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가 넘어서야 자리를 파했습니다. 우석훈 선생님 만났을 때 만큼이나 기분 좋았던 자리입니다. 덕분에 요새 쌓이고 있는 '테트리스'가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기분은 많이 풀어졌습니다. 김상봉, 서경식 선생님과 돌베개 출판사 관계자 분들 덕분입니다. 간담회는 7시반 정도에 시작하여 10시 정도가 되어서야 마무리 됐습니다. 원래 9시반까지라고 했는데 워낙 독자들의 질문이 많았고, 두 분의 목소리를 '공식적으로' 들을 수 있는 자리가 흔치 않은 만큼 돌베개에서 배려를 해주셨습니다. 

가장 궁금했던 분은 두 분의 만남을 성사시키고 기획하신 편집자분이었는데 직접 뵙고 뒤풀이 장소에서는 개인적인 이야기까지도 함께 할 수 있어 즐거움이 배가 됐습니다. 서경식 선생님 책 중 한 권 빼고는 다 그 분의 손에서 나왔던지라 더 궁금했습니다. 어떤 분이 서경식 선생님을 전담(?)하고 있을까, 이런 궁금증이었달까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저보다 조금 연상으로 보이는 젊고 이쁘신 분이었습니다. 돌베개의 다른 남자 편집자 분과 함께 새벽 4시까지 함께 하시다 가셨는데 두 분 모두 잠도 못 주무시고 바로 직장으로 달려갔을듯.

  김상봉-서경식 선생님과의 대화도 매우 즐거웠습니다. 무엇보다 호프집에서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뵙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쁜데, 두 분과 함께 나눈 대화는, 그 자리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서경식 선생님은 제가 개인적으로 뒤늦게 한겨레 칼럼을 통해서 접하게 된 분이고, 김상봉 선생님은 초기 저작부터 관심갖고 읽어왔습니다. 

  도덕교육의 파시즘, 서로주체성의 이념, 학벌사회, 그리고 이번 대담집 만남에 이르기까지 김상봉 선생님의 고민의 흔적들을 눈으로, 머리로, 마음으로 접하며 얼마나 뭉클했던지. 김상봉 선생님께서 함석헌 선생님의 책을 읽을 때 느꼈던 그런 느낌이라고 하면 과한걸까요. 김상봉 선생님은 제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아하는 철학자입니다. 관심있고 좋아하는 철학자는 더 있지만 존경한다고 표현할 수 있는 철학자는 김상봉 선생님 말고는 선뜻 떠오르지 않습니다.

  서경식 선생님은 사실 책으로는 아직 만나지 못했는데 - 사놓고 아직 안 읽은 책은 있다는 - 한겨레 칼럼 '디아스포라의 눈'을 통해서 접해오고 있었습니다. 어제의 만남을 계기로 제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서경식 선생님과 닿아있고, 그것이 또한 김상봉 선생님의 그것과도 만나있다는 것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서서히 번역된 책들을 하나씩 찾아 읽어가며 '내 안의 고민'을 해봐야겠습니다.

  어제 두 분과의 만남, 그리고 편집자님과의 만남, 그리고 그곳에 계신 모든 분들과의 만남과 대화 즐거웠습니다. 새벽 4시가 넘도록 지칠줄 모르는 대화의 연속, 결국 출근과 졸림을 이유로 들어 자리를 파해야 했지만, 아쉬움 점이 많았지만, 다음을 기약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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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1-30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 감동이었겠어요 ㅜㅜ 급 부럽 ㅜㅜ
깜빡 신청기간을 놓쳐버린 ;;; 뭐 했다고 됐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마노아 2008-01-30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켁, 네시에 끝났군요. 완전 부러워요ㅠ.ㅠ

마늘빵 2008-01-30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 아주 만족이었어요. 두 분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는건 정말. :)

마노아님 / 네. ^^ 거기 오신 분들 모두 열정적이어서 너무나.

pdf2234 2008-01-30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안녕하세요, 어제 뵈었던 종이정원입니다. 아이디로만 뵙던 분들을 한자리에서 뵐 수 있었던 것이 참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많은 말씀 못 나눴지만 언젠가 또 이런 기회가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돌베개의 김희진 선배님은 저도 꼭 뵙고 싶었던 분이었고, 이상술 씨도 궁금했던 분이었는데 뵙게 되어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두분 선생님들... 김상봉 선생님은 수업을 듣기도 했고 가끔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만 서경식 선생님을 뵙고 직접 말씀 나눌 수 있으리라고는 솔직히 상상도 못했네요.

거기 오셨던 분들 전부 인사드리지는 못했지만 모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아프락사스님, 추운 겨울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종종 알라딘에서 뵙겠습니다.

마늘빵 2008-01-30 21:14   좋아요 0 | URL
아 반가워요. 오프에서 만나 온라인으로 다시 뵙는군요. :) 돌베개 편집자님이 선배(출판계의 선배 아니면 학교 선배?)이신가요? ^^ 김상봉 선생님께 수업을 들으셨군요. 저도 김상봉 선생님 좀 더 가까이 뵙고 싶은데 이런저런 외부 아카데미 수업을 통해 만나뵙고 싶군요. 그것 말고는 배울 길이 없을듯. 자주 뵈어요. :)

2008-01-31 0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31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리표 2008-01-31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아요. 소중항 시간이었습니다. 대담회가 끝나서도 뭔가 미진하고 그대로 집으로 향하기는 너무 아쉬워서 2차까지 따라갔지만 주부인지라 일찍 자리를 떠야했지만 그날 하루가 아직까지 여운으로 남아있습니다. 아직도 대담 속에서 오가던 여러 질문들이 머릿속에 맴도네요 그러면서 그 질문과 답들 속에 채 정리되지 않고 떠도는 무엇들은 또 다른 질문을 무수히 해대지만 ....,
새볔이 깊은 시간까지 오고갔을 이야기들이 주로 어떤 화제들이었을까 생각해보니 그 중에는
우리 사회의 학풍문제 (학벌주의)도 있었나보군요. 그곳에 모이신 분들 대부분은 아마도
우리 나라 최고의 교육을 받으시고 그것으로 건실한 자리를 차지하고 여러 기회를 갖으셨을 것 같아요. ^^
제 경우 좀 달라서 학벌과 관련된 얘기들이 나오면 정말 할 말이 없어집니다. 아니 ...,
사실은 너무나 할 말이 많습니다.
20여 년전 대학에 떨어지고 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
세상에 존재하는 어둠의 실체와 좌절의 맛을 아주 괴롭게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지만) 확인했었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날들,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날들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천정을 보고 누워 무의식의 세계와 분명치 않은 혼돈의 꿈과 절망 사이를 헤매면서.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그 누구로부터도 위로 받을 수 없었습니다.
황폐하고 매마른 날들 속에 모든 걸 참을 수 없어 경멸해야만 했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만남의 자리에 서먹함을 피하려고 아주 조심스럽게 (혹은 대뜸)
전공이 뭐죠?하고 묻습니다. 이런 질문은 상대에게 아주 빠른 속도로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죠.
그러나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매우 난처하고 곤란한 질문이란 걸 아시나요.
2차 뒤풒이에 어떤 분께서 제게도 질문을 하시더군요. 위와 똑같이.
스물 살 무렵, 대학은 제게 돈이 있어야 갈 수 있는 곳, 그래서 내겐 너무나 먼 곳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컴플렉스때문에 우울한 20대를 보냈고, 그로 인해 매우 제한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건 고통스러운 현실이었고,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물려준 유산은 슬프지만 부자들을 바라보며 그래 나도 언젠가는 잘 살 수 있겠지, 열심히 하면...., 뿐이었습니다. 변변한 능력이 없어 딸을 대학에 보낼 수 없는 아버지를 둔 자식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많지 않았어요.

전에는 가끔 신문에 이런 보도가 실렸더랬습니다.
대학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어 고민하던 한 학생이 고민끝에 남의 집 담을 넘어 등록금마련을 위해 도둑질을 하였다. 그 학생은 모 대학에 합격했으나 형편이 어려워....
그런 기사를 보고 많은 독지가들은 자신의 일인양 학생을 돕겠다고 나서며, 그러면 신문에선
아직도 우리 사회의 온정이 살아있다 어쩌구 하면서요.

우엇을 위해서 배웁니까? 자기처럼 가난에 찌든 이웃의 소중한 돈을 훔쳐서라도 배워야 할만큼 대학교육이 가치있습니까? 최소한의 도덕적 양심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배워야 합니까? 그것은 배고파서 빵을 훔치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의 배울 기회를 뺏는 것을 수도 있고 더 나아가 교육이라는 신성한 것을
욕되게 하며, 그것으로 더러운 학벌을 만드는데 온 '인정의 물결'들이 동참하게 한 것 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끔은 수많은 이론과 지식들이 너무 허영에 매몰되어 이론을 쫓는 즐거움만 찾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마늘빵 2008-01-31 22:12   좋아요 0 | URL
아 이렇게 긴 글을 남기신게 누굴까 했습니다. 글을 읽다보니 알았습니다. 그때 제 옆자리에 계신 분이란걸. 학벌 문제는 사실 제가 김상봉 선생님과 이야기하고팠던 주제였는데 기회를 놓쳤습니다. 김상봉 선생님과 서경식 선생님께서도 곧 자리를 뜨셔야했기 때문에. 참 하고픈 말이 많았는데 다음을 기약할 밖에요.

위에 서술하신 말씀이 모두 맞습니다. 첫만남에서 대개 전공이 뭡니까, 하고 습관적으로 묻기 마련인데 잘못된 습관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기자신을 기준으로 삼아 타인으로 나아가는 태도에요. 우리가 고민하는 '서로주체성'과는 멀죠. 그럼에도 습관적으로 나오게 되는데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이에 대해서는 무감각할 때가 많습니다.

20년 전이라면 대학을 가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새는 맘만 먹으면 누구나 대학을 갈 수 있죠. 어느 대학이냐가 문제가 되는건데. 저는 요즘의 기준에서 소위 말하는 '일류대' 졸업생은 아니랍니다. 대학원은 그 중 하나이지만, 사실상 우리 사회가 최종 학력의 대학 이름을 가지고 그 사람을 평가하진 않아서 이득을 누리고자 해도 별다른 이득을 누릴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학부 대학은 그냥 'IN서울' 이라고만 해두죠. 그다지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지 않는 대학입니다.

사실 그 자리에 있던, 얼굴을 자주 보는 분들 중에 누가 어느 대학을 나왔고, 뭘 전공했는지 모르는 분도 있습니다. 굳이 묻지 않고 묻지 않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 올바르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묻고 싶을 때 그것이 '궁금증'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간판을 확인하고픈 욕구에서 나온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다시 묻곤 합니다. 그리고 전자라면 물어볼 때도 있고, 후자라 생각이 들면 묻지 않습니다. 묻는다해도 조심스럽죠. 학벌, 학력에 관해서는 다음번 기회에 있을 때 다시 이야기하도록 해야겠습니다. 댓글 몇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주제가 아닌지라 이쯤해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 꼭 기회를 다시 만들어보아요.

Arm 2008-01-31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안녕하세요! ^-^;;
그날 모임에 함께했던 군인 중 한명입니다. ㅎㅎ 제가 제 자신을 군인이라고 소개해야함이 계속 마음 한 구석에 걸리는군요, 장교란 직책이기에 더욱 더. 한 사람의 직장이나 직책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많은 것을 보여준다는 건 사실이죠. 양심적 병역거부에 정말 실존을 건 고민을 하셨던 아프님 그리고 전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 모임을 갖고 오셨다는 서경식 선생님, 조진석 선생님께는 '장교'라는 제가 얼핏 어떻게 비취었을지 계속 좀 걱정이 됐답니다. '어쩔 수 없이 의무복무를 떼우기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선 최대한 민주적으로'라는 핑계를 늘 마음엔 새겨두지만 군대란 조직의 상부계급의 길을 선택한 것은 어쨌거나 '적극적인' 저의 선택이지 않습니까.. 대학교 3학년 후보생 시절부터 늘 품어오던 마음 한구석 찜찜함, 역시나 털어낼 수 없는 나의 짐이란 걸 그날의 모임에서도 느꼈답니다.

아, 앞으로 살아가면서는 또 어떤 '현실적인' 선택과 타협들을 얼마나 쌓아가게 될까요? 100%로 치열한 삶은 못살더라도... 부디 조금이라도 더 치열하고 진솔할 수 있다면 싶은데요.

음, 그나저나 그날 김상봉 선생님, 서경식 선생님의 살아 숨쉬는 모습을 살아 숨쉬며 볼 수 있어서 무척이나 놀라웠답니다!! 게다가 아프님을 비롯한 그 진지하고 내공있는 분들까지! 그런 사람들은 책 속이나 블로그 속에서만 나 홀로만 만날 수 있는, 나와는 거리가 먼 곳에 자리잡은 사람들이라 생각해왔었는데요. 아, 얼마든지 내가 용기내어 손을 내밀면 잡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구나란 기쁜 희망이 피었답니다♬ 김상봉 선생님이 서경식 선생님을 만나면서 발전한 나 자신을 만난 기쁨에대해 말씀하셨는데요, 그날 한 번의 모임으로 제가 더 나아진 저를 만났다고 말씀드리면 과장이고 거짓이겠지만, 더 나아질 저를 만났다고는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아프님께도 개인적으로 감사드리고요. 앞으로도 여러 자극 부탁드립니다. 늘 모자라고 부족하지만, 저도 어디에선간 늘 노력하고 있을게요.

또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겠죠? ^-^

'테트리스'를 빨리 다 깨버리시고, 어여 만족할 자리에 서시길 바랍니다.


마늘빵 2008-02-01 09:15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 저 역시 마음 한구석의 찜찜함 남아있습니다. 정말 힘들게 고민했던 것도 저였고, 결론을 낸 것도 저였으니까요. 대학 졸업 후 '현실적인 타협'과도 싸우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아직까진 이상적이고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들은 지켜내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커서 온전히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더군요.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질수록 비굴해지고 타협적으로 변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제대 하시려면 아직 기간이 좀 남으셨던데 또 만날 기회가 있길 바랍니다.

2008-02-01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01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설득의 논리학 - 말과 글을 단련하는 10가지 논리도구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김용규는 나에겐 '반드시 사야하는 필자' 리스트에 올라 있는 철학자다. 그의 책을 다 본건 아니지만 몇몇 책을 접해본 뒤로 새 책이 나오는 족족 돈 아끼지 않고 구입하고 있고, 그가 쓰는 한겨레 신문 칼럼 또한 빠짐없이 체크하고 있다. 이쯤되면 그의 팬이라고 해도 괜찮을까. 김용규가 통조림 시리즈 네 권을 통해서 윤리학과 인식론을 쉽게 풀어 설명해주었다면 <설득의 논리학>은 '작업'의 대상을 논리학으로 삼은 책이다. 이로써 철학자 김용규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아주 오래된 고전적인 철학부터 최근의 사조까지를 다 다룬다. 그의 책을 읽으며 재미도 느끼고, 최근의 철학까지 접하는 기회를 얻는다.

  이 책의 제목과 기획은 다분히 출판계의 흐름을 탄 것으로 보인다. 글쓰기와 말하기 위주의 실용서적들이 한참 유행했었고, 이 책은 대놓고 실용서를 표방하지 않음과 동시에 '설득'이라는 유행의 흐름을 타고, 동시에 인문학 독자들까지 끌어들이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곧 실용서의 독자들과 인문학의 독자들 어느 누구도 제대로 잡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책은 결과적으로 양자 모두의 지갑을 털었지만, 실용서 독자에겐 실망을, 인문학 독자들에겐 2% 부족한 만족감을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책의 제목인 '설득의 논리학'에서 방점은 '설득'이 아니라 '논리학'에 찍힌다. 설득은 논리학을 말하기 위한, 이용해먹기 위한 눈길끌기 정도의 역할을 담당한다. 사실상 이 책을 읽은 뒤에 누군가를 설득하는 능력이 길러진다고 보긴 힘들고, 곧바로 써먹기에는 포크로 찍어 바로 먹기 좋게 썰어주는 센스가 부족했다. 그리고 요리를 먹기 좋게 꾸미거나 포장하려는 의도는 애초에 없었던거 같다. 철학자 김용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논리학이었다. 단 그것을 재밌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설득의 논리학>은 기존의 논리학 입문서나 논리학 실용서들과는 그 성격이 많이 다르다. 대학 교재로 쓰이는 논리학 서적같이 구체적이고 세세한 이론을 나열해놓고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실용서처럼 쉽고 간편하게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지도 않았다. 논리학에 관한한 온갖 철학자들과 이론이 등장해 다소 정신없기도 하다. 또한 기존에 논리학을 전혀 접해보지 않은 독자가 읽기엔 난해한 기호논리학 기호들이 별다른 설명없이 불필요하게 등장한 것도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책과 영화, 체험으로부터 나온 풍부한 예시와 맛깔난 설명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베이컨, 비트겐슈타인, 파스칼, 쇼펜하우어, 포퍼, 카르납, 퍼스, 한비자 등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논리학에 관한 핵심적인 철학자들을 모두 초대해놓고 간략하게 살펴보며, 그 사이사이에 재밌는 우화와 추리소설, 영화 , 고전 등을 끼워넣는다. 논리학 이론 위주의 책이 아닌 철학의 한 분과인 '논리학'에 몸담았던 철학자들의 "축약된 논리학사"정도로 보면 되겠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에서 배웠던 논리학 입문서에서는 보지 못했던 철학자와 이론도 접할 수 있어 다른 책(포퍼, 로티,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더 찾아보고 싶어졌고, 그간 알고 있던 이론들은 재미난 예시와 설명과 더불어 읽으며 확인하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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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2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런 책 읽기를 겁내는지라, 이렇게 친절한 님의 리뷰로 맛을 봅니다.

뽀송이 2008-01-29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건가요?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알려주는 게 아니란 말씀이죠?
저처럼 논리적이거나, 철학적이지 못한 이들에게는 어떤가요?

마늘빵 2008-01-29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 이런 책 처음이시라면 많이 생소하시겠지만 천천히 읽어나가다보면 재미도 있답니다. 논리학 책 치고는 책장이 쉽게 술술 넘어가더라고요.

뽀송이님 / '설득'보다는 '논리학'입니다. 논리학을 알면 상대를 설득하기도 쉽다, 라는 결론이겠죠. :) 관심있는 분야가 아니시라면 어렵게 느껴질수 있지만 관심이 있다면 재밌을겁니다.

marr 2008-01-29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사회에서 "논리적으로 설득하려 했다간 잘난 척 한다고 한대 맞을 거 한대 더 맞아요." 언젠가 고딩 한 놈이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논술 광풍에 대학에서도 교양필수로 말하기, 글쓰기 수업이 학생들 사고를 교정시키고(?) 있는데, 우리 사는 방식은 여전히 힘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힘센 놈이 이긴다.
"Money is Power!"
하하, 전 옌스 죈트겐이라는 사람이 쓴 "생각발전소"(북로드)가 재미있었어요. 논쟁에서 확실히 이길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현실에서 여러 사례를 가져와 설명하더군요. 이거 고등학교 논술교재로 생각하시만 오산입니다..쩝

마늘빵 2008-01-30 10:09   좋아요 0 | URL
아 그 고등학생이 제대로 보고 있는거네요. :) 저 대학 다닐 때랑은 참 많이 달라졌어요. 졸업한지 오래 된 것도 아닌데 저때는 그런 글쓰기 교양 과목 같은거 하나도 없었는데 부럽기도 합니다. 요새 대학생들이. <생각발전소> 표지가 꽤 재밌었던거 같은데 저도 찜해놨던 책이에요. 추천해주시니 다시 관심이 가는군요. ^^

2008-01-30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30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설득의 논리학 - 말과 글을 단련하는 10가지 논리도구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7월
구판절판


"입구가 좁은 병 속에 팔을 집어넣고 무화과와 호두를 잔뜩 움켜쥔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지 생각해보라. 그 아이는 팔을 다시 빼지 못해서 울게 될 것이다. 이때 사람들은 '과일을 버려라. 그러면 다시 손을 빼게 될 거야.'라고 말한다. 너희의 욕망도 이와 같다." (에픽테토스)-29쪽

시계는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기계라서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볼 수 없고, 어떤 지성적 존재가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생명체는 시계보다 더 복잡하고 정교하기 때문에 더욱 우연히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없으며, 엄청난 지성을 가진 창조자가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엄청난 존재를 우리는 신이라 부른다.(페일리의 '지적설계설' 요약)-30쪽

토론에서도 이 방법은 유용하게 쓰인다. 이른바 'yes-but 화법'이다. 토론을 할 때 상대의 주장을 먼저 부정한 다음 그 이유를 조목조목 밝히는 'no-because 화법'은 좋은 화법이 아니다. 우선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데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독선적이고 비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yes-but 화법'은 상대의 주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어느 정도 동조하지만, 그래도 자기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100쪽

연역법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사실'을 알려주고, 귀납법은 '개연적으로 일어날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데 가추법은 '이미 일어났지만 아직 모르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래서 홈스는 가추법을 '거꾸로 추론해 나가기'라고 불렀고, 퍼스는 '귀환법'이라고 한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이 죽고 A가 사람이면, 'A는 필연적으로 죽는다'는 것을 연역법은 알려준다. 그리고 귀납법은 A,B,C,D......가 죽고 그들이 사람이면, '아마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가추법은 다르다. 사람은 모두 죽는데 A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죽었다면 'A는 아마 사람일 것이다'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렇듯 가추법은 이미 일어난 일을 밝힌다. -147쪽

아리스토텥레스는 <형이상학>에서 "정의는 어떤 것의 전체다"라고 규정했다. A는 B고 동시에 B는 A일 때, 오직 그럴 때만이 'A는 B다'라는 문장이 정의가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동물이다'는 정의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동물이다'는 옳지만 '동물은 인간이다'는 그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는 정의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뿐만 아니라, '이성적 동물은 인간이다'가 옳기 때문이다. -181쪽

타당한 논증이란 '형식적으로' 올바른 논증, 곧 추론의 규칙을 따른 논증을 말한다. 따라서 타당한 논증에서는 전제가 참일 때 결론도 참이 된다. 예를 들어 '비가 오면 땅이 젖는다 비가 왔다. 그러므로 땅이 젖었다.' 라는 논증은 타당하다. 왜냐하면 '전건긍정식'이라고 하는 추론의 규칙을 따랐기 때문이다. -185쪽

건전한 논증이란 '타당하고', '전제들이 모두 참'인 논증을 뜻한다.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도' 올바른 논증이다. 예를 들어 '모든 포유류는 새끼에게 젖을 먹인다. 고래는 포유류다. 그러므로 고래는 새끼에게 젖을 먹인다'라는 논증은 건전하다. 왜냐하면 형식적으로 삼단논법을 따라서 타당할 뿐 아니라, 전제들이 모두 참이기 때문이다. -186쪽

세상의 관심을 끈 것은 논리학의 이런 형식적 발전보다 비트겐슈타인이 <논고>에서 이룬 논리철학적 발전이었다. <논고>의 본래 이름은 <논리-철학적 논고>다. 철학자 러셀이 추천사를 쓰고 윤리학자 조지 무어가 제목을 붙인 영어판 <논리-철학적 논고>가 1922년에 출간되었을 때 전 세계 철학계는 열광했다. 특히 빈 학파의 논리실증주의자들이 그랬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는 법이다. 이유가 있었다.

<논고>에는 논리학적으로 그리고 또 철학적으로 중요한 여러 가지 내용이 들어 있다. 우선 '신은 죽었다'처럼 우리가 경험으로 판단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명제들을 철학에서 간단하게 내쫓아버릴 수 있는 방법이 들어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형이상학적 명제들은 거짓이 아니라 "비의미하다"고 규정했다.(<논고>, 4.003) '의미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당연히 참과 거짓의 대상도 아니다. 그러니 이제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논고>,7)-190쪽

"모든 참된 요소명제들이 주어지면, 세계는 완전히 기술된다. 모든 요소명제들이 주어지고, 그에 덧붙여 그것들 중 어느 것이 참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주어지면, 세계는 그것에 의해 완전히 기술된다."(<논고>,4.26)-195쪽

"그대가 결혼한다면 그대는 그것을 후회하리라. 그대가 결혼하지 않ㅎ는다면 그대는 역시 그것을 후회하리라. 그대는 결혼하든 안 하든, 아무튼 그대는 둘 다 후회하리라. 세상의 어리석은 짓을 보고 웃어보라. 그대는 그것을 후회하리라. 세상의 어리석은 짓을 보고 울어보라. 그대는 역시 그것을 후회하리라. 한 여인을 믿어보라. 그대는 그것을 후회하리라. 한 여인을 믿지 말아보라. 그대는 역시 그것을 후회하리라. 한 여인을 믿든 안 믿든, 아무튼 그대는 둘 다 후회하리라. 목을 매달아보라. 그대는 그것을 후회하리라. 목을 매달지 말아보라. 그대는 역시 그것을 후회하리라. 목을 매달든 안 매달든, 아무튼 그대는 둘 다 후회하리라. 제군이여, 이것이야말로 모든 인생 지혜의 진수다." <키에르케고르, <이것이냐 저것이냐> '망아의 연설')-203쪽

"한 인격은 절대로 한 인격이 아니다. 그의 생각은 그가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바다. 즉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방금 태어난 다른 자아에게 말하고 있는 바다. 누구나 논리적으로 생각할 때 그가 설득하려는 대상은 바로 비판적 자아다."(찰스 샌더스 퍼스)-205쪽

"오직 존재가 있고, 비존재가 없다고 인식하고 말해야만 한다."(파르메니데스)

"듣는 사람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말하는 사람조차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 그것은 철학이다."(볼테르)-278쪽

칸트느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단지 '우리의 정신에 나타난 대상'이라고 했다. 그는 대상 그 자체를 '물자체'라 하고, 우리의 정신이 나타난 대상을 '현상'이라고 불렀다. 칸트는 물자체는 영원히 알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오직 감각기관을 통해 대상에게서 얻은 정보를 우리의 정신이 자신의 선천적인 규칙들에 의해 구성한 현상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칸트의 구성주의 인식론의 핵심이다.

중략

아인슈타인도 칸트처럼 우리의 경험 속에 주어지는 것은 '세계의 본성'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인간 의식의 자료'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것들을 '지적으로 구성'해서 지식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지식은 '실재에 대한 지식'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정신이 지어낸 환상'도 아니다. 우리의 정신이 지어낸 개념(또는 이론)과 실험 및 관찰을 통해 얻은 자료들의 대응에서 얻어진 결과물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말을 "물리학 개념들은 우리의 감각과 대응관계를 유지한다."라고 표현했다. -316-317쪽

"우리는 사유에서와 마찬가지로 문장에서도 대응의 개념을 버려야 하며, 문장들이 존재의 세계와 연결된 것이 아니라 다른 문장들과 연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리처드 로티)-325쪽

로티는 실용주의와 패러다임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여 함께 묶었다. 그 결과 그에게 진리란 단지 '한 사회가 인정하는 유용한 믿음'이다. 그리고 그것에는 '참'과 '거짓'의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유용한 것'과 '덜 유용한 것'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그는 예를 들어 오늘날 우리가 지동설을 믿는 이유는 단지 천문학과 우주여행이 주는 이익이 천동설을 믿는 기독교 근본주의가 주는 이익보다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논문 <상대주의 : 발견하기와 만들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우리의 신념에 관한 질문은 그것이 실재에 관한 것이냐 현상에 관한 것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을 충족하기에 가장 좋은 행동 습관이냐 아니냐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아는 어떤 신념이 '참'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밖의 어떤 대안적 신념도 우리가 아는 한 더 나은 행동 습관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328-329쪽

참석자 질문 : 아이들을 가르칠 경우 '저건 달이고 이건 금성이다'라고 할 때, 우리는 대응이라는 개념을 가정하고 그것을 활용해 가르침으로써 교육도 하고 또 우리들끼리 의사소통도 할 수 있지 않은가?

로티의 대답 : "... 아이들 교육에서 동일한 사물에 동일한 이름을 적용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실재와의 대응이라는 관념과 연관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실재에 대해 일관된 언어를 사용하도록 사회적 실행을 견지한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 ... 우리는 '다른 사람이 모두 그렇게 부르니까 너도 그렇게 불러라' 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329-330쪽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진리와 윤리는 구분되었다. 진리는 가치중립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객관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했을 때 타당한 말이다. 진리가 세계로부터 '발견해내는 객관적인 것'이 아니고, 단지 우리가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라면 그 책임도 전적으로 우리가 져야 한다. 진리는 더 이상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 윤리적이어야 한다. 이것이 가벼워진 진리가 져야 할 무거운 짐이다.-3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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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1-29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리학은 어려워요.
'비트겐슈타인'은 그사람의 행동(behavior)이 마음에 들어
열심히 읽어보았지만 그의 지성은 저에게는 일종의 벽이더군요. 아프락사스님




마늘빵 2008-01-29 10:12   좋아요 0 | URL
비트겐슈타인은 제가 아직 제대로 접하지 못한 철학자랍니다. 학부에서도 다룬 적이 없고, 대학원에서는 윤리학이니 더더욱 다룬 적이 없고. 이 책을 통해 맛을 본건데 관심이 많이 가네요. 작년에 꽤 많이 번역된거 같은데 하나씩 골라서 봐야겠습니다.

비로그인 2008-01-29 10:45   좋아요 0 | URL
오.. 그러셨군요.
비트겐슈타인은 케임브리지에서 러셀과 상호 연구결과를 주고 받았지요.
20세기의 천재들일 것입니다.
초기에는 러셀이 비트겐슈타인을 인정하고 끌어주는 쪽이었지만
나중에는 비트겐슈타인의 연구결과가 러셀을 추월하는 경지에 이른 듯합니다.
 
두려움 없는 글쓰기 - 나는 항상 글을 쓰고 싶다
로제마리 마이어 델 올리보 지음, 박여명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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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터넷 상에서 블로그를 만들어놓고 자신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재밌게 풀어내는 사람들이 주목을 받다보니,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놓고 다른 이들처럼 글 좀 잘 써보고 싶다, 는 작은 소망을 가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별 것 아닌 이야기를 매우 재밌고 유쾌하게 풀어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시선을 한 곳에 멈추고 깊이있는 자기사색을 늘어놓는다. 이 책은 남들이 포스팅 하는 글을 보면서 나는 왜 저렇게 쓰지 못할까, 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겨냥한다. 하지만, 그들의 고민에 적절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나는 글은 곧 사유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일기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에 대해서 이런저런 기술과 방법을 일러주고 있고, 그저 막연한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술'은 형식일 뿐 내용을 담아내지는 못한다. 무엇보다 어떤 글이건 잘 쓰기 위해서는 사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오늘 아침 출근길 미어터지는 지하철에서의 경험, 삼계탕을 못 먹는데 밥 사주는 선배가 삼계탕 먹으러가자고 했던 경험 등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자기 사유를 시작해야 한다. 기술은 그 이후의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ABC 놀이, 콜라주, 시, 아크로스틱, 마인드맵, 클러스터, 자동기술법 등은 결국 자기 사유를 끌어내기 위한 기법과 장치들이라곤 하지만, 기술을 앞세운 '글훈련'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글은 훈련시키려 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도록 해야 한다. 솔직히, 소개된 여러 기법들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고 있는 것들이다. 일단 무엇이든 머리와 마음에 있는 생각들을 종이에 풀어내라. 반복하다보면 스스로 점점 나아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쓰고 못 쓰고는 글쓰기 기술보다는 내가 얼마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가, 더 적나라하게 구체적으로 풀어내는가, 에 달려있다.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보다 내 마음을 풀어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진 않은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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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08-01-27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계탕을 못 먹는데 밥 사주는 선배가 삼계탕을 먹으러 가자고 했던 경험'에 대해 써보세요. 재밌겠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보다 닭을 먹지 못하는 심정에 대해 풀어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진 않은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셔야 하겠지요? ㅋㅋ

마늘빵 2008-01-27 09:46   좋아요 0 | URL
-_- 흐음... 안먹으러갔어요. 다른 핑계대고. 점심 약속이 있다 하고선. 삼계탕을 어떻게 먹어요. 공짜로 사줘도 안먹어요. ㅋㅋㅋ

바람돌이 2008-01-27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에서 사유의 깊이가 묻어나고 그러면서 글 자체도 맛갈지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둘다 안되는 사람은 기술이라도 익혀야 할까요? ㅎㅎ

마늘빵 2008-01-27 09:47   좋아요 0 | URL
다소 주관적인 생각을 피력했습니다. 전혀 아무 것도 안 되고, 막막한 분들은 그나마도 그게 도움이 되겠지요. :) 저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책이 전혀 도움이 안됐고, 한 한 시간만에 읽게 됐어요. 일일히 정독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소제목 보면 무슨 내용인지 아니까 넘어가고 넘어가고 하다보니 어느새 책장을 다 넘겨버렸다는.

프레이야 2008-01-31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려움없는글쓰기,를 택했다는 건 아프님의 두려움을 극복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깔린 건데.. 그부분을 잘 짚어주지 못했나 보군요. 그런데 답은 이미 아프님이
잘 알고 계신 것 같아요.^^

마늘빵 2008-01-31 16:05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이 책을 구입한건 아니고 그냥 누가 줬어요. ^^ 그래서 손에 들어본건데 별로였어요 ^^ 전 별로 두려움은 없어요.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 철학을 내 것으로 만드는 "생각 교과서"!
김민철 지음 / 그린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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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논술 붐이 일면서 - 각 대학들이 논술 폐지를 선언하는 시점이라 과거형인 '한때'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철학을 비롯한 인문/사회과학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더불어 출판사도 열심히 좀 더 쉽게 쓴 청소년용 철학서적들을 내놓으며 이에 부응하기도 했다. 여전히 대중화 작업은 진행 중이지만 인수위의 일방적인 교육 선언이 국민들의 합의없이 그대로 실천된다면 서서히 사그라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논술'을 핑계삼아 나오는 철학서적들 중에 괜찮은 것들이 꽤 많았는데 이런 책을 골라 읽어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대중적인 철학 서적이라면 대략 두 가지 정도로 분류가 된다. 그리스 아테네부터 시작해서 현대 프랑스와 미국, 독일에 이르기까지의 현대 유럽 철학까지를 간단히 소개하고 풀어놓는 철학사 책이 있는가 하면, 이런저런 장르들과 연합하여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텍스트들을 통해 철학적 사고를 이끌어 내는 책들이 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책들이, 어떤 철학사적 지식과는 별개로 자신의 사유를 그대로 풀어놓는 책이다. 일명 철학 에세이인데, 김민철의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라는 책 또한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는, 생각하기 위함이다. 타인의 삶을 꾸준히 모방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추구하는 행복에 이르는 길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의 행복의 길을 걷고자 하기 위함이다. 나와 나의 묻고 답하기는 점차 '나'에서 '사회'로 시선을 넓혀가며 나를 넘어선 주변의 것들, 그리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 지구상의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의문을 제기한다.

  김민철은 철학이란 '따져묻기'라고 말한다. 우리가 살면서 추구해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이고, 그에 따르면 지혜란, "지식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체득하여 그와 관련된 상황이 주어질 때 최선의 판단을 도출해 내는 정신적 능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한 암기를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모든 지식을 그 원리에서부터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거기에는 '따져묻기'가 필수적인 것이다." 현재 어린아이부터 취업준비생을 넘어 승진시험을 보는 이들에 이르기까지 국민 모두가 '많이 외우기'에 몰두하고 있다. 지식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식이 합격과 불합격의 판단의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키워야 할 것은 텍스트(지식)에 대한 자신의 해석(지혜)이다.

  "사실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해석뿐이다." (니체, 권력에의 의지) 이 책은 지식이 아닌 지혜를 추구하고 있는, 사실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해석을 가하는 김민철만의 철학 에세이이다. 그는 이 책 곳곳에서 지식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지식은 주인이 아니다. 이 책의 주가 되는 것은 지식이 아닌 김민철의 해석이다. 그의 해석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는 없으며, 그것은 그가 익히고 배워온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자기해석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철학이 왜 '따져묻기'인지를 알려주고, 지식이 아닌 지혜를 추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본보기이자 표본이라는 점에서 교과서라 칭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에서 접하는 고리타분하고 일방향적인 교과서가 아니라 자기 생각이 주가 되는 '생각 교과서'라는 점에서 '교과서'의 일반적 정의와는 멀리 떨어져있다고 봐야 한다.   

 p.s.  ○○, ○○○하다. 라는 식의 제목은 이제 많이 식상해졌는데 제목을 지을 때 좀 더 신선하게 지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김민철의 철학에세이'라고 하면 이 책에 딱 적절한 제목이겠으나 김민철 이라는 이름을 내세우기엔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생각 교과서'라고 해도 될 것 같지만 '철학'이 빠져버리면 내용과 뭔가 맞지 않고, '철학 교과서'라고 하기엔 너무 고리타분해 보이고 나름 고심해서 나온 결과인지 모르겠다만, 솔직히 제목은 별로 눈길을 끌지 못했다. 요런 좋은 책들은 제목도 같이 확 끌어줘야 한다. 참, 철학적 지식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이 책은 적절한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하는 법, 철학하는 법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 책이 입맛에 잘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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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8-02-11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보에 갔다가 생각나서 구입해서는 읽고 있는 중인데, 정말 쉬우면서도 재미있더군요. 그렇다고 그냥 모양만 흉내낸 건 아니고... 좋은 책인 것 같아요.^^

마늘빵 2008-02-11 09:18   좋아요 0 | URL
:) 어떤 걸 요약하고서 쉽게 풀어 쓴 책이라기보다는 그냥 저자 자신의 생각을 펼쳐놓은 '에세이'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