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다 보더니 급기야 오늘 아침 인터넷 신문엔 노무현 대통령도 보좌진들과 함께 <왕의 남자>를 봤다는 기사가. 안그래도 하루 이틀 날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는 관객에 함박웃음 짓고 있을 <왕의 남자> 팀들. 더 입 찢어지겠구나.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고 있다 하여 대박이 났고, 쌍커풀 수술을 했다하여 성형외과가 싱글벙글 했고, 이번엔 영화다. 큭큭. 대통령이라는 위치가 참 대단하다. 별거 아닌 것에도 굉장한 영향력을 발휘하니. 그러니 무슨 행동을 하든 조심스러울 수 밖에. 나중에 대통령 시켜준다고 해도 안해야지. (누가 시켜주기나 한다냐?)
나는 너도 나도 다 보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본건 아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너무나 이 영화가 재밌고 잘 만들었다는 입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에 참지 못하고 아니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그래! 라는 마음으로 관람. 그런데 내 눈으로 확인결과 정말 재밌다. 정말 잘만들었다. 사람들이 그토록 칭찬할만하다, 는 생각.
이 영화가 대박난 덕분에 영화의 모태가 된 연극 이(爾 ) 또한 대박 행진을 한다고 한다. 이미 끝난 공연을 다시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고. 연극의 연출자는 각종 매스컴과 인터뷰를 하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영화가 대박이 났는데, 영화의 모태가 된 연극이라고 하여. 그래서 연출자 김태웅씨는 스스로 연극이 너무 좋아 인터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영화와 매스컴의 힘에 입어 인터뷰를 하게 되어 쑥쓰럽다고 했다지.
<왕의 남자>는 조선시대 연산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실제 기록에 따르면, "공길이라는 광대가 왕에게 '왕이 왕 같지 않으니 쌀이 쌀 같지 않다'고 말했다가 참형을 당했다." 이것은 그 기록을 가지고 만든 영화다. 아니 임금이 어떻게 비천한 광대를 마주할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으로.
* 연산군과 공길. 이쁘장한 남자 공길을 좋아라하는 연산군. 난 개인적으로 이준기의 매력을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왜 이렇게 이준기를 좋아라할까나. 그냥 보면 너무나 갸냘프고 어떻게 보면 얍삽하게까지 보이는구만.
* 장생의 최후. 평생 장님 연기하다가 정말 장님되고 나니 눈에 뵈는게 하나도 없고나. 마지막 위태한 줄타기를 하면서도 왕이 쏘아대는 화살을 잘도 피했것다. 마지막으로 신명나게 놀아보고 이 세상 하직하자꾸나.
조선조 남사당패의 광대 장생. 더이상 당하며 살고 싶진 않다며, 같은 패거리의 또다른 광대 공길을 이끌고 도망쳐 나온다. 크게 놀아보자며 한양으로 나서는 두 사람. 역시나 장생의 카리스마와 재주, 공길과의 꿍짝 호흡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이끈다. 이들에게 패한 광대무리, 함께 어울리기로 약속. 다섯 사람은 이제부터 큰일을 벌인다. 당시의 임금인 연산군을 가지고 놀기로 작정한 것이다. "개나 소나 다 왕 얘긴데, 좀 노는게 뭐 대수야?" 공연은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지만 이를 지켜본 대감, 이들을 의금부로 압송.
왕을 웃기면 살고, 웃기지 못하면 죽는다. 아무리 길거리에서 신명나게 춤춰봤지만 왕 앞에서 어찌 그짓을 하랴. 비실비실 공연 망칠 분위기에 장생과 공길이 나서 왕을 웃겼다. 으하하 살았구나. 그러나 고생은 이제부터. 따땃한 밥에 진수성찬 매일 먹으면 뭐하랴. 매일매일이 초긴장상태인걸. 공연할 때마다 한명씩 죽어나가니 이거 원 공연을 할 수가 없고나. 궁궐에서 엄청 큰 판이 벌어졌다. 궁내의 여인들의 암투 속에서 죽어간 후궁의 이야기. 연산군의 어머니 이야기다. 흥분한 연산군,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직접 선왕의 여인을 칼로 찔러 죽인다. 광대들은 이제 나가고자 한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더이상 행복할 순 없다. 하지만 왕은 내보내주지 않는다. 급기야 왕의 애첩으로부터 모함을 받은 공길. 장생은 이를 대신해 뒤집어쓰지만 여전히 당당하게 왕을 희롱하며 급기야 두 눈이 멀기까지.
<왕의 남자>에는 이쁜 여배우도 안나오고- 강성연은 별루 - 잘생긴 멋진 남자배우가 나오지도 않지만 흥행 대박을 이루고 있다. 대개의 대박영화가 개봉초부터 시간이 지나며 흥행곡선이 꺾이는데 반해, <왕의 남자>는 되려 시간이 지날수록 상승세를 맞이하고 있다는 기이한 분석도 나왔다. 아니 어떻게 시간이 지나면 관객이 줄어들어야지 더 늘어나? 입 소문이다. 입 소문을 믿고 보기 시작한 관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때문에? 순전히 탄탄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이쁘장한 신인 배우 이준기를 보러 온다고 하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이유일 터.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준기 이준기 외치지만 난 이준기는 눈에 별로 들어오지도 않았고, 장생이 내뱉는 대사들이 너무나 좋았다. 대놓고 왕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그의 입담은 장님이 되어 마지막 줄타기를 하는 순간까지도 끝나지 않는다. 죽으면 입만 둥둥 뜰놈? 조선시대 신분 사회의 최하층민인 광대출신이 감히 왕을 앞에 놓고 욕지거리를 한다. 하늘 아래 왕은 하나, 하늘 아래 모든 것은 왕의 것, 하지만 오늘 그 왕을 가지고 질펀하게 놀아본다.
<왕의 남자>는 왕과 광대의 만남 속에서 벌어지는 서로의 욕망, 질투, 비극에 관한 영화다. 장생과 공길은 제대로 크게 놀았고, 제대로 세상을 맛보았고, 제대로 세상을 마감했다.
하나더. 이 영화에서 사람들이 주목하는 인물을 순서대로 뽑으라면, 이준기-감우성-정진영-강성연 순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이준기의 이쁘장한 외모와 감우성의 연기력과 신명난 대사가 주로 관심을 받는데 비해, 정진영이 너무 소외되지 않았나 싶다. 예전부터 난 정진영을 주목해왔고, 그의 매력에 푹 빠졌다. 영화가 시원찮아도 정진영은 그만의 마력을 발산했다. 양동근과 호흡을 맞췄던 <와일드 카드>같은 영화가 그 예. 장생이 관객에게 전해주는 카리스마가 너무나 컸던 나머지 장진영의 미친 연산군 연기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긴 했지만 그는 너무나도 미친놈 연기를 잘해주었다. 무표정한 딱딱한 얼굴에서 도대체가 정신이 제대로 박힌 놈인지 알 수 없는 표정에 이르기까지. 그의 신하들과 선왕의 여인들을 직접 죽이는 장면 역시 최고였다. 누구 하나 탓할 만한 배우가 없다. 모두가 다 제 역할을 잘 해주었다. 쵝오 쵝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