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경고

  오랫만에 당첨된 시사회였다. 빔 벤더스와 샘 셰퍼드의 20년만의 해후라고 자꾸 강조를 하고 있는데, 난 그들을 모른다. 하지만 자꾸 강조하니 관심이 갈 밖에. 그래서 뒷조사 들어갔는데, 내가 본 빔 벤더스 감독의 유일한 영화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뿐. 또 들어본 작품으로는 <파리 텍사스>와 <베를린 천사의 시>가 있는데, 내가 아주 어릴적 영화인지라 이름만 들어본 듯 하다. 꾸준히 영화를 한 감독이고 이런저런 큼지막한 상도 많이 받았다. 그럼 샘 셰퍼드는 누군데? 역시 조사들어갔더니 이 사람 역시 꾸준히 영화는 했지만, 띠엄띠엄 했다. <블랙 호크 다운>과 <스텔스>가 익숙하다.

  영화는 한때 아주 잘 나갔으나 지금은 어느 덧 늙어버린 한 서부영화 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늙었지만 아직도 그의 영향은 대단해서 어딜 가나 사람들이 알아보고, 여자들이 뒤따른다. 사막 한 복판 촬영 중 갑자기 말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하워드 스펜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걸까? 계약된 영화를 찍어야 하는데 대뜸 말을 타고 도망가서는 30년만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향한다. 왜? 충동적으로 떠났지만 집에서 어머니로부터 놀라운 말을 듣게 되는데, 서부 어딘가에 자신의 아이가 있을거라는.   또다시 앨범 속 사진 한장을 가지고 무작정 떠나는 그.

  이제 늙었기 때문일까. 늙어서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싶었던걸까. 그는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서부의 아이를 찾아 떠돈다. 예전에 아주 젊었을 적에 촬영했던 그곳으로. 그리고 옛 애인과 자신의 아들, 그리고 또다른 이미 죽은 여자의 딸을 발견한다. 젊은 시절의 술, 마약, 여자, 온갖 스캔들로 점철된 방탕한 삶의 종지부를 찍자. 그에게 안겨졌던 명성과 돈은 그의 삶을 방탕하게 이끌었고 그는 다 늙은 지금 도피처를 찾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동안의 삶을 후회하며.


 * 옛 애인과 스펜스의 만남. 아줌마 기막혀 하며 곧 있으면 그를 팰 기세다.

 

 

 

 




 * 당황, 황당, 좌절, 우울, 분노. 방안에 있는 모든 집기 다 내던지고 밖에서 꼬마엠프에 앉아 담배꼬나 물고 기타 연주하고 있는 아들놈. 그리고 도너츠 사왔다며 먹으라고 건네주는 스펜스의 또다른 딸.

 

 

 

 

  카페를 하는 옛 애인과 서부 마을 호프집에서 노래를 하는 자신의 아들, 그리고 엄마의 유골을 품에 안고 다니는 한 여자아이. 잘나가는 영화배우였던 하워드 스펜스는 그렇게 자신의 삶과 마주한다. 가족을 찾아간 스펜스야 그렇다치고, 갑작스레 나타난 그를 마주하는 아들과 또다른 딸, 옛 애인은 어찌하라고. 오히려 안가는 것이 더 나았는지도 모른다. 평온한 그들의 삶을 깨뜨렸다. 어릴 땐 아빠가 없는 게 이상해서 물어보곤 했지만 지금은 적응되어 그냥 그럭저럭 악기연주하고 노래하며 살고 있는 아들놈은 갑작스레 나타난 작자가 자기보고 니 애비다, 그러니 오죽 황당할까. 또다른 딸은 되려 담담하다. 오히려 아비를 따라다니며 그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아비는 그 아들만 자신의 아이인줄 알았지 여자아이까지 자신의 딸인줄은 몰랐던 것.

  방탕과 방랑을 끝마치고 이곳에서 가족을 찾는 스펜스와 그들은 예고된 갈등을 겪게 되지만 이내 화해의 국면으로 접어든다. 촬영장을 떠난 그를 쫓는 사설탐정에게 걸렸다. 다시 나머지 장면 찍으러 돌아가야한다. 작별이다. 안녕. 끝내 그를 거부하며 분노를 표출하던 아들놈은 결국 그와 화해를 하고, 딸은 그의 품에 안긴다. 잘나가던 영화배우 스펜스는 자신을 구원해줄 가족의 사랑을 되찾았다.

  영화는 무덤덤하고 약간 지루한 듯 하고 밋밋하지만, 영화 속 캐릭터들이 너무나 재밌다. 스펜스를 제외하고도, 그를 찾아다니는 검은 선그라스를 낀 사설탐정의 말 한마디와 행동은 고요한 호수에 퐁당 돌맹이를 던진 듯한 웃음을 선사한다.

"여기는 스펜스의 트레일러. 여느 배우와 마찬가지로 방탕하게 논 흔적들이 보인다." 녹음.
"이 요리와 이 요리는 어떻게 다르죠?" (한참 가게주인이 설명하자) "그럼 물 한잔만 주세요"


 ← 바로 이 아저씨. 저 장면은 스펜스의 트레일러에서 녹음기에 대고 말하는 장면.

 

 

 

 

 

  또 그의 아들이랍시고 나오는 놈이나 그의 머리텅빈 애인,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또다른 딸의 말과 행동도 같은 상황에 처했지만 서로 다른 각자의 행동패턴을 보여준다. 특별히 흥겹지도 우울하지도 슬프지도 않은 밋밋한 이 영화는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살펴보는 재미만으로 대신할 수 있다.

 

  * 영화를 보고 난 뒤 알게 된 재밌는 사실 하나 : 영화 속 스펜스와 그의 옛 애인은 실제로도 부부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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