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근대, 다시 읽는 해방 전前사 - 이덕일 역사평설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倒行逆施(도행역시)’


올해 전국 대학교수 622명이 참여한 설문에서 올해를 표현하는 4자성어로 뽑힌 글이다.
중국 춘추전국 시대 초나라의 왕에게 부친이 살해당한 오자서가 그의 벗 신포서와 나눈 대화 중 "어떠한 일을 다급하게 처리하고자 거꾸로 행하고 본 뜻에 거슬러 시행한다는 뜻으로 일상 도리(道理)에 벗어난 일을 하거나 억지로 행함을 일컬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랜만에 읽는 이덕일의 책이 소개하는 백년전부터 해방을 맞이하는 시기까지 이땅의 모습이 그랬다고 할까? 
이땅을 침략해 지배한 일본의 전쟁기계들이 행했던 행위들을 보면 식민지 조선이나 중국을 침략하고 세계를 정복하려는 야욕만 가득 찾을 뿐 순리를 저버려도 한참 저버린 그들의 모습이 지금 극우 군국주의로 치닫고 있는 현재 일본의 모습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모습도 그리 다르지 않다.
민족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그들을 일컫는 말들인 무정부주의가 적절한 번역은 아닌 듯 해서 아나키즘이란 용어를 그대로 쓴다.-을 추종하며 당시 이땅의 모순을 해결하려고 뛰어든 뜨거운 열정은 보이나 그러한 이합집산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보수는 부폐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다시 떠올랐다.

물론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새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길은 이미 만들어진 지도를 보고 가는 것과 다르게 시행착오도 겪고 길도 잃어버릴 수 있어 각기 흩어질 수 밖에 없지만 그러한 내부적 요인과 외세의 이익에 편승해 해방을 하더라도 온전히 통일되지 못하고 분단이라는 새로운 모순을 껴안고 살아야 하는 이땅의 현실을 보면 아쉬울 따름이다.

김좌진장군이 그러한 사상적 갈등으로 인해 공산주의자에게 암살되었단 일로 인해 그의 후손들이 반공을 커다란 가치로 안고 사는 것까진 이해하는데 단순히 반공이 아닌 너무 멀리 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그런 비극을 당한 당사자여서 더 크게 느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연민도 생긴다.

그러한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도 친일을 해서 부자가 되고, 금광이며 미곡이며 주식 등에 대한 투기로 일확천금을 거머쥐는 군상들을 보면, 그리고 그들이 대부분 군국주의 일본의 패망과 함께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면 지금도 그들과 같은 많은 부자들이 명멸하고 있다는 씁쓸함과 권력에 기생하는 자들의 미래가 그러했으면 하는 바램도 생긴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 인류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그들의 과오는 다시 저지르지 않고 잘 한 부분은 배워서 우리의 삶이 더욱 정의롭고 올바르게 가게끔 하는데 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모습이 백년전 70년전 이땅의 모습보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은 있을지언정 살아가는 이들이 안고 있는 모순과 갈등을 돌이켜 보면 그닥 나아보이지 않는 건 역사를 잘 못 배워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나 우리네 삶이나 순리를 따르는게 나와 주변을 모두 행복하게 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