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평전 -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의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예담 / 2006년 10월
절판


"죽음이란 가장 두려운 것이고, 죽음 앞에서 확고하게 버티는 것은 가장 큰 힘이 요구되는 일이다."

"죽음 앞에서 공포에 짓눌려 뒤로 물러나며 파멸로부터 스스로를 순수하게 보호하는 것은 삶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의 삶이라 할 죽음이다."

"사물의 표면을 꿰뚫고 사건들의 얼룩덜룩한 외관을 관통하는 '이성'의 눈을 가지고 보아야 한다." (헤겔 <정신현상학>)
-48쪽

"비판의 무기가 무기의 비판을 대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신체적인 힘은 신체적인 힘에 의해 소멸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론은 대중의 소유가 되는 즉시 신체적인 힘이 될 수 있다 "-111쪽

"돈으로부터 해방되려면 모든 종교들에서 해방되어야 하고, 특히 그 종교들의 기초를 이루는 유태교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유태인을 모든 종교적 정체성으로부터 해방시키면 모든 종교성의 기반들을 제거하게 될 것이며, 유태인이 모태가 된 자본주의의 기반들도 제거될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세속적 존재가 될 시민사회 안에서 모든 인간들이 해방되고 비로소 신학적 국가들이 변화되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114쪽

마르크스는 소외란 정신이 자신에 대해 깨닫기 위해 스스로에게 돌아가려고 자신에게 떨어져 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채택하여 이론에 이용했다. 더욱이 그는 헤겔처럼 철학이 보통의 의미에서 전복으로 정의되고, 그럼으로써 이성과 반대인 광기 사이의 근접성을 확립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진정한 단일성이란 부분으로 나뉘는 과정과 분리될 수 없다. 광기란 존재의 진실의 조건이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그 시절에 깨닫게 된 것이다. -133쪽

그가 보기에 사적 소유권은 소외 노동의 근원이 아니라 결과였다. 소외는 노동 그 자체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본 것이다. 소외를 인간 자신에 대한 외재성으로 정의한 헤겔이나 소외를 종교와 동일시한 포이어바흐와는 달리, 마르크스는 소외를 사회조직들과 종교들을 생겨나게 한 노동에 의한 현실과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 포함시켰다. -144쪽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168쪽

"정치권력은 엄밀하게 말해서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조직된 권력이다." -203쪽

마르크스는 제국이 언젠가 전복될 것이라고 예견했는가 하면, 노동자 프롤레타리아가 농민과 연합하지 않아 승리를 몰수당할까 염려하기도 했다. 더 정확히 말해 제국이 무너지게 되면 의회주의 공화국이 들어서서 국가를 회수한 다음 부르주아를 위한 국가로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노동자의 혁명은 도시 노동자들이 시골의 소지주, 농민, 상인들과 연합하여 그 모든 파괴력을 국가에 대항하는 데 집중시키고, 모든 정치 혁명들이 점점 완벽하게 만들 뿐이었던 국가기구를 부숴버릴 때에만 가능하다고 하였다. 프롤레타리아 지도자의 과업은 거대한 연합, 즉 국민들 중에서 착취당하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까지 포함하는 다수의 정부를 구성할 목적으로 민중의 당을 창설함으로써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운명에 대한 의식이 생겨나게 만드는 것이다. -281쪽

"현대사회에서의 계급의 존재나 그들 간의 투쟁을 발견한 공로는 나에게 있지 않다. 나 이전에 오래 전부터 부르주아 역사가들이 이 계급투쟁의 역사적 발전을 언급했고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그것에 관한 경제적인 분석을 하였다. 내가 새로 한 것이라고는 첫째, 계급의 존재는 생산의 일정한 역사적 발전 국면에만 연결되어 있다는 것, 둘째, 계급 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이어진다는 것, 셋째, 그 독재 자체도 모든 계급들의 폐지와 계급 없는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형성한다는 것 등을 논증한 것일 뿐이다." -283쪽

"공산주의자는 자유롭게 오늘은 이것을 하고 내일은 저것을 하며, 아침에는 사냥꾼 노릇을 하고 오후에는 어부 노릇을 하며 저녁에는 목동 노릇을 한다. 결코 직업적인 사냥꾼, 어부 또는 목동이 되지는 않는다." -293쪽

"인간은 실제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되고자 원하는 그 모습을 가지고 자신의 신으로 삼았다. 또는 그것이 그의 신이다." -330쪽

"우리가 어떤 개인을 판단할 때 개인의 생각에 따라서 판단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자신의 인식을 바탕으로 격변의 시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이와는 반대로, 물질 생활의 모순들과 사회의 생산력들과 생산관계들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에 의해 그 의식이 설명되어야 한다. 너무 큰 모든 생산력들이 발달되기 전에는 사회의 형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새롭고 더 뛰어난 생산관계들이라 해도 물질적 존재 조건들이 구 사회의 바로 한가운데서 만개하기 전에는 그 사회를 대체하지 못한다. 바로 이 때문에 인류는 완수할 수 있을 만한 과제들만 계획한다." -353-354쪽

그는 잉여가치를 증대시키는 방법을 두 가지로 구분하였다. 첫번째는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노동자들의 탈진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임금 노동자들이 생산에 필요한 노동의 양을 줄잉는 것, 즉 재화 제조의 노동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방법이다. 그것은 거의 무제한적이며 노동자들을 기계로 대체하는 과정을 거친다. 첫번째 방법은 노동자의 피로에 의해 제한되고, 두번째 방법은 기술 진보 때문에 제한적이다. 첫번째는 더 많은 노동을 필요로 하고, 두번째 방법은 더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한다. -443-444쪽

"나는 공산주의를 아주 싫어한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자유에 대한 부정이며, 나는 자유가 없이 인간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국가 안에 사회의 모든 힘들을 집중시켜 탕진해버리게 만들기 때문이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국가의 손 안에서 소유권의 중앙집권화로 귀결되고야 말기 때문이다. ...... 나는 그게 뭐가 됐든 어떤 권위적인 수단을 통해 위에서 아래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연합의 길을 통해 아래에서 위로 공동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소유하게 되는 사회를 조직하기 원한다. 자, 내가 어떤 의미에서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집산주의자인지 보라!" -474쪽

첫단계는 부르주아지로부터 그들의 권위를 단번에 박탈시키기 위한 혁명적이고 폭력적인 단계(파리 사람들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처럼)이다. 두번째 단계는 방금 언급된 개혁들과 같은 급진적인 개혁들에 의해 반혁명적인 활동들(예를 들어 베르사유 사람들의 활동들)을 피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예를 들어 코뮌)이다. 세번째 단계는 '각자의 노동에 따라 각자에게'라는 워닉에 맞도록 생산을 재개시키는 사회주의이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단계는 각자의 필요에 따라 각자에게 생산물을 동등하게 분배하고 집단들을 자유롭게 조직할 수 있도록 하는 공산주의이다. -512쪽

"생산계급의 해방은 성에 대한 구별도 인종에 대한 구별도 없는 모든 인간들의 해방이며, 생산자들은 그들의 생산수단을 소유하게 되어야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생산 방식들이 그들에게 속할 수 있는 형태란 두 가지 밖에 없다. 첫째는 일반적 사실의 상태로서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고 산업 발전에 의해 점점 더 제거되고 있는 개인적 형태이고, 둘째는 물질적이고 지적인 요소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 그 자체에 의해 구성되는 집단적 형태이다. 이러한 집단적 소유화는 정당에서 조직되는 생산계급 - 또는 프롤레타리아 - 의 혁명적 활동에서만 비롯될 수 있으며, 그러한 조직은 프롤레타리아가 쓸 수 있는 모든 수단들을 통해 추구되어야 한다. 이런 수단들 중에는 지금까지 속임수의 도구였다가 해방의 도구로 변화된 보통선거도 포함되어 있다." -592쪽

"자본 독점은 그것과 더불어 성장하고 번영한 생산양식에 족쇄가 된다. 논동의 사회화와 노동의 물질적 원동력의 집중화는 자본주의의 거죽 안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 거죽도 남아날 리가 없다. 수용자들도 이번에는 자신들이 수용을 당한다."
점점 더 많은 자본가들이 프롤레타리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각 기업은 기업이 산출해 내는 이윤을 개인적으로 지키려 애쓰고, 전체 이윤의 비율은 투자 증가 때문에 떨어질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것들은 위기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그 다음에는 사회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소외와 착취가 동시에 사라지게 될 사회를 열망하게 되며 결구 혁명을 선택한다. 오로지 혁명만이 그런 사회를 탄생시킨다. 그 사회가 바로 공산주의 사회이다. -6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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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겐 철학이 있습니까?
박이문 지음 / 미다스북스 / 2006년 4월
구판절판


방황은 인간의 운명이다. 인간은 그냥 존재하는 물질과는 달리 싫건 좋건 자신의 행동, 자신의 삶을 선택해야만 하는 자유를 갖고 태어났다.
선택은 언제나 가치의 선택이고, 모든 가치 선택은 궁극적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게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나에게 있어서 어떠한 삶이 인간으로서 가장 의미 있는 삶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다양한 대답들 가운데의 최선의 대답이 선택으로 나타난다. -15쪽

윤리적이란 자신의 생물학적 욕구를 희생하면서 남을 생각하는 마음씨이다. 수치심은 윤리적 결함 즉 내가 생물학적 나의 욕망을 초월해서 남의 아픔과 기쁨을 생각하지 않는 즉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오로지 생물체로서만 존재하는 자기에 대한 반성적 의식이다. -31쪽

생명에 대한 애착은 곧 죽음에 대한 거부이다. 왜 죽음을 끝까지 거부하는가? 죽음이 생명의 불가피한 조건이라면, 이러한 조건이 자연, 우주의 움직일 수 없는 질서이며 법칙이라면, 죽음의 거부는 우주질서의 거부이며, 우주 질서와 법칙의 거부만큼 불합리한 것은 있을 수 없다. 덧없는 삶을 악착같이 좀 더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죽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부조리하고 어리석으며, 생명에 대한 우리의 집착은 치사하다.
하지만 우리의 어리석고 부조리한 태도와 치사한 집착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삶과 죽음이 논리가 아닌 것처럼 삶과 죽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논리가 아니라 본능의 영역에 속하며, 삶에 대한 우리의 집착 즉 죽음에 대한 우리의 거부감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의 안건이다. -37쪽

죽어서 떠난 이의 텅 빈 자리가 허전하다. 한 생명의 죽음은 그가 애써 살아오면서 닦아 놓은 모든 것을 허망하게 한다. 죽은 후에 내가 살아오고 닦아 놓은 모든 것이 혹시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내 자신에게는 전혀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의식을 전제하지 않는 의미를 생각할 수 없다면 나의 의식의 완전한 소멸을 뜻하는 나의 죽음은 나로부터 모든 의미를 박탈하기 때문이다. -39쪽

혼자됨이 생명체의 객관적 존재조건을 지칭한다면 고독은 그러한 혼자된 존재조건의 주관적 체험을 가리킨다. 체험은 발달된 반성적 의식을 전제하며, 오직 인간만이 그러한 의식을 갖춘 동물이다. 인간만이 자신의 혼자됨이라는 존재조건을 '고독한' 것으로 체험할 수 있다. 어떠한 동물의 세계에도 고독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독'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해당될 수 있는 말이다. 인간만이 고독할 수 있는 동물이다. 고독이 혼자됨에 대한 인간의 반성적 의식상태를 말하지만 혼자됨에 대한 그러한 반성적 의식이 곧 고독이라는 의식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45쪽

고독은 자신의 곤경에 대한 남들의 사회적 무관심 속에 놓여있는 개인적 혹은 집단적 인간의 상황이며, 고독감은 한 인간 혹은 한 인간 집단이 그러한 상황에서 혼자만으로 감당해야하는 고립감, 쓸쓸함, 아픔의 의식이다. 고독은 내가 참여하고 싶은 사회 즉 인간 공동체 더 정확히 말해서 내가 남들과 인간으로서 공유하고자 하는 삶의 축제로부터 사회저으로 소외, 제거된 상황,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 빚어내는 인간적 아픔이다. -47쪽

자살찬양은커녕 자살을 부정해야하는 다른 이유로 자살행위가 생명일반 특히 인간 생명의 가치를 부정함을 함의한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자살행위가 자살자 본인의 생명의 가치만이 아니라 모든 가치의 부정을 의미한다고 하는 이유는 가치의 전제조건인 인간의 의식의 부정 내지는 소멸을 함의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 역시 살아남기를 원하고, 어떤 경험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제 3자들 즉 사회의 이유가 될 수 있어도 자살자 본인에게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가치의 부정 혹은 의미의 부재를 따지는 행위 자체는 살아 있는 자들의 문제일뿐이지 자살한 본인 자신에게는 전혀 무의미하다. -55쪽

'가짜'에는 '사기'라는 의도가 은폐된다. 그것은 자신의 부당한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 포장된 복제품이다. 나나 다른 모든 이들이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서로 다 같이 알고 있는 상태에서 내 목에 걸린 아름다운 진주 목걸이, 성형수술로 아름다워진 코, 눈, 입등은 가짜가 아니라 일종의 화장이며 장식이다. 나의 상품이 복제품이라는 것을 나나 남들이 모두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것을 내가 팔고 남이 샀다면 그것은 가짜가 아니라 그냥 복제품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이태원에서 매매되는 복제품 가운데 많은 것들은 '가짜'가 아닌 그냥 복제품이다. 복제품이 원본이 아니라 복제품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공개적으로 밝혀진 것이라면 그것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와 같은 뛰어난 복제품일 따름이다. 복제품이 어떤 이유에서이든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복제품이 아니라 원본인양 행세를 할 때 비로소 가짜라는 범주에 속한다. '가짜'는 어떤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 남을 속이고자 하는 비도덕적 동기를 함축한 특정한 종류의 복제품을 지칭한다. 복제품이 원본보다 질적으로 더 뛰어날 수도 있지만, 가짜와 진짜의 차이는 그런 물리적 및 기술적 속성과는 상관없이 복제품을 제조하고 소유하고 유통시키는 의도에 있다.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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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21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이문 교수님은 저의 중학시절 독서신문에서 이분의 글을 접한 후
평생 독자가 되었답니다.

마늘빵 2006-11-2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뒤늦게 접했지만 주요 저서들을 찾아 읽어보려고 합니다. ^^
생각하는 삶에 대한 글들이 좋습니다.
 



  이 영화 기억하시나요? 아 이 촌스러운 영화 포스터하곤. 1998년에 나온 작품인데 고작 기껏해야 이제 8년지났구만 딱 나 스무살 때 나온 영화. 8년 이란 시간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거 같은데, 내 나이 스무살과 스물여덟살, 어리버리 꾸질꾸질하던 대학 신입생과 직장인 2년차, 한 겨울에 스킨 로션도 바르지 않던 놈과 에센스까지 꼬박꼬박 바르고도 별 티도 안나는 놈. 8년 이란 시간은 바로 이런 차이. 그리고 저 촌스러운 포스터와 8년전의 이성재와 심은하의 모습이란. 8년 참 무섭고나.



* 심은하 맞아?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심은하의 이미지와 너무나도 다른 천방지축 덜렁이 춘희.

  스무살에 저 영화 무지 재밌게, 또 감동적으로 봤더랬다. 그래서 아마도 작년이지 인터넷 쇼핑하다가 <미술관 옆 동물원> 디비디 나왔다는 소리 듣고 바로 질러버렸던게. 그리고 사놓고는 안봤더랬지. 갑자기 보고 싶어져서 꺼냈다. 스무살에 봤을 때의 재밌음과 감동은 이제 재밌음과 유치함으로 바뀌었다. 그때는 이 영화가 왜 이리 마음을 울렸던지.

  스물 여섯 되도록 좋아하는 남자 앞에 가서 나 너 좋아해, 이런 말 조차 못하는 춘희와 이미 다른 여자가 들어와 살고 있는 옛 애인의 집에 뻔뻔하게 들어와 사는 스물 일곱의 군인 철수. 어쩜 이름도 이렇게 딱 자기 모습대로야. 촌스럽고 꾸미지도 않고 너무나 솔직한 면모만 보여주는 춘희와 뻔뻔하고 마구 들이대는 무대뽀 철수. 그리고 이름은 귀엽고 이쁘지만 도도하고 냉정한 철수의 옛 애인 다혜. 아 이 영화의 가장 미스 캐스팅 다혜. 송선미다. 지금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약하는 송선미의 연기는 아주 맛깔난 주연급 조연이지만, 흐흐 이 영화에서의 송선미는 정말이지 너무 딱딱하고 어색한 연기에 어울리지 않는 짧은 단발머리에 조신한 척 하는 캐릭터. 아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송선미는 철수의 옛 애인이기도 하지만 춘희의 소설 속 여자이기도.

  영화 <집으로>의 이정향 감독의 첫 작품이었다. 정확히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이정향 감독이 시나리오에 당선됐고, 그것을 영화화하는데 본인이 영화감독을 하겠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고. 진실 혹은 거짓. 영화는 남녀의 기본적인 사랑 패턴을 밟아간다. 사랑하지만 육체를 허락할 수 없는 여자, 육체없이는 사랑도 불가능하다는 남자. 좋아하지만 다가섬이 너무 힘든 여자, 좋아하면 상대가 날 좋아하지 않아도 들이미는 남자. 전형적인 여자와 남자의 사랑방식 아닌가. '전형적인'이 아니고 '전통적인'이라고 해야하나.

  영화는 많은 사랑에 관한 명대사를 남겼다. 

"사랑이란 게 처음부터 풍덩 빠져 버리는 건 줄만 알았지. 이렇게 서서히 물들어 가는 것인 줄은 몰랐어."
"넌 결국 그녀를 사랑했다기 보단 사랑에 빠진 네 감정을 사랑했던 거지" 
"넌 남을 배려해서가 아냐 단지 자신이 상처 받을까봐 그게 두려워서 일부러 안타까운 짝사랑을 하는 척 즐기고있어"
"넌 사랑을 언제나 머리속으로만 해. 그게 다라고 여기고 자기 생각에만 빠져 있으니까 언제나 그 모양인거야 "


  철수  "넌 너 이외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하고 살아가는지 생각해본 적 있어?"
  춘희 "요즘 사람들의 사랑은 같은 음악을 들어도 각자 이어폰을 끼고 듣는 것 같아.
             왠지 뭔가 자기가 갖고 있는걸 다 내주지 않는..."

 
   그래. 스무살에 이 영화가 감동으로 다가왔던 것은, 내가 철수와 춘희와 대화 속의 어느 누군가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육체없이 정신으로 가능하다 생각했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그녀를 놓아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진짜 사랑일 수도 있을거라 믿었으며, 사랑은 친구처럼 왔다 서서히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믿었던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주위에서 맴맴 돌다 그녀가 눈치챘는지 어쨌는지 모르고, 혼자 또 아 날 좋아하지 않는건가, 생각하며 쉽게 포기하곤 했던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이정향 감독은 사랑을 머리로만 가능하다고 믿는, 또 섹스를 통해서만 사랑이 가능하다고 믿는, 양쪽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쪽 뺨을 보여줌으로써 제 모습을 찾도록 해준다. 천방지축 날뛰고 맛난 음식 앞에서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머리는 감지도 않고 제대로 씻지도 않는 춘희의 일상적인 모습에서, 너무나 솔직한 모습에서, 철수는 사랑을 느끼고, 내가 너보다 이 침대에서 더 많이 잤어, 섹스가 어쩌구저쩌구 대놓고 이야기하는 철수의 노골적이지만, 때로는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 건네는 그런 모습에서 춘희는 철수에게 사랑을 느낀다.

  사랑에 정답은 없다. 사랑은 불현듯 갑작스레 내 마음 속에 자리잡기도, 주변에서 오래동안 함께 지내던 털털한 이성친구의 모습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정신이고 육체고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이고, 또 무엇이 필수이고, 무엇이 필수가 아닌지 그런 논쟁은 무의미하다. 사랑에 빠지는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의 사랑이 가능한 법. 단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나만의 사랑법으로 상대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미술관을 가려고 하는 여자, 동물원을 가려고 하는 남자, 둘은 서로 싸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미술관을 가려했던 여자는 그를 만나기 위해 동물원으로, 동물원에 가려고 했던 남자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미술관에 와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서로가 서로의 영역으로 살며시 발을 한짝 들여놨을 때 사랑은 불현듯 다가온다.  시일이 또 한참 지난 뒤에 꺼내어 다시 보고픈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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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11-18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 기억하고 말고요. 저도 보고 싶을 것 같아서 DVD까지 갖추고 있답니다. ^^;
이 영화 덕에 로라 피지(Laura Fygi)가 유명해졌고, 서영은도 이 영화에 삽입된 노래를 불렀죠. 이성재 이 영화에서 참 좋았는데...

마늘빵 2006-11-18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두 디비디 있어요! ^^ 엇 로라 피지는 전 모르는데. -_- 검색해봐야지.

독주가 2007-09-29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은하와 동물원을 무지 좋아하는 저게, 무척이나 고마웠던 영화. 전 송선미와 안성기씨의 이야기가 더 좋더군요.
 

 

    화제의 책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영화판. 책과 영화를 모두 읽고 본 주변인들에 따르면 -나를 포함하여 - 모두가 일제히 책보다 영화를 외친다. 원작 소설을 쓴 로렌 와이스버거는 좀 서운해하겠지만. 소설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면 둘다 즐길 수 있지만,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으면 재미 하나도 없다. 나도 1권만 봤다. 그러나 영화가 개봉되기 이전에 이미 번역되어 출판사와 번역자는 이미 한 몫 잡았을 것이다. 영화가 화제가 되면서 더더욱 팔려 나갔을 것이고, 나중에 입소문에 따라 책보다는 영화더라 이런 말이 퍼지면서 주춤하지 않았을까 하는 나만의 생각.



  원작 소설은 저자 로렌 와이스버거의 실제 체험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77년생으로 나보다 기껏해야 두 살 밖에 많지 않은 아직 젊디 젊은 이 여자는 미국의 코넬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99년말부터 '보그'지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의 어시스턴트로 일했다고 한다. 패션과는 전혀 상관없는 학문을 전공하고, 유명패션지의 편집장 어시스턴트라니. 그녀의 짧은 이색 경력이 두뇌를 자극했나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 이 책을 읽고, 또 영화를 본 영화 속 메릴 스트립의 실제 모델인 안나 윈투어는 과연 이 작품을 접하고 어땠을까. 영화 속의 메릴 스트립이라면 마치 관심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속으로는 웃고 있을테지.

   영화는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시골뜨기 촌녀의 신데렐라 되기로 볼 수도 있고, 또 샤넬, 돌체, 아르마니 등등의 명품들을 그저 구경하는 것만으로 눈요기로 만족할 수도 있다. 일종의 패션쇼. 이 영화 개봉 이후 아마도 영화에 등장했던 각종 옷과 신발, 가방의 명품회사들은 간접광고의 효과를 톡톡히 봤을게다. 어떤 쇼핑몰에서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등장했던 옷가지들을 캡쳐사진으로 편집해 친절하게도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사람들의 관심이 여기에 쏠리다 보니 이에 대해 해설해주고 쇼핑몰 홍보도 하고 아이디어 잘 짰지.



 

 

 

 

 

 

 

 



* 야 이 아줌마 카리스마봐라. 그냥 저러고 가만히만 있어도 광채가 난다. 오른쪽엔 촌녀에서 쌈빡녀로 변신한 앤 해서웨이. 이쁘다. 옷의 힘인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사람들의 패션을 비롯한 외양새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이다. 사람들이 가꾸기에 관심이 있는 만큼 패션을 다룬 이 영화를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온갖 명품들을 다 선보인다. 영화는 온통 간접광고의 장이다. 간접광고라고 하기도 뭣하게 아예 대놓고 보여준다. 이건 프라다, 저건 돌체, 저건 샤넬 등등 명품 이름을 몰라서 쓰지도 못하겠다. 보여줘도 뭔지 잘 모르는게 내 솔직한 고백이지만 보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는 말 못한다. 솔직히 남자 건 별로 나오지도 않는데 왜 이리 눈이 즐거울고. 외양 꾸미기에 관심있고, 패션에 민감한 여성들이 보기에 딱 인 영화. 영화비 8,000원이 아깝지 않을테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엔 여성패션지 몇개를 쭉 훑어본 것과 같을테니깐.

   p.s. 앤 해서웨이와 메릴 스트립의 연기도 매우 볼만했다. 단 젊고 아리따운 해서웨이의 연기가 메릴 스트립의 카리스마에 눌려 빛을 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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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아이 2006-11-17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욕'을 배경으로 한 패션 영화니깐 사람들이 보는 거겠죠?
딴나라 패션 영화라면 볼 생각도 안 할 거 같아요...저만의 생각일까요? ^^;;

비로그인 2006-11-17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흰 코트! 영화 내도록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 옷이었어요! 하지만 저런 네크라인은 아무나 쉬이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서 마음만 꼴깍.

마늘빵 2006-11-17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친아이님 / ^^ 네. 그야 말할 것도 없죠. 뉴욕이니깐 가능하죠. 일본패션, 독일패션 이럼 안보죠. -_-
쥬드님 / 아 저도 옷 바뀔 때마다 눈이 샤샤샥 돌아가요. 정말 이쁘더라구요. 남자옷 패션영화 이런건 없나. 저 이 영화보면서 막 꾸미고 싶어졌어요. 그러나 영화 끝나구 지름신 막 내리려할 때 통장잔고를 확인하고는 눈 깔았습니다.

비연 2006-11-17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릴 스트립은 정말 명배우다 란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배우더군요.
다른 사람이 했더라면...그런 카리스마를 내뿜을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하늘바람 2006-11-18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요? 저는 둘다 아직 안 보아서요

비로그인 2006-11-18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선택을 잘하셨네요!! ㅎㅎ 앤 해서웨이는 꼭 마네킹같아요~ 참 예뻐요..ㅠㅜ

이리스 2006-11-18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책이 훨씬 더 재미있었는데. 영화는 지루해서 보다가 졸았음. 옷나올때만 빼고.

마늘빵 2006-11-18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그래? 난 책 영 밍숭맹숭하던데.

이리스 2006-11-18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보면서 말 그대로 '포복절도' 했었음. 그러면서 머리로 그려놨던 영상이 실제 영화에서 보니 기대치에 훨씬 못미쳐서 그랬던 듯. 너무 쉽게 인정 받는 듯이 보이는 것도 별로였고 볶이는 과정이 축소된데다가 남자 친구와의 갈등 과정, 친한 친구와의 관계도 다 축소되어 버리고 앤틱 제품 찾아 헤매는 모습도 없었고 실제 일에 대한 내용이 반 정도로 잘라지니 재미가 반감되었나봐. 메릴 스트립에게 박수를 쳐줄만큼 연기가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봐도 '0' 사이즈의 몸매는 아니라서 낭패. (헐리웃에서 과연 저 나이대에 '0' 사이즈을 입을 수 있는 배우를 찾기는 힘들었을거라 생각하지만.)

마늘빵 2006-11-18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난 영화를 먼저 봐서 그런가 -_- 메릴스트립의 카리스마와 이쁘게 잘 늙은 외모도 좋았구, 앤 해서웨이의 촌녀에서 명품녀의 변신도 볼만했지. 누가 나 저렇게 안꾸며주나. 한번 받아보고 싶다 뭐 이런거. -_-

해적오리 2006-11-18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보고 싶은데..에공 .. 요즘 시간이 별루 안나네요...
 

  * 계획된유치뽕짝영화감상기

  이것이 진짜액션이다. 한국액션영화란 이런 것이다. 뭐 기타 등등의 영화 홍보 문구들. 내가 세뇌당한건지 아니면 정말 영화가 그런건지 모르겠는데, 오 의외로 괜찮다. 딱 시작과 동시에 눈 떼지 않고 끝까지 보게 된다. 눈을 뗄 새가 없다. 시종일관 치고박고 싸우는 장면 일색이고, 줄거리도 매우 단순하지만, 정두홍과 류승완의 액션 연기를 보다보면 시간 다 간다. 한국액션영화의 틀을 마련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단순 액션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이 영화 괜찮게 봤다면 괜찮은게 아닐까?

  그나저나 포스터 잘 만들었다. 흑백으로 된 잘 그려진 만화책의 한 장면을 떼어다 만든 것같은 색다른 포스터. 그치. 일종의 만화지. 액션만화. 조폭들 등장하고 정의의 사도 등장하고 치고 박고 싸우고 그러다 아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뭐 이런 만화. 이 영화 정말 만화같다. 두 영웅이 등장하고, 강호를 휘어잡는다. 짧은 세라복 조폭녀 한 무리가 골목을 막고, 한 무리의 야구빠따 든 녀석들이 한 골목을 막고, 또 한 무리의 엑스피드 동호회(?) 녀석들 막고 있고, 아 정말 유치했다. 만화의 한 장면이다. 수십명이 되는 이 무리들을 단 둘이서 막으며 절대 지지 않는다. 또 마지막 장면을 향해 가는 그 과정은 또 어떤고. 카지노를 들어서고 식칼 든 요리사들과 한판 뜨고, 일본도(?)든 녀석들 주루룩 앉아있고, 얘네 꺾고 들어가면 더 센놈들이 기다린다. 완전 오락실 스트리트파이터. 철권.

 

  하지만 유치함에도 불구하고 눈이 즐겁다. 아주 난폭하고 잔인하지도 않으면서 - 그래도 조금 잔인한지라 18세 이상 관람가 - 자로 잰 듯한 정두홍과 류승완의 액숀환타지. 정두홍이야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대표적 액숀감독이니 이해가 되지만서도, 류승완은 언제 그렇게 다 배웠대. 원래 액숀스쿨 출신 아냐? 감독도 하고 액숀도 하고. 그런데 영화를 잘 보고 있으면 눈치 챌 수 있다. 고난이도의 액션은 정두홍이 소화한다. 열나게 맞다가 꼬꾸라지는 장면이나 완전 중국무협영화에나 나올 법한 그런 무술은 정두홍이 맞고, 류승완은 옆에서 보조해준다. 그래도 멋져 멋져. 쵝오쵝오.

  아 안길상인가 하는 그 분. 검색해봤더니 나이는 많던데 정말 카리스마있다. 주연은 정두홍과 류승완이었지만 이 아저씨도 멋있었음. 그리고 그리고 이범수 따라다니는 네 무리 중에 한 여자. 정말 이쁘다. 싸움도 잘 하던데. 와 정두홍 액션스쿨에서 데려온 사람인가. 이 영화에 출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두홍 스쿨 소속이라고 들은거 같은데. 끝내 엔딩 크레딧에도 이 여자분 이름이 안나온다. 궁금궁금.



* 여기여기 이범수 바로 뒤에 있는 여자분. 자꾸 시선이 간다. 액숀연기로 봐서는 정말 무술유단자같은데.

    아무 생각 없이 스트레스받고 짜증날 때, 당분간 잊고 싶어, 하는 기분일 때 보면 딱 좋은 영화. 야한 장면도 없고, 이쁜 여자 배우도 안나오지만, 그래도 눈이 즐거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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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11-17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액션도 액션이지만, 개인적으로 이범수의 연기가 돋보이는 건 이 영화가 처음이 아니었나 싶어요. 충청도 사투리로 느릿느릿 사람 약올리는 걸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부아가 나죠. 류승완의 연출력이 이런 데서 빛을 발하는 것 같아서 기뻤어요. 하지만, 최근에 개봉한 '잘 살아보세'는 예고편만 봐도 질리더군요. 어쩜 '짝패'에서의 그 말투를 그대로 가져왔는지... 한숨만 푹푹 쉬었어요.

마늘빵 2006-11-17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맞아요. 이범수 연기 짱이었어요. 이범수가 주인공 같아요. 주연은 맞죠. 나쁜놈이라 그렇지. 번드르르 기름 좔좔 흐르는 느끼한 눈빛에 올백 머리하고 하하. 이범수는 이런 연기가 잘 어울려요. 이미지가 안좋아져서 개인적으로는 억울할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