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경고
지진희와 문소리를 믿었다. 도발적인 포스터와 제목에도 끌렸다. 하지만. 뭐니 뭐니. 아무리 평가가 별 두개 반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내 취향엔 맞으리라 기대하며 봤는데 실망실망. 이 영화에서 홍상수를 보았다. 홍상수와 이하 감독이 어떤 사이인지는 모르나 - 아마도 모르는 사이 - 홍상수식의 영화 전개 방식을 보았다. <강원도의 힘> <오 수정>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등등. 홍상수의 모든 영화는 다 특이한 영화 전개 방식을 갖추고 있다. 그만의 특색이 있다는것은 그만큼 매니아들에겐 즐거운 일이겠으나 다수의 영화 관중들은 그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그의 영화 중 <오 수정>만 괜찮았고 - 이마저도 싫어하는 이들이 태반이다 - <생활의 발견>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사실 느리고 지루한 카메라 움직임과 대사 속의 스토리 부재를 안고 있다. 그것은 그에게 단점이 아닌 장점이겠지만, 영화를 보는 대중 관객에겐 장점이 아닌 단점이다. 이한 감독의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역시 마찬가지. 매끄러운 스토리 진행보다는 장면 장면을 끊어 연결시킴으로써 영화를 만들어 나간다.
영화는 홍보에서부터 사전예매율, 극장 관객수 면에서 어느 정도 투자비를 뽑을 만한 정도의 성공은 거두었으리라 예상되지만, 그것으로 족할 듯 하다. <웰컴 투 동막골> 과 <왕의 남자>에서 볼 수 있듯 흥행의 대세는 이미 본 관객들의 입소문이다. 이 영화는 이미 본 관객들의 악평이 줄을 잇고 있으니 흥행에 성공하리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거두는 편이 좋을 듯 하다. 모든 영화가 흥행을 목적으로 할 필요는 없지만, 많은 관객과 함께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흥행은 무시 못할 코드이다.
* 두 생양아치의 첫만남. 심천대학 염색과 교수와 심천대학 만화과 교수의 만남 이자 과거 형의 애인이자 친구의 만남. "내가 뭐가 그렇게 맘에 안들어요?" "그러는 박작가님은 내가 맘에 들어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죄다 먹물들이다. 중딩 시절 생양아치로 소문이 자자하던 하지만 지금은 심천대학의 염색과 교수로 있는 조은숙, 같은 중딩 시절 은숙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역시나 양아치로 이름 높이던 또 지금은 심천대학의 만화과 교수로 온 박석규, 더불어 조은숙 교수와 함께 동시다발적 관계를 맺고 있는 심천 방송국 프로듀서 김피디와 운동권 초등학교 교사 유선생, 환경공학과 안교수, 국문과 강사 문교수 등등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죄다 공부 좀 했다하는 먹물들. 먹물 중에서도 교수나 선생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흔히 가장 모범적인 삶을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는 보통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함이다. 그렇고 그런 인물들이 도발을 하는 것보단 전혀 안그렇게 생긴 넘들이 자극적인 도발을 하는 것이 더 '도발'적이다. 낮에는 교수이자 환경운동가이고, 밤에는 "이보다 더 밝힐 순 없다"를 자랑하는 여교수. 숨겨진 그녀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 대낮의 교수와 야밤의 밝힘녀로 대비되는 그녀의 모습이 극과 극을 오간다.
"저 결혼한거 모르셨어요?"
"아뇨. 알았어요. 근데 와이프도 있었어요?"
"나 안경 벗은거 처음 봐요?"
"나 첨보는데."
"뭘 첨봐요? 내가 언제, 안경 쓰고 해요?"
* 붉은 와인과 과일안주 셋트를 사이 둔 붉은 카펫 위의 욕설이 난무하는 우아한 만남.
중딩시절 멀쩡했던 다리를 지금 절고 있는 여교수. 감독이 이와 같은 설정을 했던 것은 과거의 그녀의 모습을 감추기 위한 시도는 아니었을까. 그녀가 다리를 절게 된 사연에 대해서는 결코 힌트조차 주지 않는다. 그것이 사고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자신의 옛모습을 감추기 위한 계획된 행동인지는 모른다. 다리를 절어서 못알아봤다던 새로 부임한 과거의 생양아치 박석규. 그는 성을 바꾸고 다리를 절고 있는 여교수를 처음엔 못알아봤지만, 그게 그리 오래갈수야 없지. 박석규 역시 자신의 과거를 숨기긴 마찬가지. 본명 박석규, 하지만 가명인 박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교수 자리에 부임한 뒤에도 자신을 철저히 숨긴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아무리 꼭꼭 숨을래야 숨을 수 없다. 서로를 금방 알아본 두 생양아치. 씨댕. 조까 등등의 욕설이 난무하는 두 사람만의 우아한(?) 술자리. "누구나 비밀은 있다". 하지만 "나는 네가 지난 중딩시절 했던 일들을 알고 있다".
문소리와 지진희라는 두 걸출한 배우에게 기대한 채 영화를 선택했다간 큰 코 다친다. 홍상수식 코드를 즐겨찾는 이들은 보고서 후회하지 않을 영화이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들은 그만 멈춰~. 장면은 야하되 줄거리는 야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