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내 인생 최고의 영화로 <봄날은 간다> <매트릭스> <비포선셋/선라이즈> 등을 뽑은 적이 있었는데, 이 영화들이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 들어간 것에 대해 누군가가 왜, 라고 묻진 않았다. 묻지 않아도 그 이유를 알 수 있고 대략 공감하니까. 하지만 <공공의 적>을 최고의 영화로 뽑는다면 왜, 라고 물어볼 만하다. 내가 알고 있기론 이 영화는 당시 관객은 좀 드나들었어도 몇년이 지난 뒤에도 못잊을 영화로 떠올리거나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는 영화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난 이 영화를 최고로 뽑는다. 1편, 2편 모두 마찬가지다.

  공공의 적 2편은 사실 1편 만큼 강하진 않지만, 아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땐 1편보다 못한, 1편을 따라가려 했으나 못 미친 실패한 영화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지만, 또 보고 또 보면 느낌이 다르다. 2편의 진가는 또 보고 또 보면서 영화와 우리네 현실을 맞물려 생각할 때 드러난다. 한동안 또 잊고 있다가 오랫만에 케이블로 이 영화를 보니, 지금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선언으로 시작된 -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에 대해 의심을 품는 시선이 있지만, 그게 순수한 양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삼성이 그를 꼴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라 할지라도 그건 문제되지 않는다 - 삼성의 비자금, 정계, 법조계에 뿌린 돈지랄 등의 사건이 딱 영화 속 한상우 이사의 행각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니가 필이 꽂히니깐 꽂히는대로 수사를 하게 해달라. 또 나보고 정황이며 이저거저 붙여서 기획서 올리고 그러란 말이지?" "네" "너 과거에 한상우가 너 꼴리게 한 놈이라 수사하겠다고 하는거 아니야?" "...." "야 임마 그럴 땐 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전 수사했을 겁니다.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반드시 수사해야합니다, 이렇게 말해야 하는거 아니냐" "아니요! 제가 그놈을 아는데요, 그 놈이라면 앞에서 모범생인 척하고 뒤에서 양아치로 살 놈이란걸 알기 때문에 수사하겠다는 겁니다." 

  전적으로 완벽하게 동일시하는건 위험하지만, 영화를 보고 신문기사를 보면 하는 짓이 어쩜 그리 똑같은지 모르겠다. 강우석 감독이 애초 삼성을 겨냥하고 만든 영화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영화 속에서 강철중이 이길 수 있었던건 그가 뚝심있는 인물이고 정의감이 투철했기 때문이다. 또 그가 맥없이 밀려났을 때 뒤에서 힘을 줄 수 있는 부장검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철중이, 한상우가 돈바른 어느 윗선에서의 외압으로 경주로 발령났을 때, 부장은 자기까지 잘릴 각오로 강철중을 밀어줬다. 강철중의 후배 검사 역시도 마찬가지. 하지만 현실이라면 어땠을까. 떡찰이네 뭐네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어디부터 어디까지 썩었을지 모르는, 누구에게 수사를 맡겨야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감사원이며 검찰이며 청와대며 여야를 막론한 국회의원이며 할 것 없이 삼성으로부터 돈 발려진 이들이 어디에서 힘을 쓸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번주 시사IN에서는 삼성 사건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삼성 SDI 미주 전 구매과정이었다는 강부찬씨는 해외에서 삼성의 비자금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는 미국에서 비자금을 만들다가 서류를 들고 나가는 바람에 삼성의 '관리'대상이 되었는데 김용철 변호사는 당시 강부찬씨를 '관리'하는 대책회의에 참석했었다고 강부찬씨는 진술했다. 다음은 김용철 변호사의 말이다. "미국에서 비자금을 만들던 친구가 비자금 서류를 들고 나가는 바람에 골머리를 앓았다. 여러 차례 회의를 열고 방법을 냈지만 해결이 안됐다. 미국에서 사립탐정을 고용했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실효가 적었다. 김인주 사장이 나한테 킬러를 고용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다."

  강부찬씨는 삼성이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알고 있고 도청을 하고 있다고 했다. 휴대전화를 네 개 사용했는데 모두 감시당했고, 그래서 다섯번째 휴대전화를 아이 명의로 만들었는데, 나중에 이게 고장나서 서비스 센터에 갔더니 자기 명의로 되어있더라는 것이다. 2000년 초에 피디수첩에서 삼성의 비자금 내역을 공개하려고 한 바 있는데, 당시 7명의 사립탐정이 미국에서 자신을 미행했고, 어느날 새벽 3시경 차를 타고 가는데 대기하고 있던 수상한 픽업 트럭이 시속 200Km로 들이받으려 했다고도 말한다. 그가 진술한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이건 영화 속 한상우의 행각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비자금 조성해서 해외로 빼내고, 수시로 정계, 법조계 인물들을 만나 떡값을 쥐어주며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고, 살인교사까지 했다면. 대한민국을 떡주물르듯 하려 했다고 밖에는, 대한민국을 자기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결론이 어떻게 날진 알 수 없다. 중간에 누군가가 끼어 외압을 행사하거나 시간을 벌고 얼버무리며 사건을 마무리짓는다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양심선언했던 김용철 변호사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삼성 제품 좋다고 아무렇지 않게 구입해 쓰며 삼성의 비자금 조성을 간접적으로 도와주게 될 것이다. (이런. 지금 쓰고 있는 노트북이 삼성이구나.) 노무현 대통령의 5년 동안 삼성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왜 몰랐을까. 노무현 대통령과 이건희 회장이 꿍짝하고, 청와대 이하 각 정부부처와 삼성경제연구소가 꿍짝했다는 사실을. 대통령조차 사로잡은 이 거대권력을 어찌하면 좋단말이냐. 검찰조사가 공정하게 사실에 기초해서 이루어지길 기대할 뿐이다. 검찰 내부에 강철중과 김신일 같은 이들이 아직도 수두룩 하게 남아있길 바랄 뿐이다.


p.s. 내년에 공공의 적 3탄 개봉한다. :) 영화배우 설경구와 연극배우 강신일씨의 환상 콤비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하겠구나.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07-11-29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편만큼의 임펙트가 2편에서는 없었어요 제 개인적으로는..
하지만 그 1편이...대단한 물건인 영화지요..^^

잉크냄새 2007-11-29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2편이 많이 실망스러웠지요.검사 강철중보다는 불량형사 강철중이 더 강렬하죠.
"삼성아, 그러지마라...형이 비자금 만든다고 패고 국민 우롱한다고 패고..
어떤 이씨 父子는 불법으로 살아가길래 기분나뻐! 그래서 패고..
그렇게 형한테 맞은 놈들이 4열종대 앉아 번호로 연병장 2바퀴다.."

가시장미 2007-11-30 09:38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미치겠습니다. 마치 경구형이 눈 앞에 있는 것 같습니다. ㅋㅋㅋ

이잘코군 2007-11-29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 저도 첨엔 그랬는데 보면 볼수록 분노를 갖게 되더라고요.

잉크냄새님 / 크크. 아 너무 재밌습니다. 대사.

웽스북스 2007-11-29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2편은 다소 실망했었던 기억이 있어요- 워낙 1편의 기대가 컸었는지 말이죠-
근데 저 강신일 아저씨 디게 좋아해요 ㅋㅋ

비로그인 2007-11-29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킬러..

이잘코군 2007-11-30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 음, 저도 1편보다는 강도가 많이 약해졌고 느슨해졌다고 생각하지만, 분노는 사실 더 하답니다. 보면 볼수록 그래요. 제가 2편만 10번은 본거 같은데... 강신일씨 모노드라마도 작년인가 재작년에 봤어요. 대학로 연극무대서 맨 앞에서 봤는데 와 대단하더군요.

계엄령님 / 어, 숫자말고 댓글도 다시네. -_- 인터뷰에 따르면 그랬다더군요.

가시장미 2007-11-30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공공의 적은 좋아하는데.. 영화를 통해 대리만족이라도 해야지.. 원... -_ㅠ
그나저나 사시인 좋은 것 같아. 나도 정기구독 하고 싶은데.. 주간지라 조금 부담된다..
학습지처럼 밀리면 어째.. 으흐흐 아프락사스님은 안 밀리고 잘 보시나봐용~~? 홍홍~

이잘코군 2007-11-30 09:55   좋아요 0 | URL
공공의 적 볼 때마다 분노가 치솟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시사인은 음, 정기구독해도 한꺼번에 안내도 되던데. 나도 현재 수입이 없이 까먹고 있는 상태라 나눠서 내고 있음. 밀리지 않기 위해선 오는날 다 봐버리는게 좋지.

미즈행복 2007-11-30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김용철씨 말이 맞다고 생각하겠죠. 다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가 없으니...

BRINY 2007-11-30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도 그렇지만, '그래도 삼성이 무너지면 큰일나, 그럴 일도 없겠지만'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서 놀랐습니다.

이잘코군 2007-11-30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즈행복님 / 진실은 밝혀지겠죠? 아니면 희망사항인가.

브라이니님 / 그런 반응이 매우 많죠. 지금 때가 어느 땐데, 경제가 어떻고, 나라가 망하니 어쩌느니, 삼성 직원들은 어떻게 사느냐, 그들이 무슨 죄냐 등등. -_- 오버도 한참 오버했죠.
 


* 배우는 것, 시험치는 것(한국일보 서화숙 편집위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711/h2007112818585767800.htm 
 
  배운 것과 시험치는 것이 같아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 하지만 시험치는 것이 배운 것과 달라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진다는 것에는 절반만 동의. 그 말도 맞지만, 시험치는 것과 배우는 것이 동일하다고 해서 사교육이 죽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 감소할 순 있겠지만, 현재 사교육 열풍은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더 높은 점수를 획득하고 더 두드러지길 원하는 심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고로 시험치는 것이 배운 것과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더 두드러진 모습을 드러내길 바라는 부모는, 아이로 하여금 미리 밖에서 배우고 오도록 하여, 그가 학교 현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길 원할 것이다. 전국의 대학 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생 정원을 훌쩍 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 사이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왜. 부모와 아이들이 바라는건, 대학 입학이 아니라 스카이 대학 입학이므로.

  시험치는 것을 배운 것과 동일시 한다면 아무래도 사교육  의존도를 감소시키는 효과는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 전체 시스템이 경쟁 중심으로 돌아가보니 경쟁에서 이기는 자는 살아남는 거고, 그렇지 못한 자는 자연도태되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해소시키진 못할 것이다. 어느 곳에서든 내 아이가 어떻게든 두드러지길 바라기 때문에. 어제 아침 뉴스를 보니 심지어는 학예회 준비를 하는데도 과외를 한다더라. 한달전부터 악기며 무용이며 마술이며 장르를 불문하고 어느 강사의 표현에 따르면, "특공대 같은 엄마들이" 마구 달려와서는 단기간에 가능하도록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는 거다. 심지어는 여러 곳을 접촉하고선 선생 얼굴까지 직접 봐야 믿음이 가겠다며 단체로 면접 아닌 면접까지 해가며 교습소를 고른다고.

 대학 입시 체제가 바뀌어도 흐름을 바꾸진 못할 것이다. 그래서 비극이다. 부모들은 그들이 아이들을 혹사시킨다는 사실을 알까. 어쩌면 아이들 조차도 혹사당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예 그것이 어릴적부터 습관이 되고 생활이 되어서 당연하게 생각할지도. 그래서 또 비극이다. 세상사에 초연하며 내 아이는 자연에서 기르겠노라, 사교육을 시키지 않겠노라, 하는 부모들도 한편에 존재한다. 하지만, 확실한 교육 철학이 없는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막연히 손놓기보다는 주변을 따라가며 적응하는게 그나마 낫다는 생각이겠지. 그렇게해서 기능과 기술을 습득한 아이들은 커서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까. 또 다른 경쟁을 하면서 평생을 살아가겠지. 

  경쟁은 좋다. 일을 추진하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의욕을 갖게 해준다. 하지만  이기는 자와 지는 자가 생겨나게 되어있고, 이기는 자는 또다른 경쟁으로 진입하고, 지는 자는 그대로 도태된다. 사실상 승자는 없다. 하나의 경쟁에서 이겼다고 해서 그걸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쟁 체제를 맞이해야하므로. 내 몸의 건전지가 다 닳을 때까지. 그러고 싶을까. 고등학교 땐 그렇게 생각했다. 수능시험만 치르고나면 이제 모든 것이 끝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언제나 새로운 경쟁과 시험이 날 기다리고 있었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원히 도태된 삶을 살아야했다. 그래도 예전엔 지금과 같지 않았는데 해가 갈수록 어떻게 된게 더더욱 심해진다.

p.s.   예전엔 개천에서 용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정말 개천에서 용 못난다. 개천은 그냥 개천일 뿐이다. 외국어고를 졸업한 지인의 말에 따르면, 과학고나 외국어고나 과거엔 별다른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실력으로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사교육 없이 외국어고나 과학고 같은 특목고에 입학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를 넘어서 아예 불가능하다. 가능성 제로란 말이다. 결국 돈으로 정보를 사고 돈으로 가르쳐 입학한 그곳엔 이제 돈 많은 집 아이들 뿐이다. 경쟁도 나쁘지만 그나마 그 경쟁이란 것도 어느 순간부터는 돈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참가 자격 조차 받아낼 수 없는게 현실이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BRINY 2007-11-29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과후 학교라는 이름으로 각종 보충수업을 하는 것도 사교육에 끌려가는 거 아닌가 싶어요.

이잘코군 2007-11-29 11:14   좋아요 0 | URL
이미 한 외고에서는 박학천 논술학원과 연계해 학생들이 돈을 주고 논술을 그쪽에 맡겼다고 하더라고요. -_- 이게 무슨...

깐따삐야 2007-11-29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학천 논술학원. 정말 뜨악하군요.

비연 2007-11-29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겁나는 세상이죠...;;;;; 개천은 개천일 뿐이라는 얘기는 암암리에 많이들 하는 얘기구요. 초등학교 때부터 갖은 방법 다 동원하여 인맥 좋다는 사립 초등학교에 넣으려 난리고(사립 초등학교마다 아버지 직업군이 다르다는군요..나참) 초등학교 들어가서는 돈을 발라서 비싼 과외 시키고...중고등학교 때는 말할 것도 없구요. 점점 세상은 슬퍼집니다... 아니 근데 논술학원에 논술을 맡긴 외고는 뭐하는 짓거리랍니까? ㅡㅡ;;;

이잘코군 2007-11-29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 / 학교에서 몇몇 업체와 접촉해서 시강 비슷하게 시켜놓고는 학생들에게 투표하게 해서 계약한다고 하더군요. 이번에 싸게 잘 해주면 내년에 아예 한 곳에만 밀어줄 수 있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 오가고. -_-

비연님 / 개천은 개천일 뿐이라는건 이제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죠. 빗겨갈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이민 뿐인가 봅니다. -_- 외고로선 매우 실리있는 선택을 한거죠. 값싸게 효과적으로 대입논술을 지도할 수 있을테니. 쯧.

미즈행복 2007-11-30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 아이들에게 사교육(?)을 시킵니다. 하지만 뭘 잘하라고 시키는게 아니라 그 시간 즐겁게 잘 놀라고 시키지요. 미술과 음악같은것. 물론 부모의 피를 받았다면 전공할 가능성이야 제로지만 전공시키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시간이 남는데 잘 놀아주지 못해서, 한 번 가보더니 재밌어하면서 또 가려고 해서 시킵니다. 제가 피아노를 너무 지겨워하면서 배워서 싫어하면 안시킨다는 원칙은 가지고 있죠. 하지만 솔직히 공부도 싫어하면 안시킬까를 생각해보면 고개가 숙여지네요. 하지만 사는데 있어서 하기 싫은 것도 해야하고 어느 정도는 배워야 도움도 되고 하니 어느 정도는 강제하겠죠. 강제해봐도 꽝이면 그 때는 다른 길을 찾아야겠고요.
그렇게 돈으로 발라서 어느 정도 보충은 되겠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게 -이렇게 말해서 좀 뭐하지만 우리 나라 대학은 좀 서열화되어있잖아요- 대학 레벨 하나 차이인것 같아요. 그 한단계를 위해서 그렇게 돈 발라가며 시킬것인가?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저는 좀 회의적이네요. 아는 친척중에 외고 간 애가 있는데 저는 외고 가면 다 스카이 가는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더라고요. 아마 내신을 바닥을 깐 것 같아요. 차라리 동네 학교 갔으면 내신 좋아서 대학 더 잘 가지 않았을가 -기존의 서열화 체계로- 싶더라고요.
이민? 미국도 돈 있으면 다 비싼 사립학교 보냅니다. 대학을 훨씬 잘가거든요. 한국과 마찬가지예요. 초등학교도 다 사립 보내고요. 한다리 걸러 아는 사람이 교육비가 너무 비싸 사립보내다가 공립 보냈더니 수준이 너무 떨어져서 애는 재미없어하고, 엄마는 문제지 -미국도 문제지 많아요- 사서 애 공부 시키던걸요? 사람 사는데는 어디나 마찬가지같아요. 다만 한국은 땅덩어리가 좁아서 그게 첨예하게 드러날 뿐인 것이겠죠.

이잘코군 2007-11-30 11:18   좋아요 0 | URL
헙, 댓글이 엄청 길군요. -_-a
음 저도 사교육이 무조건 나쁘다가 아니라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고, 거의 교육이 외부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이건 입시 체제에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답니다. 한국 교육의 거의 대부분의 시스템이 미국과 일본에서 본따온 것이겠죠. 그러다보니 드러나는 문제점도 비슷비슷하고. 미국에서 생활해본건 아니지만, 미국도 비슷한 구조와 비슷한 폐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즈행복님 말씀처럼.좋지 않은 시스템을 자꾸만 따라가다보니 경쟁이 가속화되고 제도에서 이탈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생각입니다. 어렵게 외고 가서 경쟁하며 뒤에 처진 이들은, 그들이 뚫고 들어온 또다른 경쟁 체제를 만나 도태된 이들로 볼 수 있겠죠. 어딜가든 끊임없이 경쟁이 지속되고, 올라서지 않으면 낙오되는 그런 모습들이 곳곳에서 '과거보다' 매우 많이 목격됩니다. 비극이죠.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누가 악법도 법이라고 말했는가
롤스 & 매킨타이어 : 정의로운 삶의 조건 지식인마을 23
이양수 지음 / 김영사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2년 평생 정의만을 연구했던 한 철학자가 타계했다. 그는 공리주의가 온세상을 지배하고 있던 시기에,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이론을 내놓아 세상을 놀래켰고, 철학 분야에 있어 죽어버린 정의의 영역을 부활시켰다는 칭송을 받았다. 1957년에 발표한 논문 <공정으로서의 정의>로 주목을 받기 시작해, 이 논문을 보완하는데 또 한 세월을 쏟아 필생의 역작 <정의론>을 1971년에 펴냈다. 그는 바로 다음해 하버드 대학을 빛낸 교수로 뽑혔고, 이후의 모든 정의론은 그를 가운데 두고 퍼져나갈 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죽기 10년 전 <정의론>에 이어지는 후속 연구 결과인 <정치적 자유주의>와 이 이론의 적용 영역을 세계로 넓힌 <만민법>이 출간되었다. 

  김영사에서 나온 스물 세번째 지식인 마을 시리즈 <롤스&매킨타이어>는 이런 롤즈의 이론과 그의 동료인 매킨타이어의 비판을 담아낸 책이다. 제목은 두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했지만 무게는 확실히 롤즈에 쏠릴 수 밖에 없다. 매킨타이어만을 다루는 책이라면 모르겠지만 그와 함께 롤즈를 다룬다면, 자연스레 무게는 롤즈에 실리게 된다. 롤즈는 그의 역작 <정의론>이 출간된 이후 수많은 철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는데, 그들은 모두 '롤즈의 비판자' 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나게 했다. 본래는 주목받지 못하던 철학자들도 롤즈의 비판자가 됨으로써 롤즈와 더불어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롤즈의 비판자로는 대표적으로 샌들, 테일러, 왈쩌, 그리고 이 책에 다루는 매킨타이어가 있다. 롤즈의 이론과 그에 대한 이 네 사람의 비판은 스티븐 뮬홀(표기는 스테판 뮬홀로 되어있으나 스티븐 뮬홀로 부르는게 옳다)과 애덤 스위프트가 지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한울아카데미)라는 책에 자세히 소개되어있다. 그외에도 로티, 드워킨, 래즈, 노직 등도 롤즈와 관련해서 살펴봐야 할 인물들이다. 앞의 네 명은 공동체주의자로, 뒤의 네 명은 자유주의자로 분류된다. 롤즈가 이렇게 많은 이들로부터 비판을 받는 것은 그의 이론이 바라보기에 따라서 어느 진영으로부터도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롤즈의 이론은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의 양 진영 사이 어디엔가 위치해 있다.

  이 책에서 롤즈와 함께 다뤄지는 매킨타이어는 공동체주의의 대표적 철학자다. 고로 이 책에서 롤즈가 비판을 받는 점 또한 공동체주의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라 할 수 있다. 공동체주의에서도 해당 철학자마다 롤즈를 비판하는 부분이 다 다르다. 매킨타이어의 경우 롤즈의 '원초적 입장'에 처한 당사자들에 주목한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이렇게 비판한다.

  "도덕성은 타인의 이익에 대해 무관심하면서도 항상 자기 합리성을 추구할 줄 아는 특정한 인간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마주치는 보통 사람들에게 요구된다. 보통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불완전하다. 그러나 이 불완전함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보통 사람의 도덕적 함양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불완전함이다. 따라서 원초적 입장의 당사자들을 굳이 도덕적 인간의 대변자라고 볼 이유가 없다. 설령 그들이 도덕적 입장을 대변한다고 해도 그 입장이 반드시 실제의 인간들을 도덕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거센 환경의 변화에도 굳건함을 잃지 않는 덕성이다. 이러한 덕성을 지닌 사람들은 비록 자신의 이해관계를 떠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이해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하고 인류의 평화에 이바지할 줄 아는 구체적인 인간들이다."

  롤즈는 '원초적 입장'과 '무지의 베일'이라는 사고실험을 토대로 이후의 논의를 전개해 나가는데, 이때 원초적 입장에 처한 당사자들은 '합리적'인 존재로 간주된다. 여기서 합리적이란 말은, 남의 것을 빼앗아 가면서까지 욕심을 부리지는 않지만 주어진 여건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존재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공동체주의들은 롤즈의 이론에서 제일 첫번째 전제가 되는 '원초적 입장'을 비판함으로써 이후의 논의를 무너뜨린다. 원초적 입장의 당사자들은 너무나 이상적인 존재이고, 현실적으로 상정할 수 없는 인물들이라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매킨타이어는 따라서 그들이 도덕적이라고 간주할 근거가 없으며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들의 도덕적 덕성을 기르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현실의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개인을 굳건히 지켜주는건 오랜 시간 다듬고 가꿔온 길러진 덕성이라는 것이다. 매킨타이어는 공동체주의자 중에서도 테일러와 함께 가장 바깥에 서있는 자이다. 자유주의를 기준으로 하면 매킨타이어와 테일러, 다음이 샌들과 왈쩌가 될 것이고, 롤즈가 다음에 서게 될 것이다.  먼저 언급한 인물이 공동체주의적 경향이 더 강하단 말이다. 고로 저들 중엔 롤즈가 가장 덜 공동체주의적이다.

  롤즈의 이론이 다소 이상적이라는 점은 그의 <정의론>을 읽으면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롤즈는 자신의 이론은 결코 이상적이지 않으며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이상적으로 보이는건 전제가 되는 원초적 입장에 놓인 당사자들의 조건 때문인데, 현실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간 유형은 아니어도 충분히 현실을 살아가는 개개인의 머리 속에서 사고 가능하고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스스로에게 적용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두 사람의 견해 차이를 느껴 볼 수 있을테지만 매킨타이어의 비판은 롤즈와 대립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롤즈가 바라보지 못하는 구멍을 메꾸기 위한 비판이라고 봐야한다. 롤즈의 이론을 무너뜨리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롤즈가 충분히 기존에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공리주의를 뒤엎는 성과를 냈고, 그것을 인정한 채로 더 완벽한 이론으로 만드는데 목적이 있다.

  롤즈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대표되는 공리주의를 비판하면서 공리주의에서 말하는 선의 극대화는 사회 성원의 희생을 볼모로 잡은 채 전개된다는 점에서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롤즈는 칸트에 자신의 이론적 기초를 의지하고 있는데, 칸트의 관점에서 보아 공리주의는 수단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유린하기에 잘못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롤즈는 공리주의가 버린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받는 사회를 <정의론>을 통해 실현시킨 것이다. 롤즈의 정의 원칙 중 '최소수혜자의 이익 극대화의 원칙'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이 책만으로 롤즈의 이론과 매킨타이어의 비판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저 대략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정도를 파악하는 정도, 그리고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내용 접근은 하지 않지만, 대략 어떤 관점에서 두 사람이 사회를 바라보고 정의를 논하는지를 파악하는 정도로 책을 활용하면 되겠다. 롤즈와 매킨타이어로 들어가는 입문서 격으로 보면 영양가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철학자고 마찬가지이지만 롤즈는 워낙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는데 있어 새로운 용어과 개념을 등장시키기 때문에 용어에 대해 개념을 잡고 내용접근을 할 필요가 있는데, 입문서격인 책으로는 그것을 수용하기 힘들어보인다. 저자는 맨 뒤에 대표적인 용어들을 간단하게 서술했는데 서비스 차원으로 봐야지, 이 정도 해설로 용어를 파악했다고 보긴 힘들 것이다.

  롤즈는 <정의론> 이후 <정치적 자유주의>라는 책을 통해서 그 사이에 있었던 여러 철학자들의 비판점을 수용하고 이론을 좀 더 현실적이고 완벽하게 만든다. 가장 흔한 비판인 너무나 이상적이라는 주장을 의식한듯이 이후 '중첩적 합의', '공적 이성', '정치적 구성주의'와 같은 개념들을 새롭게 선보이며 완성도를 높였다. 이 책에선 <정치적 자유주의>의 논의는 다루지 않는다. 롤즈에게 가해지는 비판은 <정의론>에 머물러있고, 그에 가해지는 매킨타이어의 비판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니 <정치적 자유주의>의 출간 이전의 논의라고 보면 되겠다.

  참으로 방대한 영역에 걸쳐서 논의를 전개하고, 쉽게 읽히지 않는 롤즈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 또 롤즈를 둘러싼 여러 철학자들의 논의를 살펴보기 위해 입문서는 중요하다. 한 눈에 그 모든 것이 쉽게 들어오지 않고, 바로 일차서적을 읽는 건 너무 막연한 접근이라 어렵다. 롤즈와 비판자들의 논의를 살펴보려면 이 책 이후에 영역을 조금 더 넓히고, 깊이는 몇 배 더하여,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를 읽는다면 한 눈에 모든 것이 파악될 것이리라 생각한다. 더불어 롤즈의 일차서적을 읽기 전에 롤즈 이론을 개념잡길 원한다면 염수균씨가 정리한 <롤즈의 민주적 자유주의>를 권한다. 이것도 마냥 쉽지는 않겠지만 이것 말고는 일차서적 읽기 전에 마땅히 접근할 만한 텍스트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면 아싸리 무대뽀로 <정의론> 1장부터 차근차근 접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대신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p.s. 소크라테스는 "잘못된 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이 책 18쪽에선 이렇게 전제하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자세한 것은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권창은 저, 고려대학교출판부, 2005) 과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럼 누가?>(김주일 저, 프로네시스, 2006)을 참조하기 바란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꼬 2007-11-28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예전에 어느 책에선가 롤스의 이론이 잠깐 언급된 부분을 읽었는데, 세 문장인가, 그쯤 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어서 낑낑댔던 기억이 나요. 번역의 잘못일까, 내가 이해를 못하는 걸까, 하면서요. (내용은 까먹었는데 분배의 정의에 대한 얘기였던 것 같음.) 이런 걸 술술 읽고 술술 써내는 아프님도 얼핏 보면 난해한 분일 것 같지만, 여러분, 그건 오해예요. 저 마지막 부분을 좀 보세요. "아니면 아싸리 무대뽀로~... 맨땅에 헤딩.." 음음음 난 이래서 아프님이 좋다니까!

이잘코군 2007-11-28 09:26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입문서격이고 구체적인 이론적 내용은 많이 나오지 않아서 읽기 한결 수월해요. 롤즈 책을 직접 읽으면 머리 아프죠. -_- 제가 롤즈를 좋아한답니다. 그래서 관심이 많고. 사실상 공리주의 이후에 롤즈의 이론이 사회 전반적인 부문들에 적용이 되고 있어요. '정의'의 영역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이 책의 저자도 역시 현실에서의 문제에 정의론을 적용해서 책의 뒷 부분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수행평가의 공정성, 비정규직 문제를 살펴보고 있답니다.

비로그인 2007-11-28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사람이 공정하게 행동해야 하는가?
왜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왜?'에 관해서는 맥킨타이어의 '길러진 덕성'이 유의미할 것입니다.
제가 공자의 문도인 이유이기도 하지요. 하하


이잘코군 2007-11-28 09:59   좋아요 0 | URL
아직 매킨타이어의 저서를 직접 살펴보지 않은 채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매킨타이어의 입장만을 접한지라 명확히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롤즈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입헌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동의할 수 있는,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해나갈 것인가, 에 있다고 한다면, 매킨타이어의 그것은 롤즈가 살짝 간과하고 있는 부분을 보완해줌으로써 롤즈의 이론이 좀 더 완전하고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매킨타이어는 롤즈만큼이나 체계적으로 사회 제도의 문제를 다루지는 못하고, 롤즈 이론의 빈구석을 메꿔주는 정도로 보입니다. 매킨타이어와 공자의 - 두 사람의 이론을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 개인의 덕성을 꾸준히 기르는 것 또한 공정한 사회, 도덕적인 사회를 위해서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조건이라고 볼 수 있겠죠.

yoonta 2007-11-30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즈..그렇지 않아도 언젠가 한번 봐야지하고 아직도 못펼쳐들고 있는 사람인데..아프락사스님의 깔끔한 리뷰 잘봤습니다. 서점가서 한권 집어와야겠네요. ^^

이잘코군 2007-11-30 21:45   좋아요 0 | URL
아핫, 윤타님께서 제 서재까지 오시고. :) 요 책을 통해서 뭔가를 많이 기대하시진 않는게 좋겠습니다. 대중적인 입문서격이고, 롤즈의 원초적 입장과 그에 대한 매킨타이어의 비판에 주로 할애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학교에서 평등을 말하다 SERI 연구에세이 51
곽해룡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직 윤리 교사로 재직중인 저자는 그동안 그가 보고 느꼈던 바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평등'이라는 기준으로 학교 교육 현장 곳곳을 관찰하고 문제를 제기한다. 교장과 평교사 간의 관계,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 학생과 학생 간의 관계, 교사와 교사 간의 관계 등 교육 현장의 구성원들 각각의 관계로부터 시작해 평등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바를 구체적으로 예로 들면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서술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그의 개인적인 경험이 대부분이겠지만 '어떤 경험'을 '모든 경험'으로, 까지는 아니어도 '많은 경우'로 다소 보편화시켜 이야기해도 무방할 정도로 교육 현장에서 많이 목격되는 장면들이다. 

  신입 교사의 경우 학교의 전반적인 업무에 관한 노하우가 없어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인데, 선배 교사가 마치 뭐 대단한거 감싸쥐고 있는양 공유하지 않으려 하는 경우나, 교장에게 잘 보이려고 수업에는 소홀하면서 아부하는 교사들, 또 수업은 뒷전이고 부수입 얻으려고 이리저리 머리 굴리는 교사들, 나이가 많다고 혹은 직급이 높다고 혹은 경험이 많다고 으시대며 상대방 위에 군림하려는 경우 등 교사와 교사의 관계에 있어서만도 여러 가지 사례가 나온다.
 
  주로 저자의 시선은 교사와 교사의 관계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사례와 같은 '학교를 망치는 유형'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교무실에서의 교사들의 왕따를 비롯 공동체의 분열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불합리한 연공서열, 오랜 인습으로 굳어진 연고주의 (학연, 지연, 혈연), 파벌주의, 집단공방체제(공동방어전선 혹은 연합공격전선), 친소의 이합집산과 합종연횡, 비합리적 온정주의, 배타적 개인주의나 패권주의, 유아독존의 중립주의 등이 모두 불평등의 배경이다."  (P43)

  그 어느 곳에도 줄을 서지 않고 독립적으로 서 있는 사람은 결국 왕따 당할 수 밖에 없다. 줄을 서고 아부하고 세력을 형성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 교무실 안도 사회와 다르지 않다. 다만 국공립학교보다는 사립학교에서 특히나 이런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자격을 획득하고 국가에 고용된 국공립 교원과 이사장이나 교장에 의해 고용된 사립교원은 처해있는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아무렇게나 자를 수는 없겠지만 수업량을 줄이거나 승진을 위해서, 혹은 고3 업무를 맡기 위해서는 이 같은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밖에 없다. 정도의 차이는 이사장과 교장이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한 예로 저자는 이런 경우를 들고 있다. 서울 D고에서는 교사들이 출신대학별 모임을 자발적으로 해산했다고. 출신대학에 따라서 세력이 형성되고, 왕따 당하는 교사들이 있다보니 그들 스스로가 자정노력을 한 것이다. 다른 예로 교장이 동문 회동을 주선하고 동문을 요직에 배정한 경우와는 대비된다. 학교도 일반 기업체 못지 않게 하늘대학 출신들을 선호하고 출신대학에 따라 능력을 평가한다. 어느 재단은 서울대를 10점 만점으로 시작해 수능점수에 따라 서울 중위권이 다음, 지방 국립대학과 서울 중하위권 대학이 다음, 그리고 지방 사립대학 순으로 점수를 매긴다. 최초 지원서류를 내면서부터 차별은 시작된다.

  저자는 교사와 교사 간에도, 교사와 학생 간에도 '수평적 인간 관계'가 이루어져 한다고 말한다. 당연한 말이다. 집단의 모든 구성원이 사람과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매너와 태도를 가질 때 '수평적 인간 관계'는 성립한다. 그러나 관계맺음에 있어 단 한 명이라도 시소게임을 하고자 한다면 수평적 인간 관계는 바로 깨지고 만다. 뉴스를 보면 교사가 학생을 개패듯 팼다는 기사가 나오고, 거꾸로 학부모나 학생이 교사를 패서 입원했다는 기사도 종종 나온다. 뉴스로 전해지지 않고 학교 안에서 조용히 묻혀지는 사례들까지 친다면 영국이나 미국 못지 않을 것이다. 수평적 인간 관계는 상대적으로 위에 있는 사람에 의해 깨지기 쉽지만, 아래에 있는 사람에 의해서도 깨질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교사가 학생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건 당연시 여기면서, 학생이 교사에 대해 기본적으로 인간이 인간에게 지켜야할 것들을 지키지 않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풍토는 분명 잘못 되었다. 한편 교사는 또한 그들이 스스로 인간으로뿐만 아니라 교사로서 본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학부모가 건네주는 돈 십만원에 무너지지 말고, 어떻게 하면 보충수업교재를 채택하면서 부수입을 챙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말아야 한다. 보잘 것 없는 경제적 수익을 얻고자 교사라는 직함을 팔아넘긴다면 학부모로부터도, 학생으로부터도, 사회로부터도, 그는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다니던 학교 담임 선생님에게 촌지를 주곤 했다. 나는 그것이 부끄럽고 싫었지만 하지말라고 해도 너를 위한 것이라며 멈추지 않으셨다. 금액은 얼마 되지 않았다. 5만원-10만원 가량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금액이 문제가 아니다. 촌지를 드리는 엄마도 싫었지만, 촌지를 받는 선생님도 싫었다. 촌지를 드리고 촌지를 받음으로써 나에겐 좋은 선생님 한 분이 사라진 격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도 절대로 받지 않을 거 같던 분이라, 미리 어머니에게 그 선생님에게 드리지 말라고 말했으나, 결국 그 선생님은 받으셨다. 그리고 올곧고 대쪽같으실 것 같은 그 분은 나에겐 믿고 따를 만한 존경스러운 분이셨지만, 받음으로써 더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만약 받지 않으셨다면 나는 그 분을 전적으로 믿고 따랐을 것이고 의지했을 것이다.

  사실 촌지는 지금과 달리 일종의 관행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비리와 부패로부터 벗어나있어야 할 교사들의 촌지관행을 근절시키기 위해 정부와 교육부가 나섰다는건 부끄러운 일이다. 스스로의 자정적인 노력으로서 자신을 단속해야 할 분들이 강제적인 제제와 처벌이 두려워 행위를 그만두었다면 스스로 부끄러워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남아있는 일부 촌지교사들은 어찌할 것인가. 그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단 말인가. 교사로서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포기한 이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한번은 또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새로 오셨다가 같은 재단 상업고등학교의 여자 선생님과 결혼 후 다른 학교로 가신 분이 계셨는데 이 젊은 선생님 또한 나를 실망시켰다. 젊은 국어교사였던 그 분은 매일같이 실용한복을 입고 다니셨다. 전형적인 대학 운동권의 모습과 생각을 가진 분이었는데, 나의 과외 선생님(나는 당시 그분과 결혼한 여자 영어 선생님 - 이 분은 학교를 그만두셨다 - 한테 과외를 잠깐 받았다)을 통해 국어 과외를 받을 생각이 없는가를 건너 물어오셨다. 그런 분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실망스러웠다. 

  이야기가 샜는데 이 책은 곳곳에서 드러나는 모습을 통해 관계에 있어서의 평등을 말한다. 저자 개인의 개인적 경험과 울분으로 쓰여진 인상이지만 비단 그만 경험했을 문제들은 아니고, 보편적으로 논의되고 개선되어야 할 부분을 이야기한다. 읽으면서 자꾸만 나의 개인적 경험이 떠오르는 것은, 그만큼 저자가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교육에 대한 열정이 있고, 교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올곧은 길을 선택한 교사라는 생각이다. 교사지망생으로 그의 열정과 올곧음을 배운다. 같은 공동체를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으로 그의 열정과 올곧음에 희망을 가져본다.


p.s. 이런 열정과 올곧음이 '삼성경제연구소'라는 껍데기로 싸여져있다는게 아이러니하다. -_-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즈행복 2007-11-27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모든 평등 중에서도 학생과 교사의 평등! 을 바래요. 물론 교사간의 평등, 교장과 교사의 평등이 되어야 교사도 기분좋게 학생과 평등을 실현할 기분이 더 들겠지만, 기분따위는 젖혀두고! 그건 필수니까요. 아직도 학생의 가정형편에 따른 차별, 성적에 따른 차별이 횡행하지요. 학생은 나와 동급인 인격을 가진 타자가 아니라 내가 가르치고 명령해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문제겠죠. 아, 그러고보니 이건 가정에서도 적용되는 이야기로군요. 저부터 반성하고 민주적인 가정을 위해 노력해야겠네요. 애들은 내가 시키는대로 하는 존재가 아니다!

이잘코군 2007-11-27 08:49   좋아요 0 | URL
네. 교사가 학생을 대할 때도, 학생이 교사를 대할 때도,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기본만 지켜지면 큰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하나의 인격체로서 대함에 스스로 잘못한 것이 없는가를 꾸준히 생각해야돼요.
 
한국 교육 거듭나기 SERI 연구에세이 61
박정수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관 자리가 들어와도 덥썩 하겠다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자리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자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하건 교육부 장관 자리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대개는 교육부 장관 개인의 비리나 결점이 드러나 그만두기보다는 자신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커다란 사건으로 인해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던거 같다. 그만큼 한국땅에서 교육은 매우 민감한 영역이다. 무슨 정책을 내놓아도 어디로부터든 욕을 먹는게 '교육' 분야이고, 뭘해도 잘했다 소리 못듣는게 '교육'이다. 지속적으로 안정되게 유지되어야 할 교육 정책이 일 년을 못가서 쉽게 바뀌어버리고 바로 몇 달 뒤 대학입시를 앞 둔 수험생들은 혼란에 휩싸이는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박정수씨는 <한국 교육 거듭나기>에서 한국 교육에 보이는 모든 문제들을 주제별로 분류하고 진단과 처방을 내린다. 고교평준화, 교육자치, 학생평가, 교원임용 및 평가, 학제 개편, 사교육과 공교육, 대학입시, 대학교육의 질적 수준, 지방대학 살리기, 학벌사회 등을 다루는데, 너무 많은 주제를 140쪽 가량 분량에 담다보니 각각의 주제를 그렇게 깊이있게 살펴보지는 못한다. 하지만 교육에 대한 저자의 오랜 고심의 흔적은 엿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자신의 전공 분야인 행정학적 관점에서 교육을 바라보고, 정책상의 문제점들, 행정상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먼저,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픈 것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자율화'라고 할 수 있다. 교육의 커리큘럼이나 학생의 선택에 있어서, 입시에 있어서, 좀 더 자율화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자율화'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흑백논리적 시각이다. 매일 뉴스며 신분이며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자율화 하면, 3불제를 놓고 된다 안된다 치열하게(?) 싸우던 국회의원들이 생각나는데, 그런 시각에서 바라보자면 저자의 입장은 중간이다. 자율화를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협소한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는다. 전반적인 교육의 영역에 있어서 자율화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세계화, 고령화 시대에 평준화 정책은 경쟁력이 없다며 비판하고 나선다. 대학이 대중화되어 대학원이 대학 수준으로 전락해버렸고 그 비용은 학생들이 다 감당해야 하는게 오늘이고, 사회의 수요에 걸맞는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대학 갈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분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학에 가지 않을 사람을 위해서는 실용적인 직업학교를 만들고 그들이 적성을 살려 사회에 나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평준화만 붙잡고 늘어지는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말이다.

  이런 입장이라면 나도 대략 동의한다. 평준화를 붙잡을 것이 아니라 학력에 따른 서열화를 벗어난 다양한 학교들이 생기고 점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각자의 흥미와 적성에 의해서 진학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게 안되니 평준화를 붙잡고 있는 것인데, 방향이 옳고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일단 과감하게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대학 또한 특성화 시켜서 서울대가 모든 학과를 독점하는 현실을 깨야한다. 어느 대학은 의학, 어느 대학은 철학, 어느 대학은 경영학이 커리큘럼도 좋고 교수진도 빵빵하다더라,라는 식으로 분산되어야 한다. 자연스레 그렇게 형성된다면 더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바랄 수 없는 부분이니 인위적으로라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저자 또한 이 책에서 이 같은 주장을 하고 있고, 대학별로 특화된 분야에 집중 투자해야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 주의할 것은, 각 대학들이 서로 돈되는 학과를 집중양성하려고 할테니, 소외되고 결국 없어지는 학과가 없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가령 문사철 이라고 불리우는, 국문과, 사학과, 철학과 같은 학과들은 국가차원에서 보호해줘야한다. 이미 내가 대학생이었던 수년전 전국의 몇몇 대학에서는 철학과가 사라졌다. 아예 없애버린 경우도 있고, 문화콘텐츠학과, 교양학부 등으로 이름을 변경해 보존하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상 '보존'이 아니라 '소멸'되었다고 보는 게 옳다.

  전에 진중권이 칼럼을 통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되고 우리 애니메이션은 안되는 이유를 아는가, 라면서 그 원인은 기술이 아니라 내용물에 있다고 했다. 어떤 문화산업이고, 드라마고, 영화고, 애니메이션이고 간에 시나리오가 탄탄하고 내용이 좋아야 하는데, 이걸 등한시 한 채 최신 기술만 적용시키려고 하니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국에서 문사철이 사라지거나 소외되고 시대의 부름이라며 업종변경시키는 경우들이 많은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문화콘텐츠가 생겨나고 문화강국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내용의 충실함은 기본 학문과 기본 바탕에서 찾아야지, 변형된 수박껍데기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고등학교 역시 다양한 형태와 다양한 분야의 학교들을 만들어서 선택의 폭을 넓혀주자고 한다. 특목고의 경우 없애려고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대함으로써 들어갈 수 있는 문을 더 열어주자 한다. 저자는 결국 이는 실업학교의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 말한다. 현재 실업고 졸업생의 많은 수가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모순된 현실에서 본래의 취지에 맞게 직업교육과 기능인력 양성의 역할을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사실상 지금의 실업계 학교는 중학교 때 성적이 안되어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들의 몸이 머물고 있는 곳은 직업학교이지만 머리는 대학을 향해 있다. 이런 모순된 현실에서 실업계 학교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럴 듯한 주장이지만 전제되어야 할 것은, 특목고는 특목고의 취지에 맞게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특목고가 사실상 하늘대학을 바라보는 학부모와 학생이 머무는 곳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그들이 본래 취지대로 진학치 않고 업종변경(?)해 진학하는 이대로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진학했으나 중간에 업종을 바꾸고 싶은 사람은 다른 학교로 전학을 시도해야지, 모른 척하고 그곳에 머물며 다른 곳을 바라봐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애환은 있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는 다른 곳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고, 애초 진학할 때부터 꿈꾸던 업종은 해당 특목고와는 상관없는 것이지만 눈감고 머무는 경우가 태반일 것. 그래서 좀 더 다양한 학교들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적에 따라 줄지어진 학교 등급 시스템이 아니라 취향과 흥미에 따라 구분된 시스템으로. 너무 이상적인 바람일까.

  이 얇은 책에서 저자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꺼내놓고 있어 일일히 모두 언급하기는 어렵다. 전반적으로 저자의 입장은 자율화에 닿아있고, 그가 주장하는 바에는 대략 큰 틀에서 동의하지만, 자율화의 난점을 너무 언급하지 않는 경향도 보인다. 자율화를 우려하는 건 경쟁 체제를 부추기고 서열화를 더더욱 굳건히 할까봐서다. 본래의 의미대로 자율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신자유주의 체제로 둔갑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 걱정이다. 그래서 자율화를 말하려거든 예상되는 난점을 모두 언급해야 하고, 온전히 자율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러 장치를 구비해야 한다.

  교육이 현재 엉망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쉽게 답할 수 없다. 그만큼 민감하기 때문이고, 정책 하나가 누군가의 미래를 쉽게 뒤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따지고 들면 한도 끝도 없다. 여기에 나온 문제는 그 중 굵직굵직한 몇 가지일 뿐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끝도 없이 나올 것이다. 안 된다고만 고집하지 말고, 잇속 챙길 목적으로 개방하자 하지말고, 우선 터놓고 바람직한 방향 설정에 대한 대화가 오가야 할 것이다. 원초적 입장에서 당사자들간의 최초의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현 상황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 뻔하고 이상적인 말이긴 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이상을 꿈꾸는데서부터, 이상에 대한 합의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11-27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아이들 세 명을 특목고(한 명은 과학고, 두 명은 외고)에 보냈었습니다.
특목고 선생님들은 참 훌륭하셨지요.
선생님으로서의 자부심과 걸맞는 실력을 갖추고 계시더군요.
각지에서 모인 아이들역시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학습열의가 충만함을 감지할 수 있었답니다.
실력있는 선생님과 역시 뛰어난 아이들이 모인 학교에서 아이들의 실력이 죽죽 신장하더군요.
문제를 놓고 선생님과 학생들이 질문과 토론을 통해 해결하곤 했지요.
참 좋은 교육체제였답니다.
한국의 현실에서 비교적 이상적인 학교들이었답니다.
그런 좋은 학교를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옥죄는 한국의 현실이 서글픕니다.
네째 아이는 특목고에 가해지는, 갈수록 심해지는 핸디캡이 마음에 걸려 일반고등학교를 보냈답니다.

결과적으로 네째 아이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이 아이가 자질면에서는 가장 뛰어난 편이지요..)
특목고에 다녔던 아이들보다 객관적인 실력면에서 처집니다.
현행의 한국 대입평가제도에 맞추느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으니..
참 안타까운 한국의 현실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에게 국가차원에서 핸디캡을 주는 나라는
아마도 세계에서 한국이 거의 유일한 나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하

특목고에서는 선생님들의 밸류에 대한 평가가 자율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첫째는 특목고를 지원하는 선생님들을 교육청에서 평가합니다.
그렇게 선정된 선생님들이 특목고에 가게 되면 두번째 평가가 기다립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의 실력을 평가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칠 능력이 부족한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평가를 견디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질문을 감당하지 못하는 선생님은 평가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그 선생님께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습니다.
실력있는 선생님들은 화장실에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사실 이 부분이 더 무섭고 가혹하지요.
그렇게 특목고의 선생님들의 수준이 유지됩니다.


이잘코군 2007-11-27 11:10   좋아요 0 | URL
특목고가 본래의 취지대로 운영된다면 괜찮겠지만, 오늘날 현실을 보면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인지라 핸디캡이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이 기회가 주어졌고, 누구는 공부를 잘해서 특목고에 가고, 누구는 공부를 못해서 일반고등학교에 간다고 해서, 공정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특목고가 일반고보다 상대적으로 모든 여건이 나은 상황에서, 학생들은 3년간 더 많은 혜택을 받고, 좋은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고, 다른 아이들은 비록 그들이 공부를 더 못해서 일반고를 가게 됐지만,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공부하게 됩니다. 이렇게 3년을 지내고 대학입시에 응하는 두 학생이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고 보기는 힘들 것 입니다. 그래서 특목고에 핸디캡이 주어지는게 아닐까요.

본래 취지대로 과고는 과고의 목적대로, 외고는 외고의 목적대로 운영되고, 학생들이 본래 취지에 맞게 진학할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분해서 핸디캡이 부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그들은 그들대로 하소연할 수 있습니다. 더 좋은 교육 환경을 원했을 뿐인데 본래 취지대로 진학치 않는다고해서 핸디캡을 주는건 너무 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특목고를 제외하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음'을 이유로 들지만, 그만큼 또 혜택을 받았으니 핸디캡 역시 어쩔 수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는 그들보다 수혜를 받지 못하는 나머지 학생들에 대한 배려차원으로 보여집니다. 물론 공부를 못하는 학생을 대학에 입학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입학하고도 적응하지 못하는 상업고, 공업고 학생들에 대한 배려는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상업고, 공업고는 본래의 취지가 대학입시가 아니라 직업교육에 한정되어야 하는 것이 사실이고요. 그러나 일반고등학교의 경우는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같은 조건에서 생활한 학생이라면 동일하게 취급받아야겠지만, 그렇지 못하니 배려가 필요하단 거겠지요.




비로그인 2007-11-27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부분의 학교를 정상 학업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퇴행시켜놓은 채,
정상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비정상적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핸디캡을 준다는 것이
과연 교육적인 면에서나 상식적인 면에서 공정한 일일까요?
저는 난센스라고 생각한답니다. 아프락사스님.


이잘코군 2007-11-27 19:50   좋아요 0 | URL
한사님의 심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시는건 어떨까요. 자녀도 없고, 오로지 나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만 바라봤을 때, 과연 어떤 것을 원할 것인가, 를 생각해보면 달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롤즈의 <정의론>에 등장하는 원초적 입장에 처한 당사자들로 돌아가보는거에요. 저는 항상 어떤 문제를 판단할 때 처음으로 돌아가보려고 하는데 롤즈는 그것을 원초적 입장이라고 말하더군요. 나의 이해관계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떠나서 오로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만 판단을 하는거죠. 그렇지 않더라도 일반고등학교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여건이라는 것 안에는 아마도 공부를 많이한 능력있는 선생님 말고도 열심히 하는 친구들, 또 학교 환경, 토론과 토의 위주의 수업 등등도 포함되겠죠. 이런건 '정상 이상의 것'이라고 보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고등학교에선 바랄 수 없는 것들이고, 채워줄 수 없는 부분들이죠.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일반고등학교를 제로 기준점에 놓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반고등학교의 교과과정과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는 점은 별개로 논의를 해야할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