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한번, 두번, 세번, 네번, 그 횟수가 하나씩 더해질수록 난 점점 변하고 있다. 2005년의 2월, 난 자신 있었다.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고도 시험봐서 들어가는 이 대학원에 - 다른 학교는 시험을 보지 않았다 - 당연히 들어갈 것이라 자신했고(뭘 믿고 그랬는지 알 수 없다만 '평상시의 실력'이라고 한다면 1보단 0에 더 가깝다), 자신한 바대로 남들 초조하게 면접보고 있을 때 그냥 뭐 대충 보면 되는거지 하며 홀로 청바지에 캐쥬얼 차림으로 빨리 안끝나나 이런 생각이나 하며 면접을 끝냈고, 당연하게도 붙었다. 대학원 합격 뒤에는 이제 기간제 교사 구해볼까, 라며 천천히 느긋하게 준비를 하던 나는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두달이 지난 작년 이맘때쯤에야 알았고, 예상을 빗겨간 나의 인생계획에 항로를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철학연구소라고 하는 사설 토론/논술 교육기관에 취직을 했고, 다시 나와 중학교 때 제일 못했던 국사과목을 도덕과 더불어 가르치는 시간강사 생활을 지내고, 2학기에는 드디어 본래 계획대로 기간제 교사 자리를 구해 제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또 난 자신했다. 그래 이제 경력이 붙었으니  돌아오는 겨울엔 쉽게 방학 꽉꽉 채운 1년짜리를 구할 수 있을거야. 널널한 교육대학원 생활과 넉넉한 2학기 여유자금에 4개월은 매우 달콤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똑같은 좌절감을 맛보며 저 넓은 망망대해의 한 가운데서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짧은 4개월간의 기간제 경력으로 다음에는 쉽게 구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여지 없이 빗나가고, 고용자 측은 1년 이상의 경력자를 찾았고, 난 그들의 선호대상에서 당연히 제외되었다. 그리고 2월 28일. 개학 바로 전 날, 끝내 난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좌절감을 맛보고 있는 중이다. 매우 쓰다. 무슨 자신감으로 당연히 날 채용해줄 것이라 믿었던지,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이며, 내가 그만큼 대단한 인물이라 스스로 생각했던건지, 근원은 알 수 없다.

  한번 이력서를 들이밀고, 두번 이력서를 들이밀고, 세번, 네번, 다섯번, 여섯번 들이미니 어쩌다 면접을 오란다. 한시간 반, 두 시간 출퇴근 거리 마다 않고 불러준 것만으로 감사하여, 찾아갔으나 나이가 어리다, 집이 멀다, 경력이 없다 등등의 이유로, 되돌아올 수 밖에. 또 일곱번, 여덟번, 아홉번, 열번 들이미니 한번 또 기회가 찾아오더라. 하지만 이미 자신감을 잃어버린 나는 예전의 그 당당하고 패기있는 내가 아니었다. 에휴, 이번에도 안되겠지... 그래 결국 안됐다.

  실패는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한번의 실패는 주의라고 치자, 두번, 세번, 네번, 다섯번 계속 되다보면 자기자신에 대한 존중감마저 상실해버리게 된다. 어떤 이유에서 날 탈락시켰든 그 이유가 타당하든 그렇지 않든간에, 스스로에 대한 자기존중도는 떨어질 밖에. 그거 밖에 안되는 놈이었다는. 내가 죽음 따위를 선택할 인간은 아니지만, 취직이 안됐다고, 오랫동안 고시준비하다 다 늙어 이제 더이상 가족 바라볼 면목이 없다는 이유로 자살하는, 신문에 오르내리는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이 가더라. 뭐 이제 겨우 그거 해놓고 공감은! 그래 아직 내가 겪은 이 정도의 실패는 매우 약과다. 앞으로 몇번이나 더 그런 일들이,  이보다 더한 실패와 좌절감을 맛봐야 할지 모른다.

  고등학교 2학년 초기, 난생 처음 찾아온 성적하락과 슬럼프는 졸업 할 때까지 이어졌다.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난다. 난 실패를 현명하게 받아들여 대처하지 못했다. 다시 그런 일이 찾아오면 같은 짓은 저지르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정말 한 순간이더라. 날 이뻐하던 선생님들이 성적이 자꾸만 떨어지자 관심도 갖지 않더라. 난 고등학교에 교생실습 문제로 한번 문의하러 간 때를 제외하고는 한번도 가지 않았다. 같은 학교를 나온 고등학교 친구들과도 만나지 않았다. 그때의 내 모습을 지우고 싶어서. 올라가기는 힘들어도 떨어지기는 한 순간이다.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한순간이다.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말자. 세상은 냉정하다. 지금의 실패로 인해 밑바닥에서 헤맬 필요는 없다. 기회는 온다.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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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2-28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긍정적 마인드가 인생을 결정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문장. 자꾸 자꾸 반복해서 읽어봅니다. 기회는 온다 기다리자. 기회는 온다 기다리자.. 네. 아프락님은 이제 곧 기회가 올거라 믿어요. 그것도 운명처럼 말이죠. 기대되지 않나요? ..ㅎㅎ 힘내세요.^^

이잘코군 2006-02-28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누렁이님.

날개 2006-02-28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회가 올겁니다.. 힘내셔요~^^*

미미달 2006-02-28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욧. !

물만두 2006-02-28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자~ 그 마음 압니다요~

비로그인 2006-02-28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뛰어든지 얼마 됬다고 "실패, 좌절감" 이런 말들을 하시나요?
더 이상 나빠질 수 없게 될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요. 철학자님

이잘코군 2006-02-28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미달, 만두님 / 감사합니다. 자꾸만 기운차려보려 해도 이런 생각만 나네요.
하날리님 / 정말 오랫만이에요. 넘 오래 잠적하신듯. 그쵸 아직 멀었죠? 나약한 제 자신에 또 실망을.

2006-02-28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春) 2006-03-01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한 게 있어요. 나중에 공립학교 교사 되면 기간제 경력 쳐주나요?

이잘코군 2006-03-01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 네. 경력 다 들어가요. 전 1학기에 시간강사했고, 2학기에만 기간제 방학 빼고 4개월 해서 경력이 4개월로 되어있어요.

사마천 2006-03-01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을 혼자 헤쳐나가는 건 아니니 다들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겠죠.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마음을 굳게 잡으시죠.

비연 2006-03-01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이 떠오르네요. 아프락사스님. 다 잘 될테니..힘내시구요!^^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나이를 먹는다는건 어른이 되는 것과는 다른 것 같다.
 어렸을 때 어른들을 보는 것과 지금의 자신을 보는 건 느낌이 많이 다르다고.

 참 그렇다. 지인의 그 말은 내게도 해당된다. 스물 여덟의 적지 않은 나이에, 
 이제 대학도 졸업했고, 친구들은 취직했고, 어떤 아이는 결혼도 했다. 스물여덟의 나이에.

 나도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취직 대신 대학원 진학을 했고, 밥벌이를 위해 머리 싸매고 고민하고 있으며,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은 생각지도 않지만 막연히 언젠가는 하겠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스물 여덟. 생일상을 스물여덟번 차렸고...
 침 흘리며 놀이터에서 놀던 그 어린아이는,
 부끄러워하며 맨날 엄마 뒤에 숨어다녔던 그 어린아이는, 
 유치원에 혼자보내면 똥마려도 오줌마려도 제대로 말도 못하고 그냥 싸버리는 그 어린아이는,
 이제 눈가에 입가에 주름이 조금씩 잡히는 몸은 다 자란 어른이 되었건만 어른이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건 정말 어렵다. 많은 성숙함을 요구한다.
 주위를 살펴보면 정말 나보다도 더 어른같지 않은, 하지마 나이는 나보다 훨씬 많이 먹은 어른들도 있으며,
 나보다 나이는 훨씬 어리지만 나보다 더 어른스러워보이는 동생들도 있다.
 
 어른이 된다는건 나이를 먹는 것과는 별개로 진행된다. 난 확실히 미성숙한 놈이며, 그런 의미에서
 어른이 아니다. 
 특히나 누군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보여지는 미숙함은 정말이지 날 미워하게 만든다.
 친구와의 관계, 여자친구와의 관계, 일로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등등...
 관계의 외형은 몇 가지로 분류해서 나눠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난 관계에 있어서 특히나 미숙하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은 내 가슴 속 깊숙히 들어와 때때로 나를 괴롭힐 것이다.

 대학을 가지 않고 사회 생활을 좀더 빨리하고, 경제적 자립을 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더 빨리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실제로 주위를 살펴보면 그런 사람들이 더 어른스럽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니까.

 공부를 더 오래한다고 해서, 책을 더 읽는다고 해서,
 더 성숙한 사람이 되거나, 더 어른이 되는건 아닌 듯 하다.

 어렸을 적 봤던 어른들은 참 어른스러웠다. 하지만 그 나이가 된 지금의 나는 그렇지 못하다.
 대학 졸업은 내게 있어 많은 고민과 시련을 안겨주었다.
 어쩌면 지금 이런 고민들은 내가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반갑게 맞이해야겠지. 
 
 졸업 후 1년 동안 참 많은 일들을 겪었다.
 2005년 2월부터 2006년의 2월까지. 그 일년이란 시간 동안 내겐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2006년 2월부터 2007년 2월까지도 많은 일들을 경험하겠지. 부디 값진 시련의 나날이 되길 바란다.
 
 어린시절 봤던 그 어른들의 모습이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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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무게 2006-02-27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나이먹는것과 어른이 되는 것은 확실히 다른것 같아요. 어릴적엔 현재 제 나이 또래를 보면서 굉장히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전 전혀 그렇지를 못하거든요.

이잘코군 2006-02-27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나이만 먹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간은 빨리 흐르는데 전 성장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2006-02-28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식의 사기꾼 - 뛰어난 상상력과 속임수로 거짓 신화를 창조한 사람들
하인리히 찬클 지음, 김현정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2월
합본절판


프로이트가 몇 안되는, 그것도 극히 일부분을 피상적으로만 분석한 사례에서 다양한 이론을 구축한 사실은 매우 놀랄 만하다. 그가 1907년 자신의 모든 기록을 불태웠기 때문에 가설의 토대를 좀더 자세히 검토하기 위한 문서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프로이트가 몇몇 사례에서 고의적으로 사기행각을 범했는지, 혹은 그가 무의식적 자기기만에 빠진 것은 아닌지는 지금까지도 미지수로 남아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일시적인 정신질환에 시달렸으며, 옛 친구들을 상대로 비방했던 편집증 증세로 자신 역시 고통받았다는 일부 증거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인간의 심리기제를 보다 잘 통찰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과 가설을 개발하는 데 큰 공적을 세운 점은 무시하기 어렵다.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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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사기꾼 - 뛰어난 상상력과 속임수로 거짓 신화를 창조한 사람들
하인리히 찬클 지음, 김현정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2월
평점 :
합본절판


 지금 이 시점에서 출간된 <지식의 사기꾼>은 많은 관심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출판사 또한 이를 염두에 뒀을 것이다. 온나라가 황우석 박사 사기 사건으로 큰 혼란에 휩싸인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지금도 신문에는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이 사건에 대한 후속기사가 이어지고 있다. 국민 모두가 지금은 그가 전 국민을 상대로,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이 러브 황우석 팬들은 제외해야할지 모르지만. 믿었던 국가적인 지식인에게 크게 당한 지금, 각 분야에서 이름을 드높이며 사기를 친 이들의 에피소드를 담은 이 책은 관심을 받을 밖에.

  <지식의 사기꾼>은 내가 애초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다. 철학사적으로, 혹은 사상사적으로 이름을 높인 이들의 음모론이나 사기행각, 파렴치한 행동 등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약간의 실망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지나친 잘못된 기대에 기인한다. 이 책은 사르트르가 이야기하는 '지식인'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잘보면 제목은 '지식인의 사기'가 아니라 '지식의 사기꾼'이다. 각 분야의 지식을 가지고 사기행각을 벌이는 이들을 담아낸 책이다. 그러니 나의 실망감에 대해 책은 죄가 없다.

  학계에 있어서, 학문에 있어서, 사기행각을 맨 처음 체계적으로 다룬 사람은 영국의 수학자 찰스 배비지라고 한다. 1830년에 발표한 그의 논문 <영국 학술의 몰락에 관한 고찰들>에서 배비지는 한 꼭지를 할애하며 '학술사기'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한다. 그의 사기에 대한 분류를 위조, 요리하기, 다듬기(데이터마사지), 장난질 등으로 나누며 자세히 사기행각의 종류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한다.

  이 책은 그와 같은 사기행각들을 학문의 종류별로 묶어봤다. 첫번째, 화려한 명성과 영광 뒤에 감춰진 유혹, 두번째, '지식인'이 저지른 지능적인 조작과 음모, 세번째, 뛰어난 상상력과 속임수로 이루어낸 '위대한' 업적. 첫번째 장은 주로 의학부분에 한정되어 있다. 결핵 예방법, 거식증 환자에 대한 논쟁, 심장학 연구, 에이즈 바이러스, 신약 테스트, 항암화학요법 등에서 나타난 온갖 치졸하고 더러운 행각들. 두번째 장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프로이트의 음모와 인격모독적 행위를 비롯하여, 지능검사와 뇌신경전달물질, 다중인격증후군에 대한 조작과 음모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장에서는, 고고학과 민속학, 인류학에서 벌어지는 온갖 조작과 속임수 사건들이 드러난다. 앞의 다른 부분들에 비해 이쪽 분야의 사기사건은 신문지상을 통해서 잘 알려져있는 편이다. 몇년전에 신문에서 봤던 일본 고고학자의 사기사건도 다루고 있다.

  보통 흔히 지식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때의 지식인은 개인과 사회, 국가가 가야할 길을 제시하는 의미의 사르트르적 지식인을 의미하진 않는다)의 위대한 성과 뒤에는 온갖 더러운 행각들이 숨어있다. 논문의 결과를 이미 결정해놓고서 이에 맞추어 연구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남이 쓴 글을 자신이 썼다고 주장하며 표절시비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학계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 학계의 권위자에게 빌붙어 있다가 음모와 헛소문으로 상대를 몰아내는 경우도 있다. 없던 것을 있다고 주장하는 황우석 박사와 같은 경우도 있고, 자신이 놀라운 것을 발견한 양 과시하기 위해 증거물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흔히 알려진 위대한 이들의 사기사건에 놀랄 필요는 없다. 대학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사기사건이다. 대학 교수가 자신의 지도학생의 논문통과를 막고는 내용을 빼앗아 자신의 것인양 발표하는 경우도 있고, 뛰어난 제자의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함께 올려 공저자로 둔갑시키는 경우도 다반사다. 황우석은 없는 줄기세포를 만들었다 주장했으며, 궁지에 몰리자 자신이 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밑에 있던 제자가 자기 모르게 한 짓이라 덮어씌우기도 했다. 아직 드러난 진실은 사기라는 것일 뿐. 확실하게 누가 어떻게 어떻게 지시를 했고, 조작을 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온갖 종류의 사기행각이 뒤섞여 종합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사기행각에 찬사를.

  이 책은 여러가지 사기사건을 한꺼번에 다루려다보니 간략간략하게 진행경과만을 언급하고 넘어가고 있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면 길게 언급해봐야 알 수도 없을테고, 대중에게 사기행각을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이 정도의 간략한 언급만이 적당하다고 생각하지만 못내 아쉬운 부분은 남아있다. 아 이런 사건이 있었구나, 하고 인식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접하면 되겠다. 함께 나온 <과학의 사기꾼>은 과학계에서 벌어지는 또다른 사기사건들을 담아내고 있으니, 관심있는 이들은 그 책을 추가로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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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경고

  오랫만에 당첨된 시사회였다. 빔 벤더스와 샘 셰퍼드의 20년만의 해후라고 자꾸 강조를 하고 있는데, 난 그들을 모른다. 하지만 자꾸 강조하니 관심이 갈 밖에. 그래서 뒷조사 들어갔는데, 내가 본 빔 벤더스 감독의 유일한 영화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뿐. 또 들어본 작품으로는 <파리 텍사스>와 <베를린 천사의 시>가 있는데, 내가 아주 어릴적 영화인지라 이름만 들어본 듯 하다. 꾸준히 영화를 한 감독이고 이런저런 큼지막한 상도 많이 받았다. 그럼 샘 셰퍼드는 누군데? 역시 조사들어갔더니 이 사람 역시 꾸준히 영화는 했지만, 띠엄띠엄 했다. <블랙 호크 다운>과 <스텔스>가 익숙하다.

  영화는 한때 아주 잘 나갔으나 지금은 어느 덧 늙어버린 한 서부영화 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늙었지만 아직도 그의 영향은 대단해서 어딜 가나 사람들이 알아보고, 여자들이 뒤따른다. 사막 한 복판 촬영 중 갑자기 말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하워드 스펜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걸까? 계약된 영화를 찍어야 하는데 대뜸 말을 타고 도망가서는 30년만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향한다. 왜? 충동적으로 떠났지만 집에서 어머니로부터 놀라운 말을 듣게 되는데, 서부 어딘가에 자신의 아이가 있을거라는.   또다시 앨범 속 사진 한장을 가지고 무작정 떠나는 그.

  이제 늙었기 때문일까. 늙어서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싶었던걸까. 그는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서부의 아이를 찾아 떠돈다. 예전에 아주 젊었을 적에 촬영했던 그곳으로. 그리고 옛 애인과 자신의 아들, 그리고 또다른 이미 죽은 여자의 딸을 발견한다. 젊은 시절의 술, 마약, 여자, 온갖 스캔들로 점철된 방탕한 삶의 종지부를 찍자. 그에게 안겨졌던 명성과 돈은 그의 삶을 방탕하게 이끌었고 그는 다 늙은 지금 도피처를 찾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동안의 삶을 후회하며.


 * 옛 애인과 스펜스의 만남. 아줌마 기막혀 하며 곧 있으면 그를 팰 기세다.

 

 

 

 




 * 당황, 황당, 좌절, 우울, 분노. 방안에 있는 모든 집기 다 내던지고 밖에서 꼬마엠프에 앉아 담배꼬나 물고 기타 연주하고 있는 아들놈. 그리고 도너츠 사왔다며 먹으라고 건네주는 스펜스의 또다른 딸.

 

 

 

 

  카페를 하는 옛 애인과 서부 마을 호프집에서 노래를 하는 자신의 아들, 그리고 엄마의 유골을 품에 안고 다니는 한 여자아이. 잘나가는 영화배우였던 하워드 스펜스는 그렇게 자신의 삶과 마주한다. 가족을 찾아간 스펜스야 그렇다치고, 갑작스레 나타난 그를 마주하는 아들과 또다른 딸, 옛 애인은 어찌하라고. 오히려 안가는 것이 더 나았는지도 모른다. 평온한 그들의 삶을 깨뜨렸다. 어릴 땐 아빠가 없는 게 이상해서 물어보곤 했지만 지금은 적응되어 그냥 그럭저럭 악기연주하고 노래하며 살고 있는 아들놈은 갑작스레 나타난 작자가 자기보고 니 애비다, 그러니 오죽 황당할까. 또다른 딸은 되려 담담하다. 오히려 아비를 따라다니며 그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아비는 그 아들만 자신의 아이인줄 알았지 여자아이까지 자신의 딸인줄은 몰랐던 것.

  방탕과 방랑을 끝마치고 이곳에서 가족을 찾는 스펜스와 그들은 예고된 갈등을 겪게 되지만 이내 화해의 국면으로 접어든다. 촬영장을 떠난 그를 쫓는 사설탐정에게 걸렸다. 다시 나머지 장면 찍으러 돌아가야한다. 작별이다. 안녕. 끝내 그를 거부하며 분노를 표출하던 아들놈은 결국 그와 화해를 하고, 딸은 그의 품에 안긴다. 잘나가던 영화배우 스펜스는 자신을 구원해줄 가족의 사랑을 되찾았다.

  영화는 무덤덤하고 약간 지루한 듯 하고 밋밋하지만, 영화 속 캐릭터들이 너무나 재밌다. 스펜스를 제외하고도, 그를 찾아다니는 검은 선그라스를 낀 사설탐정의 말 한마디와 행동은 고요한 호수에 퐁당 돌맹이를 던진 듯한 웃음을 선사한다.

"여기는 스펜스의 트레일러. 여느 배우와 마찬가지로 방탕하게 논 흔적들이 보인다." 녹음.
"이 요리와 이 요리는 어떻게 다르죠?" (한참 가게주인이 설명하자) "그럼 물 한잔만 주세요"


 ← 바로 이 아저씨. 저 장면은 스펜스의 트레일러에서 녹음기에 대고 말하는 장면.

 

 

 

 

 

  또 그의 아들이랍시고 나오는 놈이나 그의 머리텅빈 애인,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또다른 딸의 말과 행동도 같은 상황에 처했지만 서로 다른 각자의 행동패턴을 보여준다. 특별히 흥겹지도 우울하지도 슬프지도 않은 밋밋한 이 영화는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살펴보는 재미만으로 대신할 수 있다.

 

  * 영화를 보고 난 뒤 알게 된 재밌는 사실 하나 : 영화 속 스펜스와 그의 옛 애인은 실제로도 부부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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