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최초 문제제기자를 공격하거나 알라딘 사측을 옹호하기 위한 글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나는 최초 문제제기자가 던진 질문들을 중심으로 이곳에서 8년 정도 활동한 서재인으로서 생각을 정리하였다. 동조하고 공감하고 따뜻하게 덧붙이는 글도 좋겠지만,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합리적으로 따져보고 생각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 글의 목적은 후자에 있다.
나는 왜 책을 읽고 (알라딘에서) 글을 쓰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이 공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자신이 어떤 책을 읽은 후의 소감을 남길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다. 책을 읽고 난 뒤 스스로 정리할 곳이 필요했거나 나처럼 기억을 보존하고자 글 창고처럼 쓰려고 들어오지 않았을까. 자신과 같이 책을 읽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하기 위해 자리를 잡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서재를 개설하고 글을 썼는데 어느날 내 계정에 적립금이 들어왔다. 함께 메일도 왔는데 보니 '이주의 당선작'에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서재 활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주간 서재의 달인'에 올랐다고 또 적립금을 줬다. 기분이 좋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그저 했을 뿐인데 우연찮게 그 활동이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돈도 버니 얼마나 좋은가.
주간 서재의 달인, 왜 폐지되었나?
어느 날, 알라딘에서 주간 서재의 달인을 폐지하겠다고 하였다. 리뷰나 페이퍼 등을 올려 점수를 쌓고-각각의 점수가 어떻게 산정되는지는 모른다- 열심히 활동한 30명에게 5천 원인가를 지급했었는데-이 공간의 사람들은 그 돈을 두고 '주급'이라고 표현했다- 사라진 것이다. TTB 시스템을 도입했을 때였는지 기억이 정확하진 않은데, 당시 주급을 타기 위해 광고성 글을 올려 점수를 쌓아 30인 안에 들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연예인 사진을 퍼와 페이퍼 수를 늘린다거나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자신이 쓴 것인양 옮겨 놓는 사람들도 있었다. 기타 등등의 부작용으로 알라딘은 아예 폐지하기로 했던 것.
이후 적립금을 주는 제도가 몇 차례 바뀌었고, 사실상 주급이 사라지고 당선작에 주는 적립금의 액수가 적어지면서, 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줄어들었다(고 생각한다). 돈이 적어지니 관심이 줄고, 관심이 주니 논란도 사그라들었다. 이후 적립금을 타기 위해 부정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지지 않았나 싶다. 예전엔 다른 인터넷 서점의 블로그를 함께 운영하는 사람들 중에는 같은 글로 적립금을 동시에 타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각 서점마다 타 서점과의 중복 글은 후보에서 제외하겠다고 했지만, 담당자도 모든 인터넷 서점을 돌아다니며 중복된 글인지 아닌지 여부를 확인하기 힘들기에 중복해서 당선된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왜 지금 알라딘의 적립금 제도가 논란이 되는가?
심사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제기, 알라딘의 매출이 증가한 데 비해 이용자들에게 돌아가는 적립금이 적어진 것에 대한 불만이 있는 것 같다. 심사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처음 있는 건 아니다. 예전에도 비슷한 문제제기를 본 적이 있고, 누가 심사하는지 알라딘 측은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략 엠디들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누가 누구의 글을 심사하고, 그 글을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해볼 수는 있다. 이건 백일장도 아니고, 내신 점수에 들어가는 논술형 수행 평가, 인생을 좌우하는 대학 입시 논술이 아니지만 글에 대한 애착이 있고, 뽑히기를 희망하며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글이 당선작에서 제외됨으로써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학 입시 논술도 마찬가지지만 아무리 객관적 잣대를 내놓는다고 해도 글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다시 처음의 질문을 던져 보자. 나는 왜 책을 읽고 알라딘에서 글을 쓰는가? 질문을 좀 더 분명하게 해보자. 내가 이곳에서 글을 쓰는 목적은 무엇인가? 물론 그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함께 책을 읽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교류하고 싶어서, 이곳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그동안 알아왔던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기타 등등. 주제에 부합하게 좀 더 좁혀서 질문해 보자. 내가 이곳에서 '리뷰를 쓰는' 목적은 무엇인가? 앞의 다른 이유 때문이라면 리뷰를 쓰지 않고 페이퍼로 수다를 떨면서 놀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리뷰를 쓰는가? 각자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왜 알라딘은 특정 서재인들을 중복 당선시키는가?
먼저, 알라딘이 특정 서재인들을 중복 당선시킨다는 명제는 진실인가? '이달의 당선작'에 들어가보면 당선되는 사람들이 중복되는 경향이 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다른 글을 쓰더라도 어느 정도 질적 수준을 유지하는 편이고, 때문에 이달에 됐던 사람이 다시 당선될 수도 있다. '이주의 당선작'이 '이달의 당선작'으로 바뀌면서 기회는 일 년에 열두 번으로 바뀌었고, 열두 번 중 두 번만 당선되어도 사실상 중복이다. 진실이다.
알라딘이 특정 서재인들을 중복 당선시키는 것은 의도적인가, 그렇다면 편애하는 것인가? 특정 서재인들이 여러 번 당선되는 경향은 있지만, 그건 알라딘 서재에서 엉덩이 붙이고 꾸준히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라졌고, 남은 이들과 또 새로 들어온 이들 중 활동파들이 그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글을 많이 쓰고, 어느 정도의 질적 수준을 담보한다면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겠나. 의도적으로 특정인을 편애하여 뽑아주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열심히 쓰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소수일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이주의 당선작' 제도가 있던 시절에 알라딘 측은, 일부러 한 번 당선됐던 사람은 다음 주에 좋은 글을 내놓더라도 제외하곤 했다(고 한다). 목격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누구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관계자의 말이었다. 된 사람을 또 뽑아주면 다른 좋은 글을 썼던 사람들이 제외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괜찮은 글임에도 제외하고, 뽑히지 않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이를 두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뽑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때에는 일년에 56번을 주기 때문에 두 번 이상 중복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뽑히는 숫자가 많아 여러번 당선되더라도 별로 티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떠한가? 매주 뽑던 시스템에서 일년에 열두 번 뽑는 시스템으로 바뀌었으니 그 횟수가 확연하게 줄었다. 일년에 열두 번이고, 매번 스무 편 가까이 되는 글을 뽑는다. 기회는 줄었고, 다음 당선 때까지는 한 주가 아닌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린다'는 표현이 적합한지는 모르겠다. 자신의 글이 뽑히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테고, 뽑던지 말던지 무심한 사람도 있을 테니까. 이번 달에 당선된 사람이 한 달 동안 열심히 글을 쓰면 등록한 글의 갯수와 관련 없이 좋은 글 한 편이 또 나올 수 있다. 그러면 또 당선된다. 한 사람이 일 년 열두 번 중 열두 번 모두 뽑히거나 여섯 번 이상을 연속해서 뽑히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이를 문제삼을 수 있을까?
알라딘은 알라디너 위에 군림하는가?
당선과 적립금을 빌미로 알라딘 사측은 알라디너 개인 위에 군림하는가? 월별로 글을 취합하여 당선작을 뽑는 것이 부당한가? 심사 대상에 오르지 않는 글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인가? 이러한 문제제기라면 당선작을 뽑는 시스템을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심사를 한다는 것이 부당해 보이니까. 심사 대상에 오른 글을 쓴 사람들이 자신의 글이 뽑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심사자가 간택해주기를 바랄 때에야 심사 대상자들 위에 심사자가 군림한다는 표현이 그나마 비슷하게라도 꼴을 갖추게 된다. 이때에도 군림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군림은 특정인이 어떤 분야에서 절대적인 세력을 가지고 남을 압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경우가 그 사례라고 보기는 어렵다.
* 전체적으로 제기된 여러 물음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다. 내가 머무는 공간을 만든 회사에 문제제기를 하고, 이 공간에 둥지를 틀고 활동하는 이들의 글에 반응하는 것은 모두 이 공간과 사람들에게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애정과 관심이 지나쳐 없는 실체를 만들거나 희미한 어떤 느낌을 부풀려 확대 해석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알라딘은 책을 팔고 문화를 팔며 장사를 하는 서점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알라딘과 알라디너를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로 보았을 때, 매출이 높아졌으니 사측은 이용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말할 수 있다. 매출과 서재 활동과의 상관관계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추측은 해볼 수 있는데, 아무래도 서재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올리는 밑줄긋기, 리뷰, 페이퍼 등이 서로에게 ‘지름신’을 불러올 테고, 서로가 서로에게 구입하게끔 자극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서재에 머무는 시간이 늘다보면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되고, 반드시 눈에 들어오는 책을 발견하고 구매 버튼까지 누르게 된다. 책 정보를 보러 들어왔다가 그 책에 달린 리뷰와 페이퍼를 보고 충동 구매할 수도 있다. 어떤 출판사는 직원들에게 리뷰나 페이퍼를 쓰라고 종용하기도 한다는 것으로 미루어 어쨌든 그 책에 대한 악평이 아닌 다음에야 흔적을 남기면 구매로 이어지기는 하는 것 같다. 이를 통해 적립금의 금액을 늘리라거나 매달 좀 더 많은 인원을 뽑아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초 문제제기가 순수하게 이 부분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이쯤에서 마무리하겠다.
덧) 이용자들의 충성(?)은 알라딘에게 득이 되기도 하고, 실이 되기도 한다. 득이 되는 것은, 알라딘만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것. 그 안에는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서재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나름의 이미지가 구축된 것도 있다. 혹자는 진보적인 블로거들이 많다면서 알라딘 서점 자체에 진보적 색깔을 씌우기도 한다. (알라딘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진보적인 것, 알라딘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진보적인 것, 알라딘 회사가 진보적인 것은 별개이다. 첫번째에 대해서는 그렇게들 많이 말하고, 두번째는 검증되지 않았으며, 세번째는 모르겠다.)
이런 이미지는 알라딘이 매출을 높이는 데 특별히 도움이 될 것 같지는 같다. 책을 구입하는 사람들 중 다수가 진보적이고 인문학적 취향을 지닌 사람일 것 같지만 매출 면에서는 그들의 폭이 크지 않을 것. 여러 인터넷 서점이 경쟁하는 가운데 ‘진보’와 ‘인문학’ 콘셉트는 나름의 독특한 브랜드를 형성할 수는 있지만, 기업에게 브랜드는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 한 쓸모가 없다. 물론 매출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그 브랜드는 매니아들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는 알라딘 경영자에게 달려 있다. 이용자들은 그 선택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정하고 움직이면 된다. 매출 증대와 브랜드 구축의 어느 중간을 찾아 균형을 잘 유지했으면 하고 바라본다.

< 출판사와 편집부 이름이 알라딘인데, 알라딘 직원들이 편집하고 알라딘에서 낸 건가요? 에이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