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밥상> 서평단 알림
가난한 밥상 - 배부른 영양실조에 걸린 현대인을 위한 음식 이야기
이원종 지음 / 시공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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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대학에 입학했을 때 한학번 위인 60년대생 선배들-그래봐야 68, 69년생들-이 우리를 보고 맨날 읊었던 레파토리 중 하나가 "너희가 보릿고개의 배고픔을 아느냐?"였다. 물론 한두살 더 먹은 그들이라고 정말 보릿고개를 경험했으랴마는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지금은 생산력 증대라는 이름으로 농업이 산업화되며 풍성한 먹을거리가 넘쳐나 배고픔보다는 살을 빼야겠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더 많고, 풍성한 먹을거리를 위해 포기했던 자연과 환경으로 인해 우리의 먹을거리는 오염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먹어 헤로운 것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작가는 몸소 농사를 짓는다. 자신의 땀을 흘려 기르고 키운 음식들로 가난하지만 행복하고 풍성한 밥상을 차린다. 나도 아파트 베란다에 상추며 고추, 방울토마토 등을 키워봤지만 쉽지 않은 걸 느꼈는데 온갖 채소를 키워서 식탁에 올린다는 작가의 생활이 부럽기도 하고 그런 여유가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것 아닌가 하는 시샘도 해 봤다.

작가는 배부른 영양실조에 걸린 현대인을 위한 음식이야기로 가난한 밥상을 내보였는데 읽는 독자에게 담백하고 영양이 넘치는 글이었는지는 조금 의문이 든다. 너무나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소개하려다 보니 어느 것 하나 눈에 쏙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 식생할이 그만큼 가난하지만 영양을 담은 모습이 아니라 그렇겠지만 수많은 레시피를 보며 한번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안든다. 오히려 너무 간단히 표현해서 정말 이것만 보고 그런 음식들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살림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내수준에서 바라 본 것이겠지만...

<알라딘 서평단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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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말리 - 노래로 태어나 신으로 죽다
스티븐 데이비스 지음, 이경하 옮김 / 여름언덕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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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기원은 고대 종교행사에서 사용되던 주술과 리듬이 전해져 하나의 예술이 되었다. 노동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노동요라는 노래들이 탄생되고 소화불량과 불면에 시달리는 귀족들을 위해 거기에 따른 음악들이 만들어져 왔다.

음악이라는 예술이 가치나 권력과는 무관하게 보이지만 알게 모르게 어떤 특정한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고 그들의 주장을 쉽게 전파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많은 음악의 쟝르들이 기존의 가치와 권력에 도전하며 새로운 세상과 자유를 부르짖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록음악이 젊은이들의 사회 비판의식을 담기도 하고 레게와 랩이 밥 말리처럼 빈민굴에서 자라는 소년들에게 세상의 새로운 가치를 보여주고 기존의 질서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는다.

노래가 단순히 사랑타령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 선율과 가사에 무언가를 담아 세상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메신저의 역할을 노래하는 이에게 기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 노래를 잘 하는 이들은 많지만 그속에 함께 공유하는 가치를 담아내는 울림을 가진 가객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노래를 잘 하는 것 보다 함께 공유할 가치를 노래할 가수가 우리시대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게 음악을, 자메이카라는 나라는 쿨러닝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밖에는 알지 못하는 문외한에게 30년 40년전 자메이카의 사회상과 음악시장에 대한 설명이 많고 수많은 그룹들의 명멸이 소개돼서 지루하기까지 했지만 음악이 무엇을 노래해야 하는지 밥 말리를 통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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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2-03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래서 '음악의 대홍수' 속에 살고 있어도 늘 음악이 고픈 법이죠.
'울림'이 있는 음악만을 고집하는 것이 때로는 참 바보같아 보이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음악은 제게 있어 '치료약'이니까, 아무거나 먹다가 탈이 날순 없잖아요.(웃음)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 - 미국의 식민지 대한민국, 10 vs 90의 소통할 수 없는 현실
지승호 지음, 박노자 외 / 시대의창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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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해도 우리사회는 소위 좌파성향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넘쳐나는 시기였다. 대학주변에는 사회과학 전문 서점들이 한둘씩은 있고, 각종 논쟁의 담론들이 쏟아져 나왔고 <현실과 과학>, <이론> 등 다양한 형태의 잡지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가 그러한 논쟁도 진보적 지식인도 사라지는 느낌이다.

얼마전 김수행교수의 정년퇴임과 함께 서울대 경제학과에  맑스주의 강의가 사라지게 된다는 기사를 접하며-그것도 조선일보 기사를 통해-우리사회의 보수화가, 10년 20년 전에 비해서 사회가 진보됐다고 생각되는데도, 우리의 의식과 젊은 청년들의 의식이 일면 보수적으로 변화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가진다. 물론 예전에 비해 요즘의 젊은이들이 현실적이고 실리적이란 생각이 드는데 그것의 반대급부로 지금 당장은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사회와 역사를 위한다는 책임의식은 옅어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터뷰어라는 독특한 쟝르를 개척하고 있는 지승호의 글을 예전부터 하나쯤은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책을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인 FTA나 노무현정권, 한겨레, 안티조선 등을 소재로 이시대의 진보적 논객이나 정치가들의 육성을 통해 진보가 무엇이고 개혁이 무엇인지 소위 자신이 진보적이고 개혁적이라고 믿는 이들이 지지했던 현정권의 성격이 무엇이고 당면해 있는 FTA나 대미관계를 바라보는 시각들에 대해 폭넓고 깊이있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현정권에 기대를 가졌다가 그들의 모습에서 실망을 느끼고 자신의 스탠스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는 작가를 보며 "그것도 몰랐었단 말이야?"하는 물음을 던지는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그보다 더 현실에 순응하며 가진 것 없으면서 내것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도 들었다.
한겨레는 학교 때 동아리방이나 과 학생회에 넘쳐나는 게 한겨레였는데 사실 난 왠지 끌리지 않았었다. 언젠가 우리 학교에 강연을 왔던 당시 한겨레 논설위원이셨던 정운영선생이 그내부에서도 정치적 입장에 따라 갈등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그시절부터 한겨레의 시작부터 나름의 한계를 지니고 있기에 소위 진보적이라는 진영이 거기에 기댈 부분이 적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기도 했었다. 지금도 홍세화선생처럼 한겨레에 희망과 미련을 가지고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쇄매체를 새롭게 만드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진보와 개혁의 차이에 대해 논했던 김규항 등의 목소리에서 그래 역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정체성에 혼란을 주는게 아니라 명확히 진보라는 개념을 명확히 해야해 라는 생각을 가지면서도 내생활에 기반이 되고 있는 부분과의 괴리감이 요즘 청년들의 보수화만을 탓해선 안될 문제라는 깨달음과 반성을 하게 만들었다.
소위 정치적인 입장을 중심으로 우리 현실을 분석하고 고민하는 글을 접한 건 실로 오랜만이다. 말로만 머릿 속의 관념만 80년대식으로 가지고 현실의 생활은 2천년대 중산층에 편입하기 위해 아둥바둥 사는 내모습을 비춰보며 많은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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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7-11-18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에서 봤었나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서울대생들 중 조사해보니 자기가 보수적 성향이라고 한 학생들이 상당히 많은 조사결과가 나왔더라구요. ㅋㅋ

2007-11-22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왼손잡이 - 왼손잡이는 예술에 뛰어난가 고정관념 Q 6
마리 알리스 뒤 파스키에 그랄 지음, 한정석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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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라면 경상도에선 "짝빼기"라고 불렀었다. 뭔가 남들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다. 우리 주변에선 아이들이 왼손을 쓰면 오른손 쓰는 걸 억지로 가르치는 모습을 간혹 보곤한다. 오른손, 바른손이라는 표현처럼 오른손잡이는 정상적이고 왼손잡이는 그렇지 못한 어감을 준다.

요즘은 예전보다는 왼손잡이들에게 많이 너그러워진 것 같다. 다빈치 같은 유명한 왼손잡이 예술가들은 둘째로 치더라도 각종 스포츠에서-특히 야구에서- 왼손잡이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이승엽같은 경우나 배구에서 요즘 그 중요성이 강조되는 라이트 공격수들은 대부분 왼손잡이다.

하지만 왼손잡이들의 글씨쓰기나 행동들은 뭔가 어색한 느낌을 준다. <록키> 첫편에서도 왼손잡이 록키의 표현은 왼손잡이 복서는 오른손잡이 상대와 경기할 때 뭔가가 어색해서 돈이 안된다는 투의 대사를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주류가 오른손잡이들이고 방의 문고리나 냉장고 등의 손잡이들도 다 오른손잡이 중심으로 만들어져 정상적(?)인 왼손잡이들이 뭔가 모자란 듯한 모습으로 비춰지게 된다.

왼손잡이들을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난 사람으로 보는 것이나 뭔가 비틀리고 정상적이지 못하다고 보는 시선 둘다 선입견이고 고정관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우리의 신체를 대칭적으로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자신이 편한 부분을 쓰게되다 보니 오른손잡이도 나오고 왼손잡이도 나오는게 아닐까?

우리집 작은 아이도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데 글씨를 쓰는 방식이 오른손잡이들에게 유리하게돼 있다보니, 글씨 쓰는 법을 도와주는 부모가 둘다 오른손잡이다 보니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하고 있었는데 종이의 오른쪽을 기울여 쓰도록 가르치는 방법은 좋은 팁이 될 것 같다. 아무 것도 아닌 차이로 인해 어린시절부터 불편함을 강요받는 왼손잡이 아이들과 그부모들에게 한번쯤은 권해볼만한 책이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고정관념을 한번쯤 이렇게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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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알라딘 서재에 글을 남긴다. 매일같이 집에 들어오면 쓰러졌다 아침 일찍 나가기를 반복하다보니 여유가 없었다. 사무실에서도 조금 여유있을 땐 알라디너 분들의 글을 짬짬이 읽곤 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호사로 느껴진다. 2시간 가까이 걸리는 퇴근버스 덕택에 리뷰는 많이 못남겨도 읽기는 열심히 읽었는데 열흘이 다돼 가는 이번달에 읽은 책은 지승호의 <하나의 대한민국, 두개의 현실> 한권뿐이다. 내용이 부담도 없을 듯하고 작가에 대해 관심도 있고해서 넉넉히 이틀이면 다 읽으리라 생각하고 책을 들었는데 생활에 쫓기다 보니 일주일이 넘게 한권을 붙들고 있었다.

책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리뷰에 남기겠지만 읽는 동안 많이 불편했고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정치적 성향을 봐선 내가 그보다는 왼쪽에 있는 듯한데 사는 모양은 한참 멀리 간격을 둔 그의 오른쪽에서 죽을동 살동 발버둥 치고 있는 내모습이 한심하게도 보였다.

일을 하고 직장에 다니는게 조금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수단이고 가족들과의 여유를 위한 방편인데 요즘 내모습은 본말이 전도된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드는 시간이다.

おげんきですか?
영화 <러브레터>에서 히로코가 이츠키에게 작별인사로 외치는 잘지내냐는 물음. 그리고 자신은 잘 지내고 있다는 얘기는 상대방이 듣길 원한다기 보다는 자신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이고 앞으론 잘~~ 열심히 살겠다는 의미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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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1-10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다시와 겡끼데스~~

비연 2007-11-10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私も元気です。

2007-11-11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