가 듯 나도 물론 선배가 되었다. 그리고 후배들과 그러그러한 책들을 보며 이야기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같지않은-함량미달의 토론이란것도 했을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역사의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우리가 고등학교때까지 교과서에 서 배운 역사는 여러모로 반쪽의 역사였다.한반도 남쪽만의 역사 또 가진자들의 역사,그리고 근대라는 시대적 요구에 갇힌 역사였다.그래서 재미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대학가서 배운 역사는 재미있었나? 의미라는 측면에서는 그랬을지 모른다.(그리고 사실 의미가 더 중요했을 수도 있다.하지만 영민한 사람은 두마리토끼 다잡는다.^^)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교과서 역사나 대동소이했다.그리고 역시 시대적 한계때문이었겠지만 개인보단 집단이 늘 중요시 되었다.

이 책은 우선 읽기 쉽다.그리고 우리의 왜곡된 역사에 대한 문제제기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근대적 한계에 대한 비판도 보인다. 대학다닐때 이런 글이 나왔으면 좀더 즐기며 역사세미나도 하고 그랫을텐데...이 책의 내용들의 근간을 이루는 사건들이나 문제의식은 사실 쉽게 대해서는 안되는 부분이다.하지만 그것도 즐겁게 읽고 즐겁게 느끼자는데 시비걸자 누구인가? 꼭 중늙은이 대학교수마냥 심각한척 하는 것만이 의식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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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팍 2006-04-02 10:37   좋아요 0 | URL
이 책 괜찮게 읽었어요. 이 교수님 강연회 가고 싶었느데 못 가고 말았네요;;3권도 나왔던데;;이런 책은 한 번 쯤 읽어줘야 ㅋㅋ
 
예수는 없다 - 기독교 뒤집어 읽기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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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나의 첫 만남은 사탕과 웨하스의 유혹에 의해 이루어졌다. 여름성경학교에 쫓아가면 과자를 공짜로 먹을 수 있다는 전도사님의 감언은 동네꼬마들로써는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큰 도화지에 써있는대로 '밀과 보리가 자라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등 찬송가를 율동과 함께 큰소리로 따라부르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기독교인으로서 나의 생활은 중3때 멈추게 되었다. 수백명이 참석한 예배였던걸로 기억한다.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열심히 기원하기 시작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 기도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숭고함... 신성함. 솔직히 이런 감정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세련된 현대식 건물에 모더니티한 십자가상, 그 일사분란함과 하나로 모여진 군중의 힘은 나로 하여금 전체주의의 선입견을 주었다. 또 마음 한구석에서 '만약 이게 허상이라면..?'이라는 질문이 들었다.

그이후 보충수업은 종교논쟁의 장이 되었다. 교회다디던 친구들은'악마가 널 유혹한거다' '하나님이 널 시험에 드시게 한거다.'라는 신화적인 이야기들을 해댔다. 물론 어느 순간 더 이상 대화가 진전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었다. 모든게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움직이니 무슨 논리와 설명이 필요하단 말인가? 하나님의 뜻을 어찌 인간이 알랴? 라고 답을 하는데 더 이상 논쟁은 소모적이었다.(그리고 지금도 주변의 기독교인과의 종교에 대한 논쟁은 대개 그렇게 끝이 난다.) 대학을 다니며 사회과학을 공부하며 현실의 문제,세계의 인식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며 당연히 소모적 종교논쟁은 기억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래서 이번에 만난 <예수는 없다>는 더 인상적이다.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종교에 대한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우선 이책은 우리나라의 기독교 보수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기독교 상업주의에 대해 질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세계 기독교를 믿는다는 나라중에서도 아주 독특한 종교양식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우선 성경에 대한 절대적 신봉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우리는 주변에서 성경에 모든 진리의 말씀이 있다는 종교인들을 자주 만난다. 저자는 이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고 있음으로 생기는 성경무오류설에 대해 비판한다. 이어서 4복음서에 대한 인식오류. 복음서는 초기 교회의 윤리적 이상, 신앙고백이 실현된 형태로 파악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살이 덧붙여지고 또 유력한 권력들이 합리화시키며 신성화한것으로 파악한다.

저자는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구분하고 있다. 이 둘 사이의 일원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현재 우리 기독교에서 보자면 이는 당혹스런 일이다. 그러나 저자는 신학적 연구성과를소개하며 역사적 예수의 존재를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베들레헴 출생, 동정녀, 병자들에 대한 기적, 부활등 기독교에서 성경에 근거하여 절대가치로 믿고 있는 일들을 하나 하나 부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저자는 기독교가 가치 없는 거짓 종교임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저자는 진정한 기독교는 '예수의 십자가 위에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라고 간략하게 설명한다. 즉 민중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여기신 예수, 율법과 사이비 권력의 폭력에 저항하는 예수, 상식과 편견을 뒤집어 엎고 혜안을 여는 예수...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은 교회의 가르침, 교회의 권력이 아니라 예수 자신이 말하고 실천했던 그 길을 따라야한다는 것이다. 자기의 복락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회의 약자들을 위한 거시적 전복보다 현재의 계급적 모순들을 그대로 좌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보아야할 것이다. 기독교의 비극은 '예수 자체의 가름침보다 예수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더욱 굳게 믿게 만든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는 동안 줄곧 이 책은 기독교인들이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왜냐면 <예수는 없다>며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며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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