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머리가 하얘졌다. 하루 종일 그냥 멍하니 있었다. 멍하니 티비보고, 멍하니 인터넷 기사들 클릭하고, 멍하니 밥을 먹었다. 딱히 한 게 없이 정신이 멍했다. 어느 순간 피로감이 몰려왔고, 오랫동안 잤다. 대선 때 그를 지지했다. 비판은 하면서도 등돌린 적은 없었다. 더 잘하라는 비판이었다. 이라크 파병과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은 못마땅했지만, 권위주의가 많이 사라지고, 지금처럼 대통령을 욕해도 문제없는 - 다시 문제가 되고 있지만 - 풍토를 만든 것 등은 그 덕분이라 생각한다. 잘못한 점도 많지만 역대 대통령 중에선 그래도 가장 나았다.  

  그 누구도 죽음을 예상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퇴임 후 마을 이웃들과 인사하고, 손녀 자전거 태우며 지내는 시골 할아버지로 돌아간 모습도, 어느 전직 대통령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어느 순간부터 가끔씩 현 정부에 대한 발언을 하면서, 더더욱 미움을 샀던 것 같다. 검찰 조사가 시작되고 생각지 못했던 내용이 밝혀지면서 굉장한 부담감을 느꼈던 것 같다. 전직 대통령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인 금액이지만 도덕성을 높이 내세웠던 그에게 실망한 사람들이 많았다. 인터넷에 오르는 유서 내용엔 돈 문제에 대해서 빠져있는데, 어느 기사엔 "돈 문제는 깨끗하다"고 나와 있다. 사실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자살은 충격이다.  

  하루 종일 멍하면서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참 모질게 살아야겠다. 참 이기적이고 못되게 살아야겠다. 그런 놈들은 대놓고 돈 모으고, 비리를 저질러도 괜찮고, 끝까지 살아남는데, 크지 않은 부정에도 괴로워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은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싶다. 작은 부정이나 비리를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잘못에 대해서는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에 관해선 깔끔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본인은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오직 죽음으로서 그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전두환, 노태우 이런 녀석들은 십원 한 장 없다면서 참 잘먹고 잘살더라. 왜 좀더 당당하게 맞서지 못해 죽음까지 이르러야 했나. 아닌 것에 대해선 아니라고, 잘못한 것에 대해선 잘못했다고 말하면 될 것을,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나. 도덕과 정의에 민감한 사람들은 참 마음이 약하다. 작은 잘못에도 스스로 괴로워하고 마음 아파한다. 그런데, 낯짝이 두껍고 이기적인 녀석들, 도덕과 정의는 돈주고 팔아먹은 녀석들은, 어떤 역경에도 당당히 살아남는다. 얼굴 빳빳이 들고. 전두환과 노태우와 이명박을 보면 알 수 있다.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그 화살은 이미 개가 된 검찰에게로. 그리고 이명박에게로 향하고 있다. 아무래도 그는 온전히 남은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할 것 같다. 덕수궁에 분향소가 차려졌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렸다. 그런데 그 주위를 경찰버스가 둘러쌌다. 원천봉쇄. 작년 촛불 집회 이후로 모든 집회에는 이런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분노해서 거리로 나온 시민들을 더 분노케 만든다. 집에서 지켜보던 시민들을 거리로 나오게 한다. 누가 청와대로 쳐들어간다고 했나. 분향소에 가서 꽃 한 송이 놓고 오겠다고, 절 한 번 하고 오겠다고 나간 시민들을 이렇게 대한다. 국민이 없는 국가를 혼자서 통치하고 있다. 심판의 날이 멀지 않았다.     

  세상이 참 못됐다. 악랄한 녀석들만 살아남는다. 살아남기 위해선, 내 뱃속 가득 채우고 등따습고 배부르게 살기 위해선, 마음 모질게 먹고 악랄해져야 하는데, 차마 그러지 못하겠다. 도덕이나 정의를 내세워 욕먹으나 온갖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부정을 저지르며 잇속 챙겨 욕 먹으나 마찬가지인데, 똑같이 욕을 먹을거라면 차라리 전자로 욕을 먹으며 살고 싶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슬퍼하고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 사람들을 위해 발언하고, 보호하고,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편으로 그러지 못했으나 한편으론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는 참 괜찮은 사람을 잃었다. 기대했던 바가 너무 많아 잘한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너무 모질게 몰아세우기만 했다. 참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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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는 노빠다..
    from 공감지수만땅 2009-05-24 07:50 
    나는 노빠다.  16대 대선, 노사모 가입, 노무현 당선... 펄펄뛰며 세상이 바뀔꺼라고 좋아하다.  나는 노빠가 아니다.  노사모에 가입하고, 선거에 한표를 행사하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으므로...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통령 노무현을 수시로 의심했다. 그의 정치적 능력을, 리더쉽을, 그리고 끝내는 그의 인간성까지도..........  그에게 고통을 주고
 
 
마노아 2009-05-24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아픈데, 그래도 아프님 글은 참 따뜻하네요. 아주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어요...

마늘빵 2009-05-24 01:38   좋아요 0 | URL
하는 일 없이 계속 인터넷 기사만 클릭하고 있네요. 뭔가 해야할 거 같고 답답하네요. 이 새벽에도 덕수궁엔 사람들이 있겠죠? 그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겠죠?

sweetrain 2009-05-24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루종일 머리가 멍했습니다.
점점 이 세상에 대해서 환멸을 가지게 되지만...
환멸에 지지 않고, 좋은 세상이 올때까지 악착같이 버티려구요.

마늘빵 2009-05-24 09:40   좋아요 0 | URL
버텨야죠. 끝까지 버텨내야죠.

Kir 2009-05-24 0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기본적으로 악하고 추한 존재인 것 같아요.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 먹먹함과 분노, 죄스러움을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마늘빵 2009-05-24 09:42   좋아요 0 | URL
세상이 더 악하고 추하게 되라고 권장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제 자신을 붙들어 매야죠... 참 미안하네요.

비의딸 2009-05-24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노므 냄비근성...... 한때는 그분을 사랑했고, 또 한때는내 믿음에 대한 배신자로 저주했으며, 이제는 그분을 그리워하는 나의 냄비근성을 늘 한결같았던 그분이 용서하시길 바래봅니다.

마늘빵 2009-05-24 09:43   좋아요 0 | URL
아마 대선 때 그에게 표를 던졌던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hnine 2009-05-24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랄한 녀석들만 살아남는다'라고 하신 말씀, 저도 어제 그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이 약한 사람이 먼저 희생될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고.
그러면서도, 과연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이 세상 살기가 더 힘들어지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쉽게 인정할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마음 독하게 독하게 먹고 살아야겠다고, 또는 그렇게 살으라고 해야하는 것일까...아무튼 생각이 복잡한 하루였습니다.

마늘빵 2009-05-24 09:45   좋아요 0 | URL
네, 뻔뻔하고 이기적인 녀석들은 그들을 향한 비판을 그냥 무시합니다. 누구처럼. 귀닫고 안들으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다 마음에 담아둡니다. 마음 독하게 먹어야죠.

비로그인 2009-05-24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프고, 가슴이 먹먹한 것은 처음입니다. 공인의 죽음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처음, 이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글과 음성을 접할 수 없다는 마음에 슬픈 것도 처음. 모든 것이 처음인데 너무 슬퍼 마음이 계속 웁니다.

마늘빵 2009-05-24 09:47   좋아요 0 | URL
저 역시 그러네요. 조만간 덕수궁에 나가 국화꽃 한 송이 놓고 와야겠습니다.

2009-05-24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24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9-05-24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마늘빵 2009-05-24 22:37   좋아요 0 | URL
하루 종일 일하고 이제 돌아왔네요. 덕수궁에 가보고 싶은데 내일은 시간이 날까 모르겠어요. 마음이 아프네요.

logos678 2009-05-25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삶의 기둥이었던 도덕성이 무너졌다는 수치심과 모멸감을 참기 어려웠겠죠. 사실 그런 건 조금만 뻔뻔하면 쉽게 무시할 수도 있었던 것들인데... 사실 무시하고 사는 사람도 부지기수로 많은데...조기 게양하고 며칠째 침통해 있어요. 해마다 5월이 되면 우울할 것 같네요.

마늘빵 2009-05-25 16:58   좋아요 0 | URL
집 앞 건물에도 어제 조기가 게양되어 있더라고요. 출근 길에 보니 아파트 군데군데 꽤 보였어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다 여성이 세상을 바꾸다 3
최세희.전성원.손동수 지음 / 낮은산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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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나는 기형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들은 내가 처음으로 사진에 담은 대상 가운데 하나이며, 그들을 찍는 일은 몹시 흥분되는 일이었다. 물론 나는 그들을 존중했고, 아직도 그들 가운데 몇몇을 좋아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랄는 뜻은 아니다. 그들은 나에게 부끄러움도 경외심도 함께 준다. 가던 길을 멈추고 수수께끼의 답을 요구하는 신화 속의 인물처럼 그들에게는 특징적인 전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적 외상을 입을까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기형인들은 애초부터 이런 외상을 지닌 채 태어났다. 그들은 이미 인생의 시험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그들이야말로 삶을 초월한 고귀한 사람들이다."(다이앤 아버스)-113-114쪽

"내 예술이 목적을 가졌다는 데 동의한다. 나는 인간이 이토록 어쩔 줄 모르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 시대에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케테 콜비츠)-213쪽

"'씨앗들을 짓이겨서는 안 된다.' 이제 이것은 나의 유언이다. 요즈음은 무척 우울하다. 나는 다시 한 번 똑같은 것을 팔고 있다. 망아지처럼 바깥을 구경하고 싶어 하는 베를린의 소년들을 한 여인이 저지한다. 이 늙은 여인은 자신의 외투 속에 소년들을 숨기고서 그 위로 팔을 힘 있게 뻗치고 있다. 씨앗들을 짓이겨서는 안 된다. 이 요구는 <전쟁은 이제 그만!>에서처럼 막연한 소원이 아니라 명령이다. 요구다."(케테 콜비츠)-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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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05-17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이트도 많이 해봐야겠어용ㅋ

마늘빵 2009-05-19 09:41   좋아요 0 | URL
네, '그냥 데이트'도 많이 해보세요. ^^
 
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
기타노 다케시 지음, 김영희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4월
절판


생각해보면 행복이란 건 정말 짧고, 나머지는 대부분 불행하다고 해도 좋다. 결국 불행이라는 건 그 순간순간에 느끼는 거다. 그래서 괴로운 법이다. 반면 행복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된다. 행복이란 회상하는 것이라서, 그 당시에는 행복하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한다. 따라서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은 "저 녀석, 요즘 행복해 보여"와 같이 타인이 말할 뿐, 당사자는 전혀 깨닫지 못한다.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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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강상진.김재홍.이창우 옮김 / 이제이북스 / 2006년 11월
구판절판


모든 기예와 탐구, 또 마찬가지로 모든 행위와 선택은 어떤 좋음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좋음을 모든 것이 추구하는 것이라고 옳게 규정해 왔다. -13쪽

그것은 으뜸가는 학문, 가장 총기획적인 학문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치학이 바로 그러한 학문인 것 같다. 왜냐하면 폴리스 안에 어떤 학문들이 있어야만 하는지, 또 각각의 시민들이 어떤 종류의 학문을 얼마나 배워야 하는지를 정치학이 규정하기 때문이다. -14쪽

대중들과 교양 있는 사람들 모두 그것(최상의 좋음)을 '행복(eudaimonia)'이라고 말하고, ‘잘 사는 것’과 ‘잘 행위하는 것’을 ‘행복하다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17쪽

교양 있는 사람이나 실천적인 사람은 명예를 선택한다. 대개 이것이 정치적 삶의 목적이니까. 그렇지만 명예는 우리가 추구하기에는 너무 피상적인 것 같다. 명예는 명예를 받는 사람보다 수여하는 사람에게 더 의존하는 것으로 보이는 반면, 좋음은 고유한 어떤 것으로 쉽게 우리에게서 떼어 낼 수 없는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자신들이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얻기 위해서이다. 어쨌든 그들은 실천적 지혜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또 그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또 그들의 탁월성을 근거로 명예를 얻고자 한다. 따라서 적어도 이들에게는 탁월성이 명예보다 더 나은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20쪽

좋음은 신과 지성이 좋다고 이야기될 때처럼 무엇임에서 좋다고 이야기되기도 하고, 탁월성이 좋다고 이야기될 때처럼 성질에 있어서 이야기되기도 하며, 적당량이 좋다고 할 때처럼 양에 있어서, 무엇에 대해 유용하다고 할 때처럼 관계에 있어서, 적시를 이야기할 때처럼 시간에 있어서, 적절한 거처를 이야기할 때처럼 장소에 있어서, 그리고 그 밖에 다른 것들[을 이야기할 때도]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좋음이 어떤 공통적이며 단일한 보편자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22-23쪽

우리는 그 자체로 추구되는 것이 다른 것 때문에 추구되는 것보다 더 완전하다고 말하며, 다른 것 때문에 선택되지는 않는 것이 그 자체로도 선택되고 그것[다른 것] 때문에도 선택되는 것보다 더 완전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언제나 그 자체로 선택될 뿐 결코 다른 것 때문에 선택되는 일이 없는 것을 단적으로 완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행복이 이렇게 단적으로 완전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행복을 언제나 그 자체 때문에 선택하지, 결코 다른 것 때문에 선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27쪽

품성 상태들은 [그 품성상태들과] 유사한 활동들로부터 생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우리의 활동들이 어떤 성질의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 활동들의 차이에 따라 품성 상태들의 차이가 귀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린 시절부터 죽 이렇게 습관을 들였는지, 혹은 저렇게 습관을 들였는지는 결코 사소한 차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단히 큰 차이, 아니 모든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53쪽

그러므로 행해진 것들이 정의롭거나 절제 있다고 이야기되는 것은 그것들이 정의로운 사람이나 절제 있는 사람이 행했을 법한 그런 종류의 행위들일 때이다. 정의로운 사람이나 절제 있는 사람은 이런 일들을 [단순히] 행하는 사람이 아니고, 마치 정의로운 사람들이나 절제 있는 사람들이 행하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이런 일들을 행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일들을 행하는 것으로부터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절제 있는 일들을 행하는 것으로부터 절제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이러한 일들을 행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하며, 될 가망성조차 가지지 못할 것이다. -60쪽

마땅히 그래야 할 때, 또 마땅히 그래야 할 일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사람들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목적을 위해서, 또 마땅히 그래야 할 방식으로 감정을 갖는 것은 중간이자 최선이며, 바로 그런 것이 탁월성에 속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행위에 관련해서도 지나침과 모자람, 그리고 중간이 있다. 그런데 탁월성은 감정과 행위에 관련하고, 이것들 안에서 지나침과 모자람이 잘못을 범하는 반면, 중간적인 것은 칭찬을 받고 또한 올곧게 성공한다. 이 양자가 탁월성에 속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탁월성은 중간적인 것을 겨냥하는 한 일종의 중용이다. -65쪽

합리적 선택은 명백히 자발적인 것이지만 그것과 동일하지는 않고, 자발적인 것이 더 널리 적용된다. 왜냐하면 아이들이나 다른 동물들도 자발적인 것에는 참여하지만 합리적 선택에는 그러지 못하며, 또 갑작스러운 행위를 자발적인 것이라고는 해도 합리적 선택에 따른 것이라고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86쪽

용감한 사람들은 고귀한 것 때문에 행위하며, 분노는 그들을 옆에서 거든다. (중략) 또 분노로 인한 용기가 가장 본성적인 것으로 보이며, 합리적 선택과 [왜 용기를 내는지] 그 목적을 추가적으로 취한다면 참된 용기가 되는 것 같다. 사람들 또한 화가 나면 고통을 느끼고 보복을 하면 즐거워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 때문에 싸우는 사람들은 싸움을 잘 하는 사람이기는 해도 용감한 사람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고귀한 것 때문에 싸우는 것도, 이성이 명한 바에 따라 싸우는 것도 아니며, 감정 때문에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용기를 닮은 어떤 것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108-109쪽

마땅히 화를 낼 만한 일에 대해 마땅히 화를 낼 만한 사람에게 화를 내는 사람은, 더 나아가 마땅한 방식으로, 마땅한 때, 마땅한 시간 동안 화를 내는 사람은 칭찬을 받는다. 그렇다면, 온화가 칭찬을 받는 것인 한, 이런 사람이 온화한 사람일 것이다. 온화한 사람은 동요가 없는 사람이며, 또 감정에 의해 휘둘리지 않고 이성이 명할 것처럼 그렇게, 화를 낼 만한 대상에 대해 화를 낼 시간 동안 노여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146쪽

이 방면에서의 모자람은, 그것이 일종의 ‘화낼 줄 모름’이든 다른 무엇이든, 비난을 받는다. 마땅히 화를 내야 할 일에 대해 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되고, 마땅한 방식으로 화를 낼 줄도, 마땅한 때에 마땅한 사람에 대해서 화를 낼 줄도 모르는 사람 역시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146쪽

정의란 그것에 따라 정의로운 사람이 정의로운 것을 합리적으로 선택해서 실행하게 된다고 이야기되는 탁월성이며, 그것에 따라 정의로운 사람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혹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분배할 때, 선택할 만한 것을 자신에게는 더 많이 배분하고, 이웃에게는 더 적게 배분하며, 해로운 것은 그 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비례에 따라 동등한 것을 배분하며,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분배할 때도 마찬가지로 하게 하는 탁월성이다. -180쪽

부정의를 당하는 것과 부정의를 행하는 것이 모두 나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의를 행하는 것이 더 나쁘다. 왜냐하면 부정의를 행하는 것은 악덕을 동반하는 것이며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되, 그때의 악덕은 완전하고 단적인 악덕이거나 그에 가까운 악덕인 반면, 부정의를 당하는 것은 악덕도, 부정의도 수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200-201쪽

이해력은 언제나 그런 것들, 또 변하지 않는 것들, 혹은 생겨나는 것들 중 어떤 것이든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의문을 가질 수 있고 숙고할 수 있는 대상들에만 관계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그것은 실천적 지혜의 대상이 되는 것들과 동일한 것에 관련되지만, 그렇다고 이해력과 실천적 지혜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실천적 지혜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고 무엇을 행하지 말아야만 하는지에 대해 명을 내리는 것이며, 이것이 실천적 지혜의 목적인 반면, 이해력은 오로지 판단을 내리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223쪽

소크라테스 또한 어떤 측면에서는 옳게 탐구했지만, 다른 어떤 측면에서는 잘못을 저질렀던 것이다. 모든 탁월성들이 실천적 지혜라고 생각했다는 점에서는 잘못을 범했던 것이며, 그것들이 실천적 지혜 없이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점에서는 옳게 이야기한 것이니까. -230-231쪽

이것들 중 최선은 군주정이며 최악은 금권정이다. 참주정은 군주정의 타락한 형태이다. (중략) 민주정은 금권정으로부터 나온다. 그들은 서로 경계를 공유하고 있다. 금권정 여기 다중의 지배를 지향하며, 일정 재산 이상의 자격 요건을 갖춘 사람들은 모두 동등하기 때문이다. 타락한 정치체제 중에서는 민주정이 가장 덜 나쁜 것이다. 제헌정의 기본틀로부터 약간만 타락한 것이기 때문이다. -299-300쪽

우리는 행복이 품성 상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만약 행복이 품성상태라면 평생 잠만 자면서 식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도, 크나큰 비운을 겪고 있는 사람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만족스럽지 못한 생각이며, 앞으로 말했던 것과 같이 행복을 일종의 활동으로 규정해야 한다면, 또 만약 활동들 중 일부가 다른 것을 위해 선택되는 필수적인 것이고, 다른 일부는 그 자체로 선택되는 것이라면, 행복은 분명 그 자체로서 선택되는 활동들 중 하나로 놓여야 하며, 다른 것 때문에 선택되는 활동들의 하나로 놓여서는 안 된다. 행복은 그 어떤 것도 부족한 것이 없고 자족적이기 때문이다. -3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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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킹 베를린 - 천유로 세대의 위험한 선택
소니아 로시 지음, 황현숙 옮김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3월
품절


숍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의무사항이 아님에도 주로 속옷 차림으로 일한다. 물론 옷을 입고 있어도 되는데 말이다. 그리고 날렵한 속옷이나 빨강 혹은 검은색 코르셋에 부츠나 굽이 높은 힐을 신는데, 처음엔 이런 것이 마치 노동자들이 푸른색 옷으로 상징되듯 사람들이 지닌 우스운 통념이란 것도 몰랐고, 또는 보통의 남자들이 이런 차림에 달아오른다는 통계가 분명하게 입증되고 있는 것도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 역시 속옷에 많은 신경을 썼다. (짝이 맞지 않는 브래지어와 팬티를 입고 집 밖으로 나오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렇게 쇼핑을 하기보다는 뭔가 더 나은 일을 할 수도 있었지만, 속옷을 사러 가서는 신중하게 고르기 위해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계속)-56쪽

(이어서) 일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은 최소한 30분, 그 시간은 물론 조금씩 단축되었다. 일은 저녁 시간에 시작되었는데, 그 전에 다리와 겨드랑이 등에 있는 털을 깔끔하게 밀어낸다. 음모를 면도하는 것은 각자의 취향 나름이지만, 경험상 남자들은 오히려 자연스러움을 선호했다. 화장을 할 때도 특히 눈 주위 아이라인을 검고 두껍게 칠했다. 그리고 마무리로 은이나 금으로 된 귀고리를 하고, 목에 향수를 바른 후 머리를 벗어 내린다. 고객은 스스로 아가씨를 고르는데, 첫눈에 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섹시하고 여성스럽게 보이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데, 그날 화장이 잘못되었거나, 차림새가 좀 이상하면 그냥 집에 가서 쉬는 편이 나았다. 섹스에 돈을 쓰는 사람은 이상적인 섹스 파트너를 찾기 때문이다. -56쪽

"누구와 교제를 한다는 것은 주식 투자를 하는 것과 비슷해요."
내가 설명했다.
"아무리 투자를 많이 한다 해도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166쪽

"독일 남부 지방 클럽에서 일할 아가씨를 구합니다. 보수는 주당 2000유로."
난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상상해봤다. 노트북과 컬러화면으로 된 휴대폰도 사고 독일에서 맞는 칙칙한 봄을 떠나 라드야와 여행하며 레스토랑에 가서 밥도 먹고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집에 올 때는 비틀거리며 전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택시를 탈 수 있었다.
"스텔라, 네 손님이야!"-175-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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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4-24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와 교제를 한다는 것은 주식 투자를 하는 것과 비슷해요.”
내가 설명했다.
“아무리 투자를 많이 한다 해도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 166쪽

맞는 말이네요. 이 책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마늘빵 2009-04-24 11:47   좋아요 0 | URL
^^ 리뷰를 쓰고 싶은데 쓸지는 또 모르겠습니다. 계획과 실천은 언제나 따로 노니까.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합니다. 이래도 돼?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니? 참 쉽게 산다,하는 마음과,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걸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는 마음.

pjy 2009-04-25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66p 저도 땡깁니다만..내용이 우울해보입니다..

마늘빵 2009-04-25 21:24   좋아요 0 | URL
전체적인 구조를 생각하면 우울한데, 저자는 본격적으로 일을 하면서도부터는 일이 끝난 후 받을 돈 때문이겠지만 일에 적극적이고, 즐기기까지 하는 듯 합니다. 확실히 성매매가 자유롭고 합법적인 베를린이라 이곳 상황과는 좀 다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