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영화를 만나다
이철승 지음 / 쿠오레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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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살다가 서울에 가까운 수도권으로 생활권이 바뀌며 예쌍치 못했던 과외소득(?)이라면 길을 오가거나 놀이공원 거리 등에서 뜻하지 않게 유명인이나 연예인들을 만날 기회가 잦아졌다는 점이다. 물론 특정 인물에 호감을 가진 팬이 그를 찾아 열심히 행사장 같은 곳을 찾아간다면 스타를 접할 기회는 더 많아지겠지만 무심코 들른 가게에서 누구누구를 보고 밥먹고 나오다 왕년의 유명한 누구를 만난다는 경험은 내가 자라던 부산에선 쉽지 않은 일들이다.

서울에만 가까이 와도 이런 호사를 누리는데 하물며 헐리우드를 품고 있는 도시, 세계 영화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LA에선 오죽할까. 헐리우드와 비베리힐즈는 그냥 두고서라도 거리 곳곳에서 특정 영화의 배경이었던 건물들과 유서 깊은 촬영지들이 널려있고 아카데미시상식을 비롯한 각종 세계적인 영화인들을 만날 수 있는 도시가 LA 아니던가?

이런 측면에서 이책은 제목을 무척 잘 지은 듯 보인다. 길에서 영화를 만날 수 있는 도시. 물론 헐리우드의 영화가 요즘은 작품성으로 승부를 걸기보다는 엄청난 자본을 들여 시선을 현혹시키는(?) 블록버스터들이 강세이긴 하지만 많은 영화인들의 시선을 사라잡고 그들의 대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화를 생산해내는 커다란 공장임은 부인할 수 없다.

LA라는 하나의 도시를 소재로 거기에 연관되는 수많은 영화와 영화인들 그리고 영화 속에 숨겨진 수많은 이야기들이 다양한 주제로 소개된 내용을 접하니 꼭 내가 그도시의 한자락쯤은 다녀온 느낌이다. 미국땅이라면 미국령 사이판이나 괌 밖에는 디뎌본 기억이 없는데 낯익고 기억 한구석 자리잡은 여러 영화들이 주말의 명화가 시작될 때처럼 파노라마로 내 눈앞을 지나치 듯 그리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보이지 않게 느껴진다. 거기에 잠시 잠시 덤으로 발리우드를 소재로 하며 헐리우드의 아류를 자칭하는 다른 나라들의 영화산업 이야기나 미국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의 영화이야기들, 미국영화산업의 등급분류 등에 대한 소재도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읽을거리로 느껴진다.

다만 미국과 헐리우드를 중심으로 생산되는 영화들이 미치는 좋거나 나쁜 영향력들이나 한류우드를 이야기하는 게 단순히 영문도 모르고 미국만 쫓아가려는 발상임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영화가 어떻게 발전하고 방향을 잡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승화시켰다면 미국에서 하나의 쟝르로 자리잡은 일본과 중국의 영화처럼 대접을 받으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지에 대한 나름의 결과물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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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그녀의 마지막 정신상담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주영 옮김 / 아고라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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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유명하고 기억에 남는 헐리우드의 여배우를 꼽으라면 오드리 헵번, 그레이스 켈리, 마릴린 먼로를 꼽는다. 그중 가장 인상깊고 드라마틱한 삶을 산 이는 아마도 마릴린 먼로가 아니었을까? 성공적인 배우로서의 생활과 은퇴 후 모범적인 생활을 통해 칭송을 받는 오드리 헵번 보다도 유럽의 작은 나라지만 왕비가 된 신데렐라 이야기의 주인공인 그리이스 켈리보다도 자신이 살다간 시대를 가장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남은 여배우는 마릴린 먼로가 아니었을까?

정작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서부극을 좋아하시는 아버지 옆에서 봤던 <돌아오지 않는 강>과 언젠가 주말의 명화에서 봤었던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뿐이다. 하지만 여러 곳에서 그녀의 그림자들을 만나곤 한다. <7년만의 외출>에서 보여줬던 환기구 위에서 치마가 펄럭이는 모습은 아직도 많은 광고에서 패러디해 익숙하고, 이후 수많은 헐리우드의 여배우들이 섹스심벌로서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차용했고, 마돈나의 경우도 데뷔초에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빌어왔으니 그녀만큼 모든 이의 공감을 살만한 매력적인 여배우는 없을 것이다.

마릴린 먼로, 영화와 정신분석. 각각의 이야기들이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였고 5백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내용에서 작가는 치밀하게 이 셋의 연관성에 대해 논했지만 내눈에는 마릴린 먼로의 외로운 모습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대중의 연인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남부럽지 않게 누릴 것 다누리고 사는 걸로 보였던 그녀를 그토록 괴롭히고 아프게 했던 것은 진정 무엇이었을까? 먹어도 먹어도 허기긴 배를 채우지 못하는 아귀지옥처럼 모든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녀는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에 아파했다. 스크린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에서 자아를 찾지 못하고 항상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애쓰며 아파했던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근래 대중의 선망의 대상이었다가 허무하게 목숨을 버렸던 젊은 배우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대중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 배우이기 이전에 자아를 찾길 원하는 자연인의 한사람으로서 그들이 진정 원했던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마릴린 먼로의 죽음이 자살인지, 권력이나 마피아에 의해서 인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그녀를 항상 아프게 하고 힘들게 했던 것은 진정한 사랑에 대한 끝없는 갈증과 갈망이 아니었을까? 불특정 다수의 애정도 중요하지만 가까이서 함께 생활하며 살부비고 부대끼며 서로를 위해주는 뜨겁지는 않지만 훈훈한 사랑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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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살림지식총서 194
김윤아 지음 / 살림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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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의 대명사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최근 작품 세편을 통해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찾아간다.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세편의 작품을 통해 작가가 파악한 결론은 밝고 순수한 작품들의 대명사인 작가의 숨어 있는 목적은 일본의 신도와 그를 통한 최근 우경화 되고 있는 일본인들의 잠재의식을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극동의 고대 신화에서부터 최근 일본의 정치 사회적인 현상들까지 비록 적은 분량이지만 다양한 예시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설명해 나간다.

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설마하는 생각이 아직은 크다. 시대적 지리적 정의를 내리기는 힘들지만 그 세작품들을 통해 자연 파괴나 인간의 욕망, 전쟁들을 벗어난 다른 세상을 꿈꾸는 하야오의 꿈을 보았었다면 너무 비논리적인 논거들이 될까? 전작들의 따스한 느낌들을 다 무시하고 최근의 몇편을 통해서 그의 감춰진 실체를 파헤쳤다는 건 조금 무리가 아닌지 모르겠다. 정말 최근 하야오의 성향이 바뀌었다면-아니 감춰졌던 진실이 그것이라면- 최근작 <게드전기 - 어스시의 전설>이 빠질 수 밖에 었었겠지만 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 사이의 <고양이의 보은>은 쏙 빼먹었을까?

작가는 여지껏 심증만 있던데서 물증도 잡았다는 분위긴데 난 아직 심정적으론 하야오편이다. 하지만 언제 시간을 내서 곰곰히 이작품들을 다시 볼 필요는 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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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27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나에게 성경과도 같은 것인데..
왠지, 울컥거려지는 기분입니다. (긁적) 작가도 나름대로 연구를 했겠지만.
저 작품들 안에 깊이 들어 있는 철학이나 삶과 사랑은 보이지 않는건가?
어쨌든, 상당히 주관적이긴 하지만, 저 역시 안티님 편의 입장입니다.
 
수잔 서랜던 - 여배우 혹은 투사
마크 샤피로 지음, 손주희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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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수잔 서랜던이 출연한 영화를 본 건 <델마와 루이스>였다. 페미니즘이 뭔지 버디 영화가 뭔지는 몰랐지만 조금은 새롭고 다른 영화라는 느낌이었다. 두 주인공중 지나 데이비스는 금방 다른 영화들로 만날 수 있었지만 수잔 서랜던을 다시 만나기엔 제법 시간이 필요했다.

그후 <로렌조 오일>, <데드맨 워킹>, <스텝맘>, <록키 호러 픽쳐쇼>, <열아홉번째 남자> 등을 통해 더 자세히 그녀의 연기를 알 수 있었고 그녀의 동반자 팀 로빈슨-<쇼생크 탈출>의 주인공-과의 인연도 알 수 있었다.

<데드맨 워킹>에서 노수녀를 연기하며 전혀 화장을 하지 않고 주름을 내보인 그녀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우리영화를 폄하하려는 생각은 없지만 아직도 많은 수의 배우들이 영화에서의 자신의 역할이나 영화의 해석을 부탁하면 영화홍보팀에서 작성한 걸 외워 말하는 수준이고, 그저 이쁘게 멋있게 보이려고 하는 배우들이 아직 많다는 느낌이 남아 있을 때라 더욱 그녀의 모습이 배우답게 보였다. 

그리고 사회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 문제를 제기하고 행동하는 모습은 우리 배우들도 배워야 할 것이다. 그 주장이 옳고 그르고의 판단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른 것이니 차치하고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는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이 입을 손해를 감수하고도 나설 수 있는 그녀의 모습은 스크린 쿼터에 항의하는 우리 배우들이 보고 반성해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FTA연대 집회에서 모배우가 농민들에게 무릎 꿇고 지금까지의 무관심에 대한 용서를 비는 모습에서 평상시 그들이 우리 주위를 둘러보고 행동하고 실천했더라면 더 많은 영화관객들이 그들을 지지하고 지원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를 실천하는 우리 배우를 빨리 더 많이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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