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란 참 매력적인 학문이다. 요즘 인문학의 위기라고 얘기들 하고 관련 과목을 기피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철학, 특히 철학사의 경우는 인류가 걸어오고 고민한 문제들과 그성과들을 경험해 볼 수 있어서 관심이 간다. 하지만 막상 철학 서적을 펼쳐들면 난해한 용어와 논리와 논리를 강조하는 미로 속에서 쉽게 지쳐버리곤 한다. 그나마 서양철학의 경우 고등학교 다니며 국민윤리-아직도 과목명이 이건지는 모르겠다.-시간에 그리스의 자연철학부터 헤겔까지의 흐름을 배운 적이 있어 그나마 조금은 사조의 차이들에 대한 감이 잡히지만 동양철학은 우리가 사는 삶의 바탕이 되어왔다곤 하지만 오히려 더 먼나라 이야기로 느껴지곤 한다.
기껏 제자백가, 분서갱유, 공맹의 왕도정치 정도의 용어는 접했지만 구체적인 제자백가의 주장이나 차이는 아는게 하나도 없다. 장자의 경우 몇몇 우화는 여러 매체들을 통해 접해본 기억이 있지만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만 했지 구체적인 고민을 해볼 기회는 없었다. 90년대 초반 장자의 우화에 대한 해설서들이 몇 나왔지만 그런 것도 있구나 수준이었지 그가 주장하는 주제가 무언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이책의 저자는 장자를 아나키스트로 칭했다. 그런데 아나키스트라면 무정부주의자고 무정부주의자는 과격한 테러범이거나 정치적 허무주의의 느낌이 강하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힌 내게는 의외의 모습을 한 장자였다. 춘추전국 시대에 국가의 통일이나 끝없는 전쟁 속에서 사람이, 사회가 바라봐야 할 지점을 찾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이 국가나 집단의 질서를 우선 이념으로 내세우는 속에서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는 쉽지 않는 결정을 내린 장자를 아나키스트라 칭했을 때 그의 위치를 어디쯤 세워야 할지 궁금하다.
나이를 먹으며 그동안 겪어 온 경험으로 모든 사물이나 현상을 제단하려는 건 많은 이들이 안고가는 문제점이다. 나이를 먹으면 고집과 아집이 강해지는 것도 자신의 경험을 맹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군다나 2천 여년전처럼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비교적 느린 사회에서는 경험치가 갖는 위력은 더 클 것이다. 하지만 그속에서 자신의 경험에 의한 주관적인 잣대가 아니라 상대의 위치에서 타자에 대한 본성을 이해하려한 장자의 혜안은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모습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철학을 처세 수준으로 격하하는 모습은 아닐지 모르지만 삶속에서의 철학을 강조한 장자에 비춘다면 그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서로 다른 대상을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하다. 왜곡되고 굴절되지 않은 서로간의 진의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소통. 현대의 많은 이들이 쌍방향 소통을 주장하기는 하지만 채널로서만 쌍방향을 생각하지 진정 서로를 이해하고 자유롭게 하는 소통에는 소홀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책의 작가가 이야기하는 장자가 장자의 본모습인지 아닌지도 난 판단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래서 책제목에 쓰여진 모험이란 단어가 참 잘어울린단 느낌이 들었다. 완전한 미지의 세계에서 위험을 무릅쓴 탐험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자극이 없는 쉬운 여행이 아닌 모험. 적당한 긴장감과 거기에 어울리는 무언가 숨어 있는 느낌의 단어. 내가 앞으로 장자를 더 깊게 접할 기회도 쉽지않고 장자를 본격적으로 읽는다고 해도 내가 잘 이해하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전체적인 방향이 무엇인지는 앞으로도 한번쯤 모험을 해볼 가치는 있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