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사기꾼 - 뛰어난 상상력과 속임수로 거짓 신화를 창조한 사람들
하인리히 찬클 지음, 김현정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2월
평점 :
합본절판


 지금 이 시점에서 출간된 <지식의 사기꾼>은 많은 관심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출판사 또한 이를 염두에 뒀을 것이다. 온나라가 황우석 박사 사기 사건으로 큰 혼란에 휩싸인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지금도 신문에는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이 사건에 대한 후속기사가 이어지고 있다. 국민 모두가 지금은 그가 전 국민을 상대로,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이 러브 황우석 팬들은 제외해야할지 모르지만. 믿었던 국가적인 지식인에게 크게 당한 지금, 각 분야에서 이름을 드높이며 사기를 친 이들의 에피소드를 담은 이 책은 관심을 받을 밖에.

  <지식의 사기꾼>은 내가 애초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다. 철학사적으로, 혹은 사상사적으로 이름을 높인 이들의 음모론이나 사기행각, 파렴치한 행동 등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약간의 실망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지나친 잘못된 기대에 기인한다. 이 책은 사르트르가 이야기하는 '지식인'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잘보면 제목은 '지식인의 사기'가 아니라 '지식의 사기꾼'이다. 각 분야의 지식을 가지고 사기행각을 벌이는 이들을 담아낸 책이다. 그러니 나의 실망감에 대해 책은 죄가 없다.

  학계에 있어서, 학문에 있어서, 사기행각을 맨 처음 체계적으로 다룬 사람은 영국의 수학자 찰스 배비지라고 한다. 1830년에 발표한 그의 논문 <영국 학술의 몰락에 관한 고찰들>에서 배비지는 한 꼭지를 할애하며 '학술사기'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한다. 그의 사기에 대한 분류를 위조, 요리하기, 다듬기(데이터마사지), 장난질 등으로 나누며 자세히 사기행각의 종류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한다.

  이 책은 그와 같은 사기행각들을 학문의 종류별로 묶어봤다. 첫번째, 화려한 명성과 영광 뒤에 감춰진 유혹, 두번째, '지식인'이 저지른 지능적인 조작과 음모, 세번째, 뛰어난 상상력과 속임수로 이루어낸 '위대한' 업적. 첫번째 장은 주로 의학부분에 한정되어 있다. 결핵 예방법, 거식증 환자에 대한 논쟁, 심장학 연구, 에이즈 바이러스, 신약 테스트, 항암화학요법 등에서 나타난 온갖 치졸하고 더러운 행각들. 두번째 장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프로이트의 음모와 인격모독적 행위를 비롯하여, 지능검사와 뇌신경전달물질, 다중인격증후군에 대한 조작과 음모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장에서는, 고고학과 민속학, 인류학에서 벌어지는 온갖 조작과 속임수 사건들이 드러난다. 앞의 다른 부분들에 비해 이쪽 분야의 사기사건은 신문지상을 통해서 잘 알려져있는 편이다. 몇년전에 신문에서 봤던 일본 고고학자의 사기사건도 다루고 있다.

  보통 흔히 지식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때의 지식인은 개인과 사회, 국가가 가야할 길을 제시하는 의미의 사르트르적 지식인을 의미하진 않는다)의 위대한 성과 뒤에는 온갖 더러운 행각들이 숨어있다. 논문의 결과를 이미 결정해놓고서 이에 맞추어 연구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남이 쓴 글을 자신이 썼다고 주장하며 표절시비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학계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 학계의 권위자에게 빌붙어 있다가 음모와 헛소문으로 상대를 몰아내는 경우도 있다. 없던 것을 있다고 주장하는 황우석 박사와 같은 경우도 있고, 자신이 놀라운 것을 발견한 양 과시하기 위해 증거물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흔히 알려진 위대한 이들의 사기사건에 놀랄 필요는 없다. 대학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사기사건이다. 대학 교수가 자신의 지도학생의 논문통과를 막고는 내용을 빼앗아 자신의 것인양 발표하는 경우도 있고, 뛰어난 제자의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함께 올려 공저자로 둔갑시키는 경우도 다반사다. 황우석은 없는 줄기세포를 만들었다 주장했으며, 궁지에 몰리자 자신이 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밑에 있던 제자가 자기 모르게 한 짓이라 덮어씌우기도 했다. 아직 드러난 진실은 사기라는 것일 뿐. 확실하게 누가 어떻게 어떻게 지시를 했고, 조작을 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온갖 종류의 사기행각이 뒤섞여 종합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사기행각에 찬사를.

  이 책은 여러가지 사기사건을 한꺼번에 다루려다보니 간략간략하게 진행경과만을 언급하고 넘어가고 있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면 길게 언급해봐야 알 수도 없을테고, 대중에게 사기행각을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이 정도의 간략한 언급만이 적당하다고 생각하지만 못내 아쉬운 부분은 남아있다. 아 이런 사건이 있었구나, 하고 인식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접하면 되겠다. 함께 나온 <과학의 사기꾼>은 과학계에서 벌어지는 또다른 사기사건들을 담아내고 있으니, 관심있는 이들은 그 책을 추가로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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