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생각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을 때는 
 나는 그것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그것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것에 대해 설명을 하려하면
 나는 더 이상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가 무엇을 대상으로 삼아 이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중세의 철학자이고, 중세의 철학이란 신학을 의미하고, 그가 쓴 <고백록>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쯤은 쉬이 예상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러므로 도출되는 결론은 그 대상은 아마도 하느님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지만, 그의 말은 다른 곳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사랑.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을 때 나는 그것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그것에 대해 물어보고, 내가 그에 대해 설명을 하려하면 나는 그것을 내가 알고 있는건지 모르는건지조차 알 수 없다. 분명 알고 있는거 같은데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것이 있다. 사랑.

  모르는 척 하다 이제서야 밝히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위의 발언은 '시간'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사랑을 생각하다>를 시작하며, 아우구스티누의의 저 말을 걸고, 시간 대신 사랑을 적용시킴으로써 입을 뗀다. 내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 도대체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사실은 사람들로 하여금 붓이나, 펜, 혹은 악기를 집어 들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하는 쥐스킨트. 맞는 말이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모르는 것. 그 어설픔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탐구하도록 만드는 힘이 된다.

  그는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대화편>을 통해 사랑에 대한 사색을 시작한다. 그가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오르페우스 신화'.

  오르페우스는 시인이며 음악가였고, 그의 아버지는 아폴론, 어머니는 칼리오페.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라는 님프와 결혼하였는데 그녀는 한 양치기에게 쫓기다가 뱀에게 물려 죽고 말았다. 아내를 잃고 슬픔에 빠져있던 오르페우스는 저승으로 가서 직접 아내를 찾기로 결심했다. 그는 리라를 타고 노래하면서 지하세계로 내려갔다. 그의 음악에 감동한 뱃사공 카론은 산 사람인 그가 강을 건너게 해주었으며, 지하세계의 문지기개 케르베로스도 고개를 숙이고 저승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는 저승의 왕인 하데스와 아내 페르세포네 앞에 나아가 리라로 반주하면서 아내를 되찾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 그의 애달픈 노래를 듣고 누구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도 그것에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뤼디케를 지상으로 데리고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단 조건이 하나 붙었는데 그것은 지상에 도착하기까지는 그가 그녀를 돌아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오르페우스는 앞서고 에우뤼디케는 뒤따르면서 둘은 어둡고 험한 길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걸어왔다. 마침내 지상세계로 나가는 출구에 거의 도착하게 되었을 때, 오르페우스는 순간 약속을 잊고 에우뤼디케가 아직도 따라오나 확인하기 위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에 에우뤼디케는 하계로 다시 끌려갔다. 오르페우스는 다시 그녀를 따라 하계로 내려가려했으나 이번에는 카론도 케르베로스도 그에게 다시 자비를 베풀어 주지 않았다. 그는 아내의 죽음과 자신의 실수를 탓하면서, 그 후 여자를 멀리하며 추억을 회상하며 살았다.
처녀들은 그에게 구혼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어느 날 디오니소스의 제전에 참석한 그를 한 처녀가 발견했다. 처녀들은 자신들의 구혼이 거절당한 것에 대한 원한으로 창과 돌을 던져 그를 공격했고 그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었다. 그의 찢겨진 몸은 강에 던져졌고 그것들은 슬픈 모래를 속삭이는 듯 노래와 연주를 하며 흘러 내려갔다. 그는 죽어 지하세계에 내려가서 에우뤼디케를 찾아내자 열렬히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들은 이제 서로를 마음껏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엠파스 검색 참고)

  쥐스킨트는 이와 같은 오르페우스 신화의 사랑이야기를 기본으로 하여 사랑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가고 있다. 그가 이 책에서 사랑에 대한 어떤 체계를 잡아내려 한 듯 하진 않다. 오르페우스 신화에서부터 시작해서 그의 사랑에 대한 사색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멀리 나아간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괴테, 예수, 스탕달, 토마스만, 바그너,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의 이야기까지. 집으로부터 너무 멀리 걸어온 탓에 사색의 꼬리는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의 생각의 꼬리를 따라가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겐가 정신이 아찔하기도 하다. 책고 난 뒤에 뭘 읽었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는 책이다.

  2005년 1월, 독일에서 개봉한 영화 <사랑의 추구와 발견>에 대한 일종의 해설서라고 볼 수 있다는 이 책은,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와 줄거리를 넘어 쥐스킨트만의 사랑에 대한 사색으로 번져나갔다. 해설서라기보다는 그걸 기본으로 한 사랑에 관한 한편의 사색서라고 보는 편이 훨씬 낫겠다. 어차피 이 책을 읽고 있는 한국의 독자들이야 독일에서 개봉한 그 영화에 대해 아는 이라고는 거의 없을테니.

  사랑은 무엇인가 하고 질문을 던졌던 쥐스킨트 조차 이 책을 끝까지 써내려간 뒤에도 정답을 찾지는 못한듯 보인다. 어차피 정답은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사랑에 정답은 없다. 각자가 사랑에 대한 사색을 펼쳐나가다보면 어느 덧 사랑에 조금씩 한발 더 다가와있을 뿐. 사랑을 정의하려들지 말지어다. 사랑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사랑을 정의하려들면 더욱 멀어진다. 도를 도라 부르면 그것은 이미 도가 아니다. 사랑에 대한 믿음 그것만으로 족하다. 설명하려들지 말지어다. 정의하려들지 말지어다. 그저 느낄지어다.

나 살아있는 그 존재를 찬양하리,
불꽃같은 죽음을 동경하는 그런 존재를.

사랑의 밤들의 서늘함 속에서,
당신의 증인이었고, 이제 당신 자신이 증인이 된 그 속에서,
촛불이 고요히 타오를 때,
낯선 느낌이 당신을 사로잡네.

이제 더 이상 당신은
어둠 속 그늘에 싸여 있지 않네,
새로운 욕망이 당신을 사로잡네,
더 높은 곳에서의 성교라는 욕망이.

그곳이 아무리 먼 곳이라도 당신은 두렵지 않네,
당신은 황홀경에 빠져 훨훨 날아오르네,
그리고 빛을 열망하는 당신,
이제 당신은 드디어 나비로 불타오르네.

하지만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네,
그렇다 : 죽으면 그리 되리라!
이 어두운 지상에서는
당신은 단지 우울한 손님일뿐.

괴테 <행복한 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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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경고

  지진희와 문소리를 믿었다. 도발적인 포스터와 제목에도 끌렸다. 하지만. 뭐니 뭐니. 아무리 평가가 별 두개 반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내 취향엔 맞으리라 기대하며 봤는데 실망실망. 이 영화에서 홍상수를 보았다. 홍상수와 이하 감독이 어떤 사이인지는 모르나 - 아마도 모르는 사이 - 홍상수식의 영화 전개 방식을 보았다. <강원도의 힘> <오 수정>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등등. 홍상수의 모든 영화는 다 특이한 영화 전개 방식을 갖추고 있다. 그만의 특색이 있다는것은 그만큼 매니아들에겐 즐거운 일이겠으나 다수의 영화 관중들은 그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그의 영화 중 <오 수정>만 괜찮았고 - 이마저도 싫어하는 이들이 태반이다 - <생활의 발견>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사실 느리고 지루한 카메라 움직임과 대사 속의 스토리 부재를 안고 있다. 그것은 그에게 단점이 아닌 장점이겠지만, 영화를 보는 대중 관객에겐 장점이 아닌 단점이다.   이한 감독의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역시 마찬가지. 매끄러운 스토리 진행보다는 장면 장면을 끊어 연결시킴으로써 영화를 만들어 나간다.

  영화는 홍보에서부터 사전예매율, 극장 관객수 면에서 어느 정도 투자비를 뽑을 만한 정도의 성공은 거두었으리라 예상되지만, 그것으로 족할 듯 하다. <웰컴 투 동막골> 과 <왕의 남자>에서 볼 수 있듯 흥행의 대세는 이미 본 관객들의 입소문이다. 이 영화는 이미 본 관객들의 악평이 줄을 잇고 있으니 흥행에 성공하리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거두는 편이 좋을 듯 하다. 모든 영화가 흥행을 목적으로 할  필요는 없지만, 많은 관객과 함께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흥행은 무시 못할 코드이다.



* 두 생양아치의 첫만남. 심천대학 염색과 교수와 심천대학 만화과 교수의 만남 이자 과거 형의 애인이자 친구의 만남. "내가 뭐가 그렇게 맘에 안들어요?" "그러는 박작가님은 내가 맘에 들어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죄다 먹물들이다. 중딩 시절 생양아치로 소문이 자자하던 하지만 지금은 심천대학의 염색과 교수로 있는 조은숙, 같은 중딩 시절 은숙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역시나 양아치로 이름 높이던 또 지금은 심천대학의 만화과 교수로 온 박석규, 더불어 조은숙 교수와 함께 동시다발적 관계를 맺고 있는 심천 방송국 프로듀서 김피디와 운동권 초등학교 교사 유선생, 환경공학과 안교수, 국문과 강사 문교수 등등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죄다 공부 좀 했다하는 먹물들. 먹물 중에서도 교수나 선생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흔히 가장 모범적인 삶을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는 보통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함이다. 그렇고 그런 인물들이 도발을 하는 것보단 전혀 안그렇게 생긴 넘들이 자극적인 도발을 하는 것이 더 '도발'적이다. 낮에는 교수이자 환경운동가이고, 밤에는 "이보다 더 밝힐 순 없다"를 자랑하는 여교수. 숨겨진 그녀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 대낮의 교수와 야밤의 밝힘녀로 대비되는 그녀의 모습이 극과 극을 오간다.

 "저 결혼한거 모르셨어요?"
 "아뇨. 알았어요. 근데 와이프도 있었어요?"


 "나 안경 벗은거 처음 봐요?"
 "나 첨보는데."
 "뭘 첨봐요? 내가 언제, 안경 쓰고 해요?"



* 붉은 와인과 과일안주 셋트를 사이 둔 붉은 카펫 위의 욕설이 난무하는 우아한 만남.

 중딩시절 멀쩡했던 다리를 지금 절고 있는 여교수. 감독이 이와 같은 설정을 했던 것은 과거의 그녀의 모습을 감추기 위한 시도는 아니었을까. 그녀가 다리를 절게 된 사연에 대해서는 결코 힌트조차 주지 않는다. 그것이 사고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자신의 옛모습을 감추기 위한 계획된 행동인지는 모른다. 다리를 절어서 못알아봤다던 새로 부임한 과거의 생양아치 박석규. 그는 성을 바꾸고 다리를 절고 있는 여교수를 처음엔 못알아봤지만, 그게 그리 오래갈수야 없지. 박석규 역시 자신의 과거를 숨기긴 마찬가지. 본명 박석규, 하지만 가명인 박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교수 자리에 부임한 뒤에도 자신을 철저히 숨긴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아무리 꼭꼭 숨을래야 숨을 수 없다. 서로를 금방 알아본 두 생양아치. 씨댕. 조까 등등의 욕설이 난무하는 두 사람만의 우아한(?) 술자리. "누구나 비밀은 있다". 하지만 "나는 네가 지난 중딩시절 했던 일들을 알고 있다".

  문소리와 지진희라는 두 걸출한 배우에게 기대한 채 영화를 선택했다간 큰 코 다친다. 홍상수식 코드를 즐겨찾는 이들은 보고서 후회하지 않을 영화이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들은 그만 멈춰~. 장면은 야하되 줄거리는 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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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25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면은 야하되 줄거리는 야하지 않다.
오, 바라는 공식입니다~

urblue 2006-03-25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이거 아리까리한 평입니다.

이잘코군 2006-03-25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앗. 이런 영화 좋아하시나욤? ㅋㅋ 아님 영화에 적절하다는 표현?
우어블루님/ 아 그랬나요? ㅡㅡa 그냥 별루.

하이드 2006-03-25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보고 싶은걸요? ㅎㅎ
난 홍상수식 영화 좋아하는데..

이잘코군 2006-03-25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하이드님 그렇담 후회하진 않을듯. 저는 그걸 기대하고 갔던게 아니라서 실망. 홍상수식 영화라 하더라도 홍상수보다 한 수 아래에요.

하이드 2006-03-25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오늘 청춘만화 예매했어요. ^^

이잘코군 2006-03-25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그거 재밌을까요? 심히 의심이 가던데. 보고 실망할까봐. 완죤 애들 소꼽장난놀이정도가 아닐까해서요.

부리 2006-03-25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입니다. 볼 뻔했어요 저도 문소리를 믿었거든요

하루(春) 2006-03-25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창동은 새 영화를 안 내놓는 걸까요?

히피드림~ 2006-03-25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홍상수감독이 자기는 영화 찍어서 필름값도 안나온데요.
손해가 너무 커서 영화를 계속하려면 디지털필름을 써야겠다고 하더라구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이 영화도 부분적으로는 디지털로 촬영됐다고 하더군요. 필름 갈아끼울 필요도 없고 맘에 안들면 지우고 다시 찍고 해서 편하데요.
새로운 시도는 좋지만 필름값도 안나온다는 부분에서는 좀 씁쓸하더군요.

비로그인 2006-03-25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소리 좋아하는데.. 나중에 비됴로 봐야겠네요.

이잘코군 2006-03-26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 아 그러게요. 이창동 감독 왜 영화를 안내놓죠. 아직 적응이 필요한가.
펑크님 / 네 돈이 안되는 영화이긴 해요. 그 사람 영화들이. 스타일을 고집하다보니깐 아무래도 흥행과는 거리가 멀어지는거 같아요.
담뽀뽀님 / ^^ 비디오로는 괜찮은 영화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말로 철학하기 살림지식총서 24
이기상 지음 / 살림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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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한국인의 정신치료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한국에서 소위 배웠다는 사람치고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는 용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용어는 보편적인 진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삶의 맥락에서 만들어져 나온 이론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서양사람의 길고 긴 역사와 문화, 그리고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들의 생활 속에서 서서히 형성되어 온 서양인들의 심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이론이며 용어이다. 그런 이론과 용어가 서양에서 잘 나가는 과학이기에 직수입하여 우리의 생활세계에 적용시켜 이 땅의 어린아이들을 몽땅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환자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식민행위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5쪽

그런데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생활 세계가 거의 모든 면에서 균형을 상실하고 있다. 우리는 자연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문명과 사람 '사이'가 극도로 파괴되는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한국인은 앎에서도 삶에 필요한 정보와 방향을 얻지 못하는 삶과 앎 '사이'의 괴리 속에서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삶 따로 앎 따로', 일상과 학문, 실천과 이론이 따로따로 분리되어 아무런 연결 없이 따로 노는 극도의 '궁핍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이론이 현실에서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이론소외, 이론척박, 이론부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 까닭은 그 이론이 우리의 생활에서 만들어진 자생적 이론이 아니라, 수입된 이론, 때 지난 낡은 이론, 삶에서 이끌려나오지 않은 이론이기 때문이다. -6쪽

"다만 남의 말이나 자기가 들은 것에만 의지하는 사람은 더불어 학문을 말할 것이 못된다. 하물며 평생토록 마음의 작용과 자연의 현상에 생각이 미치지 못한 사람이랴." (박지원 <열하일기>)-8쪽

처음부터 일본어의 영향 아래 놓여 있는 우리말 번역어를 전혀 모르면서 독일에서 독일어로 독일식으로 사유하며 철학 공부를 시작한 나에게는 한국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한 다른 사람에게 없는 장점이 하나 있음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논의가 되고 있는 철학적 사태를 일본어적인 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우리말의 언어적인 상황에로 옮겨 놓고 우리의 일상세계적 맥락에서 이해해 보려고 시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것이었다. -51쪽

"지금 우리의 과학기술의 수준으로는 전세계의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인류 역사상 현대만큼 굶어죽은 사람이 많은 적이 없었다." (마르쿠제)
"아무리 빵이 넘쳐나도 인간은 절대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도스토예프스키)
"나눔 없이 평화는 없다."(마더 테레사)-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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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권창은 외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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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될 수도 있는 법이라는 표현으로 가리키는 법은, 선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시행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거나 혹은 제정 당시에는 순기능이 컸으나 달라진 상황 속에서 문제가 생겨나 대체입법이 필요하게 될 수도 있는 불완전한 법이지 악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44쪽

철학하는 일을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내려진 신의 명령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국가 공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의 명령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만약 철학 금지 명령이라면, 자신은 신의 명령을 따르기 위하여 죽음을 무릎쓰고 공권력의 명령이라도 이에 복종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경건을 대체로 신의 뜻에 따른 것 혹은 옳은 것으로 이해한다면,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불경건을 피하려 했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57쪽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정의롭다고 합의한 것들"을 우리는 행해야 하며, 반대로 국가를 설득시키지 못하고서 떠나는 식으로 탈출함으로써 이를 짓밟는 것은 위약이다.(위약설). 또한 이러한 탈출은 상대방들을 나쁘게 해 놓는것, 달리 말해서 상대방들에 해를 가하는 행위이며(파괴설), 그것도 가장 그렇게 해서는 안될 "그런 상대방들(국법 내지 국가, 조국)에게 행하는 종류의 행악이라는 것이다(불경설). -84쪽

고대희랍에서 성문법이 생기기 이전의 초기 단계에서 분쟁 해결의 평화적인 방법은 분쟁 쌍방이 동의하는 제삼의 인물에게 그 해결을 함께 호소하여 쌍방이 받아들일 만한 판결을 얻는 것이었다. 이 경우 판결 내용은 강제적 구속력을 갖기보다는 분쟁 해결의 중재안으로서 쌍방에게 제안되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러한 성격의 판결에 분쟁 당사자들 중 어느 한쪽이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 이러한 판결은 강한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무시되어질 수 있다. -86쪽

왜냐하면 불의를 행할 것을 적법하게 명령받을 경우, 이 명령이 옳지 않다는 것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실패했을 때 소크라테스는 명령받은 자의 입장에서는 이에 복종하는 것이 정의롭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64쪽

소크라테스의 정의의 원칙은 불의를 행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지 불의를 당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 아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불복종사상 역시 불의를 행하라는 명령에 대한 불복종사상이지 불의를 당하라는 명령에 대한 불복종 사상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118쪽

"나는 말과 행동으로 그리고 투표로써 또한 가능하다면 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아테네에서 민주정을 전복시키는 자나, 민주정이 전복된 이후에도 관직을 차지하고서 통치에 참여한 자나, 스스로 폭군 노릇을 하려고 쿠데타를 한 자나, 혹은 폭군이 되는 데 협력한 자 등을 죽이겠다." (BC410년 아테네 법률)-146쪽

"통상적으로 심지어 나쁜 법의 불복종조차도 그러한 행위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좋은 법을 포함하여 모든 법에 대한 일반적인 경멸을 초래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어린이들이 모든 과일을 팽개쳐 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좋은 과일은 물론 썩은 과일도 먹어야 한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썩은 과일을 먹도록 강요당한 사람은 그로 인해 모든 과일을 싫어하게 되지 않을까?"(하워드 진)-154쪽

"명령을 내리는 자와 복종하는 자 간의 '권위적' 관계는 공통된 이성에 근거하고 있지도 않으며 명령을 내리는 자의 권력에 기초하고 있지도 않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양자가 그 올바름을 정당성을 인정하고 양자가 그 안에서 미리 결정된 안정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위계 구조 그 자체이다."(한나 아렌트)-164쪽

가장 정의로운 사람인 철학자가 이상국가에서 통치자로 군림하지만, 현세의 타락과 불의로 가득 찬 세상에서는 공적인 영역을 피해 사적인 영역에 은신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소크라테스적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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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6-03-24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말인데도 이렇게 어려울 수가,,, ^^;;
올려주신 모든 문장들이 인상적이네요.

이잘코군 2006-03-24 0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이거 한번 더 읽어야할 거 같아요. 대강의 틀만 잡혔고 아직 머리 속에서 정리가 안돼요.

코마개 2006-03-24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강정인 교수도 필자로 들어가 있나요?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이다'이 책이 좀더 좋은듯 한데요.

이잘코군 2006-03-24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두 사람 모두 기재되어있던거 같은데요. 흠. 이상하게 검색하면 권창은 교수만 나오네요.
 

 

 한 작가를 알아가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다. 작가를 알기 위한 방법이니 작가의 글을 통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것은 방법이라기보다는 전제가 된다. 작가는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럼 어떻게 글을 통해 알 것인가?

  첫째, 작가가 지금까지 쓴 책 중 가장 많이 팔리고 읽힌 책, 베스트셀러를 먼저 집어든다. 지금까지 책을 깔짝거리며 읽어본 바로는 이 방법이 가장 좋은 듯 하다. 더불어 이미 책을 읽은 독자들의 평을 살펴보는 것도 작가에게 한 발 다가서는 좋은 방법이다. 평이 극과 극을 넘나드는 경우, 그 작가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대박작가일 수도 있다. 가장 많이 팔렸다는 것이 가장 많이 읽혔다는 말과 동의어가 될 수는 없지만 대개는 팔린 만큼 읽힌다고 봐야 할터. 많이 읽혔다는 말은 그만큼 많은 독자들로부터 검증받은 책이라는 말. 그러니 이 방법은 좋다.

  둘째, 딴에 자기식의 방법을 사용한다며 대개의 사람들이 취하는 방식과 달리 작가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하나는 작가의 저서들을 시간순으로 읽어가는 방법이다. 이것은 작가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괜찮은 방법이다. 젊은 시절의 글과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뒤의 글은 분명 다르다. 진정 작가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과거에서 현재까지 차근차근 살펴보며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번째 방법은 잘 모르는 작가를 접하는데 있어 첫만남에서 실망감을 느끼지 않기 위한 일종의 방어전략이라면 두번째 방법은 실망감으로 첫만남을 할지 모르나 꾸준히 참아가며 천천히 작가를 살피기만 한다면 끝에 가서 방긋 웃을지도 모르는 방법이다.

  셋째, 둘째방법과 달리 최근의 저작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이것은 나이 먹은 작가에서 젊은 시절의 작가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인데, 작가의 생각의 흐름을 읽지는 못하겠지만, 유행을 따라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득이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들고 다니며 읽고 있는 최신 책을 나도 읽고 있다는 그 생각만으로도 나는 책의 유행을 따라가는 듯한 기분이 들것이고, 그것은 책읽는 재미의 하나가 될 터. 책읽기에 재미를 붙이면 또 다른 책을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다른 책 역시 또 최근의 신작이 될 것은 분명하고, 그리되면 최근의 책만 따라가다 고전을 등한시 하는 결과도 발생하게 된다. 한 작가를 놓고 현재에서 과거로 거스르는 방법은, 신간서적을 읽는다는 신선한 기분으로 시작하여, 점점 옛날 작품을 손에 들며 흙덩이 속에 깊숙히 숨어있는 보물을 발견하는 느낌을 전해주기도 한다.

  나는 세 가지 방법 모두 사용하고, 때로는 네번째 방법인 무작위로 선택하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타인의 추천에 의해서 믿을만한 작가다, 검증받은 작가다 라는 인상을 받으면, 첫번째 방법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왜냐면 첫번째 방법은 작가를 만나는 첫만남에 있어서 그에게 실망할까 두려워 가장 인기 있었던 작품을 선택함으로서 그 실망감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검증받은 작가라면, 두번째 내지는 세번째 방법이 적절할 것이다. 옛날 것부터 최근의 것까지 살펴보는 것은 작가의 저서가 많을 경우 꽤나 깊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또 인내심 끝에 결국 작가에게 실망하게 된다면 그것은 정말이지, 오래도록 참아온 참을 인자 세개를 바닥에 내팽개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방법은 좀 위험하다. 세번째 방법은 최근의 유형을 타는 저서를 먼저 접함으로써 신선도를 높이고, 괜찮다 싶으면 해당 작가의 다른 저서들을 최근작에서 과거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을 쓰는 것으로, 위험도는 낮다. 최근작을 읽고 실망했다 하더라도 나 최근 신작 읽었어 라는 자부심(?)을 갖게 만드니 그것으로 족하다. 누군가와 대화를 함에 있어 최근에 나온 따끈따끈한 책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내가 꽤나 책을 읽는다는 인상을 주는, 내가 책의 흐름을 타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니 나쁘지 않다.

  나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 <사랑을 생각하다>를 읽었다. 최근. 이 작가에게 접하는 방식은 세번째의 것이다. 최근 신작을 먼저 읽고 그 다음 그의 저서들을 거꾸로 하나하나 들춰볼 생각. 몇권의 책이 있는데, 혹 마음이 바뀌어 중간에 무작위의 방법을 택할런지도 모르겠다. 그와의 첫만남은 대략 별루였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에 아직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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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22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쥐스킨트의 작품 가운데 최하라고 보시면 됩니다 ㅠ.ㅠ 그리고 저는 장르 먼저 봅니다~

히피드림~ 2006-03-23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향수나 좀머씨 이야기는 괜찮아요. 문체가 속도감이 있고 기발하고 개성이 넘치죠.^^

이잘코군 2006-03-23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다른 책들은 기대를 좀 해봐야겠네요. 흠. 이거 서평 오늘 중 써야지.

하늘바람 2006-03-23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수도 너무 재미있고 비둘기도 재미있지만 깊이의강요는 두고두고 볼 책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