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으로 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은 생존자들에게는 유일한진실이고, 그러한 것으로서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러한 진실은 그만큼 상상할 수 없는 것, 즉 진실을 구성하는 현실적 요소들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다. - P15
아우슈비츠의 아포리아는 사실상 역사 인식 자체의 아포리아, 즉 사실과 진실 사이의 불일치, 입증과 이해 사이의 불일치인 것이다. - P15
심판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것, 즉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가해자가 피해자가 되어 버리는 회색 지대인 것처럼 보인다. 생존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점이다. "이편이나저편이나가해자나 피해자] 인간적이지 않기는 똑같았다"같은 책, 232). "피해자나 가해자나 비열하기는 매한가지다. 수용소의 교훈은 비참속의 형제애이다"(Rousset; Levi, 1997.216 참조). 심판이 이루어질 수 없다거나 심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아니다. "아이히만이 내 앞에 있었더라면 나는 그를 사형시켜버렸을 것이다"(같은 책, 144). "그들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같은 책, 236). 중요한 점은 다만, 두가지 것이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주제넘게 법이 이 문제를 다다루어서도 안된다는것이다. 진실에는비법률적인 요소가 존재하며 그렇기 때문에 ‘사실의 문제quaestio facti‘는 결코 ‘법의 문제 quaestio juris‘로 축소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생존자들이 우려하는 것이다. 즉 인간의 행동을 법 너머의 문제로 치부하고재판과는 철저히 무관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모든 것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져 유죄를 선고받고 처형될 수있다. 심지어 이유도 모른 채 말이다"(같은 책, 75). - P23
잘 아는 사실이지만, 법의 목표는 정의의 확립이 아니다. 그렇다고 진실의 입증이 목표인 것도 아니다. 법의 유일한 목표는 판결이며, 그것은 진실과 정의와는 무관한 것이다. 이 점은심지어 부당한 판결조차도 판결의 효력을 지니는 데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법의 궁극적 목적은 기판력判; res judicata)의 산출인바, 여기서는 진실과 정의가 있어야 할 자리를 판결이 차지하고 있어 그것에 거짓이 있건 불의가 있건 참인 것이 된다. 법은 이러한 잡종의 피조물에서 안식을 구하며, 그것에 대해 그것이 사실인지 규범인지 말하기란 불가능하다. 일단법은 기판력을 산출하면 그것으로 그만인 것이다. - P24
그러므로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선과 악 너머에 있는 것이아니라 이를테면 선과 악 앞에 있는 무책임과 ‘판결 불능‘mpotentiajudicandi (Levi, 1989: 60)의 영역이다. 레비의 윤리(학)의 장소는 우리가 익히 아는 윤리(학)의 영역이 아니다. 레비는, 니체 FriedrichNietzsche의 제스처와는 정반대의 제스처로, 윤리(학)를 그 영역 앞에 둔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유를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앞‘이라는 것이 그 어떤 ‘너머‘보다 더 중요함을, ‘인간 이상의 인간overman ‘보다 ‘인간이하의 인간underman‘이 우리에게 더 문제가 될수밖에 없음을 감지한다. 이 악명 높은 무책임의 지대가 우리의제1옥인 바, 책임에 대한 어떠한 고백도 이 지대로부터 우리를벗어나게 하지 못하고 여기서 시시각각 아주 분명하게 말해지는 것은 "가공할,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악의 평범성"(Arendt, 1992:252)이라는 교훈이다. - P29
시대를 막론하고 자신이 무죄임에도불구하고 사법적 책임을 지겠다는 제스처는 고귀한 행위로 여겨졌다. 한편 상응하는 법적 결과들을 감수하지 않은 채 정치적또는 도덕적 책임을 지겠다는 것은 항상 힘 있는 자의 오만을특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 P33
. 아마도 모든 말모든 글은 이런 의미에서 증언으로서 태어난다. 그러므로 증언되는 것은 그때까지는 언어나 글일수없다. 그것은 아무도 증언할수없는어떤 것일수만있다.그리고 그것은 공백으로부터 생겨나는 소리, 고독한 이가 말하는 비언어, 언어가 그것에 응답하고언어가 그 속에서 태어나는 비언어이다. 아무도 증언하지 못한것의 본성에 대한, 이 비언어에 대한 성찰은 필연적이다. - P58
증언을 한다는 것은 언어를 그 자체의 무의미non-sense가 되게, 문자들(m-a-s-s-k-l-o, m-a-ti-s-k-1-o)의 순수한 비결정성이 되게 하는 것만으로는충분치 않다. 그러한 무의미한 소리가, 다시 한번, 전혀 다른이유에서 증언할수없는 무엇 또는 누구의 목소리가되어야만 한다. 달리 말하면, 증언의 불가능성이, 인간의 언어를 구성하는이 ‘공백‘이 무너지면서 또 다른 증언의 불가능성에, 즉 언어를갖고 있지 못한 존재의 불가능성에 자리를 내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언어가 증언되지 않은 것으로부터 옮겨놓는다고 믿는 흔적은 증언되지 않은 것의 말이 아니다. 그것은 언어의 말이다. 말씀이 더 이상 태초에 있지 않을 때, 말씀이 다만 태초에서 벗어나타락할 때 다만 증언하기 위해 태어나는 말이다. "그것은 빛이 아니라 빛을 증거하는 무엇이었다." - P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