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창작노트 - 양장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화자는 자기 작품을 해석해서는 안된다. 해석하고 싶다면 처음부터 소설을 쓰지 말 일이다. 소설이라는 것은 수많은 해석을 발생시키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자가 작품을 해석하지 않는다는 이 고결한 원칙을 지키는 데엔 한 가지 장애가 있으니 그것은 모든 소설에는 제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움베르트 에코는 자신이 쓴 <장미의 소설>이라는 소설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과 의문이 난무하자 이에 도움을 주고자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라는 책을 써냈다. 그러나 그가 말했듯이 작가는 자기 작품을 해석해서는 안된다.이미 완결한 소설은 하나의 텍스트로서 독자에게 주어진 것이며 그것은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다. 독자는 내던져진 텍스트를 접하고 나름대로 이해하고 파악하고 해석한다. 많은 독자들이 동일한 텍스트를 접하기 때문에 내용에서 빚어지는 커다란 견해차이는 없겠지만 이 소설은 충분히 많은 질문을 독자에게 던져놓았고, 독자 스스로 그것을 생각하도록 열어두었다. 논쟁이라고까지 할 건 없지만 해석의 여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셈이다.

  작가가 유일하게 텍스트에 해석을 가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에코가 지적했듯 소설의 '제목'이다.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의 제목은 많은 의문을 불러왔다. 왜 제목이 장미의 이름인가. 장미가 가지고 있는 서양 중세의 여러가지 의미와 또 '장미'가 아닌 '이름'에 부여되는 해석학적 문제들. 그것을 도라 이름 불렀을 때 그것은 더 이상 도가 아니다, 와 같은 문구도 이름의 의미에 대한 해석이라고 볼 수 있을 터. 셰익스피어는 "이름은 별 것이 아니다. 사물의 본질 그 자체에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라고 한 바 있다. 베르나르도 "어떤 사물에 제멋대로 붙여진 딱지에 지나지 않는다." 라며 셰익스피어의 견해와 같이 하고 있다. 장미의 이름에서 '장미'는 덧없다. "강력하고 매력적이고 마력적인" 이름 '장미'. 그것 역시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장미의 이름'이란 어쩌면 이름의 덧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런지. 사물은 제 각기 이름을 가지고 있다. 책상은 책상이요, 연필은 연필이요, 하늘은 하늘이지만, 그것은 갓 태어난 개새끼에게 '뚱띠' 와 '아롱이'라고 이름 붙인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하늘을 밥이라 하고, 밥을 똥이라 하며, 똥을 선물이라고 한다면 일상생활에서 언어소통의 어려움의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그것은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름의 덧없음'과는 또다른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 어찌 되었건 이미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의 제목은 그 자체만으로 많은 해석의 문제를 불러왔다. 작가는 벌써 이렇게 제목을 통해 작품에 해석을 가하고 제목에 대한 해석의 논의를 끌어냄으로써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텍스트는 그 자체로 독자에게 던져져야한다. 제목은 어쩔 수 없다해도.

   작가의 텍스트에 대한 침묵은 독자에게 텍스트를 잘못 해석할 기회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면 텍스트를 잘못 해석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런지도 모른다. 애초에 '잘' 과 '잘못'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것의 차이가 있다면 이는 이미 텍스트의 해석에 대한 정답이 따로 존재한다는 전제를 바닥에 깔게 된다. 독서란 바로 이것이다. 텍스트의 해석. 하나의 소설이 엄청나게 많은 독자의 손에 쥐어지고 독자는 각자 소설을 읽으며 나름의 의미를 찾는다. 즐긴다. 텍스트에 대한 다양한 해석, 그것이 바로 '독서'다. 에코는 그렇게 말한다. "작품이 끝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 죽음으로써 그 작품의 해석을 가로막지 않아야 한다"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 대한 <장미의 이름 읽기>라는 책을 내놓았지만, 이것은 해석의 차원에서 낸 것이 아니다. 작가가 독자로 하여금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토록 하기 위해 낸 책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는 텍스트에 대해 모범 해석을 내놓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잘'과 '잘못'은 생성된다. 하지만 에코의 이 작업은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이해를 '제대로 시키기 위한 것'과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은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정답을 상정한 데 비해 후자는 그저 각자의 해석에 풍부한 자료를 제공할 뿐이다. 이 책은 <장미의 이름>을 읽고 난 뒤에 쏟아지는 수많은 질문에 대해 대답하기 위한 책이다. 그러나 해석은 하지 않고.

  제목과 의미, 집필 과정의 기술, 중세, 가면, 누가 말하는가, 행보, 독자, 소설의 재미 등등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바와 같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나 과정, 그리고 이와 관련된 여러 주제들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 <장미의 이름>을 다 읽고 난 뒤, 많은 의문점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이 책을 집어들 수 밖에 없으며, 이 책은 충분한 대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리고 곁가지 이야기들을 제공함으로써 더 깊은 사색의 장으로 빠져들게 한다. 이것은 추리소설이자 역사소설이자 철학소설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는 이 책으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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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7-13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해석의 즐거움도 가치가 있겠지만요, 저같은 독자는 어려운 책은 이렇게 저자가 뭔가를 내놓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가 옳게 읽은 건지 헷갈려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