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 다밋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책을 구입하지 않고 비록 받아보기는 했지만 책에 대한 감상과 평가는 객관적으로 하겠다. 서민. 알라딘 닉네임 마태우스. 그는 의학계의 김두식이다. 김두식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을. 김두식은 한동대 법학과 교수로 <헌법의 풍경>이라는 책의 저자이다. 우리가 잘 모르는 헌법, 다가서기 어려운 헌법, 마냥 무서워보이기만 하고 과거에 우리를 옭아매는 도구로 사용된 법을 그는 매우 단순하고 솔직하고 쉽게 까발렸다. 헌법이라는 딱딱하고 재미없는 소재를 가지고 그렇게 재밌는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경험담 덕택이었다. 서민. 그는 김두식이다. 우리가 잘 모르는 것들, 그리고 흰까운의 권력 앞에 무조건 네네 하고 대답해야했던 우리들에게 그는 솔직하게 까발렸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두렵다. 그가 이 책을 낸 뒤에 의학계에서 구타를 당하지는 않을지. 므흣.

  책의 내용은 매우 훌륭하다. 그런데 단점은 누구나 다 지적했던, 비록 몇 안되지만, 책의 중간 중간에 실린 고놈의 너무나도 날카롭고 꾹꾹 눌러 정성스럽게 그린 삽입그림. 마치 80년대 과학상식책을 보는 듯 했다. 그냥 대충 그리더라도 동화책에 나온 듯한 거칠고 사실감있는 그림이 어땠을까 한다. 저자 서민은 책의 모든 장에서 풍부한 유머감각을 바탕으로 우리들을 웃겨주고 있지만 고놈의 너무나도 모범생적인 그림이 이내 나의 감성을 닫아버린다. 차라리 없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내가 처음으로 접한 법에 관한 책은 <헌법의 풍경>이었고,

  내가 처음으로 접한 의학에 관한 책은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이다.

  의학은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을 것만 같은 영역이었다.  의학은 너무나 딱딱해서 접하면 찔려 피가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의학도 별거 없네 라는 - 무시는 아니고 - 만만한 영역으로 다가왔다. 니들이 의학을 알어? 응 알어. 라고 이제 대답할 수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여러가지 의학적 상식들, 그리고 그렇게 믿었던 것들이 이제 벌거벗은 채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니 도대체 헬리코박터는 언제 나와? 라고 속으로 궁금해하면서 책장을 넘겼는데, 결국 주인공은 나중에 나왔다. 역시 주인공이다. 원래 주인공 처음에 나오면 시시해서 재미없다. 헬리코박터 안녕? 근데 난 헬리코박터는 기억안나고 중간중간의 재미난 까발림이 더 생생하다. 넌 역시 미끼였어. 헬리코박터.

  책은 크게 '환자가 알면 좋은 것들' 과 '음지의 질환들' '바른생활을 하자' 의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져있다. 첫째부분은 병원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들을 경험을 통해 도와주고 있다. 나는 손과 발에 땀이 많이 나서 - 물론 다른데도 마찬가지고 - 큰 병원에 가서 이걸 어디서 검사받아야 할까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다한증 수술을 받고 손에는 땀이 덜나는 상태인데 그때엔 어느 과에 문의를 해야할지 몰랐다. 결국 내 생각과는 달리 흉부외과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이건 땀이 문제이긴 했지만 수술을 하는 부위가 가슴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누가 그렇게 생각하랴. 당연히 피부에서 땀이 나니깐 피부과인줄 알았지. 피부과로 접수했으면 진료비 날릴 뻔했다. 이런 아주 사소한 어려움들. 몰라서 겪게 되는 것들을 그는 첫 카테고리에서 다뤄주고 있다.

 두번째는 음지의 질환들. 우울증, 수면장애, 말더듬, 소아애증, 독감, 탈모, 투석, 냄새, 변비, 설사 등의 에이 더러워 할만한 증상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사실 생명에 지장이 있는건 아니지만 사는데 불편한 것들이다. 그리고 최근엔 어디 아프지 않아도 이런 것들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대인관계에서의 원만함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고치려 노력하고 있다.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해봤을 때 나는 말더듬이 있는 거 같다. 난 말빨이 없다. 근데 사실 어느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고 말은 해야겠고 그럴 때 난 말을 더듬게 된다. 이건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느낀 증상이다.

  세번째 카테고리에서는 구더기, 아동학대, 채식과 육식, 포경수술, 정력제, 콘돔, 제왕절개 등에 대한 역시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지만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 앎의 깨달음을 준다. 난 포경수술을 안했다. 어릴 땐 무서워서 안했고, 커서는 필요없어서 안했다. 어릴 때 엄마는 그랬다. 동네 아이들 다 포경할 때 난 안하니깐 나보고 "그럼 장가 못간다 너" 그랬다. 솔직히 장가가고 싶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안하면 정말 못갈까봐. 그런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시간이 점차 흘렀고 몇살을 더 먹었을 때 난 알았다. 그게 장가랑 상관이 없다는 걸. 그리고 일부 학자들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과도하게 실시하고 있는 수술이라고 해서 안해도 되는 것으로 알았고, 지금 사는데 아무 지장 없다. 사실 나야 그게 섹스를 하는데 더 쾌감을 주는지 안주는지는 모른다. 역시 나아가 콘돔 부분과 또 관련이 되는데 흠 역시 잘 모른다. 섹스에 도통(?)한 자들은 알까? 글쎄 그렇더라도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 않을까. 객관적으로 통계를 내긴 뭣한 거 같다.

  저자 서민은 이 모든 일상적이고 우리의 관심을 이끄는 주제들을 풀어낼 때 마다 그의 어릴적부터의 온갖 경험들을 다 끄집어내어 해설해주는 통에 책을 다 읽은 뒤에 남는 것은 여기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에 대한 상식과 나머지 하나는 저자 서민의 개인사다. 이건 일종의 의학대중서도 되지만 저자 서민의 자서전도 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지 않았고, 오히려 적나라하게 다 보여줌으로써 여기 적힌 그의 글들을 독자로 하여금 믿고 따를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믿음은 화자의 솔직함에서 비롯된다.

  사실 난 개인적으로 저자를 알지 못했다면 이 책을 사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누가 줬다 해도 대충 봤을 것이다. 난 그를 알고 있고, 그라면 내가 시간을 들여 이 책을 꼼꼼히 읽어도 될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난 그를 믿고 책을 봤고 매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꽤 두꺼운 책이건만 난 이 책을 손에서 놓질 않았다. 잘때빼고는. 그만큼 재미있었다는 말씀.   나아가 난 그의 나머지 책들도 읽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를 알고 싶어서.

 

***

에 별하나 부족의 결론은, 편집. 인용문구와 저자의 해설이 구분이 안된다. 분명 인용구를 읽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읽다보니 저자의 해설이다. 이런건 출판사에서 조금 더 봐줬으면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인데 넘 성의가 없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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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08-17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 재밌어요.

돌바람 2005-08-17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학대중서도 되지만 저자 서민의 자서전도 된다...적나라하게 다 보여줌으로써 여기 적힌 그의 글들을 독자로 하여금 믿고 따를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는 말씀에 동감. 그래서 믿음이 갔던 거였구나, 아하, 그거였네요.^^

마늘빵 2005-08-17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바람님 / ^^

2005-08-17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히히히히 하면 딱이다 싶은 포스터. "나를 가져봐" 라고 말한다면, '쪼아' 라고 대답할래. 영화 <가발>의 주연은 채민서다. 그동안 특별히 주목하거나 좋아했던 배우는 아니지만, '괜찮다'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출연한 작품이 그다지 많지 않은 관계로 좋아할만한 꺼리가 없었다. 근데 이번 영화도 그닥 그녀를 부각시켜줄만한 영화는 아니다.

 최근 <마다가스카> <로봇> <판타스틱> 요런 영화 - 요런 영화라 함은, 주로 어린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이거나 아님 내가 비디오로도 별로 보고 싶어하지 않는 영화 - 를 제외하고는 영화란 영화는 죄다 본 탓에 극장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별로 없었고, <박수칠 때 떠나라> 와 <가발> 오로지 두 개 뿐이었다. 내심 <박수>를 보고 싶었지만, 함께 영화를 본 이들의 <박수>에 대한 거부로 결국 <가발>을 택. 하지만 <가발>도 괜찮을거 같았다. 결과는 그다지...

  채민서, 유선, 문수 라는 주연배우, 원신연이라는 감독, 김준성이라는 음악감독 모두  신인이다. 따지고 들면 신인이랄 수는 없지만 일단 충무로 영화판에서는 신인이나 마찬가지인 이들이다. 원신연의 이름이 생소해서 검색해봤다. 그간 단편영화제에서 상은 많이 탔다. 김준성은 이번에 처음 영화음악을 맡았나보다. 채민서와 유선은 조금씩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민 배우들이고, 문수는 처음이다. 이 영화는 오히려 얼굴이 잘 알려진 값비싼 스타급 배우들보다 신인들이 맡는 것이 더 어울렸겠다는 생각이다.



* 채민서가 이 영화를 위해 머리를 빡빡 밀었다고 했더라. 희생한 만큼 보람도 있어야할텐데. 두상이 이뻐서 빡빡 깎았지만 그녀는 아름답다.

  감독 원신연은 <가발>이라는 영화를 통해 잔잔한 일상속에서 공포감을 조성한다. 사실 공포영화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봐도 무방할만큼 공포감을 조성하는 장면이 거의 없다. 기존의 공포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섬뜩함이나 오짝함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이나 이윤기 감독의 <여자 정혜>와 같이 일상의 모습을 느리게 터치하는 영화들과 더 어울린다.

  암에 걸린 동생 수현을 위해 퇴원선물로 가발을 준비한 지현. 기운이 없던 수현이 가발을 쓰자 갑자기 생기가 돌고, 전혀 아프지 않은 것처럼 변한다. 가끔씩 헛것을 보는 것 같고, 성격도 이상해졌다. 헤어지기로 한 지현의 애인 기석을 바라보는 눈빛 또한 심상치 않다. 이 가발은 죽은 남자의 긴 머리로 만든 것. 그 남자는 기석이 과거에 가르쳤던 고등학교 남학생이었고, 그 둘은 한때 사랑했었다. 그리고 그 학생은 어느날 자살했고, 머리칼은 가발로 쓰여졌던 것. 이 가발이 저주를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설정이 좀 어설프고 재미없기는 하다. 나중에 가발의 원한을 풀어가는 과정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식상한 느낌이다. 일상의 모습을 느리게 터치하려다가 공포영화만의 오싹오싹 공포체험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고, 그렇다고 잔잔하게 감동을 주는 영화도 아닌지라 아무것도 잡지 못한 느낌이다. 생각보다는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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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8-16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히히히히

마늘빵 2005-08-16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이게 머에요??? 살벌해라...

라주미힌 2005-08-17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어디서 저런걸 줏어왔데요 ^^;;;;;;;;;;;;;;;;;;;;;;;;

플라시보 2005-08-17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되게 무서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그다지 무섭지 않나봐요.

마늘빵 2005-08-17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 그러게요. 만두님은 저런걸 다 보관하고 계시나봐요? ^^
플라시보님 / 별로 안무섭더라구요. 몇군데 깜짝 놀라게 하는 데 빼고는. ^^ 그냥 일상적이고, 잔잔하고, 서정적이고, 나중엔 넘 어거지로 사건을 풀려한 것도 있는듯.

마태우스 2005-08-17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가발, 보기도 싫고 쓰기도 싫은 것....

부리 2005-08-17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의 댓글 참 멋지네요. 보기도 싫고 쓰기도 싫다... 음하하하핫. 재치가 돋보입니다.

마태우스 2005-08-17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아래 댓글 다신 분, 참 넉넉한 마음을 가지신 것 같아요. 초절정 유머를 이해하신 것도 대단하지만, 그걸 인정하면서 제게 존경을 표하는 그런 점이 감동적이어요

부리 2005-08-17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마태님. 그런 말씀 부끄러워요. 우리 본격적으로 한번 사귀어 볼래요?

마늘빵 2005-08-17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핫... ㅡㅡa 에 마태님 부리님 여기서 연애하시는거에요? 그런거에요?! 축하드립니다. 드뎌 마태님에게도. ㅋㅋㅋ 아니 그럼 오즈마님은 어캐되는거죠?
 
선생님은 정말 괴로워 한마당 이야기 숲 5
실비 소스 지음, 심재중 옮김 / 한마당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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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동화읽기 제6탄.  선생님은 정말 괴로워? 정말 괴롭다. 훌쩍. 난 아마도 초등학교 선생님을 했다면 머리가 돌아버렸을지도 모른다. 아 그 다양하고 개성만땅 넘치는 아이들을 어찌 다룬단 말이냐. 한둘도 아니고 여럿이서 시끌벅적 시끌벅적 투덜투덜 저기선 퍽퍽 난 초등학생이 싫진 않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은 못할 것이다. 내가 중등교원의 길을 걷고 있는건 정말 다행이다. 그래도 중1은 중딩같지 않고 초딩같아서 따로 구분지어놔야한다.

  나는 선생님이다.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는게 재밌을 때도 있지만 괴로울 때도 있다. 정말 몇몇 특별한 아이들 때문에 괴롭다.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아직 경험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그 특별한 아이들을 위한.

  동화 <선생님은 정말 괴로워>에는 다양한 아이들이 등장한다. 코랑탱, 돼지갈비, 주먹코, 장장 등 이 아이들은 각기 개성있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갖가지 사고를 치는 이들 모두를 대상으로 관리/감독(?), 보호/통제를 해야하는 단 한명의 선생님, 그는 괴롭다.

  이 동화는 전체 아이들을 관리해야 하는 선생님과 아이들간의, 그리고 개성있는 아이들 각각 서로간의 입장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동화를 읽으며 이런 관점을 아이들이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읽고 난 뒤에 누군가가 잡아주면서 함께 이야기해본다면 아이들도 자신이 읽은 동화를 통해 흥에겨워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내가 사교육기관에서 하고 있는 역할이다. 일단 잘하는지는 제쳐두고.

 



 책 속의 그림은 매우 간단하게 대충대충 그린 듯 하지만 상황에 걸맞는 캐릭터들의 표정을 제대로 사실적으로 잡았다. 오히려 깔끔하게 꾹꾹 눌러 그린 그림보다는 이런 막그린 그림인듯 하지만 사실적이고 생생한 그림이 아이들한텐 더 와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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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시골의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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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카프카. 하지만 내가 그를 접한 것은 지금에와서다. 그의 이름을 들었을 적이 고등학교 때였음에 비한다면 늦어도 한참 늦은 것이다. 대개 실존주의 문학가의 계열에 이름을 올리는 그는 알베르 까뮈, 사르트르 등과 함께 우울한 작가로 알려져있다. 그리고 실제 그의 소설 <변신>을 읽고 난 뒤의 느낌도 '우울허다' 이다. 그의 삶도 우울했고, 정신도 우울했고, 글도 우울했다.

   언젠가부터라고 할 것 없이 티비 뉴스에, 아침 신문에, 함께 살던 가족을 죽이거나 유기하는 사례는 지겹게 보아왔다. 며칠전에는 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재산이 약 60억가량 있는 할머니의 두 딸과 아들이 서로 치고박고 하는 통에 할머니가 비관자살한 기사를 볼 수 있었다. 건실하게 잘 큰 자녀들이 이제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 다투고 있는 꼴이 못마땅했고 자기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처음엔 여타 자살과 같은 사례인줄 알았는데 경찰이 조사를 하다보니 이 할머니 재산이 60억인지라 타살의 가능성을 점쳐보고 조사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자살은 맞는데 못난 자녀들의 다툼때문이라고 하니 우울허다. IMF 이후로 가장의 실직이 눈에 두드러지고 빚더미에 앉은 가족 전체가 함께 자살하거나 아빠가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들도 꽤 있었다. 장인 장모와 말다툼을 하다 그들을 살해한 사위의 이야기도 있었다. 종류도 가지가지고 셀 수도 없다.

   그레고르는 <변신>에서 벌레로의 변신을 통해 가족과 자신의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이런 시도는 그가 지금껏 알고 있지 못한 것들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에 알지 못했던 것들을.

   어느날 아침, 영업사원인 그레고르 잠자는 거대한 벌레로 변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일어나려고 하지만 넓고 딱딱한 등짝때문에 바둥바둥 거릴뿐 옆으로 움직일 수도 없다. 다리를 움직여봤지만 웬 짧고 가느다란 벌레 다리가 꿈틀할 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그레고르는 회사에 가려고 애쓴다. 내가 회사에 제시간에 가지 못하면 분명 사장은 날 자르려고 할꺼야. 그래 그놈이라면 충분해. 난 우리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어서 일어나서 회사로 가야해. 자신의 몸이 벌레로 변한 상황에서조차 그는 오로지 회사 생각 뿐이다. 꿈틀거리며 기어서라고 나는 회사에 기필코 가야한다. 반드시 정상출근해 열심히 일한다음 벌어오는 돈으로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한다. 가족들만이 나를 지켜줄 수 있어.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회사에 지각한 나를 추궁하기 위해 지배인이 왔고, 그가 나를 처음 봤다. 그는 놀래 도망갔고, 아버지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어머니는 놀래 식탁위로 올라가고, 동생도 놀라긴 마찬가지. 헉! 에그머니나! 이게 머래?! 벌레로 변신한 나를 반겨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내 방구석에 처박혀서 동생이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으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아빠, 엄마는 이런 동생을 대단하게 여긴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생은 하찮은 존재였는데. 그러나 먹을 것을 주는 것도 잠시. 이내 나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내가 회사에 나가지 못하자 아빠는 은행 경비(?)로 취직을 했고, 엄마는 바느질을, 동생은 상점 점원으로 취직했다. 오로지 나만이 가족을 부양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기존의 사고가 깨어지는 순간! 이런! 회사에 출근하지 못하는 나 때문에 궁핍해지리라 예상했건만 오히려 가족들은 더욱 활기찬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결국 동생의 주도하에 나는 굶고 말라 비틀어져 죽어버리고 말았다. 가족은 모두 결근계를 작성하고 여행을 떠났다. 룰루. 랄라.

   카프카에게 있어서 벌레되기란 어떤 의미인가? 이는 우리가 집에서 키우는 개나 아니면 우리와 생김새가 비슷한 원숭이, 침팬지로 변신하는 것과는 전혀 의미가 다르다. 흔히 벌레라고 하면 손으로 꾹꾹 눌러 죽여야 할 존재, 에프킬라 맛좀 봐야할 존재, 징그럽고 더러운 존재, 있어서는 안될 존재로 여겨진다. 나는 겁이 많아 벌레를 잘 못죽이나 대개의 사람들은 벌레의 죽음 앞에서 숙연함이나 불쌍함을 느끼지는 않는 듯 하다.

   하지만 카프카에게 있어서 벌레란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모습으로는 뚫기 어려운 벽의 비상구를 찾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내가 원한 것은 자유가 아니라 출구였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처한 나를 구원해줄 출구.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신한 것은 어쩌면 가족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가족모두의 인생을 등에 짊어지고 가야할 내가 압박감에 못이겨 비상구를 찾고 싶어했던 것이고, 그것이 벌레란 존재로 드러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가족으로부터 소외를 당한 경험이 있는가? 나는 사실 없다. 그런 것을 느낀 적도 없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항상 느끼고 있을 것이다. 어머니와 동생은 아버지를 싫어한다. 그나마 나만이 아버지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다. 아버지는 지금 따로 나가서 계신다. 별거는 아니다. 그냥 이놈의 집구석이 갑갑할 뿐이다. 어디에 계신지도 모른다. 묻지 않았으니까. 아버지가 돈을 잘은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벌어오실 때에는 그나마 나았다. 하지만 퇴직하고 퇴직금으로 주식해서 날리고, 재산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이제 남은 것 하나 없는 이 시점에서 아버지는 소외당했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다. 비단 우리집의 문제만은 아닐 터이다. 대개의 가정들에서 아버지는 돈을 벌어오는 존재이고, 돈을 버는 기계로 취급당하기도 한다. 돈을 벌지 못하면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이용당하고 소모당하는 것이다. 그리곤 버려진다. 소외된다.

   카프카의 그레고르는 가장은 아니었지만 실질적으로 돈을 벌어오는 가족의 중책을 맡았다는 점에서 우리네 가족의 가장와 다를바 없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이용당했고, 가족주의의 환상에 빠졌었으며, 쓸모가 다 한 뒤에 버림받았다. 카프카의 <변신>은 우리네 가족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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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5-08-16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쓸모가 다한뒤에 버림받는다.. 아마도 비단 가장만 그런건 아니겠죠. 추천 한 방 꾸욱~ ^^;

마늘빵 2005-08-16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모든 것이 쓸모를 다 한 뒤엔 버림받겠죠. 서글픈 현실. 죽을때까지 쓸모있는 자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해야겠군.

마늘빵 2005-08-16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그래요? 어디 출판사래요? 흠.. 여긴 그림은 없는데. 전 일단 고전은 민음사를 믿어서 여기걸로 샀죠. 근데 다른 서평들 보니 민음사 변신 번역자에 대해 불평하는 글들이 많더라구요. 흠.

perky 2005-08-17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 전공자답게 글을 너무 잘 쓰셨어요. 깊이 생각하게 만드네요. ^^

히피드림~ 2005-08-17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위에 차우차우님 말씀처럼 깊이 생각하게 하네요.
변신은 대학때 읽다 포기한 책인데 언젠가 꼭 다시 도전해 봐야겠네요.^^

마늘빵 2005-08-17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우차우님 / 그리 말씀하실 정도는 아닌데. 부끄.
펑크님 / 넹 소설이 짧긴하지만 전체적으로 우울해서 읽다 포기하게 만들만도 해요. 저도 사르트르의 '구토' 이거 아직도 다 안읽었어요. 고등학교 때 산건데.
 
장마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7
윤흥길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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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

  소설을 마무리짓는 이 줄은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 을 마무리짓는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하는 대사만큼이나 그간의 이 집안의 고통을 깔끔하게 끝내준다. 마무리 한마디에서 느끼는 그 쾌감.

   소설 <장마>는 내가 고등학교 다닐 적에는 책에서 볼 수 없었지만 요즘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국어책에 수록되어 있는 모양이다. 내게는 윤홍길이라는 작가도 생소하고, <장마>라는 소설도 생소하다.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근현대소설들이야 널렸지만 그 상황을 이용하여 가슴 속에 뭉클한 뭔가를 전해주는 소설들은 많지 않다. 물론 독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각각 읽기 마련이지만.

   사실 작가는 <장마>라는 소설을 통해서 가족 내에서의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해소를 다루려고 했던 것 같지만, 나는 이데올로기 문제보다 가족의 문제에 더 관심이 간다. 가족내에서의 극단과 극단의 대립. 그리고 그 안에서의 갈등. 이것이 해소되어가는 과정.

   소설 속 화자인 동만이는 집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모른다. 낯선 아저씨가 다가와 " 너 이거 먹고 싶지?" 라고 유혹하지만, 동만이는 낯선아저씨의 손길을 한번, 두번 뿌리친다. 그때마다 아저씨의 손에 잡혀있던 맛있게 생긴 쪼꼬렛은 땅으로 떨어져 아저씨의 발에 짖이겨지고, 흙으로 범벅된다. 하나, 둘 떨어진다. 마지막 셋. 동만이는 끝내 유혹을 이겨내지못하고 삼촌의 소재지를 알려준다. 덕분에 아버지와 삼촌은 호되게 당하고 돌아오고, 할머니는 쪼꼬렛 하나에 삼촌과 아버지를 팔아넘겼다며 저주를 퍼붓는다. 치.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하지만 의도하지 않게 쪼꼬렛 하나로 나는 아버지와 삼촌에게 폐를 끼쳤고, 그에 대한 죄책감도 가지고 있다. 할머니는 무섭다. 두렵다. 그리고 싫다.

   세차게 퍼붓던 어느날, 이러한 장마 통 속에 누가 빗길을 거닐까 싶다만 동네구장이 찾아와 뭘 건네고 간다. 전.사.통.지.서. 끝내 죽었구나. 죽었구나. 세찬 빗줄기 소리에 울음소리는 파묻힌다. 어느날 구렁이가 나타나고, 제사를 지내 돌려보내고,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화해한다. 그리고 지루한 장마는 끝이났다.

   장마는 실감나는 방언으로 뒤덮혀 읽기가 수월하지만은 않다. 평소 말하던 그것과는 한참 다른 어휘들이 등장하고 말투도 생소해서 꼼꼼히 읽자면 금방금방 읽어내려가기는 어렵지만 그 방언의 맛이 참 구수하다. 고놈의 사투리가 지리하게 퍼붓는 빗줄기와 어우러져 소설을 맛깔나게 한다.

   소설이 아닌 이 책 <장마>속에는 '장마'이외에도 윤홍길의 다른 소설들이 섞여있다. 처음에는 윤홍길도 몰랐고, 장마도 몰랐기에 다 이어져있는 소설인지 알았는데, 읽다보니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고, 다른 이야기가 펼쳐져서 뒤늦게야 눈치를 챘다. 이런 멍한. 개인적으로는 두번째 이어지는 양(羊) 이라는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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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 2005-08-16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장마 최고의 소설 중 하나죠. 언젠가 윤흥길의 '아홉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를 지하철에서 읽다가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웃다가 울다가.. 윤흥길의 문장에는 그런 매력이 있는 거 같아요. ^^

마늘빵 2005-08-16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왜 그런 감동이 안오죠. 그래서 별을 낮췄어요. 네개 할까하다가. 감동이 없어서. 메말랐나봐요. 아님 읽는 상황이 적절하지 못했거나.

코마개 2005-08-17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장마. 이게 무슨 소설이었지 고민하다 님의 줄거리 보고 알았습니다. 이게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거든요. 애들 가르치면서 읽는 통에 문학적 매력은 고사하고 쓸데 없는 것들만 잔뜩 기억 납니다. 역시 국어책은 잼있는 소설을 잼없게 하는 재주가 있어...

마늘빵 2005-08-17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강쥐님 국어샘이세욤?? 저도 이게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온단 말은 어디서 주워들어서 알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