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강상진.김재홍.이창우 옮김 / 이제이북스 / 2006년 11월
구판절판


모든 기예와 탐구, 또 마찬가지로 모든 행위와 선택은 어떤 좋음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좋음을 모든 것이 추구하는 것이라고 옳게 규정해 왔다. -13쪽

그것은 으뜸가는 학문, 가장 총기획적인 학문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치학이 바로 그러한 학문인 것 같다. 왜냐하면 폴리스 안에 어떤 학문들이 있어야만 하는지, 또 각각의 시민들이 어떤 종류의 학문을 얼마나 배워야 하는지를 정치학이 규정하기 때문이다. -14쪽

대중들과 교양 있는 사람들 모두 그것(최상의 좋음)을 '행복(eudaimonia)'이라고 말하고, ‘잘 사는 것’과 ‘잘 행위하는 것’을 ‘행복하다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17쪽

교양 있는 사람이나 실천적인 사람은 명예를 선택한다. 대개 이것이 정치적 삶의 목적이니까. 그렇지만 명예는 우리가 추구하기에는 너무 피상적인 것 같다. 명예는 명예를 받는 사람보다 수여하는 사람에게 더 의존하는 것으로 보이는 반면, 좋음은 고유한 어떤 것으로 쉽게 우리에게서 떼어 낼 수 없는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자신들이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얻기 위해서이다. 어쨌든 그들은 실천적 지혜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또 그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또 그들의 탁월성을 근거로 명예를 얻고자 한다. 따라서 적어도 이들에게는 탁월성이 명예보다 더 나은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20쪽

좋음은 신과 지성이 좋다고 이야기될 때처럼 무엇임에서 좋다고 이야기되기도 하고, 탁월성이 좋다고 이야기될 때처럼 성질에 있어서 이야기되기도 하며, 적당량이 좋다고 할 때처럼 양에 있어서, 무엇에 대해 유용하다고 할 때처럼 관계에 있어서, 적시를 이야기할 때처럼 시간에 있어서, 적절한 거처를 이야기할 때처럼 장소에 있어서, 그리고 그 밖에 다른 것들[을 이야기할 때도]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좋음이 어떤 공통적이며 단일한 보편자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22-23쪽

우리는 그 자체로 추구되는 것이 다른 것 때문에 추구되는 것보다 더 완전하다고 말하며, 다른 것 때문에 선택되지는 않는 것이 그 자체로도 선택되고 그것[다른 것] 때문에도 선택되는 것보다 더 완전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언제나 그 자체로 선택될 뿐 결코 다른 것 때문에 선택되는 일이 없는 것을 단적으로 완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행복이 이렇게 단적으로 완전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행복을 언제나 그 자체 때문에 선택하지, 결코 다른 것 때문에 선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27쪽

품성 상태들은 [그 품성상태들과] 유사한 활동들로부터 생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우리의 활동들이 어떤 성질의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 활동들의 차이에 따라 품성 상태들의 차이가 귀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린 시절부터 죽 이렇게 습관을 들였는지, 혹은 저렇게 습관을 들였는지는 결코 사소한 차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단히 큰 차이, 아니 모든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53쪽

그러므로 행해진 것들이 정의롭거나 절제 있다고 이야기되는 것은 그것들이 정의로운 사람이나 절제 있는 사람이 행했을 법한 그런 종류의 행위들일 때이다. 정의로운 사람이나 절제 있는 사람은 이런 일들을 [단순히] 행하는 사람이 아니고, 마치 정의로운 사람들이나 절제 있는 사람들이 행하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이런 일들을 행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일들을 행하는 것으로부터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절제 있는 일들을 행하는 것으로부터 절제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이러한 일들을 행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하며, 될 가망성조차 가지지 못할 것이다. -60쪽

마땅히 그래야 할 때, 또 마땅히 그래야 할 일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사람들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목적을 위해서, 또 마땅히 그래야 할 방식으로 감정을 갖는 것은 중간이자 최선이며, 바로 그런 것이 탁월성에 속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행위에 관련해서도 지나침과 모자람, 그리고 중간이 있다. 그런데 탁월성은 감정과 행위에 관련하고, 이것들 안에서 지나침과 모자람이 잘못을 범하는 반면, 중간적인 것은 칭찬을 받고 또한 올곧게 성공한다. 이 양자가 탁월성에 속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탁월성은 중간적인 것을 겨냥하는 한 일종의 중용이다. -65쪽

합리적 선택은 명백히 자발적인 것이지만 그것과 동일하지는 않고, 자발적인 것이 더 널리 적용된다. 왜냐하면 아이들이나 다른 동물들도 자발적인 것에는 참여하지만 합리적 선택에는 그러지 못하며, 또 갑작스러운 행위를 자발적인 것이라고는 해도 합리적 선택에 따른 것이라고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86쪽

용감한 사람들은 고귀한 것 때문에 행위하며, 분노는 그들을 옆에서 거든다. (중략) 또 분노로 인한 용기가 가장 본성적인 것으로 보이며, 합리적 선택과 [왜 용기를 내는지] 그 목적을 추가적으로 취한다면 참된 용기가 되는 것 같다. 사람들 또한 화가 나면 고통을 느끼고 보복을 하면 즐거워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 때문에 싸우는 사람들은 싸움을 잘 하는 사람이기는 해도 용감한 사람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고귀한 것 때문에 싸우는 것도, 이성이 명한 바에 따라 싸우는 것도 아니며, 감정 때문에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용기를 닮은 어떤 것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108-109쪽

마땅히 화를 낼 만한 일에 대해 마땅히 화를 낼 만한 사람에게 화를 내는 사람은, 더 나아가 마땅한 방식으로, 마땅한 때, 마땅한 시간 동안 화를 내는 사람은 칭찬을 받는다. 그렇다면, 온화가 칭찬을 받는 것인 한, 이런 사람이 온화한 사람일 것이다. 온화한 사람은 동요가 없는 사람이며, 또 감정에 의해 휘둘리지 않고 이성이 명할 것처럼 그렇게, 화를 낼 만한 대상에 대해 화를 낼 시간 동안 노여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146쪽

이 방면에서의 모자람은, 그것이 일종의 ‘화낼 줄 모름’이든 다른 무엇이든, 비난을 받는다. 마땅히 화를 내야 할 일에 대해 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되고, 마땅한 방식으로 화를 낼 줄도, 마땅한 때에 마땅한 사람에 대해서 화를 낼 줄도 모르는 사람 역시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146쪽

정의란 그것에 따라 정의로운 사람이 정의로운 것을 합리적으로 선택해서 실행하게 된다고 이야기되는 탁월성이며, 그것에 따라 정의로운 사람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혹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분배할 때, 선택할 만한 것을 자신에게는 더 많이 배분하고, 이웃에게는 더 적게 배분하며, 해로운 것은 그 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비례에 따라 동등한 것을 배분하며,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분배할 때도 마찬가지로 하게 하는 탁월성이다. -180쪽

부정의를 당하는 것과 부정의를 행하는 것이 모두 나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의를 행하는 것이 더 나쁘다. 왜냐하면 부정의를 행하는 것은 악덕을 동반하는 것이며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되, 그때의 악덕은 완전하고 단적인 악덕이거나 그에 가까운 악덕인 반면, 부정의를 당하는 것은 악덕도, 부정의도 수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200-201쪽

이해력은 언제나 그런 것들, 또 변하지 않는 것들, 혹은 생겨나는 것들 중 어떤 것이든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의문을 가질 수 있고 숙고할 수 있는 대상들에만 관계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그것은 실천적 지혜의 대상이 되는 것들과 동일한 것에 관련되지만, 그렇다고 이해력과 실천적 지혜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실천적 지혜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고 무엇을 행하지 말아야만 하는지에 대해 명을 내리는 것이며, 이것이 실천적 지혜의 목적인 반면, 이해력은 오로지 판단을 내리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223쪽

소크라테스 또한 어떤 측면에서는 옳게 탐구했지만, 다른 어떤 측면에서는 잘못을 저질렀던 것이다. 모든 탁월성들이 실천적 지혜라고 생각했다는 점에서는 잘못을 범했던 것이며, 그것들이 실천적 지혜 없이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점에서는 옳게 이야기한 것이니까. -230-231쪽

이것들 중 최선은 군주정이며 최악은 금권정이다. 참주정은 군주정의 타락한 형태이다. (중략) 민주정은 금권정으로부터 나온다. 그들은 서로 경계를 공유하고 있다. 금권정 여기 다중의 지배를 지향하며, 일정 재산 이상의 자격 요건을 갖춘 사람들은 모두 동등하기 때문이다. 타락한 정치체제 중에서는 민주정이 가장 덜 나쁜 것이다. 제헌정의 기본틀로부터 약간만 타락한 것이기 때문이다. -299-300쪽

우리는 행복이 품성 상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만약 행복이 품성상태라면 평생 잠만 자면서 식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도, 크나큰 비운을 겪고 있는 사람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만족스럽지 못한 생각이며, 앞으로 말했던 것과 같이 행복을 일종의 활동으로 규정해야 한다면, 또 만약 활동들 중 일부가 다른 것을 위해 선택되는 필수적인 것이고, 다른 일부는 그 자체로 선택되는 것이라면, 행복은 분명 그 자체로서 선택되는 활동들 중 하나로 놓여야 하며, 다른 것 때문에 선택되는 활동들의 하나로 놓여서는 안 된다. 행복은 그 어떤 것도 부족한 것이 없고 자족적이기 때문이다. -36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