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에 둘러싸인 여자, 세상 밖으로 여자를 나오게 만든 남자 그리고 이들에게 남겨진 아이들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동화이다.고귀하고 아름다운 공주와 비천하고 보잘 것 없는 남자가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내냈던 천일야화 모두 너무나도 익숙하다. 소설은 아주 오래된 옛 동화들을 차용하고, 변주하면서 20세기 고단했던 독일계 러시아인들의 삶을 신비롭고도 아름답게 그려낸다. 난폭한 역사 앞에서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이주민들의 삶은, 어쩌면 구질구질한 이야기들로 가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이상 새로울 게 하나 없는 이들의 부박한 삶은 소박한 삶을 바라는 믿음의 결정체로 보인다. 어쩌면 이들에게 동화는 현실의 잊게 만드는 환각제가 아니라 소박한 진실을 바라는 굳은 믿음 같은 것이 아닐런지..그렇기에 동화는 철지난, 퇴색한 옛이야기가 아니라 그 소박하고 간절함 염원으로 이루어진 여전히 새로운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난다.
노동자들은 산업 세계를 다시 만들었지만, 오늘날의 PMC 엘리트들은 과거 좌파의 혁명적 권력을 불쾌하게 여긴다. 그들 자신의 기능이지배 계급의 이념적 요구로 인해 제약받고 있음에도 그들은 사회 변화와 가능한 혁명을 관리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자신이 하는 일이 헛되다는 걸 이해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이 보람 있는 일을 찾고 존엄과 경제적 안정 속에 의미있는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할 경제 체제를 다시 만드는 데필요한 체제 변화를 믿지 않는다. - P135
소녀가 경험한 사건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작은 단서라도 가진 것은 군사박물관이나 정착지와 정착지의 기록보관소가 아니라 그 노파였다. 그녀가 주는 단서를 통해 마침내 총체적인 진실에 도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런 내 깨달음과 후회도 커간다. - P152
불가능할 것 같은 일에 매달리는 것. 출구 없는불행에 몸을 던지고 보이지 않는 희망에 마음을내맡기는 것. 그것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 P13
어떤 기억을 집요하게 추적하다 보면, 그것이정말 물성을 지닌 무엇처럼 느껴지게 된다. 생생하게 만져지는 감각, 흐르는 기류, 시시껄렁했던나의 마음 같은 것들. 그러니까 기억을 추적하는과정은 고통 그 자체이지만, 그 고통 너머에 존재하는 희미한 마음이 있다. 건너보는 마음, 살펴보는 마음, 그 기억을 안고 내일을 살기 위해 다짐하는 마음들. - P69
하지만 함부로 잊은기억은 이렇게, 어떤 방식으로든 매서운 바람이되어 가슴을 시리게 한다. - P70
나는 수많은 상실을 겪은 채 슬퍼하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가게될 거고 그것은 나와 관계 맺은 이들에게까지어질 것이다. 엄마를 잃음으로써 내가 상실을 겪었듯, 누군가도 나를 잃음으로써 상실을 겪을 것이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 상실의 늪 속에서 깊은 슬픔과 처절한 슬픔, 가벼운 슬픔과 어찌할 수없는 슬픔들에 둘러싸여 종국에는 축축한 비애에목을 축이며 살아가게 되겠지."나는 슬픔을 믿을 거야."처량하고 처절하고 절실한 것들을 믿을 거야. - P113
한 사람의 궤적이 온전히 그 사람의 몫이라고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궤적은 온 사람의 궤적이되고 그 궤적은 종내 알 수 없는 문양을 한 채로 우리 모두를 잡아끈다. 나는 지금 그 궤적의 현장을바라보고 있었다. - P123
요.언제나 나는 어깨를 으쓱했을 뿐 묵묵히 참았어요.모욕을 견디는 것이 우리 종족의 특징이니까.신을 믿지 않는 놈이라구, 사람 잡을 놈, 개라구 욕했고,내 유태식 외투에 침을 뱉었죠,난 내가 지닌 것을 내 맘대로 썼을 뿐인데 말이죠.그런데, 이제 와서는 나리께서 제 도움이 필요하신 듯하네그것 참. 나리께서 제게 와서는, 말씀하시는 거죠,‘샤일록, 우리가 돈이 필요한데‘그렇게 말씀하신다 이거예요.요.죠,나리가 내 턱수염에 침을 뱉고,날 발로 차며, 문지방 넘어온길 잃은 똥개 취급하던 나리께서 돈을 청하고 계십니다.제가 나리께 뭐라 말씀드려야 할까요? 이래야 하지 않을까개한테 돈이라뇨? 어떻게똥개가 삼천 더컷을 빌려 줄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제가 몸을 낮게 굽히고, 노예 어조로,숨을 죽이고 공손한 속삭임으로말할까요? ‘공평하신 나리, 지난 수요일 제게 침을 뱉으셨저번에는 날 발로 차셨고, 지지난번에는나를 개라 하셨고, 그러니 이런 친절에 대한 보답으로이렇게 많은 돈을 빌려 드리겠습니다 그렇게요?트니오 하시라도 난 당신을 다시 그렇게 부를 거요. - P27
밧사니오 (방백) 그러니까 겉모습에 깜빡 속을 수도 있다는 거.세상사람들 장식 때문에 끊임없이 속지 않는가.법을 보아도, 아무리 소송이 더럽고 썩었을망정우아한 구변을 구사하면사악을 가려주기 마련 아닌가? 종교를 보아도,아무리 저주받을과오일망정 어떤 근엄한 이마가축복을 내리고 성경 구절이나 읊어주면그 흉한 속내를 아름다운 장식으로 감추어 주기 마련 아닌가?순도 백 퍼센트의 악덕이라도, 띠면 그만이다.그 외에 어떤 미덕의 표징을얼마나 많은 겁쟁이들이 그 심장은 온통 거짓스럽기가모래 계단 같으면서도, 그들 턱에 붙이는가,헤라클레스가 찌푸린 마르스의 수염을그 안을 들여다보면, 간이 우유처럼 하얀색이면서도?그런데도 그들이 단지 용기의 허접한 외양을 띠기만 하면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미인을 보면그대 알리라, 그것이 화장품 무게로 사들인 것임을,그것이 그 안에서 자연의 기적을 낳으며가장 많이 처바른 여인을 가장 가벼운 미인으로 만든다.이른바 미인의 머리 위에서바람과 그토록 음란하게 희룽대는그 꼬부라진, 뱀 같은, 황금의 머리칼도 마찬가지,종종 그것은 남의 것이고, - P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