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장미의 이름>은 잘 알다시피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토대로 만든 작품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었을 때의 느낌과 영화를 봤을 때의 느낌은 엄연히 다르다. 영화는 소설을 따라가지 못한다. 따라가지 못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의 텍스트로서 완결된 소설 <장미의 이름>과 별도로 영화 <장미의 이름>은 꽤나 흥미진진한 추리/스릴러 영화다. 얼마전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코드>가 영화화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보다 영화 <장미의 이름>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다.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들 때 주의할 점은 '흥미'다. 글자를 읽어가며 머리 속에서 독자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야기와는 달리 영화는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을 모든 관객에게 똑같은 영상으로 부여해준다. 글자가 눈으로 들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처음부터 영상이 눈으로 들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확실히 다르다. 전자가 글을 읽는 독자의 상상력의 산물이라 한다면, 후자는 그저 관객의 받아들임에 불과하다. 책을 찾아 읽는 독자들은 충분히 책이 내게 안겨주는 그 무게감을 감수할 의지가 있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은 편안하게 즐기길 원한다. 따라서 아무래도 원작 소설이 가지고 있는 흥미를 위주로 만들어나갈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추리 소설이었다면, 끊임없이 긴장감을 조성하고, 관객의 머리에 의문점을 안겨주고, 때로는 반전을 일으키기도 하고, 영화에서 빠지면 재미 없는 러브신 등 갖가지 양념을 집어넣고 버무려 맛있는 음식을 테이블에 제공해주어야 한다.

  아무래도 그러다보니 영화 <장미의 이름>은 소설 <장미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어떤 지적인 측면들이 많이 무시되었다. 중세 수도원의 역사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윌리엄 수도사의 이야기나, 또 윌리엄 수도사와 원장의 논쟁, 윌리엄 수도사와 베르나르 귀의 논쟁 등등 관객이 들었을 때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역사와 철학에 관한 대화는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소설 <장미의 이름>에 있어서 거의 모든 것이나 다름 없다. 영화는 소설이 독자에게 안겨주는 지적 희열감을 제외한 대신 좀더 긴장감있고 구미당기는 장면들을 제공해준다. 소설이 영화화되는데 있어서 불가피한 점이다.

  소설을 먼저 보고 영화를 통해 소설의 내용을 확인하는 방법과 영화를 먼저 보고 흥미를 갖고 소설을 접하는 방법 중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이야기할 순 없다. 전자는 이미 충분히 소설이 안겨주는 무게감을 감당한 뒤에 가볍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반면, 후자는 어쩌면 영화를 통해 얻은 흥미를 가지고 무턱대고 소설을 접했다 좌절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 소설 따로, 영화 따로 생각하는 방법도 있다. 소설은 완결한 하나의 텍스트로서 대하고, 영화 또한 또 하나의 완결된 텍스트로서 대하는 것이다. 둘 사이에는 <장미의 이름>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굳이 동일한 내용을 가지고 하나는 소설, 하나는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은 채, 따로따로 생각하고 각기 즐기는 방법이다.

   나는 소설을 봤고, 한참 뒤에 영화를 보고, 다시 소설에 흥미를 가져 두번 보게 된 경우이다. 앞의 세 가지 방법 중 첫째, 둘째 방법이 뒤섞인 경우라고 할까. 처음 내가 소설을 읽었을 때는 어려웠다. 그저 다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했다. 하지만 영화를 접하고, 다시 흥미를 가지고 접했을 때, 영화를 통해 어느 정도 줄거리 파악이 된 이후 대한 텍스트는 좀더 쉽게 다가왔다. 줄거리를 뻔히 알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재미는 조금 떨어졌을지 모르나 워낙 쉽지 않은 소설이기 때문에 소설을 즐기지 않고 '이해'하는데 있어선 이 방법이 좋았지 싶다. 이와 관련되어 나온 다른 책자들도 함께 봤던 터라 <장미의 이름>을 제대로 봤단 뿌듯함이 나를 메운다.



* <장미의 이름>의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

***

1.  감독은 영화 출연진 캐스팅 과정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섭외하려 애썼다고 한다. 그것은 감독이 재능있는 무명배우를 발탁하는 데 취미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이 워낙에 독특한 캐릭터였다는 이유를 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정말 여러 나라의 배우들을 어렵게 섭외해 영화에 출연시켰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윌리엄 수도사의 역 숀 코너리 조차도 감독은 꺼려했다. 결코 그를 쓸 수 없다고. 007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 없다고 했다 한다. 이는 감독 뿐 아니라 기획사 전체가 동의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숀 코너리의 이 역에 대한 애정이 감독과 기획사를 무너뜨렸다. 딱 한번만 만나서 봐달라, 잘 할 수 있다, 고 몸값 높은 유명한 배우가 감독에게 사정을 했다 한다. 그리고 첫만남에서 당장 낙점되었다.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화판 출신들이 아니다. 연극계에서는 유명할지라도 영화계에는 낯선 그런 인물들이었다. 국적도 가지가지. 이탈리아, 독일, 호주, 미국, 프랑스 등등 다양한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각각의 인물들을 끌어모았고, 영화에서 그들의 원체 괴상한 외모와 말투는 별다른 특수효과나 분장 없이도 소화가능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실물 그대로 이다. 그리고 소설 속의 캐릭터를 충실히 반영했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2. 영화에는 섹스신이 하나 등장한다. 윌리엄 수도사를 따라다니는 젊은 청년 아드소가 야밤에 수도원의 한 곳간(?)에서 우연히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 정사를 나누는 장면이다. 아드소는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다. 소설에는 이 장면의 묘사엔 크게 할애하고 있지 않지만, 정사를 나눈 이후의 아드소의 심정에 대해서는 매우 길고 장황하게 그리고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여자는 내게로 다가서면서 그때까지 가슴에 안고 있던 까만 보퉁이를 구석으로 던졌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어서 내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조금 전에 하던 말을 되풀이했다. 도망쳐야 할지, 가까이 다가서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 내 귀에 예리고 성벽을 허물어뜨리는 여호수아의 나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여자는, 마음은 원이로되 차마 손을 내밀지 못하는 나에게 미소를 뿌리고는, 암염소 같이 주름잡힌 소리를 내면서 가슴 위에 둘러져 있던 치마끈을 풀었다. 치마가 휘장처럼 걷히면서 에덴 동산에서 아담 앞에 선 하와 같은 모습으로 여자가 내 앞에 우뚝 섰다.
<아름다워라 젖가슴이여. 부풀어올랐으되 지나치지 아니하고, 자제하였으되 위축되지 않았도다>
나는 우베르티노에게서 들었던 말을 라틴 어 원문으로 읊었다. 여자의 가슴이 흡사 백합 꽃밭에서 뛰는 두 마리 새끼 사슴 같았기 때문이었다. 배꼽은 영원히 비지 않을 술잔, 배는 백합꽃밭에 놓인 밀가루 자루 같았다." (장미의 이름 상권 P485)
 

 당시 캐스팅 됐던 아드소 역할엔 배우로서 처음 입문하는 16살 정도의 청년이라 할 수 없는 소년이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낙점되었는데, 그는 섹스신을 무난하게 치뤄냈다. 감독이 말하길, 자신이 컷 했는데도 여배우(여배우는 20대초반의 연극배우라고 들었다)와 그가 너무나 빠져버린 나머지 한동안 계속 하던 짓(?)을 진행했다고 한다.

3. 영화 속에서 베르나르 귀를 맡은 배우는 오페라인지 뮤지컬인지 그쪽 계열에서 대단한 사람이라 했는데, 그는 촬영 시간에 항상 맞춰온 일이 없었다고 한다. 되려 숀 코너리가 그를 한참이나 기다려야했다니. 자신은 유명한 배우이니 미리 와서 기다리지 않겠노라, 항상 내가 오기 전엔 다른 배우들이 모두 준비를 마치고 있어야 한다, 라고 했다나. 감독은 다시는 그를 자신의 영화에 출연시키지 않겠노라 말했다. 얼마나 심했으면 그랬을고.

4. 감독은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유럽의 여러 수도원들을 돌아다니며 장소를 물색했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 찾지 못하고, 새로 셋트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어마어마한 셋트에 비용이 얼마나 소요되었을지 상상도 안된다. 수도원을 하나 새로 지어야했으니. 또 그는 미술감독과 함께 수도원 내부의 장식이나 문양에도 당시 중세의 양식에 따르기 위해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했음을 고백했다. 결국 한가지 실수가 드러났는데,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알면서도 부러 그렇게했다는 그의 변명. 처음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가 수도원에 들어갔을 때 원장과 대화하며 보여지는 수도원 내부의 벽에 있는 상이 당시의 양식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나중에 영화를 본 몇몇 사람들에 의해 문제제기 되었다고 한다. 나야 뭐 잘 모르니 그냥 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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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6-07-13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소년, 크리스찬 슬레이터잖수. 왼다리짓 잘하기로 유명한. ㅋㅋㅋ

마늘빵 2006-07-13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잘 멀라. 왼다리짓이란 뭘 말하는고. 이 영화 말고 또 나온데가 있남?

프레이야 2006-07-13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오래전에 몇 번 봤던 기억이 되살아나네요. 소설에 못 미치는 건 정말 그렇죠. 그 방대한 지적 영역을 영화로 표현하기에는, 촛점이 다를 것 같아요. 아무튼 영화는 참 충격적이었어요.. 베르나르 귀 역의 배우가 그랬군요..

비연 2006-07-14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찬 슬레이터였군요! 근데 정말 원작만한 영화는 별로 없는 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