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럼 누가? - 철학 이야기 지식전람회 10
김주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 한 적 없다.  누가 도대체 누가? 누가 소크라테스에게 누명을 씌웠단 말인가. 국가가 믿는 신을 믿지 않는다는 죄로, 다른 새로운 영적인 것들을 믿는다는 죄로, 그뿐 아니라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로,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았던 - 어쩌면 그냥 벌금으로 끝날 수 있는 걸 소크라테스가 배심원들을 농락함으로써 자초한 결과인지도 모르지만 - 그에게 누가 죽어서까지도 억울하게 누명을 씌운단 말인가? 소크라테스는 절대로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아닌데?

  권창은, 강정인 교수의 합작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가 철학 논문을 엮어 낸 좀 더 깊이있는 난이도 높은 책이라면,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럼 누가> 는 청소년을 비롯한 대중일반을 염두에 두고 쓴 철학서적이다. 그러니 전자의 책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 책을 대신해도 좋겠다. 하지만 이 책에선  그다지 깊이있는 성찰을 기대하진 말길 바란다. 하지만 매우 재밌게 유쾌하게 유익하게 그 억울함을 풀어준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의 고발장면부터 시작해 소크라테스의 억울함을 해소해주며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실체를 드러내는 데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보다 더 간단히 훑고 있지만 더 많은 재밌는 곁다리 이야기들을 준비해놓고 있다. 물론 주된 주제는 악법도 법이다 라고 말하지 않은 데 대한 누명을 벗기는 작업이고, 소크라테스에게 누명을 씌운 자를 밝혀내는 것이지만, 신탁과 논리학, 아크로폴리스와 제국주의,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관계, 희랍의 남색문화, 악처 크산티페와의 관계, 4대 성인의 유래 등 유익한 이야기가 계속 된다.

  악법도 법이다 라고 말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화편은 <크리톤>과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럼 어디에 악법도 법이다 라는 문구가 나오는가. 직접 이렇게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비슷한 뉘앙스를 풍기는 것은 투키디데스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의 일부분이다.

  클레온이라는 정치선동가에 대한 기록 부분에 이렇게 나와있다.

  "변함없는 악법을 운용하는 나라가 불안정한 좋은 법을 운용하는 나라보다 낫습니다. 절도를 갖춘 무지가 자유분방한 명민함보다 유익하빈다. 지식이 있는 사람들보다는 한층 평범한 사람들이 나랏일을 더 훌륭하게 꾸려 갑니다.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법보다 더 현명해 보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3권 37장)

  이와 같은 클레온의 연설은 당시 정의와 관용을 외쳤던 무명 시민 디오도토스의 연설에 대다수의 아테네 시민들이 지지들 하며 공감을 얻지 못했지만, 10년 쯤 뒤에는 아테네인의 상식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의 발언이 오늘날에 온 것이 실정법 사상이다. '악법도 법이다'는 실정법 사상의 표어가 되는데 사실 이를 처음 말한 이는 자연법 사상가 였다. 도미누스 울피아누스는 로마법을 집대성한 3세기 경 로마 법학자로서, 자연법 사상가였다. 그의 저술집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Dura lex, sed lex"

 이는 "quod quidem perquam duram est, sed ita lex scripta est"라는 원문에서 발췌한 말로, '그것이 나쁜 것이긴 하지만, 법에 그렇게 되어 있다' 라는 의미를 지닌다. 원래 이 말은 노예를 해방시켜주려는 이들에게 노예 해방을 금지시킨 법조문을 상기시키며 한 말이라 한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일본의 법철학자 오다가 도모오는 1937년 출판한 <법철학>에서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일단 지켜야 하며, 악법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널리 홍보하여 정당한 입법절차에 따라서 그 악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책에 서술되어 있기 보다든 1950년대 이후, 특히 1970-80년대에 이런 문구들이 자주 인용되었는데, 주로 신문사설이나 기사를 통해 인용되었다. 1973년 당시 숭실대 철학과 교수 최명관은 <조선일보>를 통해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바가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그런 말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저자는 추측하기를, 교과서와 신문에 비슷한 문구들이 실리고, 이를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의 입을 통해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했다'라는 정식화된 문구로 전파가 되었고, 현장에서 교육받은 당시 학생들은 그렇게 알고 있지 않았을까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이어 일본에서도 이런 낭설이 통용되고 있다며, 이와 같은 소크라테스에 대한 오해는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유독 두드러진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일본의 학문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수입을 해왔던 우리 학계를 질타한다.

  "개화 이후 우리는 계속 잘못된 권위가 짓누르는 상황 속에서 살아왔다. 국가 권력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성립되지 못했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 이식된 서구 학문은 건강한 비판 정신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일본을 거쳐 들어온 서구 학문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잘못된 권위주의와 얄팍한 계몽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서구와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것은 무조건 맞다고 보고 출처와 원전을 확인하지 않는 비상식적인 학문 태도가 만연했으며, 서구의 것을 권위로 받아들이는 게 근대화고 계몽이라고 생각한 천박한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문 언어에서도 우리말은 권위 있는 학문 언어가 되지 못하고 학문에서 일어로, 다시 영어로 흘러왔을 뿐이다. 그러나 거꾸로 그만큼 권위에 대한 갈증은 더해서, 고전에 대한 탐구와 번역도 그런 의식 선상에서 진행된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 이것이 제대로 된 번역과 연구에 의해 진행되지 못하고, 일본과 독재 정부에 의해 왜곡되어 진행되었다.

  중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서양 고대 철학에 대한 낮은 소양과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한 연구 풍토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와 같은 해프닝이 오랜 세월 동안 교정받지 못한 채 뿌리 내린 듯 하다. 그나마 70년대 최명관의 외로운 목소리가 있었고, 90년대 와서 교정의 목소리가 높아져 21세기 초에 와서 제 7차 교육 과정의 교과서에서 이 말을 뺄 것을 권유한 국가 인권위의 목소리가 뒤늦은 위안이 될 뿐이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이는 아마도 일본의 법학자로부터 시작되어, 우리나라에 전파되었고, 우리나라에서 신문논설가와 학교 교사들이 정식화해 사용하면서 고착된 것으로 추정된다. 소크라테스를 이용해 악법도 법이니 지키라고 강요하는 이들이 더이상 나오지 않길 기대한다.

 


댓글(4) 먼댓글(1)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정의론의 대가 존 롤즈와 그의 비판자 매킨타이어
    from 자유를 찾아서 2007-11-27 21:36 
      2002년 평생 정의만을 연구했던 한 철학자가 타계했다. 그는 공리주의가 온세상을 지배하고 있던 시기에,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이론을 내놓아 세상을 놀래켰고, 철학 분야에 있어 죽어버린 정의의 영역을 부활시켰다는 칭송을 받았다. 1957년에 발표한 논문 <공정으로서의 정의>로 주목을 받기 시작해, 이 논문을 보완하는데 또 한 세월을 쏟아 필생의 역작 <정의론>을 1971년에 펴냈다. 그는 바로 다음해 하버드 대학을 빛
 
 
드팀전 2006-05-14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로 소크라테스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악법도 법은 어디서 주워들어서..ㅎㅎ
쪽팔린 짓이어서 마땅히 할 말없을 때 그 말을 인용하는 거죠.
누가..악법도 법이다..그러면 ...전....(속으로 뷩신 먼저하고...) 악법은 버리거나 고쳐 쓰면 된다고 합니다.다 인간이 하는 짓인데 못고칠게 어딨다고...

마늘빵 2006-05-14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여요. 이제는 그런 말 하는 사람들 많이 줄었지만 참 그동안 많이도 우려먹었죠.

책방마니아 2006-05-23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다. 첫번째 문단 마지막 부분 "나는 아닌데?" / 참 너다운 개그다 ^^
글구 질문이 있는데 "이와 같은 클레온의 연설은 당시 정의와 관용을 외쳤던 무명 시민 디오도토스의 연설에 대다수의 아테네 시민들이 지지들 하며 공감을 얻지 못했지만" 이라는 부분이 좀 의미 전달이 안된다. 혹시 디오도토스라는 사람이 클레온과 상반되는 주장을 한 사람인가? 음 ... 그런 거 같기도 하군.

클레온에 대한 기록 있는 2개 문단에 오타가 집중되어 있다.
유익하빈다 => 유익합니다 / 지지들 하며 => 지지를 하며 / 자연법 사상가 였다. => 자연법 사상가 도미누스 울피아누스였다.

마늘빵 2006-05-23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와 같은 클레온의 연설은 당시 정의와 관용을 외쳤던 무명 시민 디오도토스의 연설에 대다수의 아테네 시민들이 지지들 하며 공감을 얻지 못했지만
-> 이건 말 그대로 인데. 악법도 법이다 식으로 주장을 했던 클레온의 연설이 그 반대의 정의와 관용을 외쳤던 디오도토스의 주장과 달랐고, 시민들이 디오도토스의 주장에 지지를 보내며 클레온은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 말.

오타는 쩝 쓰고는 확인을 안하니 엉뚱한 곳에서 꽤 많이 나오더군. 쓰고 다시 읽는 버릇을 들여야하는데 그게 귀찮아서 안하게 되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