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출판마케팅연구소 요청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출판 격주간지 "기획회의" 325호(2012.8.5.)에 실렸습니다. 분량을 맞추느라 두 배 이상의 글을 압축하여 줄였습니다. 실린 글에는 조사가 바뀌면서 주어가 달라져 잘못된 부분이 있으니 아래 글을 참고해주세요.



편집자론 논쟁에 관하여: 편집자로 산다는 것, 그리고 편집자로 일한다는 것    



  지난 5월 김학원, 정은숙, 이홍, 변정수, 강주헌, 정민영 님이 쓴 "편집자로 산다는 것"이 출간되었고, 이 책에 대한 김류미 님의 서평과 그에 대한 변정수 님의 답, 1년차 편집자의 글, 민음사 장은수 대표의 서평에 이어 북에디터, 트위터 등을 통해 편집자론 논쟁이 산발적으로 벌어졌다. 여기서는 ‘편집자로 사는 것’을 주장하는 변정수 님과 ‘편집자로 일하는 것’을 말하는 장은수 님의 편집자론을 살펴보려 한다.


  변정수 그리고 장은수 님의 편집자론


  "이제 편집자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자신의 삶도 제대로 편집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정신이 담긴 텍스트를 감히 편집할 엄두인들 낼 수 있을까.", "편집자로 살고 있지 못한 사람이라면, 정작 책을 만들 기회를 아무리 많이 주어도 아까운 종이로 '책'이 아니라 '폐지'만을 만들어내는 게 고작일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편집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편집자로 사는 것'이다."


  변정수 님은 편집자는 책이 탄생하기까지의 모든 과정과 이후의 판매량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편집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사업 단위"라는 것.


  반면, 장은수 님은 "편집자는 지식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직업 중 하나”이며, “출판 자본에 고용되어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전문가일 뿐"이라며, "출판사가 편집자에게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출판사의 잘못이지 스스로 브랜드가 되지 못한 편집자의 잘못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아가 개개인이 모두 브랜드인 편집자로 이루어진 출판사는 공상에 불과하다고 덧붙인다. 그에게 편집 노동은 "높은 학습 능력과 시행착오의 축적을 통해 숙련되는 일상의 여러 노동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장은수 님은 ‘편집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편집자로 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편집자로 산다는 것과 편집자로 일한다는 것의 차이: 변정수 님을 중심으로


  편집자로 사는 것과 편집자로 일하는 것. 후자가 회사에 취직하여 일하는 다른 직업인과 같다면, 전자는 그 이상을 요구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 장은수 님의 글을 비판하는 분들이 안 보이는 반면, 변정수 님의 글을 비판하는 이들은 많다. 변정수 님은 이상적인 편집자상이 이렇다,라고 말하지 않고, 편집자는 이러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나는 변정수 님의 주장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이때의 동의는 그것이 '이상적인 편집자상'임을 전제했을 때이다. 모든 편집자가 변정수 님의 말대로 '편집자로 살' 수는 없으며, 다수의 편집자들은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감수하면서 제 임무를 다한다.


  변정수 님은 '제 임무를 다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고 되묻지 않을까 싶다. 그분의 입장에서 편집자가 제 임무를 다하는 것은 오탈자를 찾거나 비문을 바로 잡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편집자의 총체적 인격을 책에 실을 것인가’와 관련이 깊다. 그러나 인정하자. 다수의 편집자들은 쏟아지는 원고를 짧은 일정에 맞추어 '생산해내야' 한다. 보통 직업인으로서의 역할만 하기도 버겁다. 책에 치명적 오류가 있고, 왜 이 원고를 이렇게밖에 다듬지 못했을까 의문이 생겨도 이는 편집자가 아닌 출판사 대표의 책임이다.


  변정수 님은 대표의 책임인 동시에 편집자의 책임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편집자가 원고를 장악하지 못했고, 엉망인 제품을 생산했다고. 그렇다. 하지만 편집자가 처한 조건이 나아지지 않는 한 결과물에 대해 책임질 수는 없으며, 편집자가 자신이 만든 책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해도 이는 그가 처한 현실에 기인한다. 또한 편집자가 만든 제품에 책임을 물으려면, 기획과 저자 섭외부터 일련의 모든 과정을 자신의 판단대로 진행했을 경우여야 한다.


  소비자는 질 좋은 제품을 사고 싶고, 편집자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 출판사 대표도 그렇다. 그런데 일정에 맞추어 급하게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현실이다. 내용 오류가 없으면 다행이고 문장이 거칠거나 오탈자가 있어도 애교로 넘어가야 한다. 독자는 불만을 표하고, 대표는 편집자를 혼낸다. 편집자는 토로할 곳이 없다.


  어떤 편집자들은 괜찮은 노동 환경에서 일하겠지만, 어떤 편집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면접 자리에서 연봉 1,500만 원을 불렀다는 인문 출판사, 표정이 어둡다며 또는 출산 예정이라며 해고하는 출판사가 있다. 연차가 없거나 있어도 못 쓰는 출판사는 수두룩하고, 작업 속도가 느리다며 해고하는 출판사도 있다. 다른 출판사로 이직한 뒤에도 전 출판사의 관계자로부터 말이 전해지며 재차 해고 당하는 사례도 있다.


  이들에게 '편집자로 산다는 것'은, 출근 시간부터 퇴근 시간까지 위에 언급한 삶을 견디는 것에서 나아가 삶 전체를 '살아내야' 하는 것이 된다. 변정수 님이 말한 '편집자로 산다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해도, 그게 현실이다. 물론 변정수 님도 편집자가 처한 현실을 알고 있다. 변정수 님은 "편집자들이 수도 없이 저지르는 실무적인 판단 착오의 이면을 꼼꼼히 들춰보면, 바로 이런 식(동네 구멍가게만도 못한 주먹구구식 경영)의 대책 없는 낙관이 안일한 판단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하며 편집자들이 처한 환경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시, 편집자로 산다는 것


  변정수 님의 편집자론은 편집자들을 불편하게 한다. (이 불편함은 나쁘지 않다. 사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장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편집자들의 부족한 부분을 하나하나 지적하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때문에 편집자들은 자신들을 월급 도둑 취급한다거나 대우는 제대로 안 해주는 현실을 무시하고 요구만 많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변정수 님의 글에 내가 생각하는 편집자상이 들어 있다. 그런데 어떤 직업인도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나는 변정수 님이 주장한 바를 '편집자로서의 정체성'이 아닌 '이상적인 편집자상'에 맞추면 어떨까 싶다. 장은수 님과 변정수 님의 말대로 편집자는 '만들어진다'. 변정수 님은 편집자는 타고난다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편집자가 되기 이전에 축적한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논쟁 글에서 변정수 님은 다시 이렇게 서술했다.


  "편집자는 오로지, 자신의 삶에 대한 치열한 긴장과 근본적으로 낯설고 새로운 세계일 수밖에 없는 타인에 대한 존중어린 관심이 체화되고 내면화되는 지속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신입 직원이 편집자로서 축적한 경험과 노력으로 변정수 님이 말한 '편집자'로 성장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본다면 편집자로 일하는 것과 편집자로 사는 것은 결국 같은 지점을 향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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