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히히히히 하면 딱이다 싶은 포스터. "나를 가져봐" 라고 말한다면, '쪼아' 라고 대답할래. 영화 <가발>의 주연은 채민서다. 그동안 특별히 주목하거나 좋아했던 배우는 아니지만, '괜찮다'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출연한 작품이 그다지 많지 않은 관계로 좋아할만한 꺼리가 없었다. 근데 이번 영화도 그닥 그녀를 부각시켜줄만한 영화는 아니다.
최근 <마다가스카> <로봇> <판타스틱> 요런 영화 - 요런 영화라 함은, 주로 어린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이거나 아님 내가 비디오로도 별로 보고 싶어하지 않는 영화 - 를 제외하고는 영화란 영화는 죄다 본 탓에 극장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별로 없었고, <박수칠 때 떠나라> 와 <가발> 오로지 두 개 뿐이었다. 내심 <박수>를 보고 싶었지만, 함께 영화를 본 이들의 <박수>에 대한 거부로 결국 <가발>을 택. 하지만 <가발>도 괜찮을거 같았다. 결과는 그다지...
채민서, 유선, 문수 라는 주연배우, 원신연이라는 감독, 김준성이라는 음악감독 모두 신인이다. 따지고 들면 신인이랄 수는 없지만 일단 충무로 영화판에서는 신인이나 마찬가지인 이들이다. 원신연의 이름이 생소해서 검색해봤다. 그간 단편영화제에서 상은 많이 탔다. 김준성은 이번에 처음 영화음악을 맡았나보다. 채민서와 유선은 조금씩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민 배우들이고, 문수는 처음이다. 이 영화는 오히려 얼굴이 잘 알려진 값비싼 스타급 배우들보다 신인들이 맡는 것이 더 어울렸겠다는 생각이다.

* 채민서가 이 영화를 위해 머리를 빡빡 밀었다고 했더라. 희생한 만큼 보람도 있어야할텐데. 두상이 이뻐서 빡빡 깎았지만 그녀는 아름답다.
감독 원신연은 <가발>이라는 영화를 통해 잔잔한 일상속에서 공포감을 조성한다. 사실 공포영화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봐도 무방할만큼 공포감을 조성하는 장면이 거의 없다. 기존의 공포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섬뜩함이나 오짝함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이나 이윤기 감독의 <여자 정혜>와 같이 일상의 모습을 느리게 터치하는 영화들과 더 어울린다.
암에 걸린 동생 수현을 위해 퇴원선물로 가발을 준비한 지현. 기운이 없던 수현이 가발을 쓰자 갑자기 생기가 돌고, 전혀 아프지 않은 것처럼 변한다. 가끔씩 헛것을 보는 것 같고, 성격도 이상해졌다. 헤어지기로 한 지현의 애인 기석을 바라보는 눈빛 또한 심상치 않다. 이 가발은 죽은 남자의 긴 머리로 만든 것. 그 남자는 기석이 과거에 가르쳤던 고등학교 남학생이었고, 그 둘은 한때 사랑했었다. 그리고 그 학생은 어느날 자살했고, 머리칼은 가발로 쓰여졌던 것. 이 가발이 저주를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설정이 좀 어설프고 재미없기는 하다. 나중에 가발의 원한을 풀어가는 과정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식상한 느낌이다. 일상의 모습을 느리게 터치하려다가 공포영화만의 오싹오싹 공포체험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고, 그렇다고 잔잔하게 감동을 주는 영화도 아닌지라 아무것도 잡지 못한 느낌이다. 생각보다는 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