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친구랑 <어바웃 타임>을 보겠다는 지혜 티켓을 예매하다 나도 <변호인>을 볼까하고 예매했다. 부산에서 태어나서 90년대 후반까지 거기서 살아온 나에겐 어떤 면에선 특별히 새로운 얘기를 들려줄 것 같지도 않았고 이미 5백만이 넘는 관람객과 언론의 보도를 통해 많은 내용을 알고 있는 상태라 그 대단하다는 배우들의 연기를 눈으로 확인하고도 싶었다.
언론의 칭찬처럼 진지하면서도 가볍고 유쾌한 장면까지도 무리없이 표현하는 송강호의 연기와 오달수의 코믹 연기는 영화의 분위기가 무겁고 가라앉지 않게 균형을 잘 잡아 주었다.
그리고 국밥집 주인으로 나오는 김영애의 연기는 역시 최고였다. 화장기 하나없는 얼굴에서 자식을 위하는 엄마의 마음을 잘 표현해줬다. 예전 모래시계에서 태수(최민수)의 어머니 역할로 보여줬던 이미지와 또 다르면서도 감정이 입입되는 연기였다.
사실 이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도 연기였지만 영화의 배경이 된 시대와 영화의 주인공 역할의 실제 모델인 노전대통령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도 있고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에게는 감동과 울분을 불러일으키고 그반대 점에 서 있는 이들에겐 일종의 공포까지 안겨주는 분위기니...
영화 중간중간 몇몇 장면에서 노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지지보다 컸던-나한테 그는 최선보다는 차선이나 차차선에 가까웠다.- 나조차도 눈시울이 뜨거워지게 할만큼 관객에게 감동을 주고 정서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은 잘 했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랬기에 아쉬운 점도 많았다.
송우석이라는 속물처럼 보이던 변호사가 인권변호사가 되고 투사가 되는 과정을 표현하는 부분들에 대한 얘기는 빼놓더라도 그반대편의 검사나 고문 경찰을 지나치게 단면적으로 표현한게 없나 하는 느낌이었다.
최고의 대학을 나온 공안검사는 학맥을 동원한 인맥관리 이상의 능력도 없고, 고문을 주도했던 경감은 일제 고등계 형사를 부친으로 뒀기에 잔혹한 행동도 서슴치 않고 행하는 것처럼 비춰졌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러구 보면 마지막에 양심선언하는 군의관은 천주교 신자여서 그랬다는 논리가 만들어지나?
물론 그런 점들을 가지고 이영화를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비슷하게 법정의 재판 얘기를 다루고 민감한 사안에 대해 조정만 바라는 <어퓨굿맨>에서의 변호사 탐 크루즈와 자신이 생각하는 군의 권인와 명예를 위해서라면 문제사병에 대한 테러와 죽음도 합리화하는 장군 잭 니콜슨의 법정싸움처럼 두개의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진 집단의 이념과 가치관을 충돌시켰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변호인 송우석은 공권력의 폭력에 대해 모든 국민이 보호받아야 한다고 헌법을 외치고 법대로를 주장했지만 최근의 뉴스에서 철도노동자나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호소에도 법대로, 원칙대로를 주장하는 이나라의 위정자들을 보며 법과 원칙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못된 법, 공정하지 못한 원칙에 대한 문제제기도 30여년전 부산의 법정뿐아니라 지금 이땅에도 다시 필요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자막에 나왔던 송우석의 재판에 부산의 142명 변호사 중 99명이 변호인단에 참여해 참석한 건 한 변호사에 대한 존경과 연대가 크다는 점도 있지만 그시기 '87년 민주화 항쟁의 큰 열기가 더 큰 밑받침이었다는 걸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거기 그시간에 참석했던 99명의 변호사중 일부는 지금 새누리당의 지지자도 있고, 노무현대통령의 탄핵에 찬성을 표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본호인 개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그렇게 고통을 받으면서도 싸우고 지키고자 했던 신념을 더 부각시켰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이미 몇해전 베스트셀러여서 볼만한 사람은 다 본 <정의란 무엇인가>를 요즘 읽고 있다. 정말 우리가 사는 사회에 정의가 존재하는지, 객관적이고 불변한 정의가 존재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있다.
영화 <변호인>을 만든 감독과 제작자의 의도를 떠나 배경이 되던 그시대에 권력의 폭력에 자신을 희생해가며 싸운 이들이 지키고 만들어내려 했던 정의는 무엇인지, 우리가 지키고 만들어가야 하는 정의는 무엇인지 오랜만에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