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생각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을 때는 
 나는 그것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그것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것에 대해 설명을 하려하면
 나는 더 이상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가 무엇을 대상으로 삼아 이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중세의 철학자이고, 중세의 철학이란 신학을 의미하고, 그가 쓴 <고백록>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쯤은 쉬이 예상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러므로 도출되는 결론은 그 대상은 아마도 하느님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지만, 그의 말은 다른 곳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사랑.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을 때 나는 그것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그것에 대해 물어보고, 내가 그에 대해 설명을 하려하면 나는 그것을 내가 알고 있는건지 모르는건지조차 알 수 없다. 분명 알고 있는거 같은데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것이 있다. 사랑.

  모르는 척 하다 이제서야 밝히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위의 발언은 '시간'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사랑을 생각하다>를 시작하며, 아우구스티누의의 저 말을 걸고, 시간 대신 사랑을 적용시킴으로써 입을 뗀다. 내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 도대체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사실은 사람들로 하여금 붓이나, 펜, 혹은 악기를 집어 들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하는 쥐스킨트. 맞는 말이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모르는 것. 그 어설픔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탐구하도록 만드는 힘이 된다.

  그는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대화편>을 통해 사랑에 대한 사색을 시작한다. 그가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오르페우스 신화'.

  오르페우스는 시인이며 음악가였고, 그의 아버지는 아폴론, 어머니는 칼리오페.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라는 님프와 결혼하였는데 그녀는 한 양치기에게 쫓기다가 뱀에게 물려 죽고 말았다. 아내를 잃고 슬픔에 빠져있던 오르페우스는 저승으로 가서 직접 아내를 찾기로 결심했다. 그는 리라를 타고 노래하면서 지하세계로 내려갔다. 그의 음악에 감동한 뱃사공 카론은 산 사람인 그가 강을 건너게 해주었으며, 지하세계의 문지기개 케르베로스도 고개를 숙이고 저승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는 저승의 왕인 하데스와 아내 페르세포네 앞에 나아가 리라로 반주하면서 아내를 되찾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 그의 애달픈 노래를 듣고 누구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도 그것에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뤼디케를 지상으로 데리고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단 조건이 하나 붙었는데 그것은 지상에 도착하기까지는 그가 그녀를 돌아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오르페우스는 앞서고 에우뤼디케는 뒤따르면서 둘은 어둡고 험한 길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걸어왔다. 마침내 지상세계로 나가는 출구에 거의 도착하게 되었을 때, 오르페우스는 순간 약속을 잊고 에우뤼디케가 아직도 따라오나 확인하기 위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에 에우뤼디케는 하계로 다시 끌려갔다. 오르페우스는 다시 그녀를 따라 하계로 내려가려했으나 이번에는 카론도 케르베로스도 그에게 다시 자비를 베풀어 주지 않았다. 그는 아내의 죽음과 자신의 실수를 탓하면서, 그 후 여자를 멀리하며 추억을 회상하며 살았다.
처녀들은 그에게 구혼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어느 날 디오니소스의 제전에 참석한 그를 한 처녀가 발견했다. 처녀들은 자신들의 구혼이 거절당한 것에 대한 원한으로 창과 돌을 던져 그를 공격했고 그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었다. 그의 찢겨진 몸은 강에 던져졌고 그것들은 슬픈 모래를 속삭이는 듯 노래와 연주를 하며 흘러 내려갔다. 그는 죽어 지하세계에 내려가서 에우뤼디케를 찾아내자 열렬히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들은 이제 서로를 마음껏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엠파스 검색 참고)

  쥐스킨트는 이와 같은 오르페우스 신화의 사랑이야기를 기본으로 하여 사랑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가고 있다. 그가 이 책에서 사랑에 대한 어떤 체계를 잡아내려 한 듯 하진 않다. 오르페우스 신화에서부터 시작해서 그의 사랑에 대한 사색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멀리 나아간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괴테, 예수, 스탕달, 토마스만, 바그너,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의 이야기까지. 집으로부터 너무 멀리 걸어온 탓에 사색의 꼬리는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의 생각의 꼬리를 따라가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겐가 정신이 아찔하기도 하다. 책고 난 뒤에 뭘 읽었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는 책이다.

  2005년 1월, 독일에서 개봉한 영화 <사랑의 추구와 발견>에 대한 일종의 해설서라고 볼 수 있다는 이 책은,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와 줄거리를 넘어 쥐스킨트만의 사랑에 대한 사색으로 번져나갔다. 해설서라기보다는 그걸 기본으로 한 사랑에 관한 한편의 사색서라고 보는 편이 훨씬 낫겠다. 어차피 이 책을 읽고 있는 한국의 독자들이야 독일에서 개봉한 그 영화에 대해 아는 이라고는 거의 없을테니.

  사랑은 무엇인가 하고 질문을 던졌던 쥐스킨트 조차 이 책을 끝까지 써내려간 뒤에도 정답을 찾지는 못한듯 보인다. 어차피 정답은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사랑에 정답은 없다. 각자가 사랑에 대한 사색을 펼쳐나가다보면 어느 덧 사랑에 조금씩 한발 더 다가와있을 뿐. 사랑을 정의하려들지 말지어다. 사랑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사랑을 정의하려들면 더욱 멀어진다. 도를 도라 부르면 그것은 이미 도가 아니다. 사랑에 대한 믿음 그것만으로 족하다. 설명하려들지 말지어다. 정의하려들지 말지어다. 그저 느낄지어다.

나 살아있는 그 존재를 찬양하리,
불꽃같은 죽음을 동경하는 그런 존재를.

사랑의 밤들의 서늘함 속에서,
당신의 증인이었고, 이제 당신 자신이 증인이 된 그 속에서,
촛불이 고요히 타오를 때,
낯선 느낌이 당신을 사로잡네.

이제 더 이상 당신은
어둠 속 그늘에 싸여 있지 않네,
새로운 욕망이 당신을 사로잡네,
더 높은 곳에서의 성교라는 욕망이.

그곳이 아무리 먼 곳이라도 당신은 두렵지 않네,
당신은 황홀경에 빠져 훨훨 날아오르네,
그리고 빛을 열망하는 당신,
이제 당신은 드디어 나비로 불타오르네.

하지만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네,
그렇다 : 죽으면 그리 되리라!
이 어두운 지상에서는
당신은 단지 우울한 손님일뿐.

괴테 <행복한 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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