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 56분 이후에 불을 끄지마세요."
 
  정말 웃겼다. 동네 주민 붙잡고, 또는 아파트 현관문 딩동 누르고 나온 집주인에게 대뜸 저렇게 말을 하는 한 여자. 미친거 아니야, 라는 반응이 당연하다. 누군가 지금 당장 우리집 현관문을 딩동 누르고 밤 9시 56분 이후에 불을 끄지마세요, 라고 한다면, 당연히 미친여자로 간주할  수 밖에. 혹 얼굴이 이쁘면 몰라 =333 그러고 보니 고소영 정도면 이쁘지. 믿어줄까? 알았어요 불 안끌게요.

  강풀의 만화 <아파트>를 토대로 만든 공포영화다. 지금까지 어떤 공포영화도 만화를 원작으로 하진 않았다. 만화가 공포영화가 될 수 있다니. 강풀이라는 만화가는 들어봤지만, 워낙 만화를 안보는 인간이라 당연히 그런 만화가 있는줄은 몰랐다. 뒷조사 결과 "2003년부터 인터넷 미디어 다음에 연재하며 네티즌들에게 큰 반향을 얻은 바" 있다고 하니 그렇구나 고개 끄덕일 밖에. 어쨌든 만화가 공포영화로 둔갑한데 대해선 놀라울 따름. 원작 만화엔 주인공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고 한다. 그것도 약간은 어리버리한. 왠지 만화가 좀더 코믹하면서 재밌고 스릴있을 듯 하다.  

  영화에서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지 않고 여자를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첫번째 드는 의문. 별 고민 없이 생각해봤을 때, 공포영화에서 있어선 남자보다 여자가 좀더 무섭다. 긴장감을 준다. 그 여자가 느낄 공포, 혹은 이 여자가 평범한 사람이 아닐거라는 의심. 귀신을 떠올렸을 때 남자보다 여자를 떠올리는 데에서 비롯된 캐스팅이 아닐까 생각. 어흥 보다는 으흐흐 가 낫지 않나.



* 고소영. 정말 오랫만에 스크린에 얼굴을 비췄다.

  그러나 고소영을 캐스팅한 것이 잘 한 짓인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의문. 영화 속 고소영의 캐릭터는 사실 밋밋했다. 원작 만화가 어땠고, 감독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별다른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사실 고소영이 나온 영화는 대개 그랬다. 드라마에서 한번 반짝 뜨고는 이후 몇몇 작품들에 계속 출연해왔지만 연기력이 나아진 것 같지도 않고,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려고 한 것 같지도 않다. 나이는 이제 30대 중반을 넘어섰을텐데 데뷔한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정체되어있는건 뭔가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매너리즘?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밥벌어먹고 살 수 있어. 나 씨에프에 출연하면 된다고. 이런건가. 지나친 비판은 여기서 그만. 이 글 보면 울지도 모르잖아.

  영화는 그럭저럭 무난하다. 감독은 안병기. 그는 2000년 <가위>라는 영화로 데뷔하여, 2년 간격을 두고 <폰> <분신사바>를 내놨고, 올해 <아파트>를 내놓았다. 그의 작품이 이렇게 네개가 전부인데, 모두 공포영화다. 그는 자신을 공포영화 전문감독으로 밀고 나갈 생각인 듯 하다. 좋아 그런 자세. 그러다보면 정말 탁월한 작품 하나 나오겠지. 내가 특출난 재능이 있는 천재가 아니고서야 한 가지 분야로, 해서 좀더 나은 분야로 나를 밀고 나가는 것이 가능성있는 선택이다. 재능이 없으면 노력으로라도. 그렇다고 안병기 감독이 여기에 해당한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는 나름 영화판에서 전략을 잘 짜고 있다는 생각. 
 
***



* 아 이런 분위기 원츄. 어두운 빨간 드레스에 뭔가 무게있어 보이는 저 화장발. 그리고 긴 생머리.
   신비주의 컨셉. 뭔가 있어 보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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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7-13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거 재밌나봐요?? 제껴놨었는데...

마늘빵 2006-07-13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다기보다는 음, 괜찮았어요. ^^

비로그인 2006-07-13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껏 고소영이 나온 영화들을 저는 전부 다 무척 재미없게 본지라 이 작품도 아무 생각없이 제꼈더랬습니다만....고소영과는 별개로 두번째 사진의 이미지 정말 한때 원츄했더랬습니다. 흐흐흐..
아참, 지인이 한반도 시사회를 어제 다녀와서는 `한국 영화가 십 년은 퇴보한 걸 보는 기분이다'라고 하더군요. 보지 않았지만 혹시 보실 생각이라면 조금은 말리고 싶습니다.

마늘빵 2006-07-13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한반도 저도 그런 이야기 듣고 안 볼 생각입니다. 로스트 인 스페이스 같은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두번째 이미지 차림을 좋아하셨나요? 아 저런 차림 원츄입니다.

전호인 2006-07-13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스터 그림이 넘 무섭다.
고소영에게 저런 면이........
아 ~~~ 과거에 구미호에도 나왔던가????(아리송?)

moonnight 2006-07-13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그런대로 재미있게 봤어요. 근데 지금은 고소영. 예전보다 더 예뻐졌네. 하며 신기해했던 기억만 나는군요. 흐흐 ^^;

미미달 2006-07-13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신 나올 때 사람들이 막 웃었다고 들었는데....

마늘빵 2006-07-13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호인님 / 네 고소영 구미호에 나오지 않았었나요? 그런거 같은데...
문나잇님 / 나이답지 않게 이쁜건 사실이에요 인정. ^^
미미달 / 음, 난 맨위에 적은 저 멘트할 때가 웃기던데, 다운으로 본지라 뭐 딴 사람들이 어떤지는 모르겠구.

비연 2006-07-14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소영 나오는 영화는 안 본다는...연기가 넘 딸려서리...ㅠㅠ
 

 

 

 

 

 

 DVD <장미의 이름>은 잘 알다시피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토대로 만든 작품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었을 때의 느낌과 영화를 봤을 때의 느낌은 엄연히 다르다. 영화는 소설을 따라가지 못한다. 따라가지 못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의 텍스트로서 완결된 소설 <장미의 이름>과 별도로 영화 <장미의 이름>은 꽤나 흥미진진한 추리/스릴러 영화다. 얼마전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코드>가 영화화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보다 영화 <장미의 이름>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다.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들 때 주의할 점은 '흥미'다. 글자를 읽어가며 머리 속에서 독자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야기와는 달리 영화는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을 모든 관객에게 똑같은 영상으로 부여해준다. 글자가 눈으로 들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처음부터 영상이 눈으로 들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확실히 다르다. 전자가 글을 읽는 독자의 상상력의 산물이라 한다면, 후자는 그저 관객의 받아들임에 불과하다. 책을 찾아 읽는 독자들은 충분히 책이 내게 안겨주는 그 무게감을 감수할 의지가 있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은 편안하게 즐기길 원한다. 따라서 아무래도 원작 소설이 가지고 있는 흥미를 위주로 만들어나갈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추리 소설이었다면, 끊임없이 긴장감을 조성하고, 관객의 머리에 의문점을 안겨주고, 때로는 반전을 일으키기도 하고, 영화에서 빠지면 재미 없는 러브신 등 갖가지 양념을 집어넣고 버무려 맛있는 음식을 테이블에 제공해주어야 한다.

  아무래도 그러다보니 영화 <장미의 이름>은 소설 <장미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어떤 지적인 측면들이 많이 무시되었다. 중세 수도원의 역사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윌리엄 수도사의 이야기나, 또 윌리엄 수도사와 원장의 논쟁, 윌리엄 수도사와 베르나르 귀의 논쟁 등등 관객이 들었을 때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역사와 철학에 관한 대화는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소설 <장미의 이름>에 있어서 거의 모든 것이나 다름 없다. 영화는 소설이 독자에게 안겨주는 지적 희열감을 제외한 대신 좀더 긴장감있고 구미당기는 장면들을 제공해준다. 소설이 영화화되는데 있어서 불가피한 점이다.

  소설을 먼저 보고 영화를 통해 소설의 내용을 확인하는 방법과 영화를 먼저 보고 흥미를 갖고 소설을 접하는 방법 중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이야기할 순 없다. 전자는 이미 충분히 소설이 안겨주는 무게감을 감당한 뒤에 가볍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반면, 후자는 어쩌면 영화를 통해 얻은 흥미를 가지고 무턱대고 소설을 접했다 좌절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 소설 따로, 영화 따로 생각하는 방법도 있다. 소설은 완결한 하나의 텍스트로서 대하고, 영화 또한 또 하나의 완결된 텍스트로서 대하는 것이다. 둘 사이에는 <장미의 이름>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굳이 동일한 내용을 가지고 하나는 소설, 하나는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은 채, 따로따로 생각하고 각기 즐기는 방법이다.

   나는 소설을 봤고, 한참 뒤에 영화를 보고, 다시 소설에 흥미를 가져 두번 보게 된 경우이다. 앞의 세 가지 방법 중 첫째, 둘째 방법이 뒤섞인 경우라고 할까. 처음 내가 소설을 읽었을 때는 어려웠다. 그저 다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했다. 하지만 영화를 접하고, 다시 흥미를 가지고 접했을 때, 영화를 통해 어느 정도 줄거리 파악이 된 이후 대한 텍스트는 좀더 쉽게 다가왔다. 줄거리를 뻔히 알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재미는 조금 떨어졌을지 모르나 워낙 쉽지 않은 소설이기 때문에 소설을 즐기지 않고 '이해'하는데 있어선 이 방법이 좋았지 싶다. 이와 관련되어 나온 다른 책자들도 함께 봤던 터라 <장미의 이름>을 제대로 봤단 뿌듯함이 나를 메운다.



* <장미의 이름>의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

***

1.  감독은 영화 출연진 캐스팅 과정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섭외하려 애썼다고 한다. 그것은 감독이 재능있는 무명배우를 발탁하는 데 취미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이 워낙에 독특한 캐릭터였다는 이유를 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정말 여러 나라의 배우들을 어렵게 섭외해 영화에 출연시켰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윌리엄 수도사의 역 숀 코너리 조차도 감독은 꺼려했다. 결코 그를 쓸 수 없다고. 007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 없다고 했다 한다. 이는 감독 뿐 아니라 기획사 전체가 동의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숀 코너리의 이 역에 대한 애정이 감독과 기획사를 무너뜨렸다. 딱 한번만 만나서 봐달라, 잘 할 수 있다, 고 몸값 높은 유명한 배우가 감독에게 사정을 했다 한다. 그리고 첫만남에서 당장 낙점되었다.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화판 출신들이 아니다. 연극계에서는 유명할지라도 영화계에는 낯선 그런 인물들이었다. 국적도 가지가지. 이탈리아, 독일, 호주, 미국, 프랑스 등등 다양한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각각의 인물들을 끌어모았고, 영화에서 그들의 원체 괴상한 외모와 말투는 별다른 특수효과나 분장 없이도 소화가능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실물 그대로 이다. 그리고 소설 속의 캐릭터를 충실히 반영했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2. 영화에는 섹스신이 하나 등장한다. 윌리엄 수도사를 따라다니는 젊은 청년 아드소가 야밤에 수도원의 한 곳간(?)에서 우연히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 정사를 나누는 장면이다. 아드소는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다. 소설에는 이 장면의 묘사엔 크게 할애하고 있지 않지만, 정사를 나눈 이후의 아드소의 심정에 대해서는 매우 길고 장황하게 그리고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여자는 내게로 다가서면서 그때까지 가슴에 안고 있던 까만 보퉁이를 구석으로 던졌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어서 내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조금 전에 하던 말을 되풀이했다. 도망쳐야 할지, 가까이 다가서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 내 귀에 예리고 성벽을 허물어뜨리는 여호수아의 나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여자는, 마음은 원이로되 차마 손을 내밀지 못하는 나에게 미소를 뿌리고는, 암염소 같이 주름잡힌 소리를 내면서 가슴 위에 둘러져 있던 치마끈을 풀었다. 치마가 휘장처럼 걷히면서 에덴 동산에서 아담 앞에 선 하와 같은 모습으로 여자가 내 앞에 우뚝 섰다.
<아름다워라 젖가슴이여. 부풀어올랐으되 지나치지 아니하고, 자제하였으되 위축되지 않았도다>
나는 우베르티노에게서 들었던 말을 라틴 어 원문으로 읊었다. 여자의 가슴이 흡사 백합 꽃밭에서 뛰는 두 마리 새끼 사슴 같았기 때문이었다. 배꼽은 영원히 비지 않을 술잔, 배는 백합꽃밭에 놓인 밀가루 자루 같았다." (장미의 이름 상권 P485)
 

 당시 캐스팅 됐던 아드소 역할엔 배우로서 처음 입문하는 16살 정도의 청년이라 할 수 없는 소년이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낙점되었는데, 그는 섹스신을 무난하게 치뤄냈다. 감독이 말하길, 자신이 컷 했는데도 여배우(여배우는 20대초반의 연극배우라고 들었다)와 그가 너무나 빠져버린 나머지 한동안 계속 하던 짓(?)을 진행했다고 한다.

3. 영화 속에서 베르나르 귀를 맡은 배우는 오페라인지 뮤지컬인지 그쪽 계열에서 대단한 사람이라 했는데, 그는 촬영 시간에 항상 맞춰온 일이 없었다고 한다. 되려 숀 코너리가 그를 한참이나 기다려야했다니. 자신은 유명한 배우이니 미리 와서 기다리지 않겠노라, 항상 내가 오기 전엔 다른 배우들이 모두 준비를 마치고 있어야 한다, 라고 했다나. 감독은 다시는 그를 자신의 영화에 출연시키지 않겠노라 말했다. 얼마나 심했으면 그랬을고.

4. 감독은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유럽의 여러 수도원들을 돌아다니며 장소를 물색했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 찾지 못하고, 새로 셋트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어마어마한 셋트에 비용이 얼마나 소요되었을지 상상도 안된다. 수도원을 하나 새로 지어야했으니. 또 그는 미술감독과 함께 수도원 내부의 장식이나 문양에도 당시 중세의 양식에 따르기 위해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했음을 고백했다. 결국 한가지 실수가 드러났는데,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알면서도 부러 그렇게했다는 그의 변명. 처음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가 수도원에 들어갔을 때 원장과 대화하며 보여지는 수도원 내부의 벽에 있는 상이 당시의 양식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나중에 영화를 본 몇몇 사람들에 의해 문제제기 되었다고 한다. 나야 뭐 잘 모르니 그냥 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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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6-07-13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소년, 크리스찬 슬레이터잖수. 왼다리짓 잘하기로 유명한. ㅋㅋㅋ

마늘빵 2006-07-13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잘 멀라. 왼다리짓이란 뭘 말하는고. 이 영화 말고 또 나온데가 있남?

프레이야 2006-07-13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오래전에 몇 번 봤던 기억이 되살아나네요. 소설에 못 미치는 건 정말 그렇죠. 그 방대한 지적 영역을 영화로 표현하기에는, 촛점이 다를 것 같아요. 아무튼 영화는 참 충격적이었어요.. 베르나르 귀 역의 배우가 그랬군요..

비연 2006-07-14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찬 슬레이터였군요! 근데 정말 원작만한 영화는 별로 없는 듯 해요...
 
장미의 이름 읽기 - 텍스트 해석의 한계를 에코에게 묻다
강유원 지음 / 미토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소설 <장미의 이름>과 관련해서 봐야 할 책들로 저자 움베르트 에코가 직접 쓴 <장미의 이름 창작 노트>와 더불어 이 책을 손꼽을 수 있다. <장미의 이름 읽기>라는 이 책은 철학박사 강유원이 쓴 것으로, 그는 젊은(?) 시절부터 소설 <장미의 이름>에 대한 텍스트 읽기 모임을 통해 꼼꼼히 검토해왔다. 그리하여 <장미의 이름>의 저자 이윤기씨의 최초 번역본의 문제를 지적했고, 재차 번역함에 있어서 오류를 수정할 수 있게 도와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강유원 씨가 그에 그치지 않고 <장미의 이름 읽기>라는 책까지 내놓았다.

  '텍스트 해석의 한계를 에코에게 묻다'라는 부제를 안고 있는 이 책은, <장미의 이름>에 대한 수많은 개인들의 자의적인 해석에 대한 경고와 논리적 사유 태도를 가지고 텍스트를 대할 것을 강조하는 강유원씨의 <장미의 이름>에 대한 사유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에코는 <해석의 한계>라는 책을 통해 "텍스트가 합리적 개념 규정과 그 규정에 따른 논리적 배열에 따라 해석되어야 할 것임을" 강조했다. "생동하는 세계에 대한 해석을 내놓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면 적어도 텍스트와 텍스트의 대화만이라도 제대로 해내는 게 학문하는 이들의 과제임을 이러한 경고와 요구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것이며, 모든 텍스트를 자의적으로 해석한다면 학문적인 생산은 물론 일상적인 의사소통까지도 불가능해진다" 강유원은 이어 "<장미의 이름>은 논리적 사유 태도를 가지고 읽어야 할 텍스트"라고 이야기한다. 이미 완결되어 독자 앞에 던져진 텍스트를 해석하는 것은 독자 개인의 몫이지만 텍스트를 해석하는데 있어도 나름의 법칙과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텍스트를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다고 하여 텍스트를 아무렇게나 찢고 이어붙이고 하며 만신창이로 만들어놓는 세태에 대한 강유원씨의 경고라고나 할까. 이 책은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 <장미의 이름>에 대한 해석의 문제에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책은 아닌게다.

  강유원은 소설 <장미의 이름>의 목차에 따라 살펴보며, 각각의 장면들에서 부연설명이 필요한 부분들, 그리고 제대로 해석하기 위한 조언을 서술해나가고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당시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부연설명이나 각 장에서 살펴볼 수 있는 주제에 대한 사유들을 펼쳐나간다. 소설 <장미의 이름>만으로 부족한 이들을 위하여, 또 소설이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한 좀더 깊은 사유를 원한다면 에코의 <장미의 이름 창작 노트>와 강유원의 <장미의 이름 읽기>를 순서대로 일독하길 권한다. 더불어 영화 <장미의 이름>도 함께 본다면 두배의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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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창작노트 - 양장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화자는 자기 작품을 해석해서는 안된다. 해석하고 싶다면 처음부터 소설을 쓰지 말 일이다. 소설이라는 것은 수많은 해석을 발생시키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자가 작품을 해석하지 않는다는 이 고결한 원칙을 지키는 데엔 한 가지 장애가 있으니 그것은 모든 소설에는 제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움베르트 에코는 자신이 쓴 <장미의 소설>이라는 소설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과 의문이 난무하자 이에 도움을 주고자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라는 책을 써냈다. 그러나 그가 말했듯이 작가는 자기 작품을 해석해서는 안된다.이미 완결한 소설은 하나의 텍스트로서 독자에게 주어진 것이며 그것은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다. 독자는 내던져진 텍스트를 접하고 나름대로 이해하고 파악하고 해석한다. 많은 독자들이 동일한 텍스트를 접하기 때문에 내용에서 빚어지는 커다란 견해차이는 없겠지만 이 소설은 충분히 많은 질문을 독자에게 던져놓았고, 독자 스스로 그것을 생각하도록 열어두었다. 논쟁이라고까지 할 건 없지만 해석의 여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셈이다.

  작가가 유일하게 텍스트에 해석을 가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에코가 지적했듯 소설의 '제목'이다.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의 제목은 많은 의문을 불러왔다. 왜 제목이 장미의 이름인가. 장미가 가지고 있는 서양 중세의 여러가지 의미와 또 '장미'가 아닌 '이름'에 부여되는 해석학적 문제들. 그것을 도라 이름 불렀을 때 그것은 더 이상 도가 아니다, 와 같은 문구도 이름의 의미에 대한 해석이라고 볼 수 있을 터. 셰익스피어는 "이름은 별 것이 아니다. 사물의 본질 그 자체에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라고 한 바 있다. 베르나르도 "어떤 사물에 제멋대로 붙여진 딱지에 지나지 않는다." 라며 셰익스피어의 견해와 같이 하고 있다. 장미의 이름에서 '장미'는 덧없다. "강력하고 매력적이고 마력적인" 이름 '장미'. 그것 역시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장미의 이름'이란 어쩌면 이름의 덧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런지. 사물은 제 각기 이름을 가지고 있다. 책상은 책상이요, 연필은 연필이요, 하늘은 하늘이지만, 그것은 갓 태어난 개새끼에게 '뚱띠' 와 '아롱이'라고 이름 붙인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하늘을 밥이라 하고, 밥을 똥이라 하며, 똥을 선물이라고 한다면 일상생활에서 언어소통의 어려움의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그것은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름의 덧없음'과는 또다른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 어찌 되었건 이미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의 제목은 그 자체만으로 많은 해석의 문제를 불러왔다. 작가는 벌써 이렇게 제목을 통해 작품에 해석을 가하고 제목에 대한 해석의 논의를 끌어냄으로써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텍스트는 그 자체로 독자에게 던져져야한다. 제목은 어쩔 수 없다해도.

   작가의 텍스트에 대한 침묵은 독자에게 텍스트를 잘못 해석할 기회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면 텍스트를 잘못 해석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런지도 모른다. 애초에 '잘' 과 '잘못'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것의 차이가 있다면 이는 이미 텍스트의 해석에 대한 정답이 따로 존재한다는 전제를 바닥에 깔게 된다. 독서란 바로 이것이다. 텍스트의 해석. 하나의 소설이 엄청나게 많은 독자의 손에 쥐어지고 독자는 각자 소설을 읽으며 나름의 의미를 찾는다. 즐긴다. 텍스트에 대한 다양한 해석, 그것이 바로 '독서'다. 에코는 그렇게 말한다. "작품이 끝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 죽음으로써 그 작품의 해석을 가로막지 않아야 한다"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 대한 <장미의 이름 읽기>라는 책을 내놓았지만, 이것은 해석의 차원에서 낸 것이 아니다. 작가가 독자로 하여금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토록 하기 위해 낸 책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는 텍스트에 대해 모범 해석을 내놓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잘'과 '잘못'은 생성된다. 하지만 에코의 이 작업은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이해를 '제대로 시키기 위한 것'과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은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정답을 상정한 데 비해 후자는 그저 각자의 해석에 풍부한 자료를 제공할 뿐이다. 이 책은 <장미의 이름>을 읽고 난 뒤에 쏟아지는 수많은 질문에 대해 대답하기 위한 책이다. 그러나 해석은 하지 않고.

  제목과 의미, 집필 과정의 기술, 중세, 가면, 누가 말하는가, 행보, 독자, 소설의 재미 등등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바와 같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나 과정, 그리고 이와 관련된 여러 주제들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 <장미의 이름>을 다 읽고 난 뒤, 많은 의문점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이 책을 집어들 수 밖에 없으며, 이 책은 충분한 대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리고 곁가지 이야기들을 제공함으로써 더 깊은 사색의 장으로 빠져들게 한다. 이것은 추리소설이자 역사소설이자 철학소설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는 이 책으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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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7-13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해석의 즐거움도 가치가 있겠지만요, 저같은 독자는 어려운 책은 이렇게 저자가 뭔가를 내놓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가 옳게 읽은 건지 헷갈려서 말입니다&&
 
장미의 이름 - 상 - Mr. Know 세계문학 15 Mr. Know 세계문학 15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읽어보지는 않았어도 책 제목만큼은 못들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추리소설이다. 그러나 이토록 무게감 있고 가벼이 보지 못할 추리소설도 따로 없을 것이다.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 소설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많고, 이 책을 산 사람이 많아도, 이 책을 본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영화 <장미의 이름>에서는 감독이 영화를 설명하며 그런 말을 했다. 사실 이 소설에 등장하지도 않는 부분(영화에만 있는)에 대해서 움베르트 에코에게 편지를 써서 그 부분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고 말 한 독자(?)도 있었다고 한다. 영화 <장미의 이름>은 봤어도, 소설 <장미의 이름>은 사놓고 보지 않은 것이다. 영화와 소설이 정확히 일치 하지 않으니 원작 소설을 보지 않은 채 영화만을 가지고 <장미의 이름>을 논하는 것은 위험하다.

  세계적인 지성 중의 한 사람으로 뽑히는 움베르트 에코. 그는 정말 천재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다재다능하다. 엄청난 지식을 소화해내고 많은 글을 생산해내는 다작가이지만, 글의 질적인 측면에서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글을 쓰는 작가는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한 권의 책을 내놓는 부류가 있고, 글쓰기를 글읽기 하듯 다작을 하는 부류가 있다. 아무래도 전자의 글은 좀더 깊이가 묻어나게 마련이고, 후자의 글은 깊이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움베르트 에코는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 솜씨를 보인다. 유럽의 유명 언론에 칼럼을 쓰는가 하면, <장미의 이름>과 같은 불후의 명작을 남기기도 하고, 본업인 기호학자로서의 이론가이기도 하며, 동시에 철학과 문학과 역사와 미학의 전문가이며 이 분야에서도 많은 글을 토해내고 있다. 중세철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컴퓨터도 잘 다룬다. 더불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는 물론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까지 능숙하다. 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는 학자다. 그가 쓴 책은 우리나라에도 많이 번역되어 있다.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논문 작성법 강의> <미의 역사> <소크라테스 스트립쇼를 보다> <포스터 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 <철학의 위안> 등 일일히 언급하기도 힘들 정도다.

   <장미의 이름>은 그의 여자친구의 권유로 재미삼아 시작해 본 작품이다. 누구는 재미삼아 쓴 작품이 이 정도이니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라고. 본래 그는 이 이 작품의 제목을 <장미의 이름>으로 잡지 않았다. <수도원 살인 사건> <아드소의 수기> 와 같은 혹은 그와 비슷한 제목을 붙이려다 갑자기 떠오른 것이 <장미의 이름>이었다. 제목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그것이 주는 어떤 비밀스러움과 중세적인 분위기가 소설을 대표할 수 있다고 믿었던게다. 서양에서 '장미'는 여러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장미 전쟁>에서의 장미, <그대는 병든 장미> 에서의 장미, <장미는 장미이고 장미는 장미이다>에서의 장미, <장미 십자단>에서의 장미 등등. 후에 제목을 붙이고,  베르나르의 '속세의 능멸을 위하여'의 싯구절 '어디에 있느뇨'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에코는 밝힌 바 있다. 아벨라르는 '장미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통해, 언어가 ㅔ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존재했지만 사라진 것을 드러내는지 설명했다. 제목을 붙이고 나니 <장미의 이름>에서의 '장미'의 존재는 매우 알쏭달쏭한 하지만 한편으로 깊은 의미를 지닌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에코가 우연히 접하게 된 어떤 중세의 책자가 이 소설의 발단이었다. 그는 실제 기록된 사건을 토대로 하여 뼈대를 만들고 살을 붙여나갔다. 중세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은 당연히 중세를 배경으로 한 수도원 살인사건의 소설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고, 라틴어 지식 등 그가 가진 다른 재능들도 이곳에 집적되었다. 그 누가 이런 소설을 쓸 수 있겠는가. 에코가 아니면 안된다. 이 소설 속에는 중세 수도원의 분위기와 역사, 그리고 아리스텔레스의 시학에 관한 내용 등 풍부한 지적경험이 녹아있다. 하나의 어려운 고대, 중세의 철학자의 1차 서적을 읽는 듯 어렵기도 하다. 무슨 소설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앞부분의 그 역사와 배경에 대한 길고 긴, 지루하기까지 한 글은 출판사에서 잘라내자는 제의까지 했으나 에코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장면이 없다면 소설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덕분에 독자는 900쪽에 달하는 두 권 짜리(한글판)의 지루하고 어려운 소설을 읽어야만 했다. 이 책을 내가 접한 것이 이번이 두번째. 처음 접했을 땐 도통 무슨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용 파악 조차 하기 힘들었다. 중세에 대한 지식도, 고대에 대한 지식도 가진 것이 없는 채로 이 지적고통과 지루함을 안겨주는 소설을 읽어나갈 수가 없었다. 다 읽긴 했다만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는 그런 경험이었다. 지금은 다행히 '완전히' 라고는 못하지만 내용파악과 그 의미를 해독했다고 생각한다. 추리소설을 읽으며 이것을 '즐김'의 대상이 아닌 '해독'과 '이해' 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우습지만.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윌리엄 수도사. 그는 매우 근대적인 사람이다. 안경과 나침반을 사용하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위에 사건을 조사하며, 이성을 사용한다. 하지만 수도원의 대부분의 수도사들은 그와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믿음, 신, 구원 등 철저히 기독교적 교리에 의한 영적인 능력을 가지고 사건을 바라본다. 그 극단에 있는 이가 베네딕트 수도회의 베르나르 귀이다. 화려한 언변과 찍 소리 못할 카리스마로 순식간에 한 수도사와 여인을 악마와 마녀로 둔갑시키는 그에게 아무도 대적할 수 없다. 사건을 바라보는 또다른 인물 아드소. 아직 10대인 아드소는 윌리엄 수도사를 따라다니며 세상을 배운다. 이 소설은 이 어린 아드소가 어린 시절 윌리엄 수도사의 곁에서 겪었던 사건을, 윌리엄의 나이가 되어 과거를 회상하며 서술한 형식으로 구성되어있다.

  다양한 측면에서 이 책을 바라 볼 수 있다. 이성과 신앙, 과학과 종교, 중세 수도원의 역사와 갈등, 마녀재판, 금해야 할 것과 금지된 것들, 책의 가치, 도서관의 역할, 사랑, 지식, 기호와 텍스트, 사물의 본질, 앎과 지식 등등.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사색하려면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매번 반복되는 독서를 해야 할 터이다. 너무나 많은 주제들이 집적되어 일일히 다 살피지 못하는, 수많은 지적체험으로,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뭔가 뿌듯하면서 머리가 가득찬 느낌과 동시에 아무 것도 알게 된 것이 없는 듯 벙찐 모습을 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매력이다. 두 권의 이 책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직도 그 때의 그 느낌이 묵직하게 나를 눌러온다.

 

 ***
 1. 신화학자 이윤기 씨는 이 책을 86년 처음 번역하고, 이후 여러차례 손을 보며 재차 번역을 하며 틀린 부분을 고쳤다. 또 이윤기 씨의 이 수고에는 철학자 강유원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이 텍스트를 공부하며 원전번역의 잘못을 지적한 책자를 만들어 출판사 측에 전달해줬고 이윤기 씨는 이를 바탕으로 번역을 시도하였다.

 2. <장미의 이름>을 통해 철학공부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도 재밌는 작업일 듯 하다. 기호와 텍스트의 측면에서 해석학을, 또 소설의 사건의 중심이 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또 소설의 배경이 된 중세 기독교와 철학을 신학을, 또 이성과 신앙, 과학과 종교의 관점에서 과학철학과 신학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을 듯 하다. 900장 짜리 두 권이라는 책이 주는 무게감은 이 소설 속에 들어있는 갖가지 지식의 양념이 주는 무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터이다. 다른 묵직한 책보다 이 두 권의 책을 바라봤을 때 느껴지는 무게감은 거기에서 비롯되는 것일게다.  

3. 나중에 여유가 된다면,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그때는 내가 좀더 내 머리 속에 철학지식이 쌓여있기를, 그리고 이를 토대로 많은 철학적 고민들을 했길 기대한다. 미래의 나에게.

 

***
인상적인 몇 구절을 첨부한다.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이 없더라." (서문) (상권 p23) 

들판에 가을이 오면 꽃이 시들어 꽃대에서 사라져 버리듯이, 인간 또한 그렇게 사라져 버릴 터인즉, 인간의 외양만큼이나 덧없는 것이 또 어디 있겠느냐 (보에티우스) (상권 p37) 

진정한 앎이란, 알아야 하는 것, 알 수 있는 것만 알면 되는 것이 아니야. 알 수 있었던 것, 알아서는 안되는 것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장미의 이름' 윌리엄 수도사) (상권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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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마니아 2006-07-12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호 이윤기 씨가 번역한 거였군

치유 2006-07-13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보니 다시 떨림이 있네요..참 두근 거리며 봤던 몇년전의 기억이예요..특히 장서관 살필때는..저도 다시 한번 읽어 봐야 겠어요..

마늘빵 2006-07-13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촬리 / 응 이윤기 씨 번역. 86년 초판때는 오류가 많았다는데 지금은 다 개선됐다지.
배꽃님 / ^^ 아 정말 어렵게 재밌게 읽은 책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집적되어있었어요. 철학적 주제들, 중세의 숭고하고 비밀스런 분위기, 아리스토텔레스, 책, 도서관 등등. 나중에 다시 보고 싶어요.

체다카 2006-08-25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윤기씨 유명세에 비하면 번역이 영 맘에 들지 않았어요. 이단논쟁 부분이나 주석 그리고 전체적인 번역문체상의 껄끄러움이 많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시간이 나면 꼭 영역판이라도 구해 읽고 싶은 책이랍니다. 구경 잘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